그림속에 숨겨진 이야기들

땅크나가신다 작성일 13.01.27 16: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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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밀레의 《만종》

우선 첫번째로 소개해드리는 유명한 밀레의 만종입니다.

딱 처음 봤을때 이 그림을 보면 어떤 느낌이 드시는지요??

이 그림은 '이삭줍기'와 더불어 많이 알려진 그림인데요~ 
대게 사람들이

하루 일을 마치고 농부 부부가 교회종소리를 들으며 기도하는 평화로운 모습 그린 그림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 또한 학창시절 수업시간에 그렇게 배웠던 기억이 나네요.

하지만 이 그림에는 슬픈 이야기가 숨어있습니다.

손을 모아 기도를 하고 있는 농민 부부의 바구니를 잘 살펴보십시요.

바구니 안에는 뭐가 보이나요?

감자와 밭일 도구로 보이겠지만... 사.실.은

 기도하고 있는 부부의 아기의 시체  들어있었습니다.

그 시대에는 배고픔으로 굶어 죽는 아이들이 많았는데, 그들의 아기도 배고픔을 참지 못해 죽은

아기를 바라보며 애도하는 그림이죠.

그렇습니다. 원래 초에는 바구니가 아닌 아이의 시체였습니다.

관이라는 이야기도 있고, 바구니안에 아이 시체라는 말도 있는데 어느것인지는 잘 모르겠네요.

큰 흉년이 들었던 해, 농부 가족은 굶주림에 시달리며 봄이 오기를 기다렸다.

어서 따뜻한 새봄이 오면 씨감자를 심어 배고픔에서 벗어 나리라 한가닥 희망을 가슴에 품은채,

춥고 긴 겨울을 고통 속에서 보냈다.

근데 새봄이 오기도 전에 사랑하는 어린 아이가 배고픔에 지쳐 그만 죽어 버리고 말았다.

너무 가난했기에 관을 살 돈조차 없었나보다.

감자가 담겨 있는 바구니에 죽은 아이의 시체를 담고 부부는 땅에 묻에 주려고 나온 것이다.

원래 그림에는 감자 바구니에 아이의 시체가 그려져 있었다고 한다.

근데 밀레의 친구가 그림을 보고는 너무 잔인하다고 충고했고, 밀레는 아기 위에 감자를 덧칠해 그렸다고 한다.

x-ray사진을 찍어 보면 바구니속엔 죽은 아기의 시체그림이 실제로 나타난다고 한다.

사랑하는 아이를 공동 묘지에 조차 묻을 수 없어, 밭 귀퉁이에 아이를 묻어야만 하는 부모의 심정은 오죽했을까.

서양 사람들은 죽을 때는 목사님을 불러다가 시체를 묻는 것이 일반적인 풍습인데, 왜 그림엔 목사님이 안보이는걸까?

아마 그 부부는 최하층 천민에, 끔찍한 가난을 겪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아마 밭도 그 농부 부부의 소유가 아니었을 것이다.

어두워 지기를 기다려, 남의 밭 한귀퉁이에 밭주인 몰래 아이를 묻으려 하고 있다.

살바도로 달리는 이 그림을 보고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맛보았다고 합니다.

그 불안감이 얼마나 집요하게 그의 뇌리에 들러붙었는지 달리는 오랫동안 그 까닭을 알아내려 했고, 그에 관한 책을 쓰기까지 했다고 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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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영국화가 윌리엄 호가스(William Hogarth) -《그레이엄 집안의 아이들 초상화》

아이들의 행복한 표정을 담아내려고 했던 윌리엄호가스.

당시 그레이엄 집안의 아이들 2남 2녀가 그림속에 있는데,
위의 그림을 보면 수줍은듯 웃고있는 두 자매,

의자에 앉아 새장 속의 새를 올려다보며 음악상자를 연주하던 장남
유모차에 앉아 있는 막내 등 4명의 아이들이 보입니다.

한가지 사실은, 왼쪽아이는 드레스를 입고 있어 여자아이 같이 보이겠지만 사실은 사내 아이입니다.

당시 유럽에서는 남자 아이들도 여자 아이 옷을 입혀 키웠다.

그 이유로는 "남아 사망률 > 여아 사망률"
남자 아이를 여자 아이로 보이게 하면 죽음을 피해갈 수 있다고 생각해서 였다.

하지만 저 그림중의 가장 어린 막내 토마스는 이 그림이 완성되고 몇일 후 사망했다.

그리고 그림분석가는 이 그림을 보고 그림속에 죽음이 예견 되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몇가지 증거로는,

(동그라미가 표시된 곳을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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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커다란 낫을 들고 있는 천사 상 : 사투르누스의 지물이자 죽음의 도구 낫(죽음을 상징)
2. 두 눈을 번뜩이며 새장을 바라보고 있는 고양이 : 마치 새장 속의 새를 노리는 눈빛

3. 새장속의 새 : 고양이로부터 생명의 위협을 느낀 듯 날개를 파닥거리는 새
4. 토머스가 앉아 있는 유모차 : 유난히 눈에 띄는 새 장식(날개를 파닥거리는 새는 영혼이 육체를 빠져나가는걸 의미)

윌리엄 호가스는 죽음을 예견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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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에드가르 드가(Edgar Degas) - 《무대 위의 무용수》

에투알(etoile) : 프랑스어로 별(Star) 의미. 발레에서는 스타 무용수를 가리키는 말

아름다운 발레리나의 뒷모습에는 당시 어두웠던 사회상이 숨겨져 있었다고 합니다.

발레에 대한 평가가 낮았던 19세기 후반...

긴 드레스로 다리를 가리고 다녔던 당시 여인들은,

다리를 드러내놓고 춤을 추는 무용수들을 경박한 존재로 취급했다.

당시의 시대적 분위기로 인해 무용수들은 생계 위협을 느껴
후원자들의 경제적인 지원에 의존 할 수 밖에 없었다.

검은 양복 차람의 한 남자가 보이죠? 발레리나의 후원자라고 하네요.

여기서 후원자란 요즘말로 하면 일종의 스폰인 셈이죠~

돈주고 사람을 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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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네덜란드 농민화가 피터르 브뤼헐(Pieter Brueghel the Elder) - 《교수대 위의 까치

1568년 목가적인 전원 풍경을 담은 그림 완성.

위 그림을 보시면 교수대 밑에서 사람들이 춤을추고, 왼쪽에는 변을 보고, 뒤에 사람들이 줄이어 올라오는

그저 평범한 평화로운 그림입니다.

그.러.나 교수대 위의 까치 한 마리가 거슬리지 않습니까?


당시 그 시대의 까치는 남을 중상모략하는 밀고자에 비유되었다고 합니다.
이 그림의 탄생 배경에는 실제적인 사건 존재하고 있었던..알고 보면 슬픈 사실을 표현하고 있는 그림입니다.

이 그림이 표현하고자 하는 사실은

밀고자를 의미하는 까치가 지켜보고 있는 한 가운데
처형 장소로 올라오는 사람들이 보이시죠?
함께 춤추지 않으면 밀고를 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역설적인 방법으로 표현한거라고 합니다.

1567년 네덜란드 새 총독으로 부임한 알바 공작은 가혹한 탄압 정치를 하기로 소문났다.
1568년 네덜란드 두 귀족을 공개 처형했는데,

처형된 이유로는 알바 공작을 음해하려했다는 누군가의 밀고 떄문.
하지만 처형하기로 된 그들에게는 음해 계획이 전혀 없었다.

알바공작이 공포 정치 강화를 위해 밀고를 조작 했던것 이다.

밀고 당하지 않기 위해 자신이 먼저 밀고를 했던 당시 풍토...
이때, 처형 장면 목격 후 분노에 휩싸인 피터르 브뤼헐은

밀고를 조장하는 알바 공작을 꼬집기 위한 그림 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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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테오도르 제리코(Theodore Gericault) - 《메두사 호의 뗏목》

산산조각 날 것 같은 뗏목..!! 그 뗏목 위에서 불안과 공포에 떨고 있는 사람들.
바다를 표류하는 자들을 그린 그림 같다구요?


사실 이 그림은 무서운 실제사건 배경으로 탄생한 그림입니다.

(1816년 여름 메두사 호 출항 관련 기사와 당시의 메두사 호 그림이 서프라이즈에 나왔지만

인터넷상에 사진을 못찾아서 이건 생략했습니다^^;)

사람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루이 18세는, 메두사 호의 함장 자리를 원했던 쇼마레를 메두사 호 함장으로 임명.

항해 시작 2주 후 아프리카 연안에서 좌초된 메두사 호..

귀족등 상류층 사람들과 쇼마레는 메두사 호를 버리고 구명정을 타고 도망쳤다.

탈출하지 못한 나머지 사람들은 뗏목으로 탈출했는데,

'폭 9m, 길이 20m'의 뗏목에 147명이 승선했다.
무더운 날씨 속에 13일 동안 표류가 되었고, 구조 당시 생종자는 겨우 10여 명밖에 되질 않았다.


뗏목 곳곳에 남아 있던 핏자국, 돛대에 매달려 있던 인육 조각..

과연 13일 동안 메두사 호 뗏목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익사, 살인, 자살, 아사 등으로 뗏목에 타고 있던 사람들은 사망하였고,

남은 생존자들은 결국 인육을 먹기에 이르었다.

도망쳤던 쇼마레는 국법회의에 회부했지만, 함장 지위 박탈과 금고 3년 형이 떨어졌고,
이 사실을 다 알면서도 자신들의 과오를 숨기기 위해 사건을 무마하기 바빴던 프랑스 정부.

이에 분노를 산 테오도르 제리코는 메두사 호 뗏목 사건의 비극을 알리기 위해 그림 작업을 시작한다.


생존자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뗏목 모형 제작, 죽어가는 사람들을 표현하기 위해 실제 죽어가는 환자를 스케치 하였고
8개월 동안의 작업 사건발생. 3년후 1819년 그림이 완성되었다.
그러나 정부의 타락과 실책을 비판하는 메두사호의 뗏목 출품에 불쾌해 했던 루이 18세. (찔린거죠..본인이)
비평가들을 매수해 그림 마구 혹평하였지만, 시민들에게는 큰 인기를 얻은 그림으로 남아있다.

흠...근데 위에 설명되있는,

"뗏목 곳곳에 남아 있던 핏자국, 돛대에 매달려 있던 인육 조각.."





숨겨진 그림속의 진실...믿거나 말거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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