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바이트 3
별당의 안쪽은 약간 싸늘한 기운이 돌았다.
아직 해가 중천에 떠 있는 시각이었기 때문에, 내일 아침까지 뜬눈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지낼 생각
을 하니, 눈앞이 깜깜했다.
별당의 건물 자체는 꽤 낡았고, 벽에는 곳곳에 틈이 생겨 있어서, 우리가 있는 깜깜한 공간 속으로 간간히
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그 빛에 의지해서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지만, 이렇게 다른사람과 얼굴을 마주대고 앉아서
아무말도 할 수 없는 상황은 태어나서 처음 이었다.
괜찮다 라는 의미를 싣고 A와 B를 보고 고개를 끄덕여 보았고, 그 둘도 나에게 고개를 끄덕여서 대답해
주었다.
하지만 조금 있으니 서로의 얼굴을 보는 횟수도 점점 줄었고, 급기야는 서로 다른쪽 방향으로 달아
앉아 있었다.
말을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답답함과 함께, 앞으로 얼마정도 시간이 남았는지 감을 잡지 못하는 우리
는 그냥 멍 하니 새카만 허공만 바라볼 뿐이었다.
누군가에게 들었던, 사방이 하얀색의 방에 사람을 가둬두면 한달만에 미쳐버린다는 말이 떠올랐다.
이 방 안이라면, 일주일, 아니 이틀만 있어도 미칠 자신이 있었다.
나는 어제부터 미치지 않도록 정신줄을 꽉 잡고 있었다.
1억 2000만 일본인들 중에 미치지 않도록 이렇게 노력 해 본 사람은 나 말고도 몇 명이 있을까?
이런저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다보니 꽤 시간이 많이 흐른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주위를 둘러 보았지만,
틈새로 빛이 들어오는걸 보니 해가 지려면 아직 먼 것 같았다.
갑자기 A가 있는 쪽에서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났다.
무슨짓을 하는건지, 허튼짓을 하는 것이면 그만두게 하려고 A가 있는 쪽으로 다가가서 자세히 보앗다.
A는 손에 들고있던 종이와 펜을 우리에게 보였다.
A는 스님의 말을 듣지 않고, 몰래 펜 하나를 호주머니에 넣어 온 것 같았다.
종이는, 우연히 주머니에 들어있던 껌에서 벗겨낸 껌종이였다.
이놈이 뭐하는 짓일까
한순간 그렇게 생각 하였지만, 우리는 서로 말을 해서는 안되기 때문에, 극한까지 겁을 먹은 분위기에서,
그것을 못하게 할 수는 없었다.
아니, 차라리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찾은 기분이었다.
어떻게 제대로 표현은 못하겠지만, 종이와 펜을 본 순간 굉장히 마음이 편해 졌다.
틈새로 들어오는 햇빛에 의지해서 A는 먼저 자신이 무엇인가를 써서 우리에게 내밀었다.
'모두들... 괜찮아?'
다음으로 내가 펜을 받았고, 나는 최대한 공간이 많이 남도록 글씨를 작게 해서 썻다.
'나는 아직까진 괜찮아. B는?'
B에게 펜과 종이를 건넷다.
'나도 괜찮아. 아무것도 안 보이고, 들리지도 않아.'
종이와 펜은 다시 A에게 돌아갔고, A는 그 위에 썻다.
'껌은 4개 남음. 은박까지 종이는 8장. 밤이 되면 이야기를 못하니, 지금 하기.'
까지 쓰고는 펜과 종이를 나에게 건넸다.
'몇시쯤일까?'
B는 한참 펜을 이마에 대고 생각하더니, '네시 다섯시쯤?' 이라고 썼다.
'우리 여기 들어올때가 한시쯤 이었어.'
'길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스다보니, 첫 번째 껌종이가 빽빽이 차 버렸다.
두 번째 종이를 앞에 놓고는, 아무도 펜을 가져가려 하지 않았다.
불안하고 무서웠지만, 정작 서로에게 무슨 말을 하려니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해가 져서 빛이 없어지기 전에 둘에게 꼭 해야 할 말을 적었다.
'무슨일이 있더라도 마지막까지 잘 해보자.'
응 펜을 B에게 넘기자 B가 자신없는듯한 필체로 대충 대답했다.
'A는 나 비명 지르면 어저지?' 라며 농담가지 하는 걸 보니 조금 여유를 찾은것 같았다.
나는 '입에 양말이라도 쑤셔 넣어 둬라.' 라고 쓰고는, 아까부터 꼭 하고 싶었던 말을 섯다.
'절대 아무일도 없을거라고 믿자.'
A와 B는 그 글을 읽고는 고개를 푹 숙여 버렸다.
그런 둘을 보고, 내가 지금 무슨말을 해 버린건지 깨달았다.
겨우 잊고 있었던 불안감에 다시 휩쌓이게 해 버렸다.
스님은 아무 일도 없을거라고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부터 무슨 일이 생길거라는 암시와 함께 그것에 대한 충고까지 해 주었다.
우리는 시간이 일초라도 빨리 흘렀으면 하는 생각이 컸지만, 한편으로는 밤이 오는게 죽을만큼
무서웠다.
밤 뿐만이 아니었다.
지금 이렇게 있는것도, 정신줄을 놓아 버릴만큼 무서웠다.
유일하게 다행인게, 지금은 서로가 그곳을 있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 할 수 있다는 점.
나는 내가 쓴 한마디 때문에 무거워진 이 분위기를 어떻게든 바꿔보고자 글을 계속 썻다.
'무슨 말좀 해. 시간아까워.'
라고 쓰곤 A에게 펜과 종이를 떠넘겼다.
맞다. 나는 A에게 책임 전가하고 도망친 것이다.
A는 머뭇거리면서도, 뭔가를 적었다.
'집에 가면 뭘 할까.'
그걸 본 나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좋네. 난 우선 비디오가게.'
그걸 본 B가 펜을 집었다.
'왜?'
'DVD 반납하는거 잊고 있었어.'
'넌 집에가면 또 지옥이구나.'A가 썼다.
거짓말이었다.
DVD따위 빌리지 않았지만 어떻게든 분위기를 바꿔 보려고 한 거짓말 이었다.
결과적으로 분위기는 좋아졌고, 우리는 한참을 돌아가면 무엇을 할것인지 농담섞어서 이야기 했다.
벽의 틈새로 비춰 오는 빛의 색깔이 붉어지고, 종이도 은박지 한 장밖에 남지 않았을 때, B가 펜을
들었고, 무언가를 써써 우리쪽으로 보여주었다.
'나는 스님이 말한건 꼭 지킬거야. 죽고 싶지 않아.'
나도 A도 B의 마지막 말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나는 죽고 싶지 않아 라는 말을, 이렇게 애절하게 한 사람을 눈 앞에서 보는건 처음이었다.
A도 나와 같겠지.
우리는 죽는다는 생각따윈 해 본적도 없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죽음을 곧 경험할 거란 생각따위 해 본적도 없기 때문이었다.
그걸 지금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와서 하고 있는 사람이 눈앞에 있었다.
그 사실이 몹시 충격적이었다.
나는 B의 눈을 쳐다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 후로는 종이도 떨어져서 아무 이야기도 하지 못했지만, 이상하게도 더 이상 고독감은 느끼지 못했다.
서로의 존재감을 느끼며 우리는 점점 해가 져 가는 것을 느꼈다.
아무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려니, 매미의 울음소리가 매우 시끄러웠다.
산 속인데다가 해가 지기 전에 마지막 스파트를 올리는 듯이 울어제꼇다.
하지만 별당에 들어왔을때부터 몇시간 동안이나 듣고 있자, 귀가 적응이 되어서 별로 신경 쓰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뭔가 찝찝한 이 위화감은 뭘까.
귀를 기울이면 매미 울음소리에 섞여서 다른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뭘 들은것도 아닌데 온 몸이 경직되는것 같았다.
온몸의 신경이 귀에 집중되었다.
그것은 점점 선명하게 들려왔다.
그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기 전에 몸이 먼저 느꼈다.
그 숨소리 였다.
B쪽을 보았다.
이미 약간 어두워 져 버려서 인지, 제대로 보이진 않았지만 B가 그 소리를 듣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B에게 들리지 않는것일까?
그러고 보니, B가 숨소리에 대해 말한적이 있던가?
혹시 숨소리는 들었던 적이 없을까?
아님 지금 못 듣고 있는것 뿐일까?
머리가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이런저런 생각들로 가득 찼다.
내가 몸이 경직되어서 이상한 분위기를 내보이자 B가 그것을 느낀 것 같았다.
B는 약간 심할 정도로 주위를 두리번 거렸다.
그러더니 B의 시선이 한 곳에 멈추어 졌다.
내 어깨너머의 벽을 뚫어지도록 쳐다보기 시작했다.
거의 얼굴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두웠지만, B가 눈을 크게 뜨고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것은
알 수가 있었다.
A도 B의 그런 행동에 눈치채고 B가 바라보고 있는 내 뒤쪽 벽을 쳐다보았지만, A는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한것 같았다.
나는 무서워서 차마 뒤돌아 보지 못했다.
그래도, 그 숨소리는 귀에 들어왔다.
그것이 내가 기대고 앉아있던 벽의 바로 뒤에서 부터 들려왔고, 그것과 나 사이에 그 얇은 나무 벽
한 장밖에 없다는 생각에 몸서리가 쳐졌다.
목에 숨결이 느껴지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것은 그곳에서 움직이지도 않고, 그 끔찍한 숨소리만 내고 있었다.
후우...훅...후우욱...훅...훅...후욱...후욱...
몇분이, 아니 몇시간이 지났는지도 모른다.
내 신경은 미쳐버린것 같았다.
우리는 비명을 지르지도, 도망치지도 못한채 그냥 맹목적으로 참을 수 밖에 없었다.
나는 얼마동안이나 그 상태로 있었는지 가능할 수가 없었다.
딱 한순간, 10초쯤 소리가 멎었다.
그러더니 그 숨소리는 무언가를 질질 끄는 소리를 내면서 별당 주위를 돌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건 아니지만, 소리에만 의지해서 상상을 해야만 하는 우리에겐, 직접 눈으로 본 것 보다 더
무서웠다.
A도 이 소리는 들렸는지, 반사적으로 내 팔을 잡아왔다.
그것이 별당 주위를 몇바퀴쯤 돌았을대, 그 숨소리가 점점 변해 갔다.
키..키힉..쿠으..끄헥..쿠헤...
그것은 마치 우리가 밤새도록 그곳에 있어야 하는걸 알고 있는 것 처럼,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리를 내면서
별당 주위를 천천히 고문하듯 맴돌았다.
A의 팔에서 A의 심장박동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이젠 주위가 거의 보이지 않을정도로 깜깜해 져 있었고, B가 어떻게 하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지만,
경황이 없었는데, 아마 굳어 있었을 것이다.
나는 공포에서 벗어나기위해 귀를 막고 눈을 감았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잠시후 눈을 떠보자, 별당 안은 드디어 깜깜해져 버렸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아까의 그 지옥같은 소리는 더이상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눈앞에 펼쳐지는 정적과 암흑은 더 돌아버릴것 같은 지옥이였다.
눈에 아무리 힘을 줘도 아무것도 보이질 않는다.
거기 있냐고 괜찮냐고 물어보지도 못한다.
A는 아까부터 내 팔을 잡고 있었기 때문에 그곳에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갑자기 B가 몹시 걱정이 되었다.
내가 마지막으로 본 나와 A 말고도 무엇인가를 보고 있었다.
나는 어둠속에서 이리저리 고개를 돌려 보았지만, 역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A를 데리고 B가 있었던 쪽으로 다가갔다.
없다.
B를 부를수도 없고, B를 찾는답시고 약간 움직였던 탓에 나는 내가 지금 별당 속의 어디쯤에 있는지도
감이 잡히지 않았다.
왼손으로 A의 팔을 잡고, 오른손을 쭉 펴서 좌우로 천천히 움직였다.
손가락 끝이 무언가에 부딪혀서 깜짝 놀랐지만, 벽이었다.
분명히 처음이 발을 뗐을때 B가 있었던 쪽으로 걸어왔음에도 B가 없었다.
종이에 글을 쓰고 놀았던지라 우리는 그렇게 멀리 떨어져 앉지도 않았었다.
이상하고 불안했다.
벽에서 손을뗴고 다시 오른손을 좌우로 펼쳐가면서 걷기 시작했지만 곧 멈춰섰다.
눈앞이 깜깜해져서 눈물이 나려고 했다.
B 어디있냐 라고 불러버리고 싶었다.
그렇게 멈춰서 있자, 이번엔 A가 내 손을 잡아 끌었다.
A는 손이 벽에 닿자 그대로 벽을따라서 걷기 시작했고, 구석이 나오면 또 그 벽을따라 걸었다.
그렇게 하던중, A가 걸음을 멈추더니 내 팔을 잡아 끌었다.
그리고는 그 손으로 부들부들 떨고있는 사람의 감촉을 느끼게 해 주었다.
B를 찾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곧, '이건 정말 B일까?' 라는 의문이 생겼다.
잘 생각해 보면 A도 그랬다.
'계속 옆에 있었지만, 아까부터 내 팔을 잡고 있었던건 정말 A일까?'
그렇게 내가 반쯤 패닉상태에 접어들고 있을대, A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따라가보니, 정말 조금이지만, 벽이 살짝 뜯어진곳을 손으로 젖혀서 뜯어내자, 틈이 있었고 그곳으로
달빛이 새어 들어오고 있었다.
나는 그 빛을 보고 마음 깊은 곳에서 부터 구원을 받은 기분이었다.
조금이나마 빛이 들어오자 희믜하게 주위가 보이기 시작했다.
A는 반대편 손으로 B의 팔을 잡고 있었고, 희미하게 보인 B의 얼굴은 땀과 눈물로 방금 폭우를 맞은 사람처럼 심하게 젖어있었다.
무엇을 보았는지, 무엇을 들었는지,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주위는 거짓말처럼 고요햇고, 먼 곳에서 귀뚜라미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우리는 한참을 그 달빛 아래에서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남자끼리라서 약간 창피하지만 우리는 셋이서 손을 맞잡고 둥글게 앉아 있기로 하였다.
그렇게 있는가 가장 안심이 된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도 그 약간의 달빛이 서로가 그곳에 있다는걸 보여주었기 때문에 아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만큼
안정되었다.
그렇게 한참 가만히 앉아 있었는데, A가 용변이 마려운 모양이었다.
스님에게 받은 포대를 들고 조심스럽게 일어나는것이 보였다.
그리고는 우리와 약간 떨어진 곳으로 이동하고는 소변을 보기 시작했다.
A의 소변보는 소리를 듣고 뭔가 긴장이 풀리면서 B와 나는 마주보고 씨익 웃기까지 했다.
그때였다.
"B야 거기있어?"
한참을 인간의 목소리를 듣지 않았던 우리는, 갑자기 문쪽에서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온 몸에서 핏기가 가시는걸 느꼈다.
미사키의 목소리엿다.
"주먹밥 만들어 왔어."
이쪽의 정황을 살피는 듯이, 조심스럽게 물어오는것 같았다.
스님이 아침까지 아무도 이곳에 올 사람은 없다는 말이 떠오르기도 전에, 우리는 미사키가 아니란걸 확신했다.
적막속에 울려 퍼지는 목소리에 인간미는 전혀 없고, 전화의 자동음성시스템같은 맹목적인 단어의 나열일 뿐이었다.
B의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
한참을 침묵하더니, 돌연 고장난 레코드처럼 무의미한 반복만이 있었다.
"주먹밥 만들어왔어."
"어서오세요!"
"주먹밥 만들어왔어."
"어서오세요!"
"B야. 거기 있어?"
"어서오세요!"
"B야. 거기 있어?"
"B야. 거기 있어?"
"어서오세요!"
"주먹밥 만들어 왓어."
내가 잘 아는 사람의 목소리가 생기없는 톤으로 맹목적인 반복을 하자, 미쳐버릴것만 같았다.
무서웠다.
그렇게 귀엽기만 하던 미사키의 목소리가 뇌를 녹여버리는것 같은 기분이였다.
절대로 미사키가 아니었다.
어느샌가 A는 우리의 곁으로 돌아와서 나와 B의 팔을 붙잡고 있었다.
팔이 저릴정도로 꽉 잡고 있는걸 보니 A에게도 미사키의 목소리가 들리는 모양이었다.
우리는 서로의 손을 꽉 잡은채로 별당의 문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 새에도 목소리는 계속 들려왔다.
"B야. 거기 있어?"
"어서 오세요."
"주먹밥 만들어 왔어."
그리고는 별당의 나무 문짝이 덜그럭 덜그럭 소리를 내며 흔들리기 시작했다.
문 건너편에 있는 '그것'은 지금 문을 열려고 하는걸까.
나는 혹시라도 문이 열리면 어떻게 해야할까를 고민했다.
'전속력으로 도망가자. 스님은 본당에 있는다고 했으니, 본당까지 도망가서... 아니, 본당은 또 어딘가!?'
'문을 열고 들어온다면 문으로는 도망을 못 갈텐데, 일단은 방구석에 숨어 있어야 하나?'
도망을 가야한다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았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때, 갑자기...
쾅!!!!!!!!!쾅!!!!!!!!!쾅!!!!!!!!!!
"B야, 거기 있어?"
쾅!!!!!!!!!쾅!!!!!!!!!쾅!!!!!!!!!!
"어서오세요!"
쾅!!!!!!!!!쾅!!!!!!!!!쾅!!!!!!!!!!
"주먹밥 만들어 왔어."
쾅!!!!!!!!!쾅!!!!!!!!!쾅!!!!!!!!!!
문밖의 '그것'은 아예 몸으로 문을 들이받고 있는것 같았다.
그 '맹목적인 소리'를 계속 내면서,
금방이라도 부서질것만 같은 비루한 나무 문짝은 다행히 열리지 않았고, '그것'은 몸으로 문을
부수려는 시도를 멈췄다.
하지만 몇초후, 약간 왼쪽으로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고, 이번엔 벽에 몸을 부딪히기 시작했다.
몇번 부딪히고는, 또 한번 쉬었다가, 또 조금 이동하고, 또 부딪히고... 그것을 계속 반복했다.
'뭘 하는걸까...'
이상하게 생각했지만, 나는 곧 깨달았다.
우리가 있는 벽의 틈... '그것'은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또 구토가 나올것만 같았다.
'혹시 틈새로 '그것'이 우리를 볼 수 있다면...?'
'혹시 틈새로 우리가 '그것'을 봐 버린다면...?'
그렇게 생각하니 안절부절 못하다가, 우리는 어느샌가 별당의 중앙까지 옮겨왔다.
'그것'은 이동하고 있었다.
천천히...
하지만 확실히...
내 심장소리 조차도 시끄럽다고 생각했다.
'그것'에게 들키면 안된다!
아니, 이곳에 있는건 이미 알고 있는지도!?
나는 공포로 턱이 떨려서 이빨이 부딪히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이빨을 꽉 깨물었다.
그리고 아까 우리가 있었던 벽쪽에서 '그것'의 소리가 나기 시작했고, 나는 무의식적으로 그쪽을 봐 버렸다.
눈이 어둠에 적응이 되어서 인지,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 버려서 인지, 그 좁은 틈새로도 바깥이 보였고, 나는 '그것'을 보았다.
새카만 얼굴에, 흰자 밖에 보이지 않는 가늘게 찢어진 눈
그리고, 몸을 부딪혀서 난다고 생각했던 그 소리는, '그것'이 머리로 들이 받고 있었던 소리였다.
천천히 머리를 한껏 뒤로 젖히고.. 엄청난 힘으로 벽을 들이 받고 있었다.
부딪히는 순간에도 뜬채로 있는 그 흰자에서 나는 눈을 떼지 못했다.
가위에 눌린것처럼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입에서 위장에서 넘어왔을 위액의 쓴내가 났다.
그런 힘으로 머리를 들이 받으면서도 '그것'은 담담하게 미사키의 목소리를 냈다.
그리고는 곧 또 왼쪽으로 이동해서 그짓을 반복했다.
틈새에서 사라진 후에도 그것의 잔상이 계속 선명하게 눈앞에 보였다.
그 후에도 '그것'이 얼마동안 거기에 있었는지는 모른다.
나는 잔상과 현실의 구별이 가지 않았고 몸은 굳은채로 눈도 깜빡하지 못했다.
나중에 들은바로는, '그것'이 사라지고 난 후 A가 다시 빛이 있던곳으로 가려고 나를 끌었을때, 내가 죽어 버린줄로 착각할 정도로 몸이 경직 해 있었고, B는 B대로 이를 악물다 못해 잇몸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고 한다.
A는 역시 소리만 들렸고, '그것'의 모습은 보질 못한것 같았다.
'그것'덕분에 우리의 긴장의 끈은 끊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 긴장의 막을 친 몸은 따라오질 못했고, 우리는 고개를 떨구고는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B의 바지에는 소변이 흘러 나오고 있었지만, 누구도 그것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렇게 밤이 길었던 적은 처음이었다.
내가 본것과 들은것을 하나도 빠짐없이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었고, 지금도, 앞으로도 잊지 못할것 같았다.
별당 벽의 자잘한 틈새까지도 광선과 같은 빛이 새어 들어왔고, 아침이 온것을 알았다.
새의 울음소리가 심장을 쑤시는것 같았다.
이곳에서 나가서 앞으로 무사히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아침이 왔지만, 셋중에 단 한명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렇게 겨우 정신줄을 잡고 앉아 있었더니, 끼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아침햇살과 함께 문앞에 스님이 서 있었다.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스님이 말했다.
그때 스님의 눈은 평생 잊지 못할정도로 따뜻한 눈이었다.
나는 긴장의 끈이 풀렸고, 엉엉 울기 시작했다.
스님은 땀과 오줌범벅이 된 우리를 하나하나 껴안아 주었고, 스님의 법복에서 나는 은은한 향내는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 주었다.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우리는 다른 젊은 스님들의 부축을 받아서, 어제 올라왔던 돌계단을 내려갔고, 어제 보았던 큰 절이 보였다.
절 안에서 비명소리인지 가축을 잡는 소리인지 분간이 안가는 소리가 들렸지만, 신경을 쓸 여유가 없었다.
스님을 처음 만났던 그 집에 도착해서 현관에 들어갈때 A가 내 귓가에 속삭였다.
"아까 그 비명소리, 여관 아주머니 목소리 아니야?"
설마하고 생각했지만, 잘 생각해 보면 여자의 비명소리 같기도 했다.
아까도 말했지만 그것에 신경쓸 여유가 없었다.
눈과 눈 사이에 점이 있던 그 여자가 옷과 수건을 가져왔고, 매우 불쾌하단 표정으로 씻으라고 했다.
욕실은 크지 않았지만, 우리는 셋이 함께 씻었다.
갑자기 혼자가 되는게 무서웠다
씻고 나오자, 이불이 퍼져 있었다.
"우선 잠을 좀 청하세요." 스님이 말했다.
우리는 대답할 겨를도 없이 누웠고, 그대로 기절한듯이 잠이 들었다.
잠이 들면서 잠시 생각을 했다.
별당을 나오면서 나는 B에게 물었었다.
"B, 이젠 안보이지?"
"응, 이젠 안보인다... 살았다..." B는 안도하며 확실한 말투로 대답했다.
그렇다.
우리는 살아남았다.
잠에서 깬 우리는 스님에게 모든것을 들었다.
내가 본것, B가 본것, A가 들은것이 무엇인지를 듣고, 우리는 그곳에서 도망칠 결심을 했다
4편에 게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