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살던 아파트에서 있었던 이야기.
파견 사원이긴 했지만 연봉이 괜찮은 곳에 채용되었다. 본가에서 상당히 멀었기 때문에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났었다. 하지만 일찍 일어나는게 너무 힘들었고, 일은 너무 늦게 끝났기 때문에 결국 회사와 본가의 중간 정도의 위치에서 자취를 하기로 결정했다.
새로 결정한 자취집 옆 집에는 이상한 녀석이 살고 있었다.
어떻게 이상했냐면, 자살을 꿈꾸지만 무서워서 마지막 그 선을 넘지를 못하는 그런 녀석이었다.
아파트에 입주한 첫 날은 관리인이 일부러 나에게 경고해주러 올 정도 였다. 어떻게 저런 녀석을 안 쫓아냈을까 싶었다. 관리인이 참 좋은분이긴 했지만서도.
그녀석의 자살 소동때문에 참 피해도 많이 입었다. 내가 직접 구급차를 불러 준 적도 있다.
여하튼, 있었던 일을 순서대로 나열해보자면
1. 일요일 오전에 갑자기 "아야야야!!!!!!!" 하고 소리를 질러서 보러 가보면 면도칼로 왼쪽 손목에 얕게 금을 그었다.
2. 한밤중에 아파트의 뒤에서 엄청난 소리가 나서 가보면 분리수거 하는 곳에 달린 철판 지붕 위에 떨어져 몸부림치고 있다.
3. 아마도 목을 메려다 그랬는지 천장을 부수어 집주인을 화나게 한다.
수 없이 많지만 대충 이정도였다.
솔직히 민폐만 끼치고 싫은 존재이기도 했고, 만일 정말 죽고 싶은데 죽지를 못하는 거라면 그 것도 옆 집사는 사람으로써 참 찝찝한 노릇이었다.
어느 날 일찍 퇴근해서 집에 갔는데 마침 그 녀석도 돌아온 참이었는지 문 앞에서 맞닥뜨렸다.
처음에는 그저 가볍게 목례를 하고 지나치려다가 이내 결심하고 궁금했던 점을 물어보았다.
"왜 그렇게 죽고싶어해요?"
돌이켜보면 당시의 나에게 상당히 스트레이트였던 것 같다. 당사자로서는 참 무신경한 질문일텐데 대뜸 그런 질문을 던진 나에게 놀라울 정도였다.
그 말을 듣더니 그 녀석이 갑자기 우울한 얼굴로 울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깜짝놀라 허둥지둥 우리 집으로 들였다. 그 녀석은 신세한탄을 펼쳤다.
처음으로 말을 섞는 상대방에서 이야기할만한 내용은 아니었지만, 간단히 정리하면 부모님이 이혼해서 어머니를 따라갔는데 어머니 재혼 상대자에게 학대를 당했고 지금도 생활에 필요한 돈 이외에는 전부 몰수당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생각해보니 나도 그 녀석네 집에 무서운 아저씨가 오는걸 가끔 본 적이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현실적으로 와닿지가 않아서 적당히 이런 말을 했다.
"그럼 도망치면 되잖아? 돈 좀 들이면 멀리 갈수 있을거야."
그리 말했더니 다시금 울음을 터뜨렸다.
재혼 상대는 어머니에게도 폭력 휘두른 다는 것이었다. 돈을 주지 않으면 화풀이가 고스란히 어머니에게 간다고.
확실히 불쌍하긴하지만 자살까지 할 일일까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였을까.
가볍게 덧붙였던 그 한마디를 해서는 안됐던 거다.
지금와서 생각하지만.
"나도 죽고싶을 때가 있지만 우리 열심히 하면 어떻게든 될거야."
이렇게 말한 순간 그 녀석은 갑자기 눈에 띄게 밝아져서 환하게 웃는 얼굴로 나를 보았다.
아마도 동병상련인지 동지의식을 느꼈던 것 같다.
그때는 기분이 괜찮아진 것 같아서 집으로 돌려보냈지만 그 다음날부터 그 녀석은 쓰나미같이 몰아닥쳤다.
퇴근해서 집에 와보니 그 녀석도 마치 지금 퇴근한 것처럼 문 앞에서 마주쳤다.
거의 지켜보고있다 나온거 아닌가 싶을 정도의 타이밍이었다.
그냥 가볍게 대화하는 정도라면 상관 없긴 하지만 항상 실실 웃으면서 말을 거니까 솔직히 좀 소름이 끼쳤다.
그리고 처음으로 말문을 튼지 일주일 정도 지났을 무렵이었을까.
또 집 앞에서 우연히 맞닥뜨려 잡담을 나누고 있는데 "일요일에 우리집에 오지 않을래요? 선물받은 과자도 있어요." 하며 나를 초대했다.
사실 약속도 없었고 내가 좋아하는 과자도 있다길래 OK하고 말았다.
그리고, 일요일에 처음으로 그 녀석의 집에 들어가보았다.
그 녀석의 집은 깨끗을 넘어 아예 물건들이 없었다. 가구조차 거의 없어서 밥솥, 냉장고, 선풍기, 이불, 접이식 책상이 다였다.
하지만 새아버지 착취당한다는 이야기 들었던 것도 있고 해서 그냥 언급하지 않고 과자를 먹고있었는데, 뭔가 그 녀석이 이상했다. 불안한 모습으로 안절부절 가만히 있지를 못했다. "괜찮아?" 하고 묻자 갑자기 이상한 말을 하기 시작했다.
"아...OO상은 어떤 식으로 죽고싶을까 하고요.."
"무슨 소리야. 나 죽고싶지 않은데?"
황당해서 딱 잘라 말하자, 그 녀석은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돌변해서 미친사람처럼 소리질렀다.
"죽고싶을 때 있다고 했잖아!!!!!!!!!!!!!!!!!!!!!!!!!!!!!!!"
지치지도 않고 계속해서 외쳐댔다.
위험한 예감이 들었다. 재빠르게 현관으로 달려갔지만 그녀석은 용의주도하게도 체인까지 꼼꼼하게 걸어놓았기 때문에 여는 것이 상당히 지체되었다.
어떻게든 열고 뛰쳐나갈 수 있었다.
도망가며 그녀석을 슬쩍 보니 충혈된 눈으로 엄청나게 노려보고있었다.
오른쪽 손은 가려져서 보이지 않았지만 분명히 무엇인가 들고있는 것 같았다.
정말로 무서웠던 일은 그 후에 일어나지만...
그리고 집에서 문을 단단히 걸어 잠그고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었는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일단 아직 긴장은 풀지 않았었지만 문단속은 완벽히 했기 때문에 잠자리로 들었다.
어느새인가 잠이 들었는데 한 밤중에 캉 하는 소리에 눈이 떠졌다.
또 그 녀석이겠거니 생각했지만, 이번은 신경 끄자 싶어 그대로 잠을 청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누군가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잠을 깼다.
조심조심 현관에 다가가보니 경찰이었다.
경찰은 제일 먼저 내 안위부터 확인을 하였다. 나는 어리둥절 했다. 문을 열어보니 신문배달부도 함께 서있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 묻는데 일단 보시라며 경찰은 내 현관문을 가리켰다.
식칼이 엄청나게 깊이 박혀있었다.
열쇠 구멍도 만싱창이로 긁혀있었다.
신문배달부가 강도가 든 줄 알고 경찰에 신고를 했던 것이다.
짚히는 것 없느냐는 경찰의 질문에 제일 먼저 옆집 그녀석이 떠올랐다.
십중팔구였다. 틀림 없었다.
옆집에 그런 녀석이 사는데 안심하고 살 수도 없는데다 나는 돈도 없어서 이사갈 형편도 못되었다.
경찰은 현장 조사다 뭐다 해서 박혀있는 식칼과 열쇠 구멍의 사진을 찍고있었다.
사정은 알겠지만 나 한사람의 증언 만으로는 잡아 넣을만한 증거가 되지 못하지 때문에 대신 순찰을 돌겠다고 했다.
그런 일은 있었지만 역시 출근은 해야만 했다.
경찰들은 출 퇴근 할때마다 집 앞에서 감시해주었다.
시골이라 그런지 상당히 자기 일처럼 도와주었다.
한달 정도가 흘렀다. 한번도 마주친 적도 없고, 이상행동도 없었기때문에 나나 경찰이나 경계를 늦추게 되었다.
감시는 철수하기로 했지만 순찰은 계속 돌아주기로 했다.
그렇지만 방심하고 있었던 때가 가장 위험하다는 것은 정말 사실이었다.
감시를 멈추고 사흘쯤 지났을때 나는 야근을 하고 밤 늦게 퇴근하고 있었다.
집에 도착해서 열쇠를 연 순간 옆집 문이 열리며 그 녀석이 엄청난 기세로 달려왔다.
나는 허둥지둥 들어가려고 했으나 그 녀석은 닫혀가는 문 틈에 한쪽 발을 끼우더니 좁은 틈새로 식칼을 휘둘러댔다.
문단속을 포기하고 방 안쪽으로 달아났다.
그 녀석은 내 집으로 들어와 체인 까지 꼼꼼히 잠그고 식칼을 치켜든 채로 나에게 다가왔다.
사람은 정말 죽음을 마주하면 덜덜 떤다는 것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충혈되어 피가 터진 눈으로 중얼중얼 뭔가 말하며 다가오고 있었다.
창가에서 비추는 달빛 만이 전부였기때문에 호러 영화가 따로 없었다.
나는 정말 무아지경으로 손에 잡히는대로 아무거나 집어던졌다.
요행으로 던진 자명종이 그 녀석의 눈에 명중해서 주춤한 사이에 창문 밖으로 뛰어내릴 수 있었다.
이번엔 내가 분리수거장 철판 지붕에 떨어져 몸부림치게 되었지만.
그 소리를 들은 이웃 주민이 나오고 순찰중이던 경찰도 와준 덕택에 그 녀석은 체포되었다
징역이기만을 바랬건만 정신병원에 강제입원이 구형되었다.
그래도 이제 평온한 나날을 보낼수 있으리라 믿었건만 그렇게 되지 않았다.
3개월 정도 지났을 무렵 그 녀석이 병원을 탈출해서 우리 회사까지 찾아와 행패를 부렸던 것이다. 마침 내가 영업하느라 외근중이어서 다행이었지 정말 큰일날 뻔 했었다.
불안정한 그 녀석의 모습을 보고 리셉션 하는 분들이 경찰을 불러 또다시 체포되었다.
그 녀석은 연행되어 중병 병동으로 옮겨져 억업복을 착용하게 되었다고 한다.
나는 그 일로 인해서 권고사직을 당했다.
지금은 본가에 들어가서 구직 활동 중이다.
집주인과는 지금도 친하게 지낸다. 가끔 밥먹으러 만나곤 하는데 그때 들은 이야기로는, 그 녀석이 식사시간에 혀를 깨물고 죽었다고 했다.
정신병원에서 정보가 밖으로 샐 리가 없겠지만 만약 그 소식이 정말이라면 그 자살희망자를 드디어 성공하게 만든 것은 내가 아닐까.
서투른 호의는 역효과를 불러온다는 교훈을 얻은 사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