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 질.. "여보세요?" "어, 민수야. 엄마 금방가" "응, 응, 집 앞이야. 초코우유 샀으니깐 걱정말고" 집에 가기위해 지나쳐야되는 어두운 골목. 가로등 하나없는 이 골목을 지날때면 마치 검정색으로만 칠해놓은 상자안에 있는 기분이지만 집에서 나를 기다리는 장난꾸러기 아들만 생각하면 무서움도 두려움도 모두 날아가버리는것만 같다.
--질 질.. '누가 저렇게 슬리퍼를 끌면서 오는거야 시끄럽게' 아까부터 들려오는 슬리퍼소리가 신경을 곤두서게 한다. 짜증이 밀려왔지만 어두운 골목탓인지 두려운 마음부터 앞선다.
--질 질... 문득 어젯밤 뉴스에서 본 주부살인사건이 떠올랐다. 그 사건도 지금처럼 어두운 골목에서 벌어진 성폭행 살인사건이었다.
--질 질... '아니겠지. 아니겠지..' 잊으려해봐도 두려움이 그 기억을 떨쳐내지 못하게 방해한다. 점점 티비에서만 보던 살인이 점차 나에게까지 닥쳐올 수 있다는 생각에까지 미친다. 애써 머리를 좌우로 털며 잊기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해본다.
--질 질... 스스로 '이건 어제 뉴스를 본탓이야' 라며 위로를 해보지만 두려움이 커질때마다 양손에 든 비닐봉투의 무게가 손가락을 압박해온다.
--질 질... 주위에 사람이 없다는것을 확인하자 더 큰 두려움이 엄습해왔다. 태연한척 바로 옆 대문이 열린 가까운 집에 무작정 들어갔다. 자기집인양 행세를 한다면 뒤에서 슬리퍼를 끄는 자를 먼저 보낼 수 있으니까. "엄마왔다." 되도않는 연기를 해가며 불꺼진 집을 향해 소리를 쳤다. '드..들었나?' 무서움에 사그라든 목소리가 그 자에게까지 들리지 않았을까봐 한번더 소리를 쳤다. "민수야! 엄마왔어!" 천천히 계단을 올라갔다. 그 사람이 나를 지나쳐 가는것을 보기위해. 계단을 올라가며 몰래 등뒤로 그 사람을 보았다. 키가 180정도 되보이는 검은 옷에 모자를 푹 눌러쓴 남자가 보인다. 다행이도 슬리퍼를 끈 남자가 소리에 반응했는지 나를 힐끗 보더니 가던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혹시나하는마음에 그 남자가 사라질때까지 계단에 앉아서 지켜보기로 했다. 그 남자는 계속 같은 방향으로 슬리퍼를 질질 끌며 걸어가더니 얼마안가 오른쪽에 있는 다세대주택에 들어갔다. 그 남자가 들어간 빌라의 대문 센서가 인기척에 반응해 주황빛 백열등을 켰다. '아휴.. 난 또.. 그냥 주민이었잖아.' 불빛을 보자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긴장이 풀리자 그만 다리에도 힘이 풀려버려 계단에 털썩 앉아버렸다. 5분이 지났을까. 계단에 앉아 숨을 고른 후 마치 날 숨겨준것 같은 집에 감사함을 느끼며 고개를 돌려 천천히 집을 흝어봤다. 거미줄이 얼기설기 쳐져있는 깨진 창문, 현관문이 없어 바람소리가 드나드는 입구가 보인다. '4년째 이 근처에 살고있는 내가 여길 깜빡하고있었다니..' 허탈함에 약간 웃음이 나왔다. 혼자 실실 웃는데 우연히 깨진 창문에 붙어있는 빛나는 유리조각이 보였다. '뭐지?' 유리조각을 가까이서 보려고 고개를 내밀었다. 조그만 유리조각에서 흘러나오는 희미한 빛이 반사된 주황빛이였다는 것을 깨달았을때 난 그 자리에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 빛이나는 유리조각 = 빛을 반사하는 유리조각.빛 = 남자가 들어간 빌라로부터 나오는 백열등5분이 지나도 계속 빛이 남 = 남자가 빌라 대문앞에서 기다리고있음. (센서)남자가 빌라앞에서 기다리는 이유 = 여자가 연기하며 들어간곳이 폐가엿음을 먼저 눈치채고 있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