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윗사람에게 자기를 겸손하게 말할 때는 '저'라고 하고, 자기와 동격이거나 아랫사람에게는 '나'라고 한다. 일본말도 우리와 같아서 '나를' 윗사람에게는 '와타쿠시'(私), 동격이거나 아랫사람에게는 '보쿠'(僕)라고 한다. 또 상대를 지칭할 때 쓰는 '너'라는 말은, 상대가 자기와 같거나 또는 낮을 때만 사용해야지 윗사람에게 쓰면 대단히 실례가 되는 말이다. 일본말에서도 이와 똑같은 용법의 '너'를 '기미'(君)라고 하는데, 이는 '김'(金)이 변해서 된 말이다. 그리고 '나'라는 '보쿠'(僕) 역시 '박'(朴)이 변해서 된 말이다. 그러면 어째서 '김'과 '박'이 '기미'와 '보쿠'라는 말로 바뀌었을까?
여기에는 엄청난 역사적 비밀이 숨겨져 있다. 지금부터 1천60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경상도에 '가야'라는 6개의 소국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연합하여 '가야연맹체'를 이루고 있었다. 이 가야 연맹체의 종주국인 대가야는 지금의 고령(高靈)지방에 위치하고 있었으며, 국명을 '미오야마국'(彌烏耶馬國)이라 하였고, '박'(朴)씨가 왕이었다. 그리고 지금의 김해(金海)지방에는 금관가야가 있었는데, 국명을 '구야국'(狗耶國)이라 하고 '김'(金)씨가 왕이었다. 그런데 경주를 중심으로 한 신흥국가 신라가 세력을 점점 확대해 오자, 불안을 느낀 이들의 일부는 일본으로 건너가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오랜 세월 동안에 대가야를 중심으로 한 일족들은 오사카 주변의 아츠카에 '야마토국'(耶馬台國)을 건설하였고, 후발의 금관가야는 규슈지방에 '구노국'(狗奴國)을 세우게 된다. 그런데 세력이 강했던 대가야의 고령 박씨는 박씨라서 보쿠(朴), 상대적으로 약했던 금관가야의 김해김씨는 김씨라서 기미(金)라고 하였는데, 이것이 자연히 세력을 함축한 '너', '나'라는 호칭으로 변한 것이다.
그 후 흐르는 역사 속에서 야마토국과 구노국은 서로 대립하게 되고, 야마토국의 슈신(崇神)천황이 구노국을 공격하였으나 오히려 패하고, 그때부터 일본 열도의 패자(覇者=승자)는 박씨에서 김씨로 바뀌게 되었다. 그래서 일본 천황의 성이 '김해 김씨'라는 말도 여기서 나오게 된다. 이런 역사적인 연유로 '기미'(君)라는 말을 인칭대명사로 쓸 때에는 '자네'라는 뜻의 낮춤말이 되지만, '천황'을 상징하는 '기미'(君)로 쓸 때면 지극히 존엄한 존칭어가 된다. 일본의 국가를 '기미가요'(君が世)라고 하는데, 이는 '임금님의 세상'이란 뜻이지만, 원래는 '김가네 세상'이란 말이다.
[이남교의 일본어 源流 산책] 세노(せ-の)
우리나라에서는 무거운 것을 움직일 때나, 모두가 힘을 합칠 때는 '하나, 둘' 하고 다음에 '셋' 하면서 힘을 준다.
이때 '하나, 둘'은 호흡을 맞추기 위한 신호이므로, 바로 옆 사람에게만 들릴 정도로 작게 말하고, '셋'은 크게 외치면서 힘의 통일을 기한다.
그래서 이를 무심코 듣는 주위 사람들에게는 '셋'이라는 소리만 들린다. 바로 이 한국의 '셋'이 일본어의 '세노'(せ-の)로 변한 까닭이다.
그래서 지금도 일본인들은 모두가 함께 힘을 합칠 때 '세-노'(せ-の)라고 외친다.
이렇게 동시에 힘을 주는 말은, 주로 토목공사 등에서 많이 사용되어 왔는데, 지금부터 1천600년 전의 '인덕(仁德)천황릉'이나 '한인못'(韓人池) 등의 유명한 토목 공사가 고대 한반도로부터 건너온 도래인들에 의해서 만들어졌다고 '일본서기'는 기술하고 있다.
또 일본어에 '하나카라'라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은 '처음부터'라는 뜻으로, 한국어의 '하나서부터'라는 말로, '하나카라'의 '하나'도 역시 고대 한국에서 전래된 말이다.
그리고 오사카에는 '아비코'(我孫子)라는 지명이 있는데, 한국의 민족학교인 오사카 건국학교 근처로 그곳의 지하철 역이름도 아비코역(我孫子驛)이다. '아비코'라는 지명은 일본의 동경이나 여러 지방에도 많이 산재해 있는 흔한 지명이다.
그런데,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아비' 하면 "아~" 하고 금세 아는 말이지만, 일본인들은 전혀 그 의미를 모른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말은 고대에 건너간 순수한 경상도 방언이기 때문이다.
경상도에서는 자식이 성장해서 어른이 되면, 비록 자기 아들이라 할지라도 이름을 부르지 않고 '아비'라고 불렀으며, 그 '아비의 아들'은 '내 손자'이고, 이를 한자로 쓰면 '我孫子'인데, 일본은 이를 '아비코'라고 읽는다. 따라서 '아비코'는 '내 손자가 사는 곳'이라는 뜻으로, 한국어의 '아비'와 일본어의 자식(子)이라는 '코'가 합쳐져서 된 말이다.
이런 합성어의 예를 하나 더 들면, '달걀'이란 뜻의 '다마고'(たまご)가 있다.
'닭'과 손자(孫子)란 말인 '마고'가 합쳐져서 '닭마고'가 되고, 이것이 '다마고'로 된 것이다. 따라서 일본인들은 달걀(손자)-병아리(아들)-닭(부모)이라는 개념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 일본어 '아마이·甘い'는 '달다'라는 뜻인데, 우리말 '달다'와 '아마이'가 합쳐져서 '달콤하다'는 뜻의 '아맛다루이'(あまったるい)라는 말이 생겨났다.
...................그리고 '즐겁다'라는 말은 일본어로 '다노시이'(樂しい)라고 하는데, 이 말은 한국의 '단오'가 어원이다. 단오는 음력 5월5일로, 시골 여인들에게 있어서는 1년중 가장 큰 즐거운 날이었는데, 이날은 창포물로 머리감고 댕기땋고 온 마을 사람들이 함께 모여 가까운 산에 가서 천렵을 하며 먹고 마시고 즐거운 하루를 보냈는데, 지금은 농촌에서도 이런 풍습을 좀체로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이남교의 일본어 源流 산책 21] 가나시미(悲しみ)
인간의 슬픔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이별같은 정신적인 고통에서 오는 슬픔보다도 더 슬픈 것이 있다면, 그것은 삶의 본능인 의식주 문제가 해결 안 돼서 오는 슬픔일 것이다. 의식주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한마디로 '가난'을 말한다.
문명이 발달한 오늘날에도 하루에 1달러 미만으로 생활하는 사람들이 지구 60억 인구 중에 15억이나 된다고 하니, '가난'은 인류의 영원한 숙제인지도 모르겠다. 그러한 속에서도 더욱 깊은 슬픔에 잠겨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면, 그것은 자기가 살던 집이나 고향이나 나라로부터 생명의 위협을 느껴서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채 고대에 일본으로 건너간 가야족이나 많은 도래인들도 엄밀히 따지면 여기에 해당된다. 당시 일본으로 건너간 이들을 '도래인' 또는 '귀화인'이라고 부르지만, 오늘날에서 보면 실은 최초의 '보트피플'인 셈이다.
지금까지 행복하게 살던 삶의 터전을 전부 잃고, 새로 시작하는 신천지의 생활에는 많은 어려움이 도사리고 있었을 게다. 황무지를 개척하며 모든 것을 하나에서부터 다시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되는, 그야말로 먹고 산다는 원초적인 삶에 생명의 위협을 느끼면서 그날그날을 힘겹게 살던 그들에게 있어서 '가난'이야말로 '슬픔' 그 자체가 아니었을까? 그래서 '가난'이란 말은 일본으로 건너가면 '슬픔'이란 뜻의 '가나시미'(悲しみ)라는 말로 바뀌게 된다.
'말에는 혼이 있다'라는 말을 되새겨 보면서 '가난'에서 '슬픔'이란 말을 끄집어 낸 고대 도래인들의 아픈 마음을 헤아려본다.
애가 자라서 어른이 된다더니, 정말 요즘 애들은 더 빨리 조숙해 지는 것 같다. 애가 어렸을 때는 '이 녀석이 언제 크나?'라고 했는데, 10대가 지나면 목소리도 변하고 제법 어른스러워지는데, 이런 애들을 보면 '다 컸다'라고 말한다. 여기서 '다 크다'는 일본어로 '타쿠마시이'(たくましい)인데, 이는 '늠름하다. 씩씩하다'라는 뜻이다. 이렇게 다 큰 아이들은 고대에는 산에 가서 짐승을 잡거나, 적과 싸워 이겨야 되기 때문에 자연히 사나워 지는데, 여기서 '사납다'는 '스사마지이'(凄まじい)로 '무섭다, 굉장하다, 놀랍다'로 그 의미가 더 강해진다. 이렇듯 우리말은 바다를 건너면 그 의미가 깊어지고 증폭되며 강해지는데, 이는 아마 고대 도래인들의 생활상과 깊은 연관 관계가 있는 것 같다.
그토록 슬픈 '가나시미'를 털고 일어나, '타쿠마시이'에서 '스사마지이'로 변모해 간 고대 도래인들의 진취적이던 삶에 힘찬 박수를 보내고 싶다. 석양에 지는 태양를 바라보며 '다져가네'하고 중얼거리던 말이, 멀리 고국을 그리는 향수가 곁들여져 '황혼'이란 뜻의 '다소가레'를 만든 고대의 나그네들을 한번 만나보고 싶다. 그래서 타임머신이라도 나온다면 그토록 안타깝게 그려하던 고향산천을 한 번 보여주고 싶다.
[이남교의 일본어 원류 산택 50] 임나일본부(任那日本府)
인류 4대 문명의 하나인 황하문명은 중국의 황하유역에서 비롯되어 만주, 한국을 거쳐 일본으로 들어간 것은 고대 유물`유적이나 역사적 사실 등으로 분명히 알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일본은 이러한 문화의 흐름을 용인하려 들지 않는다. 그래서 일본은 언제나 한일 고대사 부분을 논할 때면 고대 한국 남부지방에 '임나'라고 하는 일본 식민지가 있었다는 주장을 하는데 이것이 '임나일본부'설이다.
일본역사서를 보면 '임나(任那)'는 ‘한국 고령지방이나 김해 지방’을 일컫는 말로 임나를 문자대로 해석하면 ‘임의 나라’이고 '임나일본부' 즉, '미마나니혼부'(任那日本府)라 함은 '임금님이 계신 나라에서 일본부를 두었다'고 하는 말인데 일본은 이를 반대로 해석하여 '일본이 임나를 두었다'고 우긴다.
지금도 일본에서는 '대판부'(大阪府) 즉 '오사카후'와 같은 용어를 쓰고 있으며 옛날에는 규슈지역을 총괄하기 위해서 후쿠오카 근처에 일본 '태재부'(太宰府) 즉 '다자이후' 등을 두었다. 이는 모두 그 지역을 총괄하는 지방 관청을 일컫는 말이다.
그런데 이를 만약 임나일본부식으로 풀이한다면 오사카부나 태재부가 일본을 파견했다고 하는 격으로 전혀 이치에 맞지 않는다. 따라서 '임나일본부'(任那日本府)란 '임의 나라 일본부'로‘님의 나라에서 일본에 지부를 두었다’고 하는 것이 맞다.
그렇다면 일본은 어째서 억지 주장을 하는가? 고대의 일본과 가야 관계를 볼 때 많은 가야인들이 일본으로 건너간 것은 너무나도 자명한 사실이기 때문에 고대에 가야를 다스렸다고 하는 주장은 맞을 수도 있다. 그러나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그런 중간 과정을 빼고 마치 일본에서 건너와 가야를 지배했던 때가 있었던 것처럼 역으로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역사란 물의 흐름같아서 문명국에서 후진국으로 전파되었기 때문에 아무리 우겨도 될 일이 아니다.
일본말에 '자만하다'라는 뜻의 '우누보레'(うぬぼれ)라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의 '우누'는 금관가야(본가야)가 일본 규슈지방에 세운 '구노'(狗奴)라는 말이 변한 것이고 '보레'는 글자 그대로 ‘보라’는 말로 '구노보레'인데 이를 풀이해 본다면 '우리 야마토국보다도 작고 못난 구노국 녀석들이 잘난 척 하고 있네, 저것 좀 보래, 꼴불견이네'라는 비아냥거림의 생략형이다.
서로 적대하던 '야마토국' 사람들이 구노국을 낮추고 깔본 데서 생긴 말로 야마토국 말이 구노국에 의해 통일되기 전에 이미 일반 대중들에게 그 뿌리를 내렸던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