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마 10
녀석은 고민했다.
역시 별일 없을리가 없었다는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치만 그냥 무시하기엔Y의 목소리는 그 어떤 기운도 느껴지지 않는
절망스러운 목소리 그 자체였다.
녀석이 전화를 끊고 몇십분 후에 맨션 앞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Y가 나타났다
몇일동안 잠을 한숨도 자지 못한 것 같은 초췌하고 피곤한 모습으로...
Y의 차로 그의 집까지 가는 중에 녀석은 그동안 무슨일이 있었냐고 물었고,
Y는 가서 전부 얘기해 주겠다는 대답 외에 그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도착한 Y의 집은 연립주택이 아닌 단독주택같은 곳이었다.
차에서 내려 그의 집 앞에 들어선 순간 강한 한기와 불안하고 음습한 기운이
녀석의 온몸으로 느껴졌다.
- 그 여자다... -
녀석은 그의 집 안으로 재빨리 들어갔다.
그 기운을 따라 안방같은 곳으로 들어가니 방 한가운데 그의 동생이 환자처럼 누워있었고,
그의 어머니가 딸을 걱정하듯 바라보며 옆에 앉아있었다.
그리고...
그 검은 여자 또한 구부정하게 팔을 길게 늘어뜨리며
그의 어머니 옆에 서 있었다.
녀석이 그 여자를 바라본 순간.
천천히...
한기와 함께 사라졌다.
그의 어머니가 녀석을 발견하고 Y또한 뒤따라 들어왔다.
녀석이 확인한 동생의 모습은 참혹하기 그지 없었다.
그 수수하면서도 미인같은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쇄한 노인의 쇳소리 같은 숨소리만을 내며,
창백하다 못해 파란빛이 도는 피부는
야위다 못해 뼈에 가죽만 씌운 것 처럼 느껴졌다.
녀석은 다가가 동생의 모습을 자세히 확인했다.
온몸은 알.몸.으로 시멘트 바닥에 끌려다닌 것 마냥 거친 찰과상 투성이었고
목과 양 손목 발목에 붉은빛 자국이 강하게 남아있었고
그 붉은빛 자국안은 여기저기 창이 돋아 흉칙한 모습이었다.
녀석은 역한느낌을 억지로 참으며
사람이 이지경이 됬는데도 왜 병원에 있지 않고 집에 방치해두느냐고 따지듯이 물었다.
그러자 그의 어머니가
병원에 있으면 가족들이 아무리 자주 찾아온다 해도
혼자 입원해있는 시간이 무섭다며 딸이 강하게 거부했다고 했다.
녀석은 다시 딸을 신사에 데려가지 않았냐고 물었고
그러자 Y가 옆에서 녀석에게 따로 할말이 있다며 불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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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마 11
Y에게 전해들은 이야기는 이렇다.
Y와 부모님들은 Y가 겪은 이런저런 얘기를 듣고
동생을 데리고 처음 가까운 신사를 찾았다.
그치만 그 신사를 관장하는 스님이 나와 이 아이는 이곳에선 어찌할 수 없다. 라는 대답만 들었고,
다른 신사를 찾아가도.
위험합니다. 돌아가주십시오. 라는 류의 거절을 당했다.
몇번이고 신사에서 거절을 당하자 Y는 그 신사의 사람들과 몇번이나 싸움을 했고
그렇게 여러군데의 신사들을 돌아다니다.
한 신사에서는 그의 동생을 맡아주겠다고 했지만,
큰 액수의 공양을 요구해왔다.
Y와 그의 부모님들은 돈이 문제가 아니었기에 그 신사에 동생을 맡기고
신사에서 초조하게 기다리는데
위령의식을 시작한지 5분도 채 안되서
의식을 하던 스님이 동공이 풀려 흰자위만 드러낸 채
입에 거품을 물고 뛰쳐나왔다.
- 난 아니야!! 아니라고!!! -
라는 말만 외치며 미친 사람처럼 펄쩍이다 기절해버렸다.
놀란 Y와 부모들은 동생이 있는 곳으로 뛰쳐갔는데
그녀의 모습은 무엇인가에 놀라 한 없이 겁에 질려 아무것도 못하고
멍하니 정좌한채로 정면만 보고있었다.
놀란 그녀의 부모가 이게 무슨 일이냐며 흔들자
그녀는 곧바로 기절해 버렸고한참후에 깨어난 그녀가 해준 이야기는 이랬다.
위령의식때
스님과 동생은 서로 마주보고 정좌했고
자신은 눈을 감고스님은 동생에 머리위에 손을 얹은 채로
불경 같은 것을 중얼중얼 낭독했다고 했다.
그러다 어느순간 불경 소리가 멈추고,
머리에 얹은 손이 부르르 떨리는 느낌과
힘이 너무 들어가서 머리가 아파서 살짝 눈을 떴는데
동생의 눈에 들어온건,
그 검은 여자가
구부정하게 스님 옆에서서
스님의 뒷 목덜미를 강하게 잡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여자의 얼굴을 스님에게 들이밀며
스님얼굴 가까이 여기저리 둘러보며
『이러...지마... 이...러지마...』
『살려주...세...요...』
라고 기괴한 목소리로 느릿느릿 말하다가
눈을 뜨고 있는 그녀쪽을 갑자기 바라봤다.
그리고 동생의 눈 앞에
그 여자가 얼굴을 휙 들이밀더니 또 다시 기괴한 목소리로
『이러...지마... 이...러지마...』
『살려주...세...요...』
이런 상황에 동생이 극도의 공포로 얼어붙어있을 때,
지저분한 밧줄로 그 여자가 스님의 목을 둘둘 감아
그 방안 여기저기를 끌고 다녔고
스님은 죽을듯이 괴로워 하며 버둥거렸다.
이상한건 분명 저쪽편에
스님은 그 여자에게 목이 감겨 끌려다니는데,
자신의 앞엔 여전히 정신을 잃은것 같아 보이는 그 스님이
정좌하고 앉아있었다는 것이다.
그 기괴한 상황에 동생도 정신을 잃은건지 어떤건지
그 뒤로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렇게 별 수 없이 동생을 다시 데려왔지만 동생은 계속 상태가 악화되었다.
계속 몸에 알 수 없는 상처가 나서 병원에 데려가려 했지만
동생은 강하게 거부했고, 동생이 깨어있을땐
그 여자가 눈앞에 있다
그여자가 내 목에 밧줄을 감아 나를 끌고 다닌다.
라는 소리를 하다가 지쳐 잠이 들고
눈을 뜨면 또 같은 상황의 반복...
그러면서 몸의 상처는 점점 심해져 갔다고 했다.
여기까지 이야기를 들은 녀석은 Y에게 한번 더 물었다.
정말로 누군가에게 원한을 살만한 일을 한적이 없냐고.
Y는 한참동안이나 말이 없었다.
답답해진 녀석이
동생을 저렇게 죽어가게 두고 싶으면 마음대로 하라고 화를 냈고
그제서야 Y는 천천히 입을 열기 시작했다.
철없던 시절에 저지른 커다란 실수... 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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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마 12
당시 Y가 2학년이던 시절
Y는 3학년들 조차 다 싸움으로 잡아버린 학교의 우두머리였다.
그는 상남2인조에 나오는 만화같이
학교 집단을 크게 이끌고 다녔고 그 집단의 리더로 있었다.
당시 Y와 같은 반 학생중에
전교에서 이지매를 당하던 유코(가명입니다. 철도원에 나오는 여주인공 이름)
라는 여자애가 있었는데.
그 아이는 1학년때부터 이지매를 당했다.
집안이 어려운듯
지저분한 교복차림과 쾌쾌한 냄새, 그리고 매일 감지 않는 머리는
따돌림을 당하기에 충분했었나 보다.
유코는 이쁘지 않은 평범한 얼굴의 여학생이었지만,
가슴이 비정상적으로 커서
교복 블라우스 단추를 잠그지 못한채로
늘 열린 블라우스 속에 티셔츠를 입고 다녔다고 했다.
짖궂은 아이들은 유코를 벽에 세워두고 가슴을 주물럭 거리며 놀았고
싫다고 하거나 저항을 하면 폭력을 가했다.
유코가 그정도의 이지매와 추행을 당하면서도 꿋꿋히 학교에 나왔던 이유중에 하나가
Y의 패거리중에 있던 쇼타(가명입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만화 주인공 이름)
때문일지도 몰랐다.
쇼타는 잘생기고 여학생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참 좋았다.
유코 또한 쇼타를 짝사랑했다.
아이들이 유코의 일기장을 뺐어서 보다가쇼타를 좋아한다는 내용때문에 알게 되었고,
너같은게 감히 쇼타랑 어울리냐며
그 또한 아이들에게 괴롭힘 거리가 되었다.
그리고
비극적인 사건의 시작은
유코의 생일날 일어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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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마 13
Y가 교실에 갔더니
책상에 앉아있는 유코에게 생일축하라며
아이들이 쓰레기통을 들이붇고,
온갖 쓰레기와 오물들을 유코와 유코의 책상위에 던져댔다.
그 모습을 보고 Y가 그들에게 다가갔고
유코를 괴롭히던 대 여섯명의 아이들은 그를 보자 경직되었다.
Y는 보통 학생들에겐 공포의 대상이었다.
Y : 뭐하는거냐 니들.
유코 : ......
아이들 : 아니... 그냥... 오늘 유코 생일이라 축하... 를...
아이들은 Y의 눈을 쳐다보지 못하고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대답했다.
Y : 병.신같은짓 하지 말고 꺼.져.
아이들은 그 소리에 놀라 줄행랑을 쳤다.
반에 있던 다른 아이들은 숨죽이며 자신의 책상만을 바라보았다.
Y : 꺼지라는말 안들리냐.
다시 한번 위협적인 Y의 말에 반에 모든 아이들이 교실밖을 빠져나갔다.
Y : 괜찮냐.
유코 : 고맙습니... 아니... 고마워...
유코 또한 반 아이들 처럼 Y를 두려워 했다.
Y : 너 오늘 생일이냐.
유코 : 으... 응...
Y : 이따 학교 끝나고 우리집 가자. 쇼타도 올거야.
유코 : ......
Y : 갈거야 말거야.
유코 : 가... 갈게...
유코는 쇼타가 온다는 말에 수업이 끝난 후 Y를 따라나섰다.
Y의 집에 도착하니 쇼타를 포함한 네명정도가 담배를 피우며
만화책이나 잡지 같은걸 보고있었다.
유코는 쇼타가 있는것을 보고 부끄러운 듯한 웃음을 참지 못하고 얼굴을 돌렸다.
유코와 Y가 집에 들어서자 집안에 있던 아이들이
먹을것좀 사가지고 온다며 슬금슬금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날 유코는 최악의 생일을 맞게 되었다.
평소 Y는 왕따지만 가슴이 컸던 유코를 보며
쟨 쌩 아다 일거야.
한번 따먹어 볼까. 라고 심심할때마다 얘기했고,
그리고 그 더러운 발언을 결국 실행에 옮긴 것이다.
Y는 억지로 유코를 강.간.하기 시작했고
저항을 해봐도 Y의 힘을 당해 낼 순 없었다.
버둥거리는 유코의 얼굴과 배를 주먹으로 내려치며
가만히 있지 않으면 죽여버리겠다는 협박도 하였다.
- 이러지마... 이러지마... -
- 잘못했어요... -
- 살려주세요... -
유코가 할 수 있는 말은 이것이 전부였다.
Y의 이야기를 듣다 녀석은 멈칫했다.
예전 Y의 집에서 DVD 를 틀었을때 났던 소리...
그 후로 유코란 여자는 어떻게 되었냐고 녀석이 묻자
Y는 또 다시 한참을 뜸을 들이며 이야기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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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마 14
그런 일을 당한 후에도 유코는 학교에 꾸준히 나왔다고 한다.
전보다 더 어두워진 모습으로...
그런 유코를 보며 Y는 ㅊㄴ이라며 비웃었다.
그치만 비극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오후 수업이 없는 토요일
쇼타가 유코를 따로 불러냈다.
쇼타 : 너 나 좋아한다며?
유코 : ......
쇼타 : 싫어하냐? 좋아한다고 들었는데 아닌가보네...
유코 : 아... 아니야...
...... 조... 좋아해...
쇼타 : 근데 너 Y랑 했잖아.
유코 : ......!!!!!!
쇼타 : 나 좋아한다고 하면서 어떻게 Y랑 그럴수 있어?
유코 : ...... 미... 미안해......
쇼타 : 미안할게 뭐 있어. 나랑도 하면 되지.
유코 : ... 그... 그건......
쇼타 : 왜? 싫어?
유코 : ......
쇼타 : 이따가 수업 마치고 3시쯤에 구 교사 앞으로 와
유코 : ......
당시 Y의 학교는 신식 건물이 들어서고
구 교사는 공사를 위해 출입을 막아놓은 상태였다.
유코는 구 교사 앞에서 쇼타를 만나 구 교사 건물 안으로 들어갔고,
유코는 그 곳에서 쇼타에게 또한번
반 강제적으로 당하게 되었다.
그치만 쇼타란 놈은 생각보다 더 나쁜놈이었다.
쇼타와 가까이 지내던 네 다섯의 패거리가 갑자기 들이닥쳐서
구 교사에 있던 더러운 밧줄로 유코를 묶고
소리 지르지 못하게 입을 막았다.
한놈은 비디오 카메라로 그 장면을 촬영하고 다른 패거리들은 번갈아 유코를 강.간.했다.
그렇게 유코는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하고
자신의 생일날
그리고 그 후에 또한번
자신이 짝사랑하던 이에게 고통스러운 일을 당했다.
그 후로 유코는 더 이상 학교에서도
어디에서도 모습을 보이지 않게 되었고
후에 들리는 소문으로는
건물 옥상에서 투신했다는 소문만 들렸다.
이야기를 다 마친 Y가 담배를 피우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역겨웠다.
역겨운 기운이 발끝에서부터 차올라 혀끝까지 밀려왔다.
녀석은 Y를 한방 먹이고 싶었지만 참았다.
K : 이번일은 도와주고 싶은 마음도, 생각도 들지 않아.
그 여자에게 죽던지 말던지 마음대로해. 모두 당신이 저지른 일이니까.
Y : 알아... 그치만, 내 동생은... 내 동생은 아무 잘못 없잖아...
내 동생을 봐서라도 제발 도와줘... 부탁할게...
Y가 거의 울먹이며
무릎을 꿇고 이마를 땅에 부딛히며 녀석에게 빌었다.
그치만 더 이상 도와주고 싶지 않은 마음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K : 어디 가서든 죽어버리라고 당신.
녀석은 돌아가기로 마음을 먹고
그의 동생의 상태를 잠깐 확인하려 그 동생이 있는 방으로 다시 갔다.
그의 어머니는 손님인 나를 위해 무언가 준비하는듯 했다.
눈을 감고 불안한듯 시체같은 모습으로 잠들어있는 그녀.
- 미안하다... 난 널 도와줄수 없어... -
속으로 생각하고 녀석이 뒤를 돌아섰는데 목소리가 들렸다.
- 살려주세요... -
뒤를 돌아보니 그의 동생이 눈을 뜨고 힘없이 녀석을 바라보고 있었다.
동생 : 오빠가 집에 왔을때... 그 여자가 사라졌어요... 살려주세요...
K : ......
동생 : 살고싶어요... 부탁드릴게요... 제발...
울먹이며 간절하게 부탁하는 동생의 모습.
그렇게 한참을 동생을 바라보다가, 녀석은 차마 뿌리치지 못하고
그녀의 곁에 앉아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K : 걱정하지마... 오빠가 반드시 살려줄게...
고맙습니다... 라는 힘없는 대답과 함께 그녀가 다시 잠들어버렸다.
녀석은 방에서 나와 Y에게 다가갔다.
K : 흥신소든 뭐든 이용해서 유코라는 여자의 유해가 어디있는지,
그리고 쇼타라는 새.끼 행방 당장 찾아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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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마 15
그 후로 녀석은 집에 돌아가지 않고 Y의 동생곁을 지켰다.
그의 부모님들은 녀석을 볼때마다
괜히 불편하게해서 죄송하다고 수시로 이야기 했다.
아마 그 집에 머무르면서 죄송하다는 소릴 백번도 넘게 들은것 같다.
동생이 깨어있을땐 녀석에게 힘없이 말을 걸어왔다.
동생 : 오빠...
K : 일어났니.
동생 : 우리 오빠는 어디 갔어요...?
K : .......
동생 : ...?
K : 너 낫게해줄 약 구하러...
동생은 그런게 어딨냐고 힘겹게 웃으며 말했다.
녀석은 말주변이 없었다.
그녀가 학교다닐때 이야기나 친구들 이야기를 할때면
말없이 들어주는것이 녀석의 일과였다.
가끔 잠들어있던 동생이 잠결에 고통스러운듯한 신음소리를 낼때면
여지없이 그 여자가 찾아왔다.
그럴때마다 녀석은 눈을 감고 동생의 가슴에 손을얹고 조용히 기다렸다.
눈을 감고 있는 상태에서
그 여자가 코 앞에 내 얼굴을 마주하고 있다는 것도 느껴졌고
가끔은 숨이 막히는 것 같은 느낌도 받았다.
녀석때문에 동생에게 손대지 못하는듯 했다.
그 여자는 한참동안 한기와 기운을 뿜어내다 사라졌다.
그 여자가 사라지면 동생이 깨어났다.
동생 : 오빠...
K : ...?
동생 : 그 여자... 왔었나요...
K : 아니...
동생 : ... 오빠...
K : 응.
동생 : 고마워요...
K : ......
그렇게 그 여자가 찾아왔다 사라졌다를 반복하고
몇일이 지난생각보다 오래 걸리지 않은 시간에 Y가 집에 돌아왔다.
시간을 더 지체할순 없기에 녀석은 바로 Y를 따라나섰다.
Y가 알아낸 것은 유코가 그 뒤로 건물에서 투신했다는 소문이 사실이었고,
부모나 친척도 없이 오랫동안 혼자 살던 아이였다고 했다.
유코의 유해는 알려지지도, 지명도,
이름도 없는 작은 신사에 있다고 했다.
K : 쇼타라는 자식은?
Y : 죽었어...
K : 살이있다면 되려 신기한거겠지...
Y : 죽기 전까지 내 동생처럼 몸에 알수 없는 상처로 시달렸고,
이상한 여자가 자길 죽이려 든다는 둥 정신발작을 일으켰나봐.
그래서 정신병원에 감금되다 시피 지내다가,
결국 아무런 원인도 찾지 못하고 죽었다고 해.
K : 흠...
Y : 그녀석 부모들도 병원으로 향하는 와중에
원인 불명의 교통사고로 둘다 죽었다고 하더군.
그 부모의 사고도 그 여자의 짓일거라는 직감이 강하게 왔다.
그리고 알수 없는 불길한 예감이 스쳐지나갔다.
도착한 곳은 크지도 작지도 않은 산.
오랫동안 사람의 출입이 없었던 듯
사람들이 지나다니며 자연스래 만들어졌던 산길이
다시 수풀과 덩쿨로 우거져있었다.
한참을 산길을 따라가니
신사가 있음을 알려주는 도리(기둥을 두개 세워 만든 신사의 입구) 가 보였다.
이상한건, 무언가를 봉인해놓은 것 처럼
굵은 동앗줄과 부적같은걸 같이 엮어
도리의 양 기둥에 가로로 묶어놓았다.
안쪽으로 더 들어가니 스님 한명이 빗자루질을 하고 있었다.
스님 : 이 곳은 참배를 하는 곳이 아닙니다.
어떻게 오셨는지는 모르겠지만 돌아가주십시오.
녀석은 스님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K : 유코라는 여자를 찾아왔습니다.
스님 : ... 흠... 당신은...
스님은 잠시 침묵을 지키다 안내하겠다고 앞장섰고
녀석과 Y는 스님의 뒤를 쫓았다.
스님이 안내한 곳은 유코의 유골이 있는 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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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마 16
- 인과율 -
어떤 상태(원인)에서 다른 상태(결과)가 필연적으로, 즉 법칙에 따라서 일어나는 경우, 이 법칙을 인과의 법칙. 또는 인과율이라고 한다.
유코의 재단은
처참한 모습이었다.
제단을 장식하던 비목,
불상도,
제단도 전부 부서져 있었다.
녀석이 그 앞에 선 순간 울컥 하는 강한느낌과 함께
그리고 부서진 제단에서 느껴지는 그녀가 가진 서러움과 슬픔에
눈물이 나왔다.
- 어째서... 왜... 이렇게까지... 도대체 왜... -
녀석은 말을 잇지 못했다.
Y는 스님에게 왜 재단이 부서진 채로 방치하느냐고 소리를 질렀고
스님은 혼잣말 하듯 조용히 얘기했다.
스님 : 당신도 아시겠지만...
이 아이의 재단은 몇번이고 부서져 버렸습니다.
새로 만들고 세워도 금방 다시 부서지더군요.
스님은 녀석을 지나 재단쪽으로 가서
부서진 상자같은 곳에서 유골이 담긴 항아리를 꺼냈다.
스님이 항아리를 열자.
유골이 있어야할 항아리에 모래가 가득 들어있었다.
스님 : 세번째인가 제단이 부서졌을 때
항아리가 깨지고, 불이 붙을 수 없는 뼛가루에
말도 안되게 또 다시 불이 붙어 완전히 사라져 버렸지요.
이 아이가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지독히도 인과를 겪고 있는 것 같습니다.
Y : 인과 라는게 도대체 뭐야.
Y가 소리치듯 물었다.
스님 : 흠...
혼령들은 그들의 세상으로 가기 전에
여러가지 이유로 이곳에 머무릅니다.
그런 와중에도 살아있을때와 마찬가지로 다른 혼령을 핍박하고
다른 혼령 위에 군림하려 드는 혼령도 있을겁니다.
시덥지 않은 장난 따위를 치려는 혼령도 있을 것이고,
생전의 원한 따위로 살아있는 존재에게 해를 입히려는 혼령도 있겠지요.
그치만 법관도, 경찰같은것도 그들에게 있을리 없겠죠.
인과 는 그들에게 일종의 질서 입니다.
자신의 어떤 행위에 대해
그 이상의 벌이나 고통을 스스로 받게 합니다.
스님이 부서진 재단에서 향을 꺼내 향을 피우며 얘기했다.
스님 : 이 아이가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의 육신에 흔적조차 소멸될 정도의 인과를 받고 있는 것을 보면
지금의 존재 또한 무사하지는 않을것 같아 걱정스럽군요.
녀석과 Y는 더 이상 아무말도 할수 없었다.
녀석은 스님에게 인사를 한 뒤 신사를 나와 산을 타고 왔던 길을 내려갔다.
Y : 유코는 우리가 그렇게도 원망스러웠을까...
K : 아가리 찢어버리기 전에 닥쳐.
Y : 무엇이 그렇게...
K : 시끄러우니까 재잘대지 말고 닥치라고.
녀석은 Y의 말을 끊어버렸다
녀석에게 Y는 더 이상 인간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저 유코가 가지고 있는 원한과 인과의 일부를
그녀의 재단에서 느꼈을때 알수 없는 슬픈 감정이 밀려왔다.
Y : K군. 난 잠시 들를곳이 있으니 먼저 동생에게 가주지 않겠어?
녀석은 Y의 말에 대답도 하지 않고 그의 동생에게 발길을 돌렸다.
쇼타라는 녀석의 일가족을 몰살시킨 여자다.
동생을 오랫동안 혼자두면 위험해. 라는 생각에 더욱 초조해 하며 서둘렀다.
그렇게 Y의 집으로 돌아가는 와중에 전화벨이 울렸다.
Y였다.
Y : K군.
K : 뭐요.
Y : 내가 죽으면... 유코도 내 동생을 용서해 줄까...
K : 당신 그게 무슨...!!!!
Y : 부모님에게도... 동생에게도... K군이 적당히 잘 둘러대줬으면 좋겠어.
K : 이봐! 당신!! 지금 무슨 짓을 하려는거야!!
Y : K군 에게 이런 부탁 해서 미안해 난 누군가에게 피해만 주고 사네...
Y : 내 동생... 잘 부탁해...
전화기를 어딘가에 내려놓는 소리
그리고 쿵 하는 소리...
이어 들리는 사람들의 비명소리...
유코에 대한 사과의 의미였을까.
동생대신 자신의 목숨으로 대신하자는 등가교환의 의미였을까.
Y는 유코처럼 스스로 몸을 던져 자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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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마 17
녀석은 고민했다.
Y에게 가야하나 아니면 Y의 부탁대로 동생에게 가야하나.
녀석은 일단 Y가 무사하기를 빌며 동생쪽으로 발길을 재촉하기로 했다
Y가 죽는다면 그것이 그의 마지막 유언이고 부탁이 될 테니...
Y의 집앞에 도착하자 녀석은 혼란스러운 상황이 자동으로 정리되었다.
그 여자가 왔다...
한기가 아닌...
집 밖으로까지 지독한 살기를 내 뿜으며...
녀석은 서둘러 집 안으로 들어갔다.
집안은 사우나에 들어온것 처럼
숨쉬기가 곤란할 정도로 어머어마한 살기로 가득차 있었다.
Y의 부모님이 기절해 있는 것이 보였고 동생이 있는 방으로 들어가자
그 여자가 동생의 목을 움켜잡고 들어올린채 서있었다.
동생은 버둥거리지도 않고 축 늘어져 시체처럼 그 손에 매달려 있었다.
K : 그만둬!
K : 아무 상관도 없는 애한테 뭘 어쩌겠다는거냐!
녀석이 소리쳐도 그 여자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는 중에도 점점 동생은 조금씩 기운이 사라져 갔다.
이대로 두면 정말 죽겠다 싶어서 녀석이 달려가 그 여자의 어깨를 잡았다.
형체를 스스로 만든 혼령...
동생 만큼이나 이 여자도 위험했다...
그 여자의 어깨를 잡자.
차가운 기운을 넘어서
손이 타버릴 듯한 냉기가 느껴졌다.
드라이아이스 보다 더 차갑고 뜨거운 느낌.
그 여자는 동생을 내려놓고 녀석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 여자의 몸에서 지저분한 밧줄들이 솟아나와
녀석의 몸을 휘감고 목을 조르며 감겼다.
유코를 고통스럽게 했던 그 밧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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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마 마지막
밧줄이 목에 조여드는 힘이 너무 강해 녀석은 금방이라도 정신을 잃을 것 같았다.
그때 그 여자의 몸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이러...지마... 이...러지마...』
『잘...못... 했어... 요...』
『살려주...세...요...』
K : 유코...
녀석이 나지막히 내친 순간 유코의 혼령은 멈칫 하며 밧줄에 힘이 풀렸다.
K : 도대체 왜 이런짓을 하는거냐...
녀석의 물음에 유코는 그제서야 천천히 대답했다.
유코 : 놈들은 나에게 모든 것을 앗아갔다...
소소한 기쁨, 애정, 기대, 희망까지...
K : 그래서 기다렸나? 저 아이가 네 나이였던 17살이 될 때까지?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K : 예상했던데로,
Y의 눈 앞에서 저 아이를 먼저 죽일 작정이었군.
그런데 미안해서 어쩌지?
Y는 이미 죽어버렸을지도 모르는데.
유코 : ......
K : Y는 당신에 대한 사과의 의미로...
그리고 자신을 동생을 살려달라는 의미로...
당신과 똑같이 투신했다...
유코 : ......
유코 : 이젠... 상관 없다.
유코의 혼령이 다시 동생쪽에게 다가갔다.
K : 그만둬!!!!
K : 더 이상 인과를 쌓지 말란 말이다!!
녀석의 소리침에 유코의 혼령이 다시 멈춰 녀석을 바라봤다.
K : 당신의 유해도 사라져 버렸어.
더 죄를 지으면... 정말로 소멸되어버릴지도 몰라...
유코 : 그런걸... 두려워 했을거라 생각해...?
K : 왜 그렇게 긴 세월을 고통스러워 하는거지...
한번쯤은... 단 한번쯤은...
죽기 전까지 그렇게 살았으면...
한번쯤은... 이기적이어도 되는거잖아.
한번쯤은 자신만을 위해서 살아도 되는거잖아.
복수 같은 것에도,
그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신을 위해 살아도 되는거잖아.
당신... 더 이상 어떤 존재로도 남아있지 못하게 된단 말이다...
녀석이 절규하듯 애원하듯 유코에게 외쳤다.
그리고 계속 밧줄에 목이감겨 서서히 정신도 희미해졌다.
유코 : 이미... 늦었다...
유코가 다시 몸을 천천히 움직였다.
이젠 정말로 동생도...
어쩌면 자신도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코 : 살아있을때 단 한번도 그런 말을 들어본 적이 없어...
유코 : 너무... 늦어버렸네...
녀석의 몸에 감긴 밧줄이 풀리고
유코가 서서히 사라졌다.
그렇게 모든 것이 끝난걸까.
녀석은 기절해 있던 Y의 부모님을 깨워
그의 부모님에게만 Y의 사고 소식을 전했다.
후에 그의 동생은 건강을 되찾았고
그 후로 녀석은 도망치듯 한국에 잠시 들어왔다.
녀석은 한국에 오자마자 할아버지 댁을 찾았다.
할아버지는 터미널로 마중을 나와계셨다.
녀석을 보자마자 할아버지는 녀석을 안아주었다.
할아버지 : 수고했다...
그 한마디에 녀석은 어린아이처럼 울었다고 한다.
터미널 대합실 한복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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