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오래 된 옛날 일이다.
갑작스레 사정이 좀 생겨, 남편과 함께 친정에서 신세를 졌던 적이 있었다.
우리 부부는 밴드를 하다가 만났고,
지금도 남편은 취미삼아 계속 활동을 하고 있다.
그 때문에 이사를 하자니,
당연히 짐을 옮겨 놓으니 남편의 기타, 베이스, 온갖 자재로 방이 가득 차 버렸다.
어떻게 어떻게 정리를 해서,
다른 악기들은 모두 케이스에 넣어서 꾸역꾸역 밀어넣었다.
다만 남편이 아끼는 기타 하나만은,
남편이 허겁지겁 케이스에서 꺼내서 스탠드에 기대 세워놓았다.
아무래도 미제다 보니,
일본처럼 습기 찬 기후에서는 케이스에 보관해 놓으면 악기가 완전히 뒤틀린다는 것이었다.
일단 거기까지 정리해 놓으니 대충 이사도 마무리되었고,
한여름에 이사를 하느라 완전히 녹초가 된 우리 부부는 옆방에 들어가 그대로 죽은 듯이 잠에 들었다.
이튿날 아침.
어머니가 깜짝 놀란 듯 말했다.
[얘, 전기기타라는 건 대단한 거구나.]
무슨 소린가 싶어 되물었다.
[어제 한밤중에, 그 기타가 연주가 되더라니까.]
엥? 남편이 한밤중에 일어나 연주라도 한 건가?
하지만 남편은 자신도 모른다며 고개를 내저을 뿐이었다.
[그게 아니야. 한밤중에 일어나서 화장실에 가는데, 그 방에서 딩딩 소리가 나더라고.
안에를 보니까 글쎄 아무도 없는데 기타가 자동으로 연주를 하지 뭐니.]
자동으로? 남편과 나는 당황해서 서로 마주보다 말을 잃었다.
온갖 상자와 악키 케이스 사이, 한밤 중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연주하는 기타..
도대체 누가 연주하고 있던 걸까..
하지만 어머니는 신나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역시 전기기타는 다르네! 미제랬지? 대단하네, 정말. 딩딩딩하고, 자동으로 연주까지 하다니!]
아무리 미제라도, 아무리 일렉기타라도 혼자서 연주하지는 않아요..
그 후로 우리는 몇 번 더 이사를 했고, 그 때마다 그 기타는 스탠드에 기대 세워놨다.
하지만 기타가 혼자 연주됐던 것은 그날 밤 하루 뿐이었다.
아마 우리 친정에 뭔가 있는게 아닌가 싶지만,
아직도 우리 어머니는 일렉기타는 자동으로 연주되는 악기라고 알고 계신다.
출처 : VK's Epitap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