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

자연사 작성일 15.09.06 09:4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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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에겐 앞이 거의 안보이시는 외삼촌이 계십니다. 어렸을때부터 병약했거니와, 젊어서 술을 너무 가까이 하셔서 알콜중독으로 거의 실명 단계에 오셨던 것입니다. 외삼촌은 그제서야 크게 뉘우치시고, 술을 끊으셨습니다.




그리고 10년 후.



앞이 거의 안보이시기에 식구들 부양이 곤란하셨던지라, 외숙모와 자녀들이 직장이나 학교에 가 있는 사이 혼자서 집을 지키시던 외삼촌께서는 어느날부터 외숙모만 집에 오면, 



"나...혼자 집에 있기 싫어... 누가 자꾸 와..."



하시며 직장에 가지 말라고 떼를 쓰셨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생계가 곤란했던 외숙모께서는 그냥 투정이려니 하시며 넘어가셨답니다. 



하지만 매일매일 그러니 누가 오냐고 물어보았더니 사물을 거의 분간 못하시는 외삼촌께서는 이상하게 매일 옛날 복장의 할머니 할아버지가 한쌍씩 집을 찾아오신다고... 그 모습이 보인다고 하셨습니다.



나중에는 무섭다고 엉엉 울기까지 했는데... 결국 외숙모는 외삼촌을 모시고 절에 가서 스님과 의논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스님께서는 외삼촌께서 장남임에도 불구하고 제사를 모시지 않아 조상님들께서 어찌 된 영문인지 궁금하여 찾아 오시는 것이라 말씀하시고는 조상님들을 위한 제를 지내자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를 지냈고 외삼촌께서는 이제까지의 과실을 사죄하고 앞으로는 꼭 제사를 모시겠다고 약속을 했다고 합니다. 제가 끝나고 난 후 외삼촌이 뒤를 돌아 보니 이제까지 찾아왔던 모든 분들이 마치 가족사진을 찍는 것처럼 서서 웃고 계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후로 그 분들은 찾아 오지 않으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일이 있은 후, 저희 외삼촌은 그런일이 언제 있었냐는 듯이 여전히 제사를 외할머니께 미루고 여느때와 같이 제사에 참석조차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어느날 외숙모께서 출근하고 집을 비운 사이, 외삼촌은 아무 이유없이 갑자기 돌아가셨습니다. 아침까지만 해도 멀쩡히 잘 계셨던 분이 말이죠.



아무래도 약속을 지키지 않아서, 화가난 조상님들께서 데리고 가버리신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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