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년 전 이사해 더 이상 그 곳에 살지는 않지만..
지난 여름, 동네 여름 축제 때 딸에게 물풍선을 사 줬었다.
꼭지 부분을 고무밴드로 묶은 색색깔의 화려한 것이었다.
물풍선은 노점에서 산 것이었는데,
가게를 보는 건 학교에서 막 돌아온 듯한 여자아이로, 교복을 입은 채였다.
물풍선을 사주려는데 전화가 와서,
나는 딸에게 원하는 걸 고르라고 말하고 전화를 받았다.
전화를 하면서 딸과 여자아이가 사이 좋게 말하는 걸 보고 있는데,
딸이 물이 다 빠져 쭈글쭈글해진 작은 물풍선을 골랐다.
그거는 안 되지, 라고 생각하면서 계속 전화를 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여자아이가 [아버님, 따님이 고른 물풍선이 물이 다 빠져서 위험하니까, 다시 채워드릴게요.] 라고 말했다.
위험하다니, 뭐가?
나는 [괜찮아요. 다른 거로 고를게요.] 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여자아이는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따님한테는 이 풍선이 아니면 안 되요. 그러니 다시 채워드리고 싶어요.]
나는 의아한 얼굴로 여자아이를 바라보았다.
[이대로 두면 따님이 정말 위험해요. 부탁 드립니다.]
나는 위험하다는 게 무슨 소리인지, 이 아이 조금 이상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하지만 일단 딸이 고른 풍선인데다,
물풍선에 물을 다시 채우는 게 뭐 그리 어려운 일인가 싶어 그냥 그러라고 대답했다.
곧 여자아이는 물풍선에 물을 채워,
다른 풍선들만한 사이즈로 만들어 주었다.
나와 딸은 잠시 축제를 돌아보다, 슬슬 돌아갈 요량이었다.
국도변의 밤길을 딸과 손잡고 걷다 편의점 앞을 지나가게 되었다.
편의점 옆 주차장 앞을 걸어 지나가는데,
편의점에 들어가는 차가 다가왔다.
하지만 내가 깨닫기도 전에, 그 차는 우리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그것도 내가 아닌 딸을 향해..
순간적으로 눈 앞의 광경을 믿을 수 없어,
딸을 끌어 안으려 했지만 몸이 움직이질 않았다.
아무 것도 못하고 그저 서 있는 딸 앞에,
다가오는 자동차 라이트가 빛났다.
내 시야도 새하얗게 되고, 이대로 죽는구나 싶었다.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차는 평범히 나와 딸 곁을 지나 주차장으로 들어섰다.
분명 우리 눈 앞으로 다가왔었는데..
나는 망연자실해 그 자리에 주저 앉고 말았다.
갑자기 딸이 울기 시작했다.
내가 [왜 그러니?] 하고 묻자,
딸은 [풍선이 터져버렸어.] 라고 말했다.
풍선?
들고 있던 게 아닌가 싶어 딸의 손을 보자, 정말 없었다.
어디 있나 주변을 둘러보니 아까 그 차 타이어 밑에 떨어져 터져 있었다.
그 후 우리는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지금도 그 물풍선이 딸 대신, 부적처럼 딸을 지켜준 것이라 생각한다.
물풍선이 물로 차서 다시 부풀었다는 건 생명을 지키는 힘이 늘어난 거겠지.
아마 딸과 사이가 좋아졌던 그 가게 여자아이가, 딸의 생명을 지켜준 거라고 생각한다.
출처 : VK's Epitap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