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짱공유에서 별로 환영받지 못할 존재라는 것을 알지만 용기내어 끄적여봅니다.
애초에 글을 쓰면서도 큰 관심을 기대하는 것은 아니기에, 그냥 대충 읽으셔도 상관없습니다.
제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기독교인도 잘못 알고 있는 상식에 대한 내용입니다.
사실 이야기할 범주가 굉장히 넓기는 하지만.. 오늘은 한가지만 언급하도록 하고,
혹시 댓글을 통해서 여러 내용의 질문공세(?)가 이어진다면, 영광이라고 생각하고 기꺼이 제가 아는 범위에서 답변드리고자 합니다.
기독교의 가장 오래된 떡밥은 진화 VS 창조 논쟁일 것입니다.
종교를 믿는 사람들은 현대과학이 밝혀내고 있는 것을 모두 부정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생깁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그러한 프레임 자체가 오해이며, 성경을 잘못 이해한 결과입니다.
먼저 기독교를 믿으시는 분들께 드리는 말씀 -
저는 기독교교인이며, 흔히 말하는 합동, 통합 등등을 모두 다녀본 경험이 있고, 지금도 정통적인 교단에 속해있습니다.
제가 이야기하고자하는 것이 만약 낯설고 거부감이 느껴지신다면, 저의 언급내용을 본인이 다니시는 교회의 교역자나 목회자에게 문의하여보셔도 좋습니다. 저는 이단이 아닙니다.
또한, 기독교를 믿지 않으시는 분들께 -
저는 안하무인 같은 종교자들의 행위를 역겨워합니다. 기독교는 논리없이 무식하게 덤벼드는 그런 괴상한 종교가 아닙니다만, 실제로 지난 세월동안 그런 행동을 많이 범해왔습니다. 이는 그들이 성경을 잘못해석하였거나, 심지어 읽지도 않고 막연하게 습득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부디 저의 글이 일종의 '대화의 장'이 되어서, 이해를 돕는 통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원치 않으시는 분들께 강요할 마음은 없습니다.
본론으로 들어가서 성경에 관해서 :아시다시피 성경은 유대교 및 기독교의 경전입니다. 구약과 신약 총 66권으로 이루어져있으며, 각 권은 고유의 장과 절로 나누어져 있다. 이는 인쇄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고대에서 양피지나 파피루스 형태로 전달되는 과정에서 두루마기의 순서번호를 매겼던 일종의 page구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한 사람이 신의 영감을 받아서 신이 불러주는 뜻을 받아적은 내용이 ‘결코 아닙니다’.성경은 인간인 저자 여러명이 저마다 자신의 의지를 가지고 저술한 여러편의 책이고, 이를 종교개혁 과정을 거쳐 공교회의 승인을 얻은 편집을 통해 현대의 66권 형태로 편집되었습니다. 각 책들은 서로 관련이 있는것도 있고, 없는것도 있습니다.(저의 이 말은 결코 이단적인 메시지가 아니라, 사실입니다. 여러분이 다니는 교회 목사님께 문의해보십시오.)그 중에는 ‘편지’의 형식을 지닌 글이나, 역사에 대한 서술, 자신이 본 꿈과 환상에 대한 묘사, 3인칭 관찰자시점의 기록, 시와 노래, 왕이 죽기직전의 유언 등 다양한 장르가 묶여진 일종의 옴니버스식 책입니다. (이솝우화를 떠올려보십시오. 한 책 안에 서로 다른 여러편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성경은 신구약을 합쳐서 총 1189장(Chapter)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 중 창세기는 맨 앞에 위치하고 50장까지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성경에서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고 모든 생명체를 만들었다고 명시하는 내용은 창세기 1장부터 2장정도까지 입니다. 3장부터는 최초의 인류에 대한 이야기, 4장부터는 그 후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즉, 천지 창조와 관련된 부분은 불과 1~2장입니다. 수치적으로 성경전체에 비해 4.2%에 불과한 내용입니다. 여러분은 영화나 소설을 좋아하시는지요? Prologue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본편에 선행하여 먼저 읽히도록 하는 파트입니다. 이 내용은 도입부에 해당하기는 하지만, 실제 작가나 감독의 의도에 따르면 별로 크게 ‘중요한’내용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이야기의 중심부분에 나오는 클라이막스 부분이며, 프롤로그는 그저 클라이막스를 위한 재료일 뿐입니다. 창세기는 50장으로 구성되어있는데 여기의 프롤로그에는 천지창조에 대한 이야기가 언급되지만, 이후 뒷부분의 90%는 천지창조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으며, 그것이 핵심 포인트가 아니라 고대근동지방의 인간들이 어떠한 삶을 살았는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즉 창세기의 저자가 창세기를 통해 하고싶었던 중심주제는, 결코 ‘천지창조 과정에 대한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설명’이 아닙니다. 창세기라는 제목 자체가 이미 심각하게 잘못 붙여진 것입니다. 창세기의 저자는 천지창조를 설명하고싶었던게 아니었습니다. 성경의 저자는 성경을 ‘과학책’을 의도하고 만든책이 아닙니다. 시편같은 경우 다양한 은유법과 비유법을 사용하여 시인의 감정을 표현하는 책입니다.그런데 왜 현대의 사람들은 원저자의 의도와는 전혀 상관없이, 그가 쓴 한두줄의 문장을 가지고 갑론을박하는 것일까요? 문학작품에서 역사적/객관적 고증을 수행하는 시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패러다임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제가 보기에 현대과학이 설명하고 있는 이론 중 대다수는 상당히 신빙성이 있고 객관적인 증거가 뚜렷합니다. (저는 이공계 대학원의 석사과정에 재학중입니다)그리고 성경은 ‘현대과학이 틀렸다’라고 주장하고 있지 않으며, 그 어디에서도 그런 의도는 발견되지 않습니다. (저는 성경 전체를 7번 탐독하였으며, 현재 8번째 통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창세기를 기록한 사람은 모세로 알려져 있지만, 이것도 다시한번 고찰해볼 필요가 있습니다.(제 생각이 아니라 현대 신학자들의 의견입니다)모세가 살았던 시절에는 지금과 같은 활자와 인쇄술이 당연히 없었습니다. 그때에는 말로써 내용을 전달하고, 그것을 외워서 전달하였습니다.창세기의 최초 내용과 구성을 모세가 작성한 것은 맞겠지만, 그것을 옮겨쓴 사람은 후대의 누군가일 것입니다.그러므로 어떤 인간이 ‘천지창조’의 과정을 직접 눈으로 보고, 그 내용을 글로 썼다고 볼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 내용은 객관적인 사실에 대한 진술이 아니고, 그럴 의도도 아니었을겁니다. 현재까지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구약성경은 바벨론에 침략당하여 포로로 끌려갔던 유대인들이, 자신들의 민족에 대한 얼을 기억하기 위해 조상들로부터 들어왔던 이야기를 문서의 형태로 적기 시작한 것을 기원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민족 신인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 우리를 이방민족으로부터 구원해낼 분이시다라는 내용을 핵심으로 하여 이야기를 작성하였습니다. 그것이 모세의 이야기이며, 모세 이후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 사람들이 글을 쓸 때 “아 이렇게 써놓으면 나중에 현대과학이 발달했을 때 맞설수 있는 근거로 사용해야지”라고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기원전이 사람들이 말입니다.
기독교인들이 성경을 스스로 읽고, 그 배경과 내용을 깨우칠 수 있어야 하는데현재의 교회, 특히 한국교회는 그러한 것을 소중히 여기지 않고 그저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집단으로 뭉치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입니다.그래서 성경이 이야기하고 있는 핵심 메시지(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전혀 실천하지 않으면서왜 도대체 프롤로그에 있는 한두문장을 가지고서는 “이걸 인정하지 않으면 우리의 적이다”라고 규정하는일에 힘을 낭비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두서없는 이야기가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것은 교회의 의견을 대표하는 것이 아니며, 개인일 뿐인 한 성도의 의견입니다.저의 의견에 대한 반박은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