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동료가 죽었다.
맨손 암벽 등반이 취미인 K였다.
나와는 무척 사이가 좋아,
가족들과도 익히 알고 지내던 사이였다.
K의 암벽 등반 취미는 본격적이라,
휴일이면 이런저런 산이니 벼랑이니 항상 찾아다니곤 했다.
그러던 어느날, K가 죽기 반년 정도 전이었나.
갑자기 K가 내게 부탁이 있다며 말을 걸어왔다.
[야, 내가 만약 죽을 때를 대비해서 말인데, 비디오 하나 찍어주라.]
취미가 취미이니만큼 언제 사고가 나 세상을 떠날지 모르니, 미리 영상 메세지를 찍어두겠다는 것이었다.
만약의 때에는 가족에게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은 말을 담아, 가족들에게 보여준다고 한다.
나는 [그렇게 위험한 취미인 걸 알면 가족을 생각해서라도 그만 둬라, 좀.] 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K는 단호했다.
[암벽 등반만큼은 절대로 그만둘 수 없어.]
그것도 K답다 싶어, 나는 촬영을 도와주게 되었다.
K네 집에서 찍었다간 들킬게 뻔하니,
내 집에서 찍기로 했다.
흰 벽을 배경으로 하고,
소파에 앉은 K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어.. K입니다. 이 비디오를 보고 있다는 건, 내가 죽었다는 뜻이겠죠. 여보, S야. 지금까지 정말 고마웠어.]
K는 우선 아내와 딸에게 말하기 시작했다.
[내 제멋대로인 취미 때문에 가족들한테 폐만 끼치고, 정말 미안합니다.
저를 키워주신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다른 모든 친구들도. 내가 죽어서 슬퍼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부디 슬퍼하지 말아주세요. 저는 천국에서 즐겁게 지낼테니까요.]
K는 한숨을 몰아쉬고 말을 이어갔다.
[여러분과 더 이상 만날 수 없다는 건 안타깝지만, 천국에서 여러분을 지켜보고 있겠습니다.
S야. 아버지는 언제나 천국에서 널 지켜보고 있을게. 그러니까 울지 말렴. 웃으면서 배웅해 줘. 그럼, 안녕.]
그리고 촬영이 끝나고 반년 후, 정말로 K는 세상을 떠났다.
암벽 등반 도중 실족으로 인한 사고사였다.
같이 산을 오르던 동료에 의하면,
보통 떨어져도 생명에는 지장이 없도록 아래에 안전 매트를 깔고 등반한다고 한다.
하지만 그 때는 하필 낙하 예상 지점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떨어지는 바람에
사고를 막을 수 없었다고 한다.
울부짖는 K의 부인과 딸.
나조차도 믿을 수 없었다.
그 K가 이렇게 세상을 떠나다니..
장례를 치루고 일주일 가량 지난 후,
나는 전에 찍었던 그 비디오를 K네 가족에게 보여주기로 했다.
가족들도 어느정도 안정을 되찾았는지,
내가 K의 영상 메세지 이야기를 하니 부디 보여달라고 부탁을 했다.
그리하여 7일째 법요를 할 때, 그 자리에서 영상을 틀기로 했다.
내가 DVD를 꺼내자, 가족들은 벌써부터 울기 시작했다.
[이것도 공양이 될테니 부디 봐 주세요.]
나는 DVD를 넣고 재생했다.
브.. 하는 소리와 함께, 깜깜한 화면이 10초 가량 이어진다.
어? 녹화가 제대로 안됐나?
그 순간,
어둠 속에서 갑자기 K의 모습이 나타나더니 말하기 시작했다.
분명 내 방에서 찍은 건데..
이렇게 어두웠던가?
[어.. K입니다. 이 비디오를 ..고 있다는 건, 내가 ..었다는 ..이겠죠. 여보, S야. 지금까지 정.. 고마...]
K의 목소리에는 아까부터 계속 들려오던 브.. 하는 잡음이 심하게 섞여, 목소리를 잘 알아들을 수 없었다.
[저를 키워주신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다른 모든 친구들도. 내가 죽어서 슬퍼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부디 슬퍼하지 말아주세요. 저는 즈봐아아아아아아아아아 S, 아버지 죽어버려어어어어어어어 죽고 싶지 않아!
죽고즈봐아아아아아아싶지않아요오오오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등골에 소름이 끼쳤다.
마지막 부분은 잡음으로 거의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K의 말은 분명히 촬영할 때와 다른, 단말마의 절규 같이 변해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K가 말을 마칠 무렵.
어두운 구석에서 무언가가 K의 팔을 잡아 끌고 가는게 확실히 보였다.
가족들은 울부짖고 있었다.
K의 부인은 [도대체 뭘 보여주시는 거에요!] 라며 내게 매달리고, K의 아버지는 나를 후려갈겼다.
부인의 남동생이 [K형이 이런 걸 장난으로 찍었을 리 없어요.] 라며 달래준 덕에 그 자리는 어떻게 무마가 됐다.
하지만 나는 무릎 꿇고 빌며,
[이 DVD는 곧바로 처분하겠습니다.] 라고 가족 모두에게 사과했다.
다음날, DVD를 가지고 근처 절에 갔더니, 뭐라 말을 꺼내기도 전에 문전박대 당했다.
주지스님은 DVD를 넣은 봉투를 보자마자 [아, 그건 저희가 맡기에는 무리입니다.] 라고 말했다.
그 대신 받아줄 수 있을만한 곳을 알려주겠다기에 거기로 갔다.
거기서도 [말도 안되는 물건을 가지고 오셨군요.] 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거기 영매사 말에 따르면,
K는 비디오를 찍은 시점에서 이미 완전히 지옥에 떨어진 상태였다고 한다.
[어떻게 반년이나 더 살아있었던 건지 모르겠네요.
원래대로라면 그걸 찍은 직후에 사고를 당해 죽었을 겁니다.]
출처 : VK's Epitap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