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소설] 그곳에 있었다3

하하모드 작성일 17.05.15 16:5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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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들만의 세상

 

소대에는 대략 18명 정도의 정원이 속해있었다.

 

배일병 말에 의하면 보통 한 소대의 TO(정원)는 21~22명 내외라고 하는데,

난 군번이 꼬였단다.

 

내가 7월 군번인데 내 위로 달달이 선임들이 들어온 모양이었다.

 

쉽게말해 전역하기 한 달 전까지 내위로 선임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아마 조만간 내 뒤로도 후임들이 계속해서 들어올 거란다.

 

또 이 부대는 한달단위로 선 후임을 나눴기 때문에 희한한건 나보다 3주나 먼저온

김성준이란 이름의 녀석이 나와 동기라고 했다.

 

성준이는 한 인기 개그맨을 연상시키는 우스꽝스러운 외모였지만 그런 외형에 비해

말수도 적은 듯 했고 뭔가 태도가 상당히 퉁명스러웠다.

 

거기다 나보다 나이로는 2살정도 많았는데, 꼴에 지가 3주 먼저 왔다고 후임대하듯 약간

명령하는 말투를 보였다.

 

이렇다 보니 나는 나대로 아무리 나이가 많고 소대에 좀 먼저 왔다지만 그래도 같은 동기끼리

 

약간의 하대하는 듯한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아 동기라고 해도 별로 정을 붙이고 싶지 않았다.

 

그 외 소대에는 다양한 인간군상들의 집합체였다.

 

어쩌면 훈련소보다 더 심한 것 같기도 했다.

 

조폭 생활을 하다 온 선임, 서울 명문대학교를 다니다가 애인이 변심해 바로 입대한 선임,

전국구 관심병사 수준의 선임, 밖에서 여자들좀 울렸을법한 기생오라비 같은 외모의 선임 등등 다양한 인간들이 한데 모였다.

 

그렇다보니 그들은 나름 내부의 암묵적인 룰이란 것을 만들어 그 기준에 맞게 생활하는 것 같았다.

 

어쨌든 확실한건 결코 호락호락한 군생활이 될 것 같지는 않았다.

 

더군다나....

특히 나를 더 경악하게 만든건, 내 불길한 예감대로 김병주 상병의 분대로 배속받았다는 것이다.

 

김상병은 어느정도 예상했듯 아래 군번들에 비해 군번이 잘 풀린 케이스로  상병 중간짬에 비교적 일찍 분대장을 찼다.

 

눈치가 빠르고 계산적이라 간부들에게 인정받았지만, 소대원이나 분대원들에게는 잦은 욕설과

심지어 가끔 이어지는 구타로 좋은 평가를 받지는 못하는 것 같았다.

 

불행 중 다행이었는지 마침 내가 전입오는 날 위병소 당직근무에 투입돼 적어도 몇 시간 동안은

그놈과 마주할 일이 없었다.

 

하지만 그 뿐.... 낮에 행정반에서 있었던 일들이 오버랩되며 복잡 미묘한 감정이 나를 흔들었다.

 

정신없이 이래저래 시간은 흘렀고 곧바로 점호정리(군대 청소시간)와 일석점호가 이어졌다.

 

이등병은 2주대기 기간이라고해서 이 기간동안 별다른 잡무를 시키지 않았기에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채 그저 멍하니 그들이 하는걸 옆에서 바라봐야만 했다.

 

사실 이게 더 엿같았다.

 

뭔가 해야 할 것 같은데 그냥 엉거주춤 서 있어야 하는 그 상황이 말이다.

 

하지만 그럴때마다 선임놈들은 내게 다가와서

 

"야, 뭐 하려고 하지마 어차피 대기지나면 니가 입에 단내나게 해야 할 일이니까" 라며

마치 서로 짠듯 비슷한 말들을 툭 던졌다.

 

어쨌든 내가 할 일이라도 그 순간만큼은 뻘쭘하기 짝이 없었다.

 

차라리 훈련소때 동기들과 조교들에게 갈굼을 먹어가며 열심히 청소했던 시간이 더 편하게 느껴질 정도로...

우리 분대는 분대장의 부재로 부분대장(차기 분대장이 될 분대원)이 분대회의를 주도했다.

 

예상했겠지만 정한주 일병이 부분대장이었고 그는 여전히 그 특유의 짜증섞인 표정과 불만 가득한 언사로

내 분대 고참들을 갈궜다.

 

보통 군대에서는 분대 회의 및 분대장 관찰일지라는 것을 쓰는데,

 

특이사항이나 그날 있었던 사건, 자잘한 것들을 기록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

 

물론 명목상 그렇지만 대부분 갈굼의 장이라고 하는 것이 맞겠다.

 

세 개 분대가 나눠져 명목상 회의를 하지만 각 분대장 갈굼의 향연이다.

 

내 분대 맞고참 이성윤이는 나보다 한 달 선임으로 까불까불한 성격이

마치 같이 훈련소에서 자대로 온 알동기 영석이 놈과 비슷한 부류 같았다.

 

말을 잘하고 까불까불해서 몇몇 좋아하는 고참들도 있었지만,

낮은 계급에 비해 너무 나댄다고 해야 할까?

 

좀 시건방진 모습도 보여서 그를 소위 잡으려는 고참도 많았다.

 

특히 정한주는 이성윤을 눈엣 가시처럼 여기는 것 같았다.

 

모든 갈굼의 포커스가 그로 향해 있었기 때문이다.

 

이성윤은 내색하지 않았지만 묵묵히 정한주의 갈굼을 받아내면서도

얼굴이 울그락 불그락 해지는 게 역력했다.

 

난 그런 그들을 그저 물끄러미 바라볼 뿐 잉여인간처럼 굳어있을 수 밖에 없었다.

 

우리 1분대는 김병주 분대장을 중심으로 정한주, 이성윤, 송요한, 김대근, 김성진, 배진규 그리고 나...

8명의 분대원이 속해 있다.

 

장갑차를 다루는 기갑부대였기 때문에 조종사인 송요한 상병과 그의 부사수 부조종수 김대근 이병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소총수 겸 장갑차 승무원이었다.

 

장갑차 정비와 관리는 주로 조종수들이 담당하지만 각자 포지션이 있었고 그 역할도 다양했다.

 

복잡하게 얼키고 설킨 하나의 조직인 셈이다.

 

난 뭐 이제 갓 들어온 막내로 조직 내 가장 말단이었고 전혀 영향력 없는 짬찌라고 해야겠다.

 

정일병의 갈굼은 계속됐고 그 와중에 또 송요한은 정일병보다 계급이 높았기 때문에 아주 편안한 자세로

이야기를 들으며 부사수 대근이를 잡기 시작했다.

 

김성진은 배진규보다 짬이 안되고 이성윤, 김대근의 한 달 위 맞고참이었다.

 

나와는 두 달이 차이나는 선임인데, 그나마 분대 안에서 제일 멀끔하게 생겼고 안경 넘어로 샤프한 눈매가 인상적인 놈이었다.

 

끝날 것 같지 않던 정일병과 송상병의 갈굼 퍼레이드가 막을 내리고 조용히 점호 시간을 알리는 행정반 방송이 스피커를 타고 내려왔다.

 

선임분대장의 인솔하에 각자 점호대형을 갖췄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왕고는 역시 미동도 않은채 누워서 그저 TV 화면만 응시하고 있었다.

 

"아무리 말년이라지만, 도대체 뭐하는 인간이지? 이제 곧 간부도 들어올텐데..."

이런 생각이 들기 무섭게 왕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주섬주섬 베고 있던 베게를 제자리에 위치시킨 채 유유히 소대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버렸다.

 

도대체 어디로 가는 것인지... 왕고는 그렇게 저녁점호가 끝난 후에야

어슬렁 거리며 소대로 들어와 다시 고정석 마냥 원래 누워있던 자리에 침구류를 깔고 누웠다.

 

생각해보니 인원보고에도 아예 빠져 있었던 것 같다.

 

그는 모포를 머리 끝까지 뒤집어 쓴 채 누웠다.

 

그래도 전역이 두 달이나 남은 사람인데 저게 가능한가 싶었지만,

 

전입 첫날 그 누구에도 이런질문을 할 수 없었다.

 

의구심만 안은채 그렇게 자대배치 첫날이 지나가고 있었다.

 

 

4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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