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ch] 오래된 화장대

금산스님 작성일 17.09.11 11: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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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내가 옛날 일하던 디자인 회사 거래처에서 알게 된 여성에게 들은 것입니다.

그녀도 나도 작은 디자인 회사에서 일하는 디자이너라, 공통 화제가 많았습니다.

 


서로 일이 빨리 끝나면 함께 저녁을 시켜먹기도 하고,

회사에서 있었던 일들이나 장래 전망을 늘어놓으며 자주 함께하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솔직히 나는 그녀를 좋아하고 있었지만,

그녀는 고백하기 어려울 정도로 미인이라 섣불리 고백했다 사이가 멀어질까 두려웠습니다.

 


이대로 가끔 둘이서 밥이라도 같이 먹는 사이라도 행복하지 않을까,

그녀에 대한 마음을 가슴 가득 품은채

한 달에 두어번 있을까 말까한 식사자리만 기다리며 보내고 있었죠.

 


그렇게 그녀와 몇번째인가 같이 저녁을 먹던 날,

우연히 그날 밤 방송되는 공포 프로그램에 대한 이야기가 화제에 올랐습니다.

 


무서운 이야기를 좋아하는 나는

[혹시 무서운 일이라던가 직접 겪어본 건 없어?] 하고 슬쩍 물어봤습니다.

 


그러자 그녀는 [딱 한번.. 무서운 일을 겪어본 적 있어요.] 라며

그녀 자신이 겪은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당시 그녀, A는 갓 상경한 미대생이었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시골에서 올라온 탓에 겁도 많고 낯도 가렸지만,

워낙 성격이 밝았던 탓에 얼마 지나지 않아 친구도 잔뜩 생기고 즐거운 학창생활을 보내게 되었다고 합니다.

 


당시 A씨는 휴일마다 친구와 함께

잡화상, 앤틱 숍을 돌아다니는 게 취미였습니다.

 


어느날 저녁, 유럽 가구를 주로 다루는 작은 가구점에서

꽤 낡은 화장대를 발견하고 한눈에 반해버렸다고 합니다.

 


그 화장대는 거울 주변에 전구가 달려 있어,

옛날 할리우드 여배우들이 분장실에서 쓰던 것 같은 분위기를 풍겼습니다.

 


무척 화려한 물건이었죠.

다다미 8장짜리 원룸에서 사는 입장인데다,

가격도 만만치 않았기에 한번은 A도 포기하고 돌아왔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그 화장대가 뇌리에서 잊혀지질 않아,

결국 중학교 때부터 모아온 저금에다가

부모님이 보내주시는 용돈 2개월치까지 탈탈 털어 그 화장대를 사버렸다고 하더군요.

 


그날 밤, 샤워를 마친 A는 빨리 그 화장대 앞에 앉아 헤어 드라이어로 머리를 말렸습니다.

원래부터 하얀 피부에 아름다운 얼굴을 가진 A입니다.

 


거울 주변에 달린 라이트의 부드러운 불빛 덕인지,

거울 속의 A는 평소보다 더욱 희고 아름답게 보였다고 합니다.

A는 마치 자신이 진짜 할리우드 여배우가 된 것 같은 기분에 잠겨 황홀했다고 합니다.

 


그날 이후로, 과제에 치여 사는 매일 매일 중에,

그 거울 앞에 앉아 하루를 마무리하는 시간이 A에게 가장 행복한 시간이 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무렵부터였습니다.

A의 성격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한 것은..

 


거울 앞에 앉아있을 때를 빼면,

A는 조금씩 성격이 나빠지기 시작했답니다.

 


대학에서 친한 동기가 [요즘 더 예뻐진 거 같은데? 남자친구라도 생겼어?] 라고 말을 거는데,

속에서는 "당연한 거 아니냐, 이 못생긴 것아! 너희들이랑 나는 달라." 하고,

친구들을 업신여기는 마음이 피어오르더랍니다.

 


A는 원래 관심을 가지고 있던 남자가 있었는데,

그 남자의 애매모호한 태도에도 분노가 솟아올랐다고 합니다.

 


어느새 그것은 A의 마음 밖으로 나와,

태도에까지 영향을 끼칠 정도가 되었습니다.

많던 주변 친구들도 슬슬 A를 피하기 시작했습니다.

 


유일하게 남아있던 좋아하던 남자 역시, A가 권해야 마지못해 어울려 주곤 했습니다.

그 모습 또한 A의 초조함을 더욱 크게 만들었고요.

 


어느날, 노천카페에서 눈도 마주치지 않고 뚱하게 있는 그를 보고, A는 입을 열었습니다.

[왜 그러는데? 나한테 말하고 싶은게 있으면 확실히 말해. 그런 태도, 짜증나거든?]

그러자 잠시 가만히 있다, 그는 A를 바라보며 이렇게 말하더랍니다.

 


[그럼, 확실히 말할게. A 너, 처음 만났을 때랑 성격이 꽤 달라진 거 알아?

 전에는 온화하고, 누구하고든 상냥하게 이야기했었다고. 거기다 얼굴도..]

거기서 그는 말을 멈췄습니다.

 


[뭐라고? 내 얼굴이 뭐가 어떻다는건데? 똑바로 말하라고!]

A는 소리를 빽 질렀다고 합니다.

그는 마지못해 입을 열었습니다.

 


[그게 말이야.. A 너, 성형한거야? 다른 애들도 다 수군대고 있어. 확실히 얼굴이 바뀌었다고.

 원래는 귀여웠었는데.. 왜 그렇게 인상이 센 얼굴이 되어버린거야?]

그가 말을 다 마치기도 전에, A는 앞에 있던 컵을 들어 그의 얼굴에 물을 끼얹고 일어섰다고 합니다.

 


[내가 성형 같은 걸 했을리 없잖아! 장난치지마!]

주변 사람들의 의아한 시선을 뒤로 하고,

화가 잔뜩 나 어지러운 머리로 A는 휘청휘청 카페 화장실에 들어섰습니다.

 


성형이라니, 내가?

왜 저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들어야 하지?

왜 다들 나를 짜증나게 만드는거야?

 


너무 화가 난 나머지,

세면대에 토악질을 하다 문득 눈 앞의 거울을 물끄러미 봤답니다.

 


그 순간, A는 자신의 얼굴에 위화감을 느꼈습니다.

어.. 내 얼굴이 이랬던가..?

 


그 순간, 집에서 그 화장대 거울 비치던 자기 얼굴이 떠오르더랍니다.

지금까지 왜 깨닫지 못했는지, 왜 아무렇지도 않게 그 거울을 바라봤던 것인지..

A 스스로도 전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거울에 비치던 A의 얼굴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일본인도 아니고, 아예 본 적 없는 백인 여자였다고 합니다.

 


눈은 A보다 크고 조금 눈꼬리가 위로 올라간 눈이었고,

눈썹도 강해보이게 생겼다고 합니다.

 


무척 아름다운 북유럽계 여성이었습니다.

머리카락은 붉고, 웨이브가 들어간 긴 머리였습니다.

그걸 자랑스럽게 브러쉬로 빗고 있는 모습이 머릿속에 떠올랐다고 합니다.

 


문득 거울을 다시 보고, A는 오싹해졌습니다.

자기 얼굴이 그 거울 속 여자와 닮아가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기 때문이었습니다.

 


잘 생각해보면, 다른 사람들 앞에서 남의 얼굴에 물을 뿌리는 행동은

원래 자신이었다면 할 리가 없었을 터입니다.

 


스스로를 아름답다고 생각한 적도 없었고,

주변을 업신여기는 기분 따위 이전에는 전혀 없었습니다.

이 분노와 초조함 또한 그녀의 것일 터입니다.

 


그녀가 나를 취해, 변해가고 있다니..

공포로 덜덜 떨면서도, A는 이미 돌아간 그에게 전화해 사과하고 모든 것을 털어놨습니다.

 


그 거울이 있는 방으로는 돌아가고 싶지 않았기에,

그에게 도움을 요청해 처분하기로 했습니다.

 


처음에는 비싼 화장대라 원래 샀던 곳에 반품할까 싶기도 했지만,

자기 같은 일을 겪는 사람이 또 나올까봐 결국 그대로 해체했다고 합니다.

 


그 후, 몇 주 지나지 않아 A의 얼굴은 원래대로 돌아왔고,

성격 또한 온화하고 상냥한 원래 A씨 성격으로 돌아왔다고 합니다.

소원해졌던 친구들과도 다시 친해졌고요.

 


한동안은 겁에 질려있었지만,

화장대를 해체했다고 저주가 내린 것도 아니었고, 이상한 일은 그걸로 끝이었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를 들려준 후,

그녀는 그 무렵 찍은 사진을 휴대폰으로 내게 보여주었습니다.

 


확실히 눈이 지금 그녀보다 컸고,

눈꼬리도 위로 올라가 있었습니다.

 


눈앞에 있는 그녀와는 다른 얼굴을 보니, 등골이 오싹하더군요.

혹시 성형 전은 아니었을까 싶기도 했지만, 나름대로 그런 판단에는 자신이 있는데다,

무엇보다 사진 속 그녀의 얼굴이 진짜 외국인 같았기에 진심으로 믿게 되었죠.

 


더불어 나는 그녀에게 고백도 제대로 못하고,

회사 간 거래가 끊기면서 지금은 그저 소원한 관계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게 제일 아쉽네요.

 


출처: VK's Epita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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