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2학년이 되고 4월쯤의 일입니다.
이제 막 졸업반이 된 저는 정신없이 과제에 쫓겨 살고 있었습니다.
봄이라고는 해도 아직 해가 짧았던지라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향할 때는 언제나 해가 지고 어두웠습니다.
버스 정류장에서 내린 저는
집으로 향하면서 어머니와 통화를 했습니다.
저희 어머니는 늦게까지 가게에서 일하시기 때문에
저는 항상 버스 정류장에서 내려 어머니께 전화를 드리곤 했습니다.
[네, 엄마. 지금 끝나서 집으로 가고 있어요.]
4년 전 아파트로 이사 오면서 생긴 습관이 하나 있습니다.
우리 집이 보일 때쯤이면 눈으로 천천히
1층부터 한 층, 한 층 올라가며 집을 올려다보는 것이었습니다.
전화를 끊고 그날도 눈으로
한 층, 한 층을 천천히 올라가고 있는데 이상한 것이 보였습니다.
[1층.. 10층.. 15층.. 16.. 어?]
16층의 제 방에 불이 켜져 있었습니다.
분명히 어머니는 가게에 계시고, 집에는 아무도 없을 텐데 말입니다.
하지만 눈으로 세다 보면 가끔 실수가 있을 수도 있는 것이기에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다시 천천히 세어봤습니다.
[1층.. 11층.. 16층..]
분명히 우리 집, 16층이었습니다.
게다가 다른 방은 어두운데 제 방만 환히 불이 켜져 있는 것입니다.
[이상하네.. 내가 아침에 불을 켜 놓고 나왔나?]
이상하게 생각하며 방을 계속 바라보고 있는데
순간 불이 한 번 깜빡하고는 그대로 꺼졌습니다.
순간 안 좋은 느낌이 들어 그 길로 경비실에 달려가
경비 아저씨께 엘리베이터 CCTV 감시를 부탁드리고 곧바로 집으로 달려갔습니다.
현관 문 앞에서 심호흡을 하고 집으로 조심스레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집 안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인터폰으로 경비실에 물어보니 제가 올라가기 전후에
엘리베이터를 탄 사람은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일단 집 안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제 방문을 조심스레 열어봤습니다.
방문을 여는 순간
평소에는 느끼지 못했던 싸늘한 공기가 밀려나왔습니다.
그 느낌이 너무나도 섬뜩해서
결국 이 날은 제 방이 아닌 거실에서 잠을 청했습니다.
그리고 기분이 나빴던 탓인지
다음날 늦게 일어나 허겁지겁 집을 나서는데 무언가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저희 어머니는 아기자기한 것과 토속 신앙을 좋아하셔서
작은 장승들을 현관 앞에 두시곤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장승들이 모조리 엎어져 있던 것입니다.
이런 일이 있고 며칠간은 제 방에서 자는 것이 꺼림칙했지만,
마음을 굳게 먹고 목검을 품에 안고 잔 이후로는 별 탈 없이 제 방에서 잠을 자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우르르 떨어져 있던 장승들은 지금 생각해도 소름이 끼칩니다..
출처: VK's Epitap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