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이야기다.
친구와 심령 스폿을 갔다 온 후부터, 괴현상 같은 것에 시달리고 있었다.
한밤중, 침대에서 잠을 자고 있노라면
방 안에서 누군가 스윽.. 스윽.. 하면서 엎드려 기어 다니는 것 같은 소리가 난다.
그게 너무나도 기분이 나쁜데 어떻게 할 도리가 없어서,
적어도 공포감이라도 좀 지우고 싶었다.
그래서 디즈니랜드에 갔을 때,
스마트폰으로 찍어온 퍼레이드 영상을 틀어놓고 자기로 했다.
몇 시간쯤 지났을까,
평소처럼 누군가 방바닥을 기어 다니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려와서 잠이 깼다.
반복 재생 설정을 해놓았기에 영상은 아직 틀어져 있었다.
이걸 보고 있으면 공포감도 조금은 잦아들겠다 싶을 무렵,
방안을 기어 다니던 소리가 갑자기 딱 멈춰 섰다.
소리가 나던 곳으로 미루어보아,
아무래도 침대 근처, 베개 근처에 멈춘 것 같았다.
그리고는 천천히, 내 얼굴 가까이까지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이럴 수가.. 너무나도 겁에 질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인기척은 가까이까지 다가와서는,
다시 움직임을 멈춘 것 같았다.
그리고 아마 몇 분 가량 그대로 지나가지 않았을까..
인기척은 계속 근처에서 느껴졌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무섭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호기심과 잠을 설친 짜증 탓이었을까
용기가 솟아난 나는 인기척의 정체를 확인하려고 마음먹었다.
슬쩍 한 눈만 떠서, 인기척이 느껴지는 베개 근처를 바라보았다.
사람 모양의 시커먼 안개 같은 게 있었다.
사람의 옆얼굴같이 보였다.
큰일이야!라고 생각했지만, 뭔가 이상하다.
그러고 보니 옆얼굴이었다.
아마 나한테 위해를 가할 생각이었다면
나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며 검은 안개의 시선을 따라가보니 내 스마트폰이 있었다.
스마트폰에서 재생되고 있는 디즈니랜드 동영상을 줄곧 바라보고 있었다.
동영상 속에서는 사람들의 환호성과 즐거운 음악이 울려 퍼진다.
검은 안개는 그 소리가 신경 쓰이는 것이었을까,
아니면 디즈니랜드를 좋아하는 걸까..
나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고 계속 동영상만 보고 있었다.
그날 이후, 한동안 디즈니랜드 퍼레이드 동영상을 틀어놓고 자는 게 습관이 되었다.
하지만 그날 이후 방을 기어 다니는 소리는 딱 사라지고 말았다.
실화기 때문에 여기서 뭐 딱히 이어지는 이야기도 없고 이게 전부다.
다만 이 사건 이후, 디즈니랜드에 가서 퍼레이드를 보노라면,
그 녀석한테도 보여주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출처: VK's Epitap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