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2학년 여름에 있었던 일입니다.
저는 집안 사정으로 학교에서 돌아오면 밤 11시까지
아버지 혼자 운영하시는 치킨집에서 일을 돕고 있었습니다.
그날 역시 밤 11시에 일을 마쳤는데,
날이 너무 더워 가게 오토바이를 타고 산으로 바람을 쐬러 올라갔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겁도 없이 그런 짓을 했던 거죠.
저희 동네에는 산 쪽에 예비군 훈련장이 있어
길이 포장되어 있었습니다.
훈련장 입구 조금 못 미친 곳에는 약수터가 있었고,
그 바로 밑에는 큰 고목이 서 있었습니다.
고목 옆에는 이름 모를 무덤이 한 구 있었죠.
저는 약수터 근처에서 오토바이에 걸터 앉아 바람을 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이유도 없이 온몸에 오한이 들며
누군가가 저를 쳐다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순간 무서워진 저는 돌아가려고 준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문득 나무에 무언가가 걸려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무엇인가 싶어 유심히 바라보니
하늘색 바탕에 흰물방울 무늬가 수놓아진 원피스가 걸려 있는 것이었습니다.
저희 동네는 산 아래 있고,
산 부근에는 민가 한 채 없었는데 말입니다.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온몸에 소름이 끼친 상태였기 때문에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산을 내려왔습니다.
하지만 산을 내려온 뒤에도 그 원피스가 마음에 걸렸던 저는
아버지께 혹시나 하고 그에 관해 여쭤보게 되었습니다.
[아버지. 내 방금 산에 갔다 신기한 거 봤다.]
[뭐?]
[그 산에 무덤 옆에 나무 하나 있다 아이가? 거기 나뭇가지에 원피스 하나 걸려 있던데 뭔지 아나?]
그러자 아버지는 조금 놀란 기색을 보이셨습니다.
[원피스? 무슨 색이던데?]
[하늘색인가 파란색에 흰 물방울무늬던데..]
[흠.. 근데 거기 가로등도 없어서 깜깜할낀데 니 우예 그걸 봤노?]
그러고 보니 그랬습니다.
그곳은 산이라 가로등이 전혀 없어,
올라갈 때도 오토바이 라이트를 켜지 않으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산에 올라와서는
오토바이의 시동을 꺼 놓고 있었고, 라이트도 꺼져 있었습니다.
결코 그것이 원피스였다는 것,
그리고 색이나 무늬는 못 보는 것이 정상인데 너무나도 정확히 봤던 거죠.
그 사실에 놀라 제가 멍하니 넋을 놓고 있는데,
아버지께서 놀라운 사실을 말해주셨습니다.
[거 참 신기하네.. 사실 오늘 낮에 그 나무에다 목매 죽은 여자가 있었거든.
그 여자가 입고 있었던 게 그 색에 그 무늬인 원피스였는데..
니 학교 있었을 땐데 니 혹시 학교 땡땡이 까고 산에 숨어 있던 거 아이가?]
아버지의 말을 듣고 말로는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오한과 소름을 느꼈습니다.
저는 그 시간에 학교에 있었던 것입니다.
도대체 제가 봤던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그때 느꼈던 시선은 그 여자의 영혼이 저를 보고 있었던 게 아닐까요..
출처: VK's Epitap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