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말하며 홀연히 사라지는 귀신. 이대로는 답이 나오지 않을 것 같아 외할머니를 찾아가기로 했다. 외할머니는 과거 신이 내려 무당일을 오래하셨는데 이젠 연로해지고 신기도 빠져나간 후라 평범한 시골에서 소일거리로 살아가고 계시다. 혹시 이런 고민을 말한다면 해결책을 제시해주진 않을까 하는 일말의 기대감을 안고서 차를 몰았다.
시골길은 그리 순탄치 않았다. 아무래도 비포장 도로를 연신 달려야 하는 환경이다 보니 급히 몸이 피로해졌다. 그렇게 무료하던 길을 1~2시간 운행하니 익숙한 공간이 보였다. 00마을. 30가구가 살까말까한 작은 시골마을이었다.
다시 악셀을 밟아 예전 기억을 의존하며 외할머니 댁에 다다르니 정자 마루에 앉아 허공을 응시하고 있는 외할머니를 볼 수 있었다. 사실 외할머니와 유대는 그리 깊지 않다. 아주 어릴적 엄마를 따라 외할머니를 만난적이 있었는데 나를 자세히 훑어보던 그 눈빛이 너무나 무서워서 그뒤로 가지 않았던 기억이 있다.
분명 사람의 눈이지만 사람의 것이 아닌 느낌. 그 눈이 내 몸과 마음을 모조리 헤집어 놓는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했다. 그것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달라지긴 했는지 오랜만에 본 외할머니의 모습은 정말 외소한 체구를 가진 노인으로 변해 있었다.
“..할머니.”
적당한 공간에 주차를 하고서 떨리는 마음으로 할머니를 부르자 허공을 응시하던 할머니의 고개가 내쪽으로 잠시 향하더니 입을 다물었다. 곧 허공을 응시하기 시작하는 외할머니를 난 어떤 식으로 대해야할지 막막해졌다.
사실 이렇다할 관계도 아닐뿐더러 남만큼이나 멀어진 관계인지라 솔직히 내 얼굴을 제대로 기억하고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뭐 달고 왔구만.”
그게 할머니의 첫마디였다. 그걸로 내 마음이 모두 열려지는 듯 했다.
“할머니..”
별다른 말을 할 수 없었다. 그저 먹먹한 마음을 달래며 그 단어를 간신히 내뱉을 뿐이었다. 할머니는 별다른 말 없이 내게 손짓했다. 가까이 다가가니 할머니는 내 몸 이곳저곳을 만져보시고는.
“으음.. 옮겨 붙었구먼.. 어떤 사람한테 옮겨 붙은게 확실혀..”
“네? 어떤 사람이라면..”
“그건 나도 몰러. 근디.. 너랑 가까이 지내는 사람 중 하나여.”
“그럼 어떡해요? 저 귀신이 저한테 그랬어요..”
내 말에 할머니의 눈썹이 심하게 꿈틀거렸다. 그리곤 허망한 눈으로 중얼거렸다.
“말하면 안될것인디.. 혹.. 너 눈도 마주쳤어?”
“..예.”
“큰일이구만.. 큰일이여. 눈을 마주 친다는 것은 영적으로 통한다는 말이 된단 말여. 그럼 꼼짝없이 귀신이 하라는대로 해야 혀. 안그람 어떤 해코지를 할질 몰러.”
생각보다 심각한 일이었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지금으로선 할머니에게 의지하는 게 최선이다.
“보아하니.. 원혼이구먼 그래. 아마 그 인간과 밀접한 관계에 있을거여. 필시 억울하게 죽었어. 그 원을 달래주지 않는 한 힘들거여.”
“그럼 전 어쩌죠? 그 귀신이 김대리를..”
아. 그제야 생각났다. 왜 귀신이 그토록 김대리와 밀접하게 붙어 있었는지를. 왜 김대리를 죽이라고 내게 시킨건지.
“아마.. 김대리가 그 귀신을 죽인게 아닐까요?”
“그럴 수 있지. 어찌 하다가 보게 된건가?”
할머니의 물음에 난 그동안의 일들을 모조리 털어 놓았다. 그러자 할머니는 곧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나도 예전같지 않아서 잘 몰러. 하지만 이건 확실해. 그 양반이 뺑소니를 한게 분명혀.”
“그럼.. 사람을 죽였다는거에요?”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어. 그건 땅을 파봐야 알어.”
“하지만 전 그 장소를 모르는데.”
내 말에 할머니는 천천히 몸을 일으키고는 말했다.
“같이 가. 내 알려줄게.”
그렇게 말하며 천천히 이동하는 할머니의 뒷모습을 보며 갈등해야만 했다. 정말 할머니의 말이 맞을까. 원혼을 달래주면 모든게 끝나는걸까.
“안와?”
나를 보며 묻는 할머니. 시간이 지나도 나를 걱정해주는 그 마음은 여전한 것 같았다. 난 길게 망설이지 않기로 했다.
“예. 가요.”
**
할머니를 태우고서 차를 몰았다. 장소는 딱히 정해져 있지 않았다. 그저 할머니의 말대로 ‘절루 가.’, ‘열루 가.’ 라고 말할 때 마다 핸들을 돌리는게 전부였다. 그렇게 얼마나 갔을까. 자주 오가는 출퇴근길 근처에 다다르자 할머니는 ‘세워.’ 라고 말했다.
천천히 차를 몰아 갓길에 세우니 할머니는 문을 여시고는 느릿하게 걸음을 떼셨다. 조금 불편해해서 곁에서 걸으며 부축해드리니 할머니가 말했다.
“넌 잘 못없어. 그냥 재수가 안좋은거여.”
“예..”
“그동안 무탈했지?”
그렇게 말하며 웃는 할머니를 보며 나도 모르게 죄악감이 들었다. 말은 안했지만 할머니 역시 정상적인 삶을 벗어나 힘든 삶을 살아왔었을텐데.. 손주라는 놈이 그간 코빼기 하나 비치지 않고 지내다 무슨 일이 생기니 돌연 나타나 도와달라는 꼴이.. 생각하면 할수록 부끄러워졌다.
“죄송해요. 할머니 사실 어릴적에 할머니가 너무 무서워서..”
“안다. 알어. 그 말은 안해도 돼.”
그렇게 말하며 걸음을 뗀다. 평탄했던 도로를 지나 제법 경사가 있는 굽이진 길을 지난다. 그리고 얕은 산등성이에 다다르지 할머니가 잠시 숨을 고르고는 그리 멀지 않은 곳을 가리켰다.
“저기. 파.”
울창한 소나무가 자리 잡고 있는 가운데 유독 진해 보이는 땅이 있었다. 비옥진 토지라고 하면 맞을까. 할머니의 말대로 서둘러 그 땅으로 다가가 손을 넣는 순간.
“뭐하는거야?”
바로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온 몸에 소름이 돋아났다. 그건 분명히 할머니의 목소리였지만 지금까지 들었던 음성과는 엄연히 다른 것이었다. 천천히 고개를 돌리며 일어나니 거기에는 흰자만이 가득한 백안을 드러내고 있는 할머니가 자리에 서있었다.
“너도 죽여줘?”
씨익. 웃으며 내게 다가오는 귀신. 그 모습에 난 어떤 행동도 취할 수 없었다. 성큼성큼 발을 디디며 내게 다가온 귀신은 곧 내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커. 컥!”
“넌 내가 시키는대로 하면 돼. 그럼 된다구우! 키키킥. 킥.”
뱀처럼 기다란 혀를 낼름 거리며 웃는 귀신의 얼굴이 순간 돌기 시작했다. 빙글. 빙글 돌때마다 뭔가 부숴지는 소리가 내 귀를 자극해댔다.
“살려.. 살려줘.”
분명 가느다란 팔로 내 목을 조르고 있지만 거기서 나오는 힘은 실로 무시무시했다. 허나 귀신은 애초에 나를 봐줄 생각이 없었는지 더 크게 웃었다. 곧 다리가 뜨는 기분이 들었다. 허우적거리며 벗어나려 했지만 그게 쉽게 되지 않았다. 아니, 불가했다.
숨이 막혀오고 목에는 커다란 고통이 전신을 지배했다. 더 이상 숨을 쉴 수가 없어 눈이 감기려는 찰나.
퍼억. 무언가가 내 몸을 강하게 걷어차는게 느껴졌다. 그 강한 발길질에 내 몸은 그대로 옆으로 구를 수 밖에 없었고, 거짓말처럼 숨통이 트이며 시야가 확보되니 놀랍게도 거기엔 김대리가 격한 숨을 내쉬며 나를 보고 있었다.
“야. 오대리.. 너.”
“김대리님?”
“중요한 얘기가 이거였냐? 너 이건 어떻게 안거야? 어? 어떻게 안거냐고!”
잔뜩 흥분한 김대리가 그렇게 외쳤다. 그 모습을 보며 천천히 일어서서 김대리에게 물었다.
“대리님 정말 저기에 뭐가 있기라도 합니까?”
내 말에 김대리는 ‘뭐?’ 라고 되묻고는 어이가 없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너 이 개새끼. 이제 날 아주 갖고 노냐? 알어? 난 죽어도 자수 안해. 안한다고!”
그렇게 말하며 땅을 마저 파기 시작하는 김대리. 어? 내가 언제 저 땅을 파고 있었지? 라고 생각하는 와중에 외할머니가 느릿하게 걸어와 내 손을 잡아줬다.
“저런 놈은 천벌 받게 되있어. 냅둬.”
곧 땅에서 커다란 포대 자루를 꺼낸 김대리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나와 할머니를 번갈아 봤다.
“네가 무슨 말을 해도 증거가 없으니까 난 잡히지 않을거야. 그러니까 너도 뻘짓하지말고 집에나 가라.”
그렇게 말하며 빠르게 이동하는 김대리를 보며 난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
다음 날. 외할머니를 무사히 데려다 드리고 회사에 출근하니 분위기가 영 좋지 않았다. 복잡한 마음에 커피를 마시며 로비에서 쉬고 있으니 부장님이 내게 다가와 말했다.
“오 사원. 혹시 김대리한테 뭐 연락 받은거 없었어?”
“아, 아뇨.”
“이상한데.. 아니 차는 분명히 회사 주차장에 있는데 아무리 찾아도 김대리가 안보인단 말야.”
“김대리님 출근했어요?”
내 말에 부장님은 고개를 끄덕였다.
“응. 왠일로 일찍 와있더라. 근데 아무리 찾아봐도 안보이는거야. 이따 미팅해야하는데. 아무튼 보면 얘기해 줘.”
“예.”
부장님에게 인사를 하고 사무실로 걸음을 옮기려는데 순간 커다란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에 나와 부장님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에 움직였다. 화장실 쪽. 다시 한 번 소리가 들렸다. 여자화장실인가? 굳게 닫힌 문을 보며 노크를 해야하나하고 망설이는 중에 부장님이 먼저 들어가버렸다.
“어.. 어.”
화장실에 들어서니 세면대에서 놀란 얼굴을 하고서 공포에 젖은 여직원이 우릴 보고 말했다.
“부장님! 여기.. 여기 핏물이.”
“..뭐?”
그 말대로였다. 줄줄줄 흘러나오고 있는 수도꼭지에는 붉은 색의 물이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있었는데 단순한 붉은 색의 물이라고 하기엔 그 농도가 진득해보였다. 부장님은 한숨을 쉬며 다른 곳에 전화를 했다.
“어. 박부장님 여기 물탱크가 어딨죠? 아 거기요? 알겠습니다.”
위치를 접수한 부장님은 서둘러 이동했다. 왠지 이대로 있으면 안될 것 같아서 부장님의 뒤를 바짝 쫓았다. 물탱크는 공장 지하 쪽에 있었다. 입사이례 공장 지하로 가는 것은 처음이었지만 묘한 공포감이 몰려왔다.
정화조 기계를 지나 회사의 수도를 담당하고 있는 커다란 물탱크가 보였다. 부장님은 그대로 물탱크 사다리를 향해 올라가셨고 곧 물탱크의 뚜껑을 연 부장님은 비명을 질렀다.
“오 사원! 어서 구급차 불러. 어서!”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내게 말하는 부장님. 그리곤 난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저 물탱크 안에 뭐가 있는지를. 그리고 난 볼 수 있었다. 물탱크 위에서 나를 보며 킬킬대고 있는 작은 귀신의 모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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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작 [녹색도시] 잘 부탁드립니다.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48414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