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 년 전 서울 방배동에 살던 시절
집 옥상에서 UFO를 본 적이 있습니다.
당시 중학생이었던 저에게는
평생 잊히지 않을 정도로 충격적인 체험이었죠.
그날은 흐렸고, 시간은 오후 정도였습니다.
저는 평소처럼 옥상에서 혼자 운동을 하고 있었죠.
그런데 문득 북쪽 하늘에 무언가가 있는 것이 느껴져서
시선을 돌리게 되었습니다.
자세히 보니 그곳에는 짙은 회색 내지는
검은색의 둥근 공 같은 물체들이 떠 있었습니다.
대략 옥상에서 직선으로 400m 정도 떨어져 있는 것 같았고,
200m 정도 상공에 떠 있는 듯했습니다.
옥상에서 보기에는 3~4m 정도의 지름으로 그리 커 보이지 않았는데,
그 물체가 아주 서서히 서쪽으로 날아가고 있더군요.
소음은 전혀 들리지 않았고,
추진체 같은 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저 구형의 물체가 유령처럼 서서히 날아가는데,
그런 모습은 태어나서 처음 보는 희한한 것이었습니다.
표면은 금속 특유의 광택이 보이지 않아 마치 도자기 같더군요.
그것이 기구나 풍선 같은 것이라면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이라도 보여야 할 텐데 그런 것도 전혀 없었습니다.
저는 난생 처음 UFO를 봤다는 흥분과,
혼자 UFO를 보고 있다는 은근한 두려움에 집으로 빠르게 내려왔습니다.
마침 집에는 부모님은 안 계시고 여동생만 있었죠.
저는 여동생에게 UFO가 나타났다고 말하고
같이 보자며 손을 붙잡고 옥상으로 올라갔습니다.
다행히 UFO는 서쪽으로 꽤 이동하기는 했지만
확실히 그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렇게 한동안 여동생과 넋을 놓고 UFO를 보고 있자,
잠시 뒤 그 물체는 가속해서 시야에서 사라졌습니다.
그리도 천천히 움직이던 것이 한순간 빨라지더니
서쪽 하늘로 빨려 들어가듯 없어지더군요.
그런데 정작 이상한 점은 UFO가 아니라 그 이후 일어났습니다.
너무나 강렬한 체험이었던지라 20년이 지난 지금도
당시 옥상의 풍경과 운동 기구들, 심지어 구석의 쓰레기마저 생각이 납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UFO를 본 직후 여동생과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어떻게 가족에게 그 이야기를 했는지가 전혀 생각나지 않는 겁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UFO를 본 직후가 아니라
한참 후에야 가족에게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어렴풋하게 남아 있습니다.
이상하게도 그때는 같이 봤던 여동생이 대체 무슨 소리냐며
자신은 그런 걸 본 적이 없다고 해서 저만 바보가 되었었죠.
가족들 앞에서 바보가 된 탓에 이후 다른 사람들에게는 이야기하지 않았고,
한동안은 제가 낮잠 자다 꾼 꿈이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제 나이가 마흔을 바라보고 여동생도 서른이 넘어
서로 가정을 꾸리고 있는 요즘 이상한 점을 하나 더 발견했습니다.
올해 봄에 가족과 친척들이 모여 식사를 했었는데,
마침 뉴스에서 UFO 이야기가 나오는 것을 본 여동생이
갑자기 20년 전 그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저 역시 신이 나서 제가 봤던 것들을 이야기했고,
여동생과 제 이야기가 완전히 일치하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가족들은 모두 신기하다는 듯 경청했죠.
그런데 여동생이 갑자기 이상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그때 언니랑 엄마한테 내가 이 이야기를 했었는데,
오빠가 갑자기 그런 거 본 적 없다고 했잖아.]
저는 어이가 없어서 여동생에게 반문했습니다.
[무슨 소리야? 내가 가족들한테 이야기할 때 네가 못 봤다고 해서 내가 바보 됐었잖아.]
[응? 난 분명히 봤었는데?]
[아니, 내가 먼저 옥상에서 본 다음 널 데려와서 같이 봤던 거잖아.]
[맞아, 그래서 나도 봤는데 정작 오빠가 같이 봐 놓고서는 모른다고 했잖아.]
저와 여동생은 서로 바라보며
어안이 벙벙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가족들은 저와 여동생에게 모두 들었을 텐데도
모두 처음 듣는 이야기라 하더군요.
이 사건은 제가 살면서 목격한 유일한 UFO 이야기고,
제 인생에 가장 미스터리하게 남아 있는 이야기입니다.
언젠가 기회가 닿는다면
저와 제 여동생의 정확한 기억을 복원해 보고 싶을 정도입니다.
저와 여동생의 기억이 무언가 잘못된 것인지,
아니면 외계인이 우리의 기억을 조작한 것인지 말입니다.
출처: VK's Epitap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