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살이 3년차. 그동안 모으고 모아 월세방으로 이동하는데 성공한 난 나름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여기며 자축했다. 지방 출신인 내가 서울에서 취업을 하고 자리를 잡는다는게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겠지만 변변한 배경이 없고 그렇다고 좋은 성적을 유지한 것도 아니어서 서울 직장 살이의 시작은 내게 또 다른 기회와 같았다.
월세방은 15평의 원룸이었는데 지난 날동안 고시원 생활에 비교하면 그야말로 파라다이스가 따로 없다. 5평 남짓한 좁디 좁은 공간에서 들려오는 옆방 소음. 깨끗하지 않은 환경에서 3년이란 시간을 버틴다는 것은 쉬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중도 포기라는 단어가 수없이 머릿속에 멤돌았다. 하지만 버텼다. 내 기회는 여기에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여기에서 자리 잡고 주욱 이어나가고 싶었기 때문에.
“좋다.”
따로 집들이에 부를 사람이 없었다. 그동안 일에 치여 살다보니 인간관계에 소흘해진게 그것이다. 어쩔 수 없다.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서는 어떤 것이라도 희생해야 하는 법이니까. 난 그렇게 위안을 삼아야했다.
조촐한 짐을 모조리 넣고 나름대로 옵션이 있는 집안을 살펴보니 이게 정말 내 집이 맞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감개가 무량하다는 말이 맞을까.
짐을 정리하고 동네에 뭐가 있는지 보러 가볼겸 집을 나오니 양 옆으로 굳게 닫혀진 문이 보인다. 이웃들이다. 아직 인사를 하진 못했지만 요즘 같은 시대에 그런 거추장한 인사치레는 모두 생략하며 살아가는 것 같으니 나도 거기에 따르기로 했다.
사실 모르는 사람과 터놓고 얘기한다는게 참 어렵다. 그게 옛날에는 가능했는지도 모르지만 세상이 변한 오늘에는 그게 어려운 일이 되어버렸다. 세상이 각박해지고 있다. 흉흉해지고 있다고들 하지만..
동네는 나쁘지 않았다. 원룸촌이 있는 동네지만 근처 편의점도 있고 버스를 타고 조금만 나가면 번화가에 나갈 수 있어서 여러 가지로 즐길거리가 있었다.
적당히 동네를 돌고 집에 들어와 내일을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들기로 했다. 침대에 몸을 뉘우고 눈을 감으려는 찰나.
..쿵. 쿠웅. 쿵.
익숙한 소음 소리. 고시원에서 가끔 들었던 소리였다. 당시 일이 잘 풀리지 않거나 또 시험에 떨어진 재수생들이 내는 원통의 자해 소리가 생각났다. 그게 밤중에 들려와 여러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게 되지만 그 내막을 잘 알고 있는 이들은 특별히 제재를 하진 않았었다.
하지만 여긴 달랐다. 혹시 다른 고시원이 옆 방에 사는건가? 이런저런 생각에 치우칠 때쯤 눈이 감겼다. 아마도 이런 소음에는 익숙해져 있는게 아닐까.
회사를 마치고 집안에 한가롭게 누워 티비를 본다. 맥주 한캔이 가져다주는 위안이 이렇게 클수가 있나? 어릴 적엔 몰랐지만 나이가 들면서 느끼게 된 것이 있다면 왜 맛 없는 술을 돈을 줘가면서 사먹느냐가 그것이다. 솔직히 지금도 잘 이해가 되진 않지만.. 이렇게 방안에 홀로 앉아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맥주의 특유의 맛을 느끼니 왠지 이해가 될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시간을 죽이고 다시 잠자리에 들려는 순간. 어제의 소음이 다시 들려왔다. 하루도 아니고 이틀이나 소음이 이어지는 것은 조금 참기 힘들었다. 하지만 고시원에 비하면.. 이라고 위안 삼으며 잠자리에 드는데 성공했다.
다음 날에도 그 다음 날에도 소음은 쉽사리 없어지지 않았다. 이쯤되니 거의 노이로제에 걸리게 되는게 아닐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일단은 내 권리를 찾는게 우선이었기에 오후에 건물주에게 연락을 했다.
[안녕하세요. 301호에 이사온 청년인데요.]
[아, 그 얼마전에 이사온 청년이구만..? 왜? 무슨 일이라도 있어요?]
[그건 아니고.. 실은.]
난 그동안의 일을 모조리 말하며 불만을 토했다. 사실 큰 불만이랄거 까지야 없지만 하루 중에 유일하게 허락된 잠의 시간을 방해받는 다는 것은 여간 스트레스가 아니었다.
[소리가 난다고? 이상한데?]
[무슨 말씀이세요?]
[아니.. 자네 옆집에는 아무도 안살거든.]
[아무도 안사는데 왜..]
[그러니까 이상하다는 거지. 일단 있어봐요.]
옆집에 아무도 살지 않는데 바로 옆에서 들려오는 그 소음의 정체는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혹 한밤중에 누군가 거기에 들어와 엄한 짓을 하고 있는건 아닐까. 이런저런 생각을 정리할 때 주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인한 총각 안에 있는가?”
“예.”
문을 열어주니 박카스 한 박스를 들고 있는 주인의 모습이 보였다. 주인은 50대의 남자로 서글서글한 인상을 가진 좋은 인상을 가진 아버지 상이었다. 왜 아버지 상인가 생각이 들었냐면 어릴적 꿈꿔왔던 아버지의 모습과 가장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이거. 이사 선물도 못줬네 내가.”
“아이고.. 감사합니다.”
박스를 받아드니 적당한 무게감이 기분이 좋았다. 우선 주인을 방에 안내하고 적당한 마실 것을 내놓자 자연스레 얘기가 이어졌다.
“밤중에 소음이라.. 흐음.”
“최근 들어 계속 들리고 있어요. 일주일도 더 됐을거에요.”
“그 참 이상하단 말야. 분명히 자네 옆집엔 아무도 안살고.. 위층엔 노인네들이 살아서 조용할테고. 아래에는 잠만 자고 출퇴근하는 아가씨말곤 없어서 조용할건데.”
주인을 통해 이웃들의 정보를 알수 있었다. 하지만 중요한건 그게 아니다. 매일 밤마다 나를 괴롭히는 빌어먹을 소음에 관해서다.
“그럼 이따 밤에 한번 와보세요. 어디서 나는지 같이 추적해보죠.”
“..음. 알겠네. 그럼 내 이따 옴세.”
짧은 만남을 뒤로 하고 밤이 되기만을 기다렸다. 그리고 예의 소음이 들리는 시각전 주인이 내 방으로 들어왔고 우린 조용히 소음이 들리기만을 기다렸다.
그렇게 얼마나 갔을까. 쿠웅. 쿵. 쿵. 소음이 다시 들려왔다.
“보세요. 지금 들리시죠?”
바로 옆쪽. 아마 왼쪽 집에서 들려오는 소음이 분명했다.
“응? 무슨 소음이 들린다고 그러나.”
허나 주인의 반응은 정반대였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면서 방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벽에 귀를 대는 그의 모습이 답답했다. 혹 나이가 들어서 귀가 어두워진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아니.. 지금 들리잖아요. 쿵쿵하고요. 지금도요.”
내 말에 주인은 정말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내 생각엔 자네가 이상한게 아닐까 싶어. 너무 피곤한거 아니야?”
“아니에요. 사장님. 정말 들린다니까요.”
주인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말했다.
“그럼 이렇게 해. 내일 내가 아래 사는 아가씨 데리고 올게. 그 아가씨 귀에도 안들리면 자네가 이상한거야. 알았지?”
“..예.”
일단은 여기서 물러나야만 했다. 지금도 들려오는 저 소음소리가 귀에 거슬렸지만 젊은 사람이라면 문제의 소음을 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다음 날. 같은 시각 전 아가씨를 데리고 온 주인이 내게 소개했다.
“아래층에 사는 아가씨야.”
이상한 상황에서 서로에 대해 간단히 소개한 우리는 조용히 소음이 들려오기만을 기다리기로 했다. 그렇게 10분정도가 지나자 다시 소음이 들려왔지만 아가씨와 주인은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는 얼굴로 내게 무언의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이쯤 되니 이상해지는 것은 나였다. 정말 내가 정신이 이상해진걸까. 정신과에 가봐야하는 것은 아닐까.
“아무래도 자네가 많이 피곤한 모양이야. 이만 가세.”
주인은 아가씨를 데리고 집에 나가버렸다. 스르르 닫히는 문을 허망하게 바라보고 있는 순간.
쿠웅! 쾅! 콰앙!
소음이 순간 격해지는 걸 난 알 수 있었다. 그 어마어마한 소음에 화들짝 놀라 재빨리 주인을 따라갔다.
“저기. 저 옆집 좀 열어주세요.”
내 말에 주인은 무거운 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뭐 눈으로 보는게 좋겠지.”
옆집 문을 열어주는 주인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할 생각도 못하고 문이 열리는 순간 집안으로 발을 들이니 거짓말처럼 조용한 내부에 난 다시 허망함을 느껴야만 했다. 대체 그 소리의 원인이 뭘까. 왜 자꾸 이쯤에서 들리는걸까.
“다 됐나?”
주인의 체념 섞인 말투에 난 힘 없이 수긍해야만 했다.
다음 날. 정신과에 찾아갔다. 밤 중에 계속 들려오는 이명 같은 소리에 미칠 것 같다고 말이다. 허나 의사는 단순히 스트레스성 이명일수도 있다며 푹 쉬면 괜찮아질 거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건 불가했다. 푹 쉬려면 잠을 잘 자야하는데 그게 불가능하니까 말이다.
그래도 안되겠다고 약을 달라고 하니 의사는 많이 고심하는 듯 시간을 끌었다. 곧 내게 하나의 처방전을 주었는데 잠을 유도하는 약이라고 했다. 수면제는 아니지만 잘 오게끔 하는 효과가 약한 약이라고만 했다.
약을 처방받고 잠들기 전 복용했다. 이쯤이면 아마 잠에 잘 들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기대감을 안고서.
천천히 몸을 뉘우고 마음을 편히 먹고 머리를 깨끗하게 비우려 노력한다. 그리고 잠에 들려는 찰나 소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하아..”
이건 도저히 없어지지 않는 소리다. 직감적으로 난 알 수 있었다. 아무래도 난 방을 빼야 할 것 같았다.
가까스로 방을 빼고 다른 곳으로 이사한 난 정신적으로 많이 지쳐있었다. 나를 보며 살갑에 웃어주는 또 다른 주인을 보며 소음에 대해 가장 많이 의논했다.
“아유. 우리 건물에서 그렇게 시끄러운 사람 없어. 안심해요.”
난 그 말에 속듯이 믿어야만 했다. 그리고 문제의 그날 밤의 시각이 왔다.
“....”
천만다행이도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그리고 이 집과 주인에게 감사하며 편히 잠들 수가 있었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났을까. 꿈꾸고 있던 생활을 하고 있을 무렵. 우연찮게 뉴스를 보게 되는 날이 있었다.
[서울 00구. 00동에 있는 원룸 빌라입니다. 이 빌라가 화재가 된 이유가 있는데요. 바로 엽기적인 살해방식 때문입니다. 바로 벽속에 사체를 숨긴 것인데요. 놀랍게도 사체를 숨긴 사람이 바로 빌라의 건물주라고 합니다.]
앵커의 말에 온 몸이 빳빳이 굳어지는 것 같았다. 모자이크를 처리해 건물에 대해 자세히 볼 수 없게끔 해놨지만 내 육체는 문제의 그곳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게 해주었다.
[세입자와의 갈등이 쌓일대로 쌓여 화를 이기지 못해 살해를 했다고 전해집니다. 건물주는 지난 밤 벽속에서 사체를 꺼낸 후 옮기는 과정에서 순찰중이던 지구대에 잡혔다고 합니다.]
이럴수가. 이럴수가 있다니. 그렇게 사람 좋아 보이던 주인이 사람을 죽이고 방치했었다니..
다시 화면이 바뀌고 모자이크 처리를 한 하나의 인영이 나왔다. 경찰차로 호송되는 과정에서 기자들은 왜 사체를 옮기려고 했냐며 끈덕지게 물었다.
[세입자들이 자꾸 소음이 난다고 해서.. 불안해서 그랬습니다. 죄송합니다..]
힘 없이 고개를 떨구며 말하는 주인을 보니 마음 한 곳에서 끓어오르는 뭔가가 느껴졌다. 그 날 내게 들렸었던 문제의 소음은 어쩌면 억울하게 죽은 원혼이 내게 메시지를 주려는게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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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작 [녹색도시] 잘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