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밤, 나를 부르던 목소리 下
얼마나 쓰러져 있었을까?
밤 새 그 빌어먹을 무엇인가에 시달렸던 난 깨질 듯한 두통과 함께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올렸다.
눈을 뜨니 보이는 것은 낯선 천장과 촛대에서 타고 있는 촛불.
밤새 눈물과 땀에 절은 내 옷 대신 약간 작지만 잘 마른 옷이 갈아 입혀져 있다.
‘이 집에 자식이 있었나?’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내가 이 곳에 있던 동안은 한번도 마주친 적이 없다.
이 곳은 아마 노부부의 집일 것이다.
따뜻한 아랫목에 이불까지 야무지게 덮어놨으니 말이다.
부모와 떨어져 폐병을 앓고 있는 빼빼 마르고 시커먼 이 놈이 눈 앞에서 쓰러졌으니……
많이 놀랐을 노부부에게 미안한 감정이 들었지만 미안함과 고마운 감정도 잠시,
내 머릿속은 그 빌어먹을 것으로 가득 채워졌다.
알아낼 것이 많다. 알고 싶은 것이 많다. 이 상황을 이해하고 싶다.
이 빌어먹을 개자식을 찢어 죽이고 싶다.
.
….
………
…………..
…………………..
두렵다. 무섭다. 눈물이 날 정도로. 다신 그 것을 만나고 싶지 않다.
내가 이해하지 못 할 어제와 새벽의 상황을 떠올리니 공포감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내가 그 때 문을 열어줬다면?’
‘어머니 목소리를 한 그 것이 내가 문을 열어 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면?’
죽음.
죽었을 것이다.
대문과 방문을 긁던 기다란 무엇인가로 갈가리 찢겨 죽었을 것이다.
나는 내가 매일을 죽음과 맞닿아 있었다고 생각했지만 이 공포감에 비하면 그 것은 그냥 투정 정도 밖에 안 됐을 것이다.
살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것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한다.
문득, 내가 쓰러졌을 때 그 찰나의 순간에 보였던 주인 할아버지의 눈빛이 떠올랐다.
뭔가를 알고 있는 듯한 눈빛. 뭔 지 모를 슬픔과 허망함이 느껴지던 눈빛.
밖은 이미 완전한 밤이었지만 조금은 이른 시간이기에 주인 할아버지가 잠자리에 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무거운 몸을 일으키며 방의 문고리를 잡는 순간 내 눈에 들어오는 하나의 인영.
내 자취방의 문과는 달리 이 방의 문은 창호지를 바른 옛날식 미닫이 문이었기에 때문에 방 문 너머의 무엇인가를 방을 나가기 전에 확인하는 것이 가능했다.
마음 속의 공포가 스멀스멀 다시 내 정신을 채우기 시작한다.
다시 피어 오르는 공포감을 이기지 못 하고 다리에 힘이 풀려 큰 소리를 내며 주저 앉아 버리고 말았다.
큰일이다. 제발 저 문 앞에 존재가 무엇이건 간에 이 소리를 듣지 않았으면……
방 밖의 존재는 내 엉덩방아 소리를 들었는지 방 문 뒤의 그림자는 천천히 일어나 내 쪽으로 몸을 돌렸다.
일어서니 알겠다. 저 방 문 앞에 그림자의 주인은 한 손에 커다란 식칼을 들고 있다.
‘문을 열어주지 않으면 될까?’ 라는 생각과 ‘주인 노부부는 어디에 있길래 집 안에 저런 것이 있는데도 모르고 있는 거야?’ 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갈 때 덜컥! 소리를 내며 방 문이 열렸다.
이건 원하지 않는 시나리오 였다.
나무로 된 미닫이 문이 열리는 소리가 이렇게 기분이 나쁘고 불쾌했던가?
‘나는 도망갈 수 없다.’ 는 생각이 들 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일어났니?”
그림자의 정체는 아침에도, 어제도, 일주일 전에도 봤던 매일 나를 위해 정성스럽게 밥을 차려주고 간식도 챙겨주던 주인집 할머니였다.
그런데 저 커다란 식칼은 왜 들고 있는 것이며, 문 앞에서 촛불을 환하게 켜고 앉아 있었는지는 내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를 할 수가 없다. 나를 괴롭혔던 것의 정체가 주인 할머니였을까? 아니면 그 알 수 없는 빌어먹을 것과 주인 할머니의 저 행동이 관계가 있는 것일까?
할머니는 주저 앉아 있는 나에게 다가와 그 동안에 나에게 있었던 일들을 캐물었고
하얀색 움직이는 눈덩이를 봤던 것, 나를 따라오던 것의 숨결이 느껴졌던 것, 대문과 내 방문을 긁던 소리,
어머니인 척 흉내 내며 나를 부르던 목소리, 모든 것을 숨길 없이 할머니에게 털어놨다.
할머니는 한숨을 깊게 내쉬고 ‘역시, 그랬어.’ 라는 말을 들릴 듯 말 듯 내뱉었다.
할머니는 내가 걱정이 되는 듯한 눈빛과 표정으로,
“그래도 천만다행으로 그 놈이 널 부를 때 대답은 하지 않았구나. 다행이야. 다행이야.” 말하며 조금은 안심을 한 듯 했다. 나 역시 할머니의 그 모습에 조금은 동화 되었지만 할머니는 곧 이어 나에게 힘 있게 이야기 하기 시작했다.
“잘 듣거라. 네가 어제 본 것은 범 이라는 놈으로 그 놈이 널 불렀을 때 대답을 했다면 넌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것 이야. 그 놈에게 잡아 먹힌 사람은 그 놈에게 붙들려 저 세상으로 가지도 못 한다고 한단다. ”
범? 호랑이 말인가?
아니, 내가 아는 호랑이는 아무리 영물이라 지만 사람의 목소리를 흉내 낸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 했다.
죽어서는 붙들려 있게 된다고? 죽어 먹이가 된 것도 억울한데?
할머니는 이 범 이라는 놈은 먹잇감으로 찍은 사람의 가까운 이의 목소리로 꾀어내 잡아 먹으며, 내가 본 하얀 눈덩이는 그 놈이 웅크리고 있던 것 이었을 거라고 말해줬다. 하룻밤 세 번의 목소리에 대답을 하면 문 앞에 기다리고 있다 잡아 가는데 나는 대답을 하지 않았고 세 번째에는 문도 열어주지 않았기 때문에 다행이라고 했던 것.
“그 놈은 오늘도 나타날 것이야. 혹시라도 네가 자는 동안 그 놈이 나타날까 봐서 문 앞을 지키고 있었지만 사실 나는 아무 소용이 없단다. 이건 네가 이겨내야 해.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그래야 살아서 네 엄마 만날 수 있어.”
할머니는 잠시 이야기를 끊고 숨을 고른 후 다시 이야기를 이어 가기 시작했다.
“그 놈은 너를 삼일 동안 찾아올 것 이야. 삼 일만 버텨주려 무나. 어제는 네 어머니 목소리 였지만 남은 이틀 동안은 어떤 목소리로 널 유혹할지 모른다. 이겨 내야한다. 제발.”
할머니의 말을 들으니 내가 살 수 있는 방법은 분명 있다.
살고 싶다. 살아서 어머니, 아버지, 동생들과 누나를 만나고 싶다.
어제 까지만 해도 삶의 의욕이 없던 내게 이 범이란 놈은 죽음의 공포를 알게 해주었다. 그래서 더욱 살고 싶었다. 어쩌면 이 범이라는 놈은 고마운 놈 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직 해결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삶에 대한 의지를 다지고 있을 때, 주인 할아버지가 안 방에서 나왔고 할머니를 슬픈 듯한 얼굴로 체념한 듯 말했다.
“소용없어. 괜한 고생하지 말고 할멈도 포기합시다. 이제까지 미련이 그렇게 남았는가? 그 놈은 못 이겨요..” 하자 할머니는 “우리 같은 부모가 또 생기면 안되지요. 이 아이는 이겨내야 해요. 우리가 도와줍시다. 그래야 먼저 간 우리 아이 에게도 덜 미안할 것 아니겠어요.”
머리를 얻어 맞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 노부부의 자식이, 내가 입고 있는 옷의 주인이 이 놈에게 당했구나. 그래서 할머니는 그렇게 자세하게 알고 있었구나. 이런 날이 또 올까 봐서 이 노부부는 그 놈에 대해 익히게 되었구나.
이 노부부를 위해서라도 나는 이 놈에게 지지 말아야 한다.
나는 내 방으로 돌아가지 않고 지금 있는 노부부의 아들 방에서 그 놈을 기다리기로 했다.
할머니의 말처럼 놈은 나타났고 고향에 있는 내 친구의 목소리로 나를 유혹하기 시작했고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나도 모르게 몸이 움직였지만 버텨내는데 성공했다. 새벽녘에 누나와 동생들의 목소리로 부를 때는 당장이라도 뛰쳐나가고 싶은 충동이 들었지만 입술을 이로 물어가며 버텨냈다.
그렇게 아침이 밝았고 하루를 꼬박 굶었지만 먹는 것도 생각하지 못 하고
나는 다시 쓰러지 듯 잠이 들고 말았다.
그렇게 마지막 밤이 찾아왔다.
밤이 되고 구름이 달을 가려 더욱 어두워 졌을 때 그 놈이 나타난 것 같은 기색이 느껴졌다.
마당이다. 놈은 마당에 들어와있다. 다행히 문을 열지 못 하는 것 같다.
오늘도 어제처럼 이 악물고 버텨 내리라. 놈도 이겨내고 내 병도 이겨내고 가족들을 만나러 가리라.
“형, 나야. 형 나와서 나랑 같이 놀자.”
목소리를 듣는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지고 말았다.
말도 안되는 일이다. 이건 정말 말도 안된다. 지금 이 상황도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지금 이 목소리는 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 목소리는 어릴 때 폐병으로 이 세상을 떠난 내 바로 아래 동생의 목소리다.
너무 보고 싶었던. 내 동생.
나는 단번에 일어나 문고리를 잡았지만 한 손으로는 혹시나 모를 때를 대비해 주인 할머니가 옆에 놔 둔
대바늘로 허벅지를 찔렀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 동생은 이 세상에 없다. 저 놈이 나를 유혹하고 있는 것이다.
문고리를 잡은 내 왼손과 허벅지를 찌른 대바늘을 잡은 손 모두가 덜덜 떨리고 있다.
창호지 뒤로 보이는 놈은 기쁘다는 듯 몸을 좌우로 흔들고 있는 듯한 형체가 보인다.
춤을 추는 것처럼. 자기의 전략이 먹혀 들어가고 있다는 것처럼.
‘또 속지 않는다.’ 다짐하며 문고리를 놓으려 하는 순간 다시 동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형, 나 밖에 있는데 안 놀아줄 거야? 나 형 보려고 멀리서 왔단 말이야.”
빌어먹을. 내가 이길 수 있을까? 확신이 들지 않는다.
이미 내 눈에는 눈물이 가득했고 동생에 대한 그리움에 ‘저 문 밖에 있는 것은 분명 내 동생이다.’ 라는 확신을 갖기 시작했다. 나가야한다. 이 문을 열고 나가면 동생을 만날 수 있다. 단 한번이라도 내 동생 얼굴을 보고 싶다.
형이 나갈게.
문고리를 잡고 거칠게 열려 했으나 문이 열리지 않는다.
‘노부부가 밖에서 문을 잠가 놨구나.’
왜 이 노부부는 동생을 만나러 나가려 하는데 방해를 할까?
‘이 문고리를 부수고 나가야겠다.’ 생각한 순간 번뜩 정신이 다시 들기 시작했고 다시 한번 대바늘로 허벅지를 찌르기 시작했다. 셀 수 없을 만큼. 두 번째도 버텨냈다.
세번째를 버틸 수 없을 것 같았다. 방법이 필요했다.
하지만 방법을 생각하고 실행하기에는 시간이 없다. 저 놈은 더욱 신이 나 있다. 날 잡아먹을 수 있다는 확신에 차 있는 것 같았다.
이대로 잡아 먹힐 수 없다.
나는 다리를 끌며 방 끝에 있는 장롱으로 옮겨갔고 장롱 손잡이와 내 팔목을 끈으로 연결했다.
이러면 시간을 좀 더 끌 수 있겠지.
“형, 나 형 보러 왔는데 이제 가야겠다. 잘 있어. 형 보고 싶었는데,”
생각할 겨를이 없다. 난 나가야한다.
내 손목의 끈은 어느 새 피로 물들기 시작했지만 그런 것 따위는 상관 없다. 내 동생이 밖에 있다.
형도 못 보고 이제 가야한다고 한다. 갈 길이 아주 멀 것인데 사탕이라도 챙겨서 보내야 한다. 불쌍한 내 동생. 형이 나갈게. 조금만 기다려.
손목의 끈은 풀렸고 이틀 가까이 굶은 내게서 나올 수 없을 정도의 힘으로 문고리를 잡고
문을 잡아 뜯듯이 몇 차례 당기자 문에 걸어 놓은 빗장이 뜯어졌다.
이제 나갈 수 있다. 나가서 동생을 업어주고 안아줘야지. 문을 활짝 열고 나가보자.
문이 열리지 않는다.
문 밖에는 동생이 있을 것인데, 내가 나가야 동생을 볼 것인데 문이 도통 열리지가 않는다.
이놈의 미닫이 문 열기가 이렇게 어려웠던가?
생각이 날 때쯤,
작은 사람의 그림자 두 개가 미닫이 문 양쪽에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이 작은 그림자 두 개가 문이 열리지 않도록 방해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비켜. 비키라고, 제발 비켜줘.
목 놓아 울부짖을 때쯤 문 밖에서 누군가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아저씨, 엄마 보러 가야지. 아저씨 나가지 말어. 아저씨 죽으면 우리 엄마가 더 슬플 거야.”
그리고 다른 작은 그림자가 나에게 말을 거는 순간 정신이 들었다.
정신을 차린 내 시선은 밖을 향했고 마당의 형체는 방 문 앞까지 네 발로 걸어와
나에게 말을 걸었던 작은 그림자를 입에 물고 짐승의 으르렁 대는 소리를 한 번 내고 사라졌다.
그리고 아침이 밝았다.
기진맥진 하며 문고리를 잡고 쓰러진 나를 주인집 노부부가 방에 들어와 눕혔고
다음 날 아침까지 편안히 잠을 이룰 수 있었다.
그 이후 밖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고, 주인집 노부부가 아들처럼 보살펴 준 덕분에 폐렴이 완치되어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물론 삶에 대한 질긴 내 의지도 한 몫 했으리라.
고향에 돌아와 다시 만난 가족들은 눈물이 나게 반가웠고,
먼저 떠난 동생을 찾아가 고맙다는 말을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네가 마지막에 날 불러주지 않았다면 나도 이 세상에 없었을 거야."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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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에 창작의 살을 붙혀 작성했습니다.
일을 하며 글을 쓰는게 쉬운 일이 아니네요..^^;; 부끄러운 실력이지만 재미있게 봐주셨음 좋겠습니다.
다음에 또 쓸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노력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