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밤, 나를 부르던 목소리
빌어먹을.
좁디 좁은 자취방 방 한 켠에 틀어박혀 나는 매일 이렇게 주어진 현실을 원망하고 부정하며
똑같은 말을 되 내이는 것이 이제 하루의 일과가 되어버린 듯하다.
이 빌어먹을 일상에서 내가 버틸 수 있는 것은 오직
어머니가 없는 돈을 짜내고 주위에 빌려가며 사 준 통기타와 팝송 기타 교본.
덕분에 느는 것은 기타 실력과 혼잣말.
그렇게 나는 두 달째 죽어가고 있는 중이다.
‘폐렴’
이 빌어먹을 병은 병원에서도 포기한 상태이고, 어머니가 자식을 살리겠다고 수소문해 찾은 의사는 이 곳에서 요양을 하고 자기 말만 잘 들으면 내가 살 수 있다고 한다. 믿기 어려운 말이지만 별다른 방법이 없기에 이 강원도 산골에 처박혀 나는 죽어가고 있다.
이제 스물을 갓 넘긴 나에게 세상은 왜 이렇게 무거운 시련을 주었는지 원망하고 있을 때,
의사의 책임감 없는 말이 불현듯 생각이 났다.
‘이 병은 자네가 하기 나름이야. 마음을 굳게 먹고 공기 좋은 곳에서 내가 준 약을 먹고 충분한 시간을 보내게.’
나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미간의 살짝 주름을 만들며 낮게 읊조렸다.
“염병할, 그 딴 얘기는 나도 하지. 돌팔이 같은 의사놈.”
이 좁은 자취방 밖에서는 ‘국무총리가 김종필에서 최규하로 바뀌었다’ , ‘인기 가수 트리오가 대마초를 피워 연예계가 난리가 났다’ 하는 등의 이슈로 시끄럽지만 나는 알 바 아니다.
친구, 동생들처럼 중동에 가서 돈을 벌어 고생하시는 어머니의 짐을 덜어 드리고 싶지만 기침을 할 때 마다 피를 뱉는 몸상태로는 기타를 튕기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리고 이 곳은 언제나 그랬듯 변함이 없다.
한 줄, 두 줄 기타를 튕기던 나는 왠지 모를 답답함을 느꼈고,
기분전환 삼아 맑은 공기를 마시러 밖으로 나왔다.
“공기 한 번 더럽게 좋네.”
기분전환 이라고는 하지만 매일 이렇게 맑은 공기를 마시러 나오는 것을 보면 나도 어지간히 삶에 미련이 있는 듯해 스스로 놀라고는 한다. 하긴 이제 스물을 넘겼는데 지금 죽으면 억울하지.
어느 새 해는 뉘엿뉘엿 산봉우리 아래로 넘어가고 있었고 주위에는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다.
자취방에서 멀지 않은 거리였지만 여기서는 늦은 밤에 밖에 혼자 나오지 말라는 주인집 노부부의 말이 문득 생각나 몸을 돌리는 순간 멀지 않은 곳에서 이상한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분명, 저 앞은 눈이 소복하게 쌓인 밭인데 눈 뭉치 같은 것이 슬금슬금 움직이는 것 같았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누군가에게 들키지 않아야 한다는 것처럼.
문제는 저 알 수 없는 빌어먹을 무엇인가가 나를 향해 오고 있다는 것이다.
내 생각을 눈치라도 챈 것일까?
저 눈 뭉치 같은 것이 조금씩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식은 땀이 볼과 등에 흐르는 것을 느낀 나는 재빨리 뒤를 돌아 자취방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저 알 수 없는 무엇이 나를 향해 달려오는 것이 느껴 지기 시작했고 내 바로 등 뒤에서는
불쾌한 숨결이 느껴졌다. 나는 뒤를 돌아볼 엄두도, 용기도 없다. 아니, 그래야 한다.
멀지 않은 거리를 달렸지만 폐의 상태가 좋지 않은 나는 숨이 턱 끝까지 차 올랐고 당장이라도 목에서 피를 쏟아낼 것 같았다. 멈추고 싶었다.
하지만 미지에 대한 공포감과 본능은 내 육체보다 강했다.
그리고 살고자 하는 의지까지.
눈 앞에 자취방이 있는 집이 보이기 시작하자 더욱 내달리기 시작했고
저 빌어먹을 무엇인가가 나를 잡아채기 전에 대문을 닫을 수 있었다. 대문을 두꺼운 빗장으로 잠그는데 성공한 하는 긴장이 풀린 나머지 대문 앞에 주저 앉았고 심하게 기침을 하기 시작했지만 살았다 하는 안도감에 안심을 하고 있었다.
어느 정도 진정이 되었고 자취방으로 들어가기 위해 일어선 나는 다시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두꺼운 나무로 만든 대문 뒤에서 불쾌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고 이 소리는 마치 긴 꼬챙이 같은 것으로 대문을 느리게 아주 느리게 그리고 길게 긁고 있었다. 소름이 끼지도록 느리게.
두려움과 공포감에 정신을 차리지 못 한 나는 자취방으로 뛰어들어 갔고 문을 걸어 잠근 후 땀에 범벅이 된 채로 이불을 뒤집어쓰고 멈추지 않는 눈물을 흘리며 웅크리고 고향에 계시는 어머니를 찾았다. 그 것 밖에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가만히 귀를 기울여 보니 밖은 아무 일이 없는 것처럼 조용하다.
그게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돌아간 것 같다.
정신을 차리고 진정이 되자 배가 고프기 시작했고,
주인집 할머니가 아침에 간식이라도 하라고 두고 가신 감자와 옥수수로 배를 채우자
느꼈던 공포감은 온데 간데없고 혼자 남겨져 있다는 공허함과 외로움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늘 하던 대로 이 감정들을 이기기 위해 기타를 잡았고,
가장 좋아하는 Deep Purple의 Highway Star의 기타연주를 연습하기 위해 기타줄을 튕기는 순간
밖에서 나를 부르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너무 반갑고 그리운 어머니의 목소리.
왈칵 나오는 눈물을 참으며 반가운 마음에 방문을 열고 어머니가 서 계실 대문을 열었지만
대문 너머에는 차가운 바람만이 스쳐갈 뿐 아무것도 없다.
“내가 잘 못 들었나?”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너무도 생생한 어머니의 목소리였다.
“그래, 어머니가 보고싶고 외로워서 헛소리를 들었나 보다.”
혼잣말을 하며 다시 방으로 들어와 다시 기타를 들었고, 기타줄을 튕기는 순간 또 다시 어머니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몇 번이나 밖에서 나를 찾는 소리가.
“이번에는 진짜다. 잘 못 들었을 리가 없다.”
방문을 열고 신을 신고 나가려는 순간 이번에는 나를 부르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대문 밖이 아닌 마당에서 들렸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뭔가 잘 못 됐다.
이 늦은 밤에 어머니가 날 보러 오시는 것은 불가능하다. 여기는 강원도 산골이다.
이성적인 생각이 내 머리를 채우는 동안 낮에 느꼈던 공포감이 내 몸을 채우기 시작했다.
나는 급하게 자취방 문을 닫고 다시 문을 걸어 잠갔다.
두려움에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설마 또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릴까?
가만히 생각해보니 어머니의 목소리와 비슷했지만 여러 사람이 섞인 듯한 목소리,
찢어질 듯한 고음에 동물이 목을 울릴 때 나는 소리도 있었던 것 같다.
사람이 아니다. 이건 사람이 아니다.
그리고 다시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 오기 시작한다. 내 이름을 부르고 있다. 날 알고 있다.
어머니의 목소리를 흉내 내는 저 빌어먹을 사람이 아닌 것이.
이 번에는 내 자취방의 문 앞이다. 열면 죽는다. 어떻게 죽을지는 모르겠지만 죽는다.
폐렴으로는 죽는 것은 아닌 것이 확실하다.
내 자취방 문 앞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계속 들려온다.
다행인 것은 이 것은 내가 문을 열어 주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못 하는 것 같다.
열어주면 안된다. 문이 열려도 안된다.
나는 문이 잠긴 것을 확인하고 죽을 힘을 다해 문고리를 잡고 알고 있는 욕지거리를 지껄이며
공포감을 이기려 하지만 포식자 앞에 선 토끼 마냥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살기 위해 이 문고리를 놓치지 않는 것뿐.
내가 느끼고 있는 공포를 문 밖에 있는 이 빌어먹을 것도 알았는지
이제는 내 이름을 부르며 방 문을 긁기 시작했다. 아까 전처럼 느리게 아주 느리게 날카로운 무엇인가로 천천히.
그 무엇인가와 나 사이에 있는 것 이라고는 나무 문 하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자 제정신을 유지하기는 불가능에 가까웠고 눈물, 콧물, 침까지 흘리며 욕지거리만 중얼거릴 뿐이다.
문을 긁던 소리는 어느 새 그쳤고, 내 방 문을 똑똑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집주인 노부부가 날 부르는 소리와 같이.
작은 창문을 보니 어느 새 해가 밝아 있었고 문을 여니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날 보는 노부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침 밥 먹을 시간이 되어도 내가 방에서 나오지 않자 걱정이 되었는지 내 방 앞까지 찾아와준 것이다.
또 다시 느낀 안도감과 노부부의 얼굴을 보니 긴장이 풀려 나는 쓰러지고 말았다.
그 순간 내 눈에 들어온 주인집 할아버지가 방문을 보며 무어라 중얼거렸고,
눈빛에 뭔가를 알고 있다는 느낌을 받으며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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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를 기반으로 살을 붙여 작성해 봤습니다.
처음 글을 쓰다보니 실력이 미천해 부끄럽습니다. 넓은 마음으로 재미있게 봐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