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 시절 임진왜란 때문에 명나라 장군 이여송이 황제의 명령을 받아 우리나라를 도우러 왔었다.
이여송은 평양에서 승리를 거두고 성 안으로 들어가 쉬었다.
그런데 이여송은 평양의 경관이 아름다운 것을 보고 다른 마음을 품어, 선조를 설득해 그 곳에서 살려는 마음을 먹게 되었다.
어느 날 이여송은 대동강 옆의 연광정에서 수많은 부하들을 데리고 잔치를 열었다.
그 때 강변의 모래사장을 검은 소에 탄 노인 한 명이 지나갔다.
보초병들이 큰 소리로 노인이 지나가지 못하게 막아섰으나, 노인은 그것을 다 들으면서도 못 들은척 하며 소고삐를 잡고 천천히 지나갔다.
이 모습을 보고 이여송이 몹시 화를 내며 그 노인을 잡아오라 일렀다.
그러나 소가 느릿느릿 걷는데도 도저히 병사들이 따라잡지를 못했다.
이여송은 화가 머리 끝까지 나서 직접 천리마를 타고 칼을 찬 채 노인의 뒤를 쫓았다.
소가 바로 앞에 보이는데다 말이 나는 듯이 달리는데도 노인을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노인을 따라 산을 넘고 물을 건너 몇 리를 가서 한 산촌으로 들어가자, 노인이 타고 있던 검은 소가 시냇가 버드나무에 매여 있었다.
이여송은 노인이 이 곳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말에서 내려 검을 차고 들어갔다.
노인은 마루 위에서 일어나 이여송을 맞이하였다.
이여송이 화가 나서 꾸짖었다.
[너는 어떤 늙은이길래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이리 건방지느냐! 나는 황제 폐하의 명을 받아 백만 군대를 거느리고 너희 군대를 구하러 왔다. 네가 그 사실을 모를 리 없는데 건방지게 소에 탄 채 우리 군대 앞을 지나가느냐? 너의 죄는 죽어 마땅하다.]
노인이 웃으며 대답했다.
[제가 비록 산촌의 노인네이나 어찌 장군의 위대함을 모르겠습니까? 오늘 제 행동은 오직 장군을 누추한 이 곳에 모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제게 간절한 부탁이 있는데 장군께 말씀 드릴 방법이 없어서 이런 계책을 쓴 것입니다.]
이여송이 물었다.
[부탁이 무엇이냐? 말해보거라.]
노인이 말했다.
[저에게 불초자식이 둘이 있는데, 글 읽고 농사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고 강도짓만 하며 부모의 가르침을 듣지 않습니다. 어른에게 대하는 태도도 알지 못하는 한심한 놈들이지만 제 기력이 쇠해서 아들들을 제어할 수가 없습니다. 장군의 용맹이 세상을 뒤덮으실만 하다는 소리를 들었으니 장군의 위엄을 빌려 이 패륜아들을 없애버리려 합니다.]
이여송이 말했다.
[아들들이 지금 어디에 있는가?]
[뒷마당의 대나무 숲에 있습니다.]
이여송이 칼을 차고 대나무 숲으로 들어가니 두 소년이 함께 책을 읽고 있었다.
이여송이 큰 소리로 질책하였다.
[너희가 이 집의 패륜아들이냐? 너희 아버지가 너희를 없애라하니 이 칼을 받아라!]
말을 마치고 검을 휘둘러 아이들을 내리치는데, 소년들은 목소리 하나, 얼굴빛 하나 변하지 않고 천천히 손에 들고 있던 죽간으로 칼을 막아내서 도저히 소년들을 해칠 수가 없었다.
그리고 한 소년이 죽간으로 칼날을 내리치자 칼날이 쨍하는 소리와 함께 두동강이 나 버렸다.
이여송은 숨을 헐떡이며 땀을 흘렸다.
조금 있자 노인이 들어와 아이들을 꾸짖었다.
[어린 것들이 어찌 이리 무례하냐!]
노인이 소년들을 물러나게 하자 이여송이 노인에게 말했다.
[저 패륜아들의 힘이 대단해서 당해낼 수가 없소. 그대의 부탁은 들어주기 힘들 것 같구려.]
노인이 웃으며 말했다.
[조금 전 말은 장난이었습니다. 이 아이들이 아무리 힘이 세다 한들 10명이 와도 저 하나를 당해내지 못할 것입니다. 장군께서는 황제의 뜻을 받들어 우리나라를 구하러 오셨으니, 왜구를 없애서 우리나라를 다시 안정되게 하시고 본국으로 개선하시어 이름을 역사에 남기시면 이것이 곧 영웅이 아니겠습니까? 장군께서는 이런 위대한 일은 하지 않으시고 평양에 눌러 앉을 생각이나 하시니, 이것이 어찌 장군님에게 어울리는 일이겠습니까? 오늘 제가 꾸민 일은 장군님께 우리나라에도 인재가 있다는 것을 알려 드리기 위함이었습니다. 장군님이 만약 계획을 고치지 않고 계속 시간을 낭비하신다면 늙은 몸이 장군의 목숨을 뺏으러 갈 것입니다. 정신을 차리시길 바랍니다. 산에 묻혀사는 늙은이의 말이 당돌할지 모르나 장군이 용서하시길 바랍니다.]
이여송은 한 시간 동안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떨어트린 채 기운 없이 있다가 이내 [예, 예.] 하고 군중으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