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모님이 겪은 이야기다.
나는 이렇다 할 체험은 한 적이 없어서,
아마 영감도 없을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부모님은 내 영감 덕분에 목숨을 건졌다고,
지금도 친척들만 모이면 이 이야기를 꺼내곤 한다.
내가 2살 무렵, 내륙의 현에 살던 우리 가족은
바다가 있는 근처 현으로 여행을 갔다고 한다.
넓은 부지의 어느 신사가 관광명소인 지역이었는데,
인파가 가득한 곳에서 어린 나를 데리고 다니자니,
점심 즈음에 이미 녹초가 되었단다.
어느 가게고 사람이 붐빈 탓에, 번잡한 관광지를 벗어나
걸어갈만한 거리에 있는 작은 어촌에 들리게 되었다.
거기서 카이센동 같은 걸 점심으로 먹었다.
시골 해안 관광지는 비슷한 종류의 낡은 해물 요리집이 늘어서 있기 마련인데,
우리가 방문했던 그 마을은 개중에서도 규모가 작아
관광객보다 지역주민 같아 보이는 노인들이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그 작은 식당가는 바다와 접해있었는데,
부두에서 50m 가량 떨어진 바다 위에는 이쓰쿠시마 신사를 방불케 하는
토리이 같은 게 세워져 있었다.
(참고 이미지 / 히로시마현 남서부 미야지마섬 이쓰쿠시마 신사의 토리이)
[지금은 물이 차 있지만, 저녁에는 썰물이라 저리로 내려가 걸어갈 수 있다오.]
가게 주인장이 토리이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옆에서 듣고 있던 단골손님 왈,
근처 유명 관광지에 묻힌 이 마을의 자랑이란다.
처음 들어간 가게에서
점원이나 손님이 말 걸어오는 걸 좋아하지 않는 부모님이지만,
붙임성만큼은 좋아서 적당히 이야기를 들어주다 가게를 나섰다고 한다.
하지만 모처럼 왔으니 보고 가야겠다 싶어,
사람이 붐비는 시간대가 지난 신사로 돌아가 몇 시간 산책을 하다,
저녁 무렵 다시 그 어촌으로 돌아왔다.
낮에 들렀던 작은 식당가는,
라디오에서 울려 퍼지는 음악과 아저씨들의 사투리 섞인 말소리가 들려와
낮과 그리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다.
우리를 알아차린 아저씨가 손을 흔들었다.
추천을 받았던 바다의 토리이는, 날씨와 타이밍이 좋았던 덕에
수평선에 잠기는 저녁놀에 비쳐 마치 잘 찍힌 사진처럼 아름다웠다고 한다.
그리고 물이 빠지자 낮에는 보이지 않았던 갯벌이 드러나,
여기저기 웅덩이처럼 고인 바닷물이 저녁놀을 받아 빛나고 있었다.
길을 벗어나지 않으면 평범한 신발을 신은 채로
토리이까지 걸어갈 수 있다는 걸 확인할 정도였다고, 어머니는 말했다.
그 광경에 크게 감동한 아버지는
부두에 딸린 돌계단을 내려가 토리이까지 가보기로 했다.
어머니는 품에 안고 있던 나를 내려놓고
가방에서 일회용 카메라를 꺼낼 참이었다.
그 순간, 어머니는 나에게서 위화감을 느꼈다고 한다.
내가 어머니의 소매를 꽉 쥔 채 내려가려 하질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음 순간,
고막을 찢을 듯한 날카로운 목소리로 울기 시작했다고 한다.
나는 원래 잘 우는 편이었고,
근처에도 들릴 만큼 소리를 내서 울곤 했다지만,
그때만큼은 뭔가 낌새가 이상했단다.
영화 같은 데서 무언가에게 습격당한 여자가 비명을 지르듯,
순간적으로 엄청난 소리를 숨조차 쉬지 않고
10초 가까이 비명처럼 질렀다는 것이다.
[끼야아아아악!]
다만 그때 얼굴에서 보이는 필사적인 표정과 눈물 때문에,
"울고 있구나"라고 어머니는 판단했다고 한다.
그 지경이 되니 아버지도 이상한 비명에 놀라 어머니 쪽을 돌아보고,
내 상태를 확인하러 부두로 돌아왔다.
당황한 어머니가 나를 다시 안아올려 달래기 시작하자,
곧 울음을 그치고 안정을 찾았다.
[아니, 왜 그런담, 이 녀석..] 하고 안심하며 웃은 순간,
이번에는 아버지가 발등에서 위화감을 느꼈다.
내려다보니 발목부터 그 아래,
신발과 양말까지 흠뻑 젖어있었다.
뭔가 싶어 뒤를 돌아보니, 썰물은커녕
부두 바로 아래까지 시커먼 바닷물이 가득 차 있었다.
돌계단은 방금 전까지 아버지가 서 있던 위치까지 물에 잠겨,
파도 소리도 똑똑히 들려왔다.
석양에 물든 붉은 하늘과 저녁놀에 빛나던 토리이는 변함없는데,
오직 바다만이 이상하게 거무칙칙했다.
저녁놀 하늘색이 전혀 비치치 않는 새까만 수면에
군데군데 하얀 파도 거품이 인다.
물이 발아래 부두에 철벅철벅 부딪히며 소리를 내고 있었다.
부모님은 붉은 하늘과 검은 바다로 양분된 광경을 바라보며 멍하니 서 있었다.
[어..? 썰물이었지..?]
[썰물이었지.. 물이 빠졌으니까 들어갔던 거고..]
아버지는 자신이 착각해서 바다로 들어간 게 아닌가 혼란스러웠지만,
어머니도 분명히 물이 빠진 것을 보았기 때문에
둘 다 영문을 모르고 당황할 뿐이었다.
젖은 양말과 신발부터 갈아 신어야겠다는 생각에,
아버지는 낮에 갔던 카이센동 집에서
잠시 쉴 요량으로 바다에 접한 그 가게로 향했다.
그러나 몇 발짝 다가가자마자 깨달았다.
사람이 없다..
지나다니는 사람도,
가게의 단골 같아 보이던 노인들도, 점원 아저씨도..
아까까지는 있었을 터인데, 인기척이 전혀 없었다.
사람 목소리가 들린다 싶어 돌아보면 라디오 소리였다.
문득 아버지의 시야 한구석에서 무언가가 움직여서 돌아보니,
1층에는 가게고, 2층은 민가인 듯한 집의 커튼이 막 닫힌 듯 흔들리고 있었다.
그걸 깨닫고 다른 가게 2층을 자세히 보니,
창문 너머 안쪽에 사람이 있었다.
다들 노인으로, 낮에 본 얼굴도 있었다.
그 몇 개의 시선은 모두 무표정하게
아버지와 어머니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머니도 똑같은 광경을 목격했다고 한다.
그 토리이로 가보라고 부모님을 권했던 이들이,
감정 없는 눈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그 의미를 깨닫기도 전에,
어머니가 아버지 등을 밀었다.
겨우 정신을 차린 아버지는 어머니와 함께 달리기 시작했다.
나는 울어젖힌 이후 별다른 이상이 없었다고 한다.
[바닷물이 차 있었다는 것보다도, 그 토리이에 가보라고 추천했던
마을 사람들이 다들 아버지가 바다에 들어가는 걸 보고만 있던 게 무서웠어.
사실 처음부터 사람이 아예 없었던 게 더 무서울지도 모르지만.]
어머니는 웃으며 이 이야기를 해줬다.
[네가 없었다면 아버지는 그대로 물에 빠졌을지도 몰라.]
나중에 찾아봤지만, 그런 토리이는 찾을 수가 없었다.
어쩌면 그것은 그냥 토리이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출처 : VK's Epitap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