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옌애겟에서 댓글은 그래도 몇 번 달아봤는데 이렇게 글을 올려보는 건 처음이네요.
연애겟에 올라오는 글을 쭉 읽다보면 소개팅이나 급만남의 압박 때문에 걱정하다하다 못해 글로써 어려움을 토로하시는 분들이 종종 계신 것 같습니다. 관련해서 그냥 제 얘기를 올려볼까해요. 도움이 되실지는 모르겠습니다만...ㅎㅎ 제 좁은 식견으로는 누구를 가르칠 수 있는 단계는 아닌 것 같습니다.
일단, 전 옷차림이라던지 이런 겉치레에 대해서는 따로 언급하지 않을려구요. 단, 한가지 말씀 드릴 것은 자기한테 어색한 것은 남들한테도 반드시 어색해 보인다는 것입니다. 매우매우 당연한 얘기지만 말이죠...ㅎㅎ
다른 분들도 누누히 말씀하셨지만, 굳이 소개팅이라고 해서 쫙~ 빼입고 갈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상대방 측에서 부담스러워 할 수도 있구요. 그냥 평상 시 외출할 때 입는 옷들 중에 깔끔한 걸 골라 입으세요. 특히 여름에는 반팔티를 입고 나가시는 경우가 많은데 목 안 늘어난 반팔티-_- 이거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리고 집에 여동생이나 누나가 계신다면 물어보세요.(참고로 엄마는 안 됩니다...-_-;;) 괜찮냐구요. 물론 여자들 마다 각자 자기가 선호하는 스타일이 있기 마련입니다만, 그 데드라인-_-은 거의 엇비슷합니다. 같은 여자가 보는 시각 만큼 정확한 것도 없죠. 뭐... 이럴 때 아니면 따로 써먹을 때도 없고 말입니다.-_-;; 으흠, 사족이었구요~
얼마 전에 저도 매우 갑자기 소개팅을 하게 되었습니다.
새벽 3시에 자고 있는데 친구한테 갑자기 전화가 오더라구요. 혀가 반쯤 접혀 있는 발음으로-_- 소개팅하라고 무려 강요를 당했습니다. 속으로 쾌재를 외쳤지만... 당시 한밤 중이었던 관계로 대충 '응, 응~' 대답만 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리고 대망의 소개팅 당일날.
저는 친구가 주선자 역할을 해서 셋이서 만났는데요. 일단 오후 6시쯤 만나서 밥을 먹으러 갔습니다. 물론 여자분께 '설마... 저녁식사 아직 안 하셨죠?'라고 물어보는 센스, 잊지 않았습니다. 마주보고 대화를 할 수 있는 곳으로 갔습니다. 저는 소개팅하면 주로 가는 곳이 있어서... 그날도 당연히 그곳으로 갔는데 사장님이 절 알아보시는 바람에 조금 난감했습니다.-_-;; 제길슨...
간혹 주로 2차나 3차로 가는 커피숍 등에서 본격적으로 대화를 하시려고 계획하시는 분들이 계신데 밥 먹을 때 만큼 좋은 분위기도 없습니다. 인간의 3대 욕구 중 하나가 리필-_-되고 있어서 그런 걸까요? 아무튼 처음 만난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조금 사그라 드는 자리가 바로 같이 마주보고 식사하는 자리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래도 밥은 먹어야 겠고, 처음 보는 사람이라 내숭은 떨어야겠고... 제 아무리 머리에 쿼드코어를 탑재하고 있어도 과부하가 걸릴 수밖에 없습니다. 즉, 평상 시보다는 자기방어에 소홀해 질 수밖에 없겠죠. 제 자신 스스로도 그런데 남이라고 크게 다르겠습니까.
자리가 잡히고, 각자 식사를 시키고 나서 친구 녀석이 본격적으로 서로 소개를 시켜줬습니다. 잠결에 들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동갑인줄 알았더니 저보다 무려 2살이나 어리더군요.-_-; 외모는 작고 적당히 마른 귀여운 타입의 여자사람-_-이었습니다.
소개가 끝나고 대화의 주도권이 공중으로 붕 떴습니다... 간혹 센스있는 주선자들은 이럴 때 장난을 칩니다. 예를 들어 '아.. 이 색히가 하도 소개팅 좀 시켜달라고~ 시켜달라고 노래를 불러서... 이제 됬냐? 만족스러워?' 이러면 투닥거리는 가운데 자동적으로 대화의 주도권이 남자쪽으로 옮겨가게 되고, 냉랭한 분위기는 미세하나마 그래도 녹아내리죠. 물론 제 친구는 센스가 없는 넘입니다.-_-;
대화의 주도권이 공중에 붕 떠있을 때 남자쪽에서 조금이라도 망설이면 무시무시한 '영원의 침묵'이 시전되니 빠르게 잡아 오는 게 중요합니다. 저는 간단히 인사로 주도권을 가지고 왔습니다.
서로 인사를 주고 받은 다음 저도 가장 두려워 하는 대화의 시작 단계에 돌입했습니다. 일단 여름인 관계로 저는 여름휴가를 주제로 얘기를 꺼냈습니다. 햇빛에 타서 그런지 여자 분의 팔 윗부분하고, 아랫부분의 살색이 서로 달랐거든요. 여름휴가 다녀오셨냐고 물어보니 멀리는 못갔고, 친구들과 당일 치기로 캐리비안베이에 다녀왔다고 하더군요. '팔 보니까 엄청 많이 타셨는데요...?'라고 얘기했더니 웃으면서 자기도 고민이라고 했습니다.
제길... 질문에 질문이 연결되지 않고 대답으로 종결됬기 때문에 또 다시 영원의 침묵이 시전될 것 같아 저는 재빨리 다른 질문을 던졌습니다. 물론 질문을 하기 전에 넌지시 칭찬도 해줬죠.
"그래도 보기 좋게 타셨는데요. 뭘... 아참 캐리비안베이에 뭐 새로 생긴 거 있나요? 이번 해에는 못가봐서요."
그렇게 식사를 할 때까지 여름휴가를 주제로 계속 얘기를 했습니다. 얘기를 하면서 알아낸 것은 작년부터 바다를 가고 싶었는데 친구들 때문에 작년과 올해 모두 바다를 못가봤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얘기를 통해서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최소한 2년째 남자친구가 없다는 것도 유추할 수 있었습니다.-_-;;
아무튼 다들 잘 알고 계시겠지만... 대화의 포인트는 네 가지입니다. 질문을 통해 얘기가 끊이지 않도록 하는 것, 중요한 얘기들을 잘 잡아내는 것 그리고 그것을 통해 이 사람의 관심사가 무엇인지 찾아내는 것 마지막으로 중간중간에 칭찬을 빼놓지 않을 것.
저는 '바다'라는 관심사를 찾아냈고, 식사를 하고 다음 장소로 이동하면서 거짓 공감대를 만들어냈습니다. 전 사실 바다에 크게 관심이 없습니다. 다만 오늘 하루 바다에 대해 관심을 갖는다면 그게 바로 공감대가 될 수 있습니다. 공감대란 쉽게 말씀 드리자면 관심사의 교집합이니까요. 물론 아무런 식견 없이 덜컥 거짓 공감대를 만들어내면 들통나기 마련입니다. 때문에 많은 분들이 잡학다식의 필요성을 얘기하시는 거겠죠...
저는 그래도 운이 좋게 바다였기 때문에 거짓 공감대를 만들어내기 수월했습니다. 일단, 같은 처지임을 토로했습니다.
"저도 올해 휴가는 바다로 다녀오고 싶었는데... 마지막으로 다녀오신 데가 어디에요?"
"바다요? 망상해수욕장이요. 그때 사람도 별로 없고 해서 되게 재밌었는데..."
"아, 저도 거기 알아요. 아직 가보진 못했는데 다녀온 사람이 엄청 좋다고 하더라구요. 차로 다녀오셨었어요?"
"아뇨~ 버스로요. 버스로 가도 생각보다 그렇게 불편하지 않더라구요."
당시 바다에 갔었던 걸 떠올리고 있는 거 같아서 생각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도록 차분하게 계속 질문을 했습니다. 저도 그렇지만, 좋은 기억을 떠올리면 당연히 기분도 좋아지니까요. 그걸 옆에서 도와준 거죠. 그리고 제 얘기를 했습니다.
"전 작년에 친구들한테 억지로 보령머드축제 끌려갔다왔어요."
"와~ 전 한 번도 못가봤는데 재미있었겠다~"
"제 친구가 놀다가 수영복이 좀 밑으로 내려갔었는데 그게 그냥 9시 뉴스에 나왔었죠.ㅋㅋㅋ"
"ㅋㅋㅋㅋㅋ"
이렇게 계속 대화를 하면서 다음 장소에 도착했습니다. 간혹 '유머러스'라는 것 때문에 강박관념에 휩쌓이시는 분들이 계신데 제 친구처럼-_-; 소개팅 전날 억지로 밀린 개콘과 웃찾사를 보실 필요 없습니다. 그런 것보다는 자기가 경험했던 웃긴 사건과 사고들을 얘기해 주는 게 더 효과가 있더군요. 차라리 뭔가 연습을 하실 거라면 어떻게 하면 좀 더 재밌게 얘기를 전달해 줄 수 있을지를 고민해 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2차는 칵테일이 싸고 맛있어서 자주가는 바. 여기서 자주 써먹는 레파토리는 '오나집'가지고 장난치기 입니다. '오빠 나 오늘 집에 못들어가'라는 칵테일이 있죠.ㅎㅎ
"이거 한 번 드셔보실래요?"
"뭔데요?"
"오나집이라고 맛있어요~"
"오나집이요? 그게 뭐에요?"
"요기 밑에 써있네요."
"ㅋㅋㅋ 이게 뭐야~"
주선자는 같이 밥만 먹고 돌아갔지만, 주선자가 없어도 분위기는 전혀 어색하지 않고 좋았습니다. 대화의 패턴은 똑같았습니다. 질문과 관심사 찾기 그리고 관심사 찔러주기.
한가지 예를 들자면 대화 중에 손톱이 자꾸 갈라져서 최근에 일주일에 적어도 한 번씩은 샵에 가서 관리를 받고 있다는 얘기가 나왔습니다. 처음에는 자기가 이리저리 알아봐서 혼자 해볼려고 했는데 역시 돈 내고 샵에서 하는게 마음도 편하고, 효과도 좋다고 하더군요. 일단 처음은 역시 칭찬부터...
"그거 영양실조 때문에 그런 거 아니에요? 딱 보기에도 XX씨 너무 말랐잖아요...ㅎㅎ"
"에이~ 설마요. 저 그리고 은근 살 많아요. ㅋㅋㅋ"
"아, 맞다. 저도 예전에 여자친구 따라서 네일아트 같은 거 해 주는데 따라가본 적 있거든요. 근데 거기 남자 손님도 있더라구요?"
"네, 제가 가는 데도 남자들 종종 와요~"
"제가 갔을 때 그분 눈썹 다듬고 있었는데 다 하고 나니까 인상이 많이 달라지더라구요. 저도 솔직히 조금 욕심났었어요.ㅎㅎ"
"ㅋㅋㅋ 눈썹 다듬는 거 되게 쉬운데~"
"오~ 진짜요? 어떻게 하는 건데요?"
그리고 그 뒤로 제가 한 건 '아~ 그렇구나~'와 같은 추임새와 대답 뿐이었습니다.-_-; 그리고 눈썹 언저리를 만져주는 약간의 스킨쉽?ㅎㅎ 알콜이 좀 들어가서 그런지 몰라도 대화를 정말 많이 했습니다. 바에서 거의 2시간 가량 대화만 했으니까요. 9시가 조금 넘어서 근처 지하철 역까지 배웅해 주고, 서로 연락처를 교환했습니다. 그리고 잘 들어가라고 문자를 한 통 보냈죠. 소개팅 중 즐거웠던 때를 다시 상기시킬 수 있도록 '눈썹 다듬는 거 가르쳐줘서 고마워요~^^'도 같이 낑겨서 보냈습니다.
얼마 있지 않아 답문이 오더군요. 오늘 자기 얘기만 한 거 같아서 미안하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애프터 신청하면 바로 먹히겠구나라는 직감이 왔죠. 스스로 얘기를 많이 했다고 느꼈다면 어색하지 않고 편안한 자리였다는 얘기니까요. 주로 '어색하지 않고 좋았어요.' 라던지 '제 얘기만 해서 미안해요.' 라던지 또는 '남자랑 이렇게 얘기 많이 해 본 거 오랜만 인 거 같아요.' 등'편안했어요'라는 내용이 내포된 문자가 왔을 때 애프터를 신청하면 거의 대부분 OK였습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저는 이따가 만나러 갑니다.-_-;
글의 데미는 본의 아니게 염장질로 마무리... 하는군요. 죄송합니다...-_-;;
아무튼 소개팅 및 급만납을 하시는 모든 분들께 좋은 소식이 있길 바라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셨길 바랍니다.
그럼! 피~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