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길이: 296mm 총신길이: 140mm 중 량: 1.29kg 구 경: 7.62mm×25 장 탄 수 : 10-20발
R P M : 900
참고: 모젤이니 모제르니 모우저니 생략. 만약 스펠링이 Mauser라면 독일식 발음에 따라 마우저임.
모젤 C96는 19세기 말 자동권총이 막 개발되었을 당시부터 존재했다. 보르체르트(보처드)나 브라우닝이 자동권총을 설계-생산을 하고 있었다. 다만, 자동권총의 작동 방법이나 형태의 일관성은 만들지 못하고 다양한 작동방식의 권총을 만들었다. 이 C96는 그것들 다종 자동권총의 하나다.
모젤 C96는 1897년부터 생산이 시작이 되었지만 시판용으로서는 그다지 팔리지 않았다. 현실적으로 브라우닝의 자동권총이 휴대가 편리하다는 예기다.
그렇지만 군용으로서는 성공을 거둔 권총이었다. 독일군에 의해 대량으로 구입되어 Great War에 사용되었다. 많이 사용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제식화가 되지않았다.
C96을 가장 많이 산 것은 중국이다. 당시는 중화 민국으로 불리고 있던 중국은 Great War 이후 상당수(수십만정이라고 전해진다) 모젤 C96를 구입했다. 그것도 모잘라 스페인의 아스트라사(총기 메이커)나 라이센스를 받지 않은채 중국 내에서 생산했다. C96는 중일 전쟁에서도 대량으로 사용되고 대량으로 포획 되었기 때문에 남아 있는 사진도 많다.
아스트라사에서는 모델 902라고 하는 기계부의 C96를 만들어 중국에 판매하고 있었다. 중국군은 상당히 마음에 들어해서 대량으로 아스트라사로부터 사들이거나 복제를 했다. 중국군이 마음에 든 이유는 외형이 좋기 때문이라고인가 말하는 설도 있지만 요즘(1920년대 후반)은 아직 중국 통일이 되지 않았고 일본이 압력을 가하고 있어 일본과의 대결도 시간의 문제라고 하는 위기감이 있었다고 하는 현실적인 문제도 들어 있었다.
모젤 사는 자신들의 권총이 불법적으로 개조가 되어 허가없이 팔린다는 소리에 분노를 보였다. 법적 수단을 사용했는지는 모르지만, 여하튼 「풀 오토의 C96가 팔린다!」라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에 모젤 사에서는 자신들의 총기설계자 요제프 니크루에게 C96의 풀 오토형 설계를 지시했다. 자동권총을 풀 오토로 하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고 튼튼한 C96는 즉석에서 풀 오토화에 대응할 수 있었다. 1930년에는 생산에 들어가, 다음 1931년까지 약 4000정이 생산되어 중국에게 보내졌다.
아무리 튼튼하다고 해도 원래는 풀 오토 사격을 전제로 하지 않았기 때문에 신뢰성이 고려되었다. 그 때문에, 칼 베스팅거(의역)가 재설계, 다른 형태의 C96 이 1932년부터 생산이 시작되어 1938년까지 약 10만정(일설에는 98000정)이 생산되어 대부분이 중국을 상대로 수출했다. 니크루의 설계형과 베스팅거 설계형은 외관적으로는 거의 동일하지만 선택 장치는 니크루 형식은 막대 모양, 베스팅거 형식은 부채형으로 되어있기 때문에 금방 식별을 할 수 있다. 덧붙여서 모젤 사 내의 호칭은 양쪽 모두 「슈네르포이어」이며 특히 식별은 되어 있지 않다.
히틀러가 정권을 취해 재군비를 선언한 1935년 쯤부터 독일 치안 경찰 부대에서 채용되기 시작하게 되었다. 본격적으로 채용되기 시작한 것은 1939년부터로 주문 상대는 SS(무장 친위대)였다. 무장 친위대라고 하면 독일군의 정예로(좋은 의미에서도 나쁜 의미에서도) 이름이 알려져 있지만 채용된 이유는 슈네르포이어가 우수했기 때문에라고 하는 것은 아니고 당시의 무장 친위대는 힘이 약하고 신병기도 육군 우선이었기 때문에 MP38가 좀처럼 배치되지 않았으며 1939년 당시라고 하면 이미 폴란드 침공이 결정되었기 때문에 MP38같은 역할을 할 수 있는 무기를 준비하는 것이 시급했다. 모젤사는 중국에 대량으로 슈네르포이어를 수출하고 있었지만 1937년에 시작한 중일 전쟁으로, 일본은 독일의 우호국이기도 했기 때문에 무기 수출은 할 수 없게 되었다. 그 때문에 재고가 대량으로 있어 무장 친위대의 주문에는 응할 수가 있었다. 주로 무장 친위대의 헌병이나 정찰 부대에 배치되었었으며, 공군 지상 부대의 오토바이병이나 해군 보병용으로서도 사용되었다. 900RPM의 전자동권총이 명중률을 기대할 수는 없었지만, 채용된 부대는 모두 본격적인 지상전에 돌입하지 않았으며 갑작스런 적의 출현에 어떻게서는 화력으로 대처해야했기 때문에 채용했을 것이다.
1941년경까지는 제일선에서 사용되고 있던 것 같지만 그것을 확인할 수 있는 사진은 적다. 고가의 병기였던 라이헨포이어는 그것을 채용하던 부대에게 그 자리를 MP40에 양도하게 되어 2선급 병기가 되어 역사안에 사라져갔다.
최대의 전과라고 하면 1934년에 프랑스-마르세유에서 일어난 유고슬라비아 국왕 알렉산드르 2세가 암살된 사건으로 사용된 것이 전부일 것이다.
C96의 작동 방법은 지금의 자동권총과 같이 슬라이드가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볼트만이 움직여 차탄을 장전 하는 방식이 되고 있다. 또 탄창은 지금과 같이 그립에 넣는 것이 아니라 자동소총과 같이 트리거의 전방으로 장전 하는 방식을 사용하고 있었다. 너무나도 소총과 비슷한가? C96의 장전방식도 소총과 비슷하게 총탄을 배약구를 통해 클립으로 넣는 방식이다.
총알을 장전 하면 해머를 엄지로 내리면 볼트가 전진하므로 그 상태로 발사 스탠바이가 된다. 가지고 다니려면 이대로는 위험하기 때문에 안전장치를를 걸 필요가 있다. 안전장치는 해머의 옆에 있으며, 형상도 해머를 닮아 있다. 밀어 올리면 S(sicherungen-안전)가 되어 안전장치가 걸린다. 내리면 F(Feuer-사격)가 되어 발사 가능하게 된다. 이 안전장치는 어두운 곳에서도 엄지의 감각으로 알기 쉽다고 하는 이점은 있다.
슈네르포이어(나 라이엔포이어 R713)는 풀 오토 · 세미 오토 변환 발사 가능하다. 다만 변환조작은 의외로 번거롭다. 한가운데의 버튼을 누르고 나서 조작해야했다.
리어사이트는 소총의 것과 똑같았다. 50 m에서 1000 m까지 50 m 단위로 조준을 할수 있었다(500 m로부터는 100 m단위). 솔직히 말해 1000 m의 조준에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그때쯤이면 살상 능력은 사라진다) 일단은 그렇게 되어있다. 실제로는 50 m 정도면 충분했을 것이다.
사격은 부속의 스톡을 붙이지 않아도 괜찮지만 붙이는 편이 안정감이 좋다. 스톡을 어깨에 대고 매거진 하우징을 잡으면서 더 안정적으로 사격할 수 있다. 사격 자세를 취하면 스톡의 반정도가 어깨로부터 빗나가고 스톡 자체가 꽤 높은 위치가 되므로 조준 할 때는 머리를 기울일 필요가 있지다. 하지만 전장에 많이 쓰이지 않았기 때문에 그리 생각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풀 오토 사격은 스톡을 어깨에 붙이고 매거진 하우징을 단단히 잡는다고 해도 높은 명중률을 기대할 수 없다. 「기대할 수 없다」것은 아니고 실제적으로 집탄률이 낮은 것이다. 권총탄이라고 해도 반동은 상당히 있고 900RPM이 되면 효과적인 명중률을 기대할 수 없었다는 것은 보통이다.
분해는 비교적 간단하다. 탄창을 뽑아 볼트를 후퇴해 프레임 록을 밀어 올리면 볼트와 배럴연장선(총신과 어퍼 프레임. C96는 총신과 프레임이 일체가 되고 있다)을 뒤로 꺼낼 수 있다. 배럴연장선으로부터 볼트를 뽑아내는 것은 청소막대기로 볼트 후방의 나사를 돌려 행했지만 여기는 후퇴 용수철이 들어가 있으므로 주의하지 않으면 용수철이 튕겨나온다. 분해 자체는 그렇게 어렵지는 않지만 조립에는 숙련되어 있어야 한다. 어디에 무엇이 있었는지를 제대로 기억해 두지 않으면 조립을 할 수 없게 된다.
결론으로부터 말하면 군용으로서 생각했을 경우 어중간한 이미지를 받는다. 권총으로서 생각해도 밸런스가 나쁘고 불필요하게 무겁다. 기관단총으로 생각했을 경우 명중률 없는 것은 기관단총과 동일하다. 그러나 본래는 연사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기 때문에 C96 자체를 꾸짖는 것은 별로 의미가 없다.
독특한 형상을 가진 C96은 아직도 애호가들을 가지고 있다. 비슷한 형상인 총기가 없다고 하는 것도 인기의 하나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