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shing Ⅱ missile은 미국의 중거리 핵탄도 미사일입니다. 제작연도는 1983년 12월∼1984년 4월 사이로 미국은 러시아의 위협애 대비하여 북대서양조약기구에 배치합니다.한때는 주한미군도 보유했다고 하는데 NCND 정책으로 유지되어 왔습니다.
퍼싱미사일은 사정거리 1,800km. 속도 마하 1.0로 구(舊)소련의 SS-20 중거리 핵탄도 미사일에 대항하기 위하여 지상발사 순항미사일(GLCM)과 함께 1979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가 배치하기로 결정, 1983년 12월∼1984년 4월에 18기가 독일 무트랑겐 기지에 배치되었습니다. 러시아와 동유럽지역 대도시를 공격범위 내에 두고 있으며, 6분이면 모스크바에 도달합니다. 단말유도에 레이더 지형상관(地形相關) 유도장치인 RADAG를 사용하며 명중률이 뛰어나며, 러시아는 SS-20보다 훨씬 우수한 퍼싱 II의 유럽배치에 반대하여, 미소 중거리핵전략협상(INF)이 교착상태에 빠졌습니다.
퍼싱을 배치했던 서독에 대하여 미국은 왜 주변국들이 반대하는 독일통일을 적극 지지했다고 합니다. 그것은 서독의 정책 때문이었다. 서독은 대외정책 면에서 미국을 적극 지원했다. 예를 들면 소련의 SS-20 중거리 탄도미사일 배치에 대항하여 NATO는 서유럽에 미국제 퍼싱 미사일과 크루즈 미사일을 배치하기로 결정한 바 있었다. 그러나 모든 NATO 회원국들은 결정에 찬성하면서도 자신의 영토 내에 미제 미사일을 배치하는 것을 꺼렸다. 이러한 상황에서 서독이 퍼싱 미사일의 배치를 받아들이면서 와해될 뻔했던 NATO 결정은 이행될 수 있었다. 미정부는 서독에 대해 적지 않은 빚을 안고 있다고 느끼는 상황이었다. 결국 독일통일 과정에서 미국은 서독에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것이다.
미-소간 중거리 핵무기 폐기 협정(The Intermediate-range Nuclear Forces Treaty). 레이건이 소련의 SS-4, SS-5, SS-20 중거리 핵 미사일 모두를 폐기하는 조건으로 미국의 중거리 핵미사일 유럽 배치 계획(464기의 GLCM과 108기의 pershing Ⅱ 미사일을 서독 등에 1983년 12월에 배치예정)을 철회하는 "zero option"을 제안함으로써(1981년 11월) 협상이 시작되었다. 1983년 11월 유럽에 최초 GLCM 부품이 도착(1983년 11월 22일에는 서독 정부가 미국의 pershing Ⅱ 미사일의 서독 배치를 승인)한 후 소련은 INF와 START 兩 회담의 중단을 일방적으로 통보하고 협상단이 철수함으로써 협상이 중단되었다. 그러나 고르바쵸프가 레이건과의 제네바 정상 회담에서(1985년 11월 19일에서 21일 사이에 개최) 15년 안에 전세계에 모든 핵무기를 폐기하는 목표의 일환으로 5-8년 내에 모든 중장거리 핵무기(Long-range INF : LRINF)의 폐기를 제안함으로써 협상이 재개되었다.
처음 5장은 독일의 Pershing 미사일을 견인한 Szm Jupiter 트랙터이며 마지막사진 4장은 Pershing II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