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책을 발행한 의 대표님께서
다음에 올리신 글을 일부 옮겨왔습니다.
그러면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서, 단재 신채호 선생이 쓴 에 나오는
를 소개하겠습니다.
「내가 일찍이 국내외의 고금의 인물들과 이순신을 비교해 보았더니,
국내에서는 고려 때 강감찬 장군이 난리 때에 나아가 큰 난리를 평정한 것이 이순신 장군과 같으나,
적은 군사로 많은 대적을 쳐서 이긴 신통한 모략에서 그는 장군만 못하였고,
정지가 해전을 잘 하여 왜적을 소탕한 것이 장군과 같으나,
나라를 위하여 몸을 바치는 열성에서는 장군만 못하였다.
제갈량(諸葛亮)의 정성과 노력을 다하여 나라 일에 이바지한 곧은 충성심과
큰 절개(貞忠大節)는 장군과 같았으나,
수십 년 동안 한 나라의 정승으로 있으면서 나라의 모든 권리를 손안에 쥐고 있으면서도
결국 옛 도읍을 회복하지 못하였으니, 그의 성공함은 장군만 같지 못하였다.
그렇다면 이 충무공은 결국 누구와 같다고 해야 할까?
근년에 어느 한 선배가 영국의 해군 제독 넬슨(Nelson)씨를 이 충무공과 짝을 지어 말하기를
“고금을 통하여 수군에는 동(東)과 서(西)에 두 영웅이 있었을 뿐이다.”
라고 하였는데, 정말로 그러한가, 그렇지 아니한가?
과연 누가 낫고 누가 못한지 비교하여 한 번 평론해 보고자 한다.
대체로 이 충무공의 이력에는 넬슨 씨와 같은 점이 많은데,
단지 그 해전에서의 뛰어난 능력만 같았을 뿐 아니라 세세한 일까지도 같은 것이 많았다.
초년에는 그 이름이 별로 나지 않아서 아는 이가 거의 없었다는 점이 같고,
초라한 미관말직(微官末職)으로 여러 해 동안 침체(沈滯)해 있었던 점이 같고,
수군의 명장이지만 그 첫 번째 성공은 육지에서의 전투로 시작하였던 점이 같고,
일차 육지에서의 전투 후에는 수군으로 옮겨서 생애를 마칠 때까지 다시 육지에 오르지 않았다는 점이 같고,
여름 더울 때에 전장에서 더위를 먹어 건강이 나빠져 위태롭게 지냈던 점도 같고,
탄환에 여러 번 맞고도 죽지 않았던 점이 같고,
끝내 적의 전함을 다 쳐서 함몰시킨 후에 승전고를 울리고 개가를 부를 때에 탄환을 맞아 죽었던 점도 같고,
임금을 사랑하고 나라를 근심한 열성도 같고,
맹세코 적과 더불어 한 하늘 아래 같이 살지 않겠다고 한 그 뜨거운 마음도 같고,
그 대적하던 적이 강하고 사나웠던 점도 같고,
그 전쟁이 오래 지속되었던 점도 같으므로,
과연 이 충무공과 넬슨을 서로 같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비록 그러하나, 그때에 영국의 형세가 우리나라 임진년 시절과 비교하면 어떠하였으며,
그때에 영국 군사의 힘이 우리나라 임진년 시절과 비교하면 어떠하였고,
당시 영국에서 군사를 거느린 장수의 권한이 우리나라 임진년 시절과 비교하면 어떠하였으며,
당시 영국의 전쟁 및 방어 능력이 우리나라 임진년 시절과 비교하면 어떠하였는가?
당시 영국인들은 수백 년 동안 열강의 여러 나라들과 경쟁하던 끝이어서 전쟁에 익숙해 있었고
오랫동안 전쟁을 연구해 왔기 때문에, 인민들도 적을 미워하는 사상이 넉넉하여,
사람마다 적을 대함에 있어서 뒤로 물러나는 것을 부끄럽게 여겼기 때문에, 영웅이 그들을 쓰기가 쉬웠으며,
나라의 금고에는 수억 만 파운드의 재정이 있어서 군비가 결핍되지 않았으며,
기계공장에서는 수백 대의 대포를 제조하여 무기를 계속 공급할 수 있었고,
각 부대의 병졸들은 편히 앉아서 죽는 것을 즐기지 않고 모두들 한번 싸우기를 원했으며,
각 항구에 있는 큰 배들은 비록 값은 받지 못하더라도 전장에서 한 번 시험 삼아 쓰이기를 기다리고 있었고,
조정에서는 전심전력으로 군비의 수요를 충당해 주었으며,
전국의 인민들은 침식을 전폐하고 군중에서 승첩의 소식이 오기를 기도하였으니,
그러므로 넬슨은 아무런 깊은 지모(智謀)와 원려(遠慮) 없이 다만 뱃머리에 높이 앉아 휘파람이나
불고 있더라도 성공하기가 쉬웠을 것이다.
그러나 이순신은 그와 같지 않았다.
군량이 완전 바닥이 난 상태에서 자신이 그것을 준비하지 않으면 누가 준비하며,
무기라는 것들이 모조리 낡아빠지고 둔한 것들이니 자신이 무기를 직접 새로 만들지 않으면 누가 만들며,
군사들은 이렇게 숫자도 적고 힘도 쇠약하니 자신이 직접 군사를 모집하지 않으면 누가 모집하며,
배들의 운행이 이렇게 느리고 둔하니 자신이 이것을 개량하지 않으면 누가 개량할 것인가.
그래서 한편으로는 전쟁하고, 한편으로는 둔전(屯田)을 만들어 군량을 저축하고,
철을 캐어 병기(兵器)를 만들고, 배를 만드는 일에 골몰하느라 틈이 전혀 없는데도 불구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동료인 원균(元均)과 같은 자들의 시기와 모함을 당하고,
또 한편으로는 조정의 여러 간신배들의 참소(讒訴)함을 입었으니,
아, 나는 생각건대, 넬슨이 만약 큰 적이 자기 나라를 이미 거덜 내버린 때를 당하여,
이순신과 같이 여러 가지 곤란을 당하였다면 과연 성공할 수 있었을는지는 단언하기 어려운 문제라 할 것이다.
더욱이, 마지막에 원균이 패전하여 조선 수군을 몽땅 잃어버림으로써, 이순신이 육칠년 동안 노심초사하여
교련해놓은 날랜 장수와 건장한 군사들, 군량과 배들을 한꺼번에 모두 화염 속에 쓸어 넣어버렸으며,
그 후에 겨우 십여 척의 깨지다 만 배와 1백6십 명의 새로 모집한 군사로써
왜적의 장수들인 모리휘원(毛利輝元)과 평수가(平守家)와 소서행장(小西行長)과 가등청정(加藤淸正) 등을 만나서
바다를 덮어 오는 수천 척의 적선과 더불어 서로 싸우려고 할 때, 그는 당당하게 조정에 대하여 말하기를,
“신에게는 아직도 열두 척의 배가 남아 있습니다.
적선이 아무리 많다고 하더라도,
신이 살아있는 한 적들은 감히 우리를 업신여기지 못할 것입니다.”
라고 하면서 바다로 나아가 한 번 큰소리로 호령하자 물고기와 용들이 그의 위엄을 도왔고,
하늘과 해가 빛을 잃었으며, 참담한 도적의 피로 바닷물을 붉게 물들였으니,
이렇게 한 것은 오직 충무공, 오직 이(李) 충무공뿐이다.
이 충무공 외에는 고금의 수많은 명장들을 다 모아놓고 보더라도 이 일을 능히 해낼 수 있을 자 --
실로 없을 것이다.
아! 저 넬슨이 비록 영무(英武)하다고는 하나 만일 오늘날 20세기에 서로 대등한 전함과 무기로
해상에서 이순신과 서로 만난다면, 이들 둘의 차이는 필경 하늘과 땅의 차이와 같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보면, 세계에서 수군에서 가장 뛰어난 자를 말할 때는 모두 넬슨을 먼저 꼽아 말하며,
영웅을 숭배하는 자는 반드시 넬슨의 초상화를 가리키며,
역사 기록을 말하는 자는 반드시 먼저 넬슨의 전기(傳記)를 말하며,
군인의 자격을 양성하고자 하는 자는 반드시 넬슨의 이름을 외우고 넬슨의 자취를 사모하는바,
그리하여 생전에는 영국 한 나라의 넬슨이었으나 그가 죽은 후에는 만국의 넬슨이 되었으며,
생전에는 유럽 한 지역의 넬슨이었으나 사후에는 6대주(大洲)의 넬슨이 되었다.
그러나 이 충무공은 중국의 역사서에 그 싸우던 일이 약간 기록되어 있고, 일본에서 그 위엄을
두려워할 뿐, 그 외에는 본국의 나무하는 아이들(樵童)과 소 먹이는 아이들(牧豎)의 노래 마디에 오를 뿐이며,
세계에 전파되어 알려질 만한 역사로는 철갑선을 창조한 한 가지 일에 지나지 못하니,
아! 영웅의 명예는 항상 그 나라의 힘을 따라서 높아지고 낮아짐이로다.
무릇 수군 중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이 있었고 철갑선을 창조한 나라이면서도,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저 해군이 가장 강한 나라(英國)와 비교되기는커녕 끝내 나라의 명색조차
없어질 지경에 빠졌으니, 나는 저 수백 년 이래 백성의 기운을 꺾고, 백성의 지식을 막고,
거짓된 정치(文治)의 사상을 주입시켰던 비루한 정치객의 여독(餘毒)을 생각하면 한(恨)이 바다처럼 깊어진다.
이에 을 지어 고통에 빠진 우리 국민에게 널리 전하여 읽히도록 하는 바이니,
무릇 선남선녀는 이것으로 모범을 삼기 바란다.
하느님께서는 20세기 태평양의 둘째 이순신을 기다리고 계시느니라.」
별니의 최근 게시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