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년전 10월23일 왕십리역 나는 논산연무대로 향하는 기차에 올라탔고 차창밖에는 눈물짓고있는 나의 어머니 그리고 지금은 아련한추억이 되어버린 내 첫사랑 논산행 열차는 참지겹게도 느렸다. 의자한칸에 장정셋이 앉아있으려니 좁아터져서 죽겠건만 통로마다 지키고 있는 헌병들 땜에 꾹참고 갔던 기억이 난다. 수용연대도착 먼저와있던 경산장정들이 우리밥까지 타놨다고 밥먹으랜다 군대와 첨먹어보는 짬밥 내기억에는 꽁치된장국이었던것 같다. 식은국 한수저 떠보고 비린내에 도저히 못먹고 버렸다. 사흘전에 경산장정들어왔고 오늘 서울장정 몇일후에 광주장정들어오면 같이 연무대 즉 훈련연대로 투입된단다. 삼년을 같이할 동기들이다. 중간중간 갑종받은 동기들은 하사관으로 차출되고 - 하사관학교 안갈려구 도망다니는 동기들도 여럿봤는데 결국 다끌려간다 ㅋ 어느날은 검은베레에 멋진얼룩복을 입은 장교가 와서 특전사에 와서 보람차고 멋진 군생활을 하자구 떠들기도 했다. 동기들은 특전사로도 빠져나갔다. 수용연대 온지 일주일 짬밥이 조금씩 입에 맞아갈때 훈련소 투입 30연대로 들어갔다 그러나 우리기수는 그당시 제2훈련소 새훈련교장 건설땜에 거의 훈련보다는 사역으로 하루종일 질통아니면 단가들고 흙이나 돌을 퍼날랐다. 태권도 총검술을 저녁식사 끝나고 침상에서도 배웠다. 그당시 피알아이교장은 나무기둥에 기와지붕이었던걸로 기억되는데 그것을 쇠파이프기둥에 스레트지붕으로 산뜻하게 교체했다. 훈련소 들어가서 가장힘든것은 항상 뛰지않으면 사역을 하니까 훈련병들은 걸어도 속보로만 걸어야 되었다- 배가 항상 고팠다. 피엑스를 훈련병들은 이용을 못하게 해서 돈이 있어도 못사먹었다. 그래도 어쩌다가 훈련병과 기간병이 아는사이면 살짝 설사빵을 사다가 주고는 했다. 그당시 설사빵이라 하면 지금으로치면 단맛이좀더나는 햄버거빵처럼 생긴걸로 기억이 난다. 기간병들 눈을 피해서 2-3명이서 냄새 풀풀나는 화장실에서 -당시는 전부 푸세식- 맛나게 먹었던기억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