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방위산업체 HDW사에 최신 214급 공격용 잠수함 4척을 주문한 그리스가 최근 '돌이킬 수 없는 설계.제작상의 하자'를 이유로 첫 건조된 그리스형 1호함의 인수를 거부했다.
일간 엘레프테로티피아를 비롯한 그리스 언론들은 "그리스 해군이 독일에서 건조된 1호함을 대상으로 두 차례 시험을 한 결과 성능이 원래 요구에 못 미치는 데다 심각한 설계.제작상 하자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인수를 거부했다"고 최근 일제히 보도했다. 현지 언론들은 "잠수함이 45~50도까지 옆으로 기울고 일부 누수 현상까지 있다"며 "더욱 큰 문제는 장시간 잠항에 필수적인 공기불요추진시스템(AIPS)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자주 수면으로 부상해야 한다는 점과 추진 스크루의 소음이 심해 적에게 노출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또 "이 문제로 양국 정부는 심각한 외교적인 마찰을 빚고 있다"고 전하고 "제작사인 HDW는 이번 인수 거부 파장이 동일 기종의 잠수함을 선택한 한국.터키로 번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국 해군도 2000년 말 214급 잠수함 3척을 약 9600억원의 가격에 주문했으며, 2003년부터 HDW로부터 설계 도면과 자재를 넘겨받아 울산 현대중공업에서 건조 중이다. 올 6월엔 한국형 1호함인 손원일함이 진수돼 현재 시운전 중이다. 인도 시기는 내년부터 2009년까지 1년에 한 척씩이다. 214급 한국형은 그리스형과 잠수 시 배수량 등 군 요구에 따른 일부 사항을 제외하곤 설계가 동일하다.
그리스 해군은 2000년과 2002년 HDW로부터 214급 잠수함 4척을 도입하기로 하고 17억 유로(약 2조400억원)에 계약했다. 그중 한 척은 독일의 킬 조선소에서, 나머지는 그리스의 스카라만가스 조선소에서 건조하기로 했다. HDW에는 이미 총액의 약 80%인 13억 유로가 지급됐다.
독일에서 제조되는 1호함의 인도 예정 시기는 원래 지난해 9월이었으나 올 1월, 9월로 계속 미뤄졌으며 하자 발견 때문에 아직도 그리스 측에 인도되지 못하고 있다. 비슷한 문제점이 그리스가 스카라만가스 조선소에서 건조 중인 동형의 잠수함에서도 발견돼 그리스 측은 제조보다 설계상 결함에 무게를 두고 있다.
그리스 일부 신문은 "실제로 검증되지 않고 설계 도면상으로만 존재하는 무기체계를 구입하기로 결정했다는 점에서 이번 거래는 처음부터 위험한 거래"라고 비판하고 있다.
이에 HDW 측은 "심각한 문제가 아니며 이른 시일 안에 해결할 것"이라면서도 사태를 무마하기 위해 그리스 측과 마라톤 회의 끝에 최근 계약을 수정하기로 합의했다. 독일 측이 인도 일정을 제대로 지키지 않을 경우 그리스가 HDW에 위약금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준 것이다.
독일 일각에선 그리스가 잠수함의 기술적 하자를 필요 이상으로 부풀리는 것으로 여기고 있다. 독일 해군연구소가 운영하는 군사 전문 인터넷 사이트 '머린 포럼'은 "그리스 정부가 재정 상황이 악화되자 작은 하자를 문제 삼아 잔금 지급을 미루거나 위약금을 타내려 시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국 방위사업청과 해군 관계자는 "그리스가 도입할 잠수함에 문제가 있다는 얘기를 듣고 우리 해군에 납품될 214급 잠수함에도 같은 문제가 있는지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손원일함을 내년 12월 해군에 정식 인도하기 전 시운전.검사 과정에서 결함이 발견되면 보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만일 독일이 그리스에 납품한 214급 잠수함과 같은 결함이 한국에서도 발생하면 해군에 납품할 수 없으며, 만일 그런 문제를 보완하느라 인도 시기가 늦어지면 제조사가 책임을 물도록 돼 있다"고 덧붙였다.
(기사출처 : 중앙일보 베를린=유권하 특파원, 서울=김민석 기자) 위 사진은 본 기사와는 무관한 것으로 우리해군의 214급 일번함 SS072 손원일함 진수식 모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