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음속 전략폭격기 B-58 Hustler 첫비행 50주년

슈퍼스탈리온 작성일 06.11.23 18:3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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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음속 전략폭격기 B-58 Hustler 첫비행 50주년



1956년 11월 11일 첫비행을 실시한 B-58 Hustler 초음속 폭격기가 벌써 첫비행을 실시한 지 50주년이 되는 2006년입니다.
사진은 Dick Dirga라는 사진작가의 사진으로 B-58 폭격기의 실제 운용기지에서의 모습으로는 처음 접하게 되는 큰 사진으로 생각합니다.

미 공군은 1949년 3월에 B-52기를 발주한 지 1년도 되기 전에 B-58 초음속 폭격기 개발에 착수하여 1959년부터 실전에 배치하였습니다. 그러나 B-58은 속도에만 치중한 나머지 항속거리나 무장탑재 능력이 빈약하여 1970년에 B-52 보다 먼저 퇴역하였습니다.

다음 글은 네이버 밀리터리, 군사무기 카페에 쿵디담님이 올려주신 글입니다.

올해는 고도의 기술을 구사한 냉전시대 최첨단의 초음속폭격기 B-58 허슬러(Hustler)가 컨베어사의 공장에서 롤-아웃한지 꼭 50년이 되는해입니다. 바늘처럼 날씬한 동체에 높게 솟아오른 꼬리, 이전의 어느 엔진보다도 거대한 4개의 엔진포드, 마치 모기다리처럼 길고 가느다란 랜딩기어를 처음 본 사람들은 그 특이한 외형에 놀랐고, 이어진 여러차례의 비행에서 선보인 성능에 또한번 경악을 금치못해야만했습니다.
2차대전 종전후 본격적인 제트시대에 접어들고나서 강대국들의 항공기술은 눈에 띄게 발달했고, 전투기분야에서는 가끔 미국제 전투기에 필적하거나 동등 이상의 성능을 보여준 기체들도 개발되었습니다만, 폭격기분야는 미국의 독주가 이어졌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이 허슬러의 계획은 1949년부터 개념연구가 시작되었고, 그 당시 미국의 뒤를 바짝 쫓는 영국, 소련은 그제서야 아음속 제트폭격기의 요구사양서를 작성하고 있었으니까요.

이 계획은 그당시 거인폭격기 B-36 피스메이커(Peacemaker)를 인도하고 있었고 이미 델타익 초음속실험전투기 XF-92 델타다트(Deltadart)를 연구했으며 F-102 델타대거(Deltadagger)라는 실전형 초음속요격기를 개발중인 경험을 높이 사서 컨베어사의 제안이 가장 유력한 후보로 떠올랐습니다.

하지만 같은 초음속기라 하더라도 수톤에서 수십톤에 달하는 폭탄을 싣고 장거리를 비행해야만 하는 폭격기는 전투기와는 전혀 다른것이었고 또 이러한 대형기를 초음속으로 날게해줄 엔진도 없었습니다. 첨언하자면 음속의 2배로 비행하는 폭격기는 같은 크기의 아음속폭격기와 비교하면 대략 5배의 공기저항을 받게되므로 5배의 추력(!)과 5배의 연료가 필요로 하게됩니다. 이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할 경우는 항속거리가 15분의 1로 떨어지게되어 있으나마나한 폭격기가 되어버리는것입니다. 이런 딜레마를 벗어나자면 뭔가 꽁수에 가까운 요령이 필요한것은 분명했고 그에따라 처음에는 기생폭격기 (Parasite Bomber)개념이 연구되었습니다. 이 개념의 요지는 탑재모기로 동사의 초대형폭격기 B-36이 내정되었고 동체하부에 매달고 적성국의 영공근처에서 초음속으로 발진시켜 방공망을 돌파하는 전술인것입니다. (그럼 돌아올때는 어쩌란 말이냐 ㅡ,.ㅡ;;)

이것과 거의 동시에 기생전투기(Parasite Fighter) XF-85 고블린(Gobllin)등을 골자로 하는 FICON Project도 추진되었지만 실험결과는 모두 회의적이었고 귀환방법이 문제라서 그에따라 계획자체가 백지화되고말았습니다.
그래서 개발진이 내린 결론은 기체크기는 될수록 작고 가늘게만들고 여분의 연료/무장은 별도의 탈착식 유선형 포드(Pod)에 내장하고,공격후 투하시키면 내부에 적재된 소량의 연료만으로 초음속으로 귀환할수있는 소형비행체로 탈바꿈시킨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리하여 MX-1626이라 명명된 이 계획이 구체적으로 설계가 본격화된것은 1951년부터였고, 동시에 제네럴 일렉트릭사에서 엔진을 개발하기 시작했으며 이 엔진은 J-53을 거쳐 J-79엔진으로 완성되었습니다. 엔진이 완성된 이후 이 J-79를 4개 장비하기로 결정된후부터는 계획명칭이 MX-1964로 수정되었고, 원형기 2대를 정찰형과 폭격기형으로 시험제작하기로 계약이 체결되었습니다.
(그러나 정찰형은 생산되지 않았습니다.)

계약내용에는 제작사인 컨베어사가 제작, 정비, 군수지원체계구축, 그밖에 승무원 훈련, 시뮬레이터 개발, 심지어 교범 인쇄까지 책임질것을 명시했는데 이로 미루어보아 미 전략공군사령부(SAC)가 컨베어사의 능력을 상당히 신뢰하고 있었다는 점이 짐작됩니다.

1956년 11월 11일, 컨베어사의 주임 테스트파일럿 <베릴 A. 에릭슨>의 조종으로 활주로를 박차고 이륙중인 허슬러의 원형기 XB-58은 J-79엔진의 개발이 완성되지않은 시점부터 시험비행을 실시했고, 그 결과는 이 걸작엔진에도 서로 피드백 되고있었습니다.
1953년 3월 발견된 면적법칙에 따라 처녀비행하기전에 동체형상을 형태로 수정했고 덕분에 초음속비행을 별다른 어려움없이 성공시켰습니다.
최초비행에서는 기체하부의 포드는 장비하지 않고 비행을 했으며 분당 14,000m의 상승률은 폭격기는 물론이고 이전의 그 어떤 전투기도 따를수 없는 고성능이었습니다.
수평미익이 없는 델타익이므로 허슬러의 조종면은 3개밖에 없지만 고속에서 조종성이 둔해졌으며 그에따라 벤딕스사에서 기존의 조종장치보다 100배나 강력한 조종서보를 개발해냈으며 스페리사에서는 정밀 자립항법시스템을, 해밀톤-스탠다드사에서는 초음속시 뜨거워지는 캐빈의 온도를 낮춰줄 냉각장치와 공조시스템을 만들어내었습니다.
허슬러는 귀환시 거의 대부분 초음속으로 비행하도록 구상되었고 실제로 200대도 안되는 소수가 만들어졌지만, 미공군의 마하2비행시간의 75%를 이 허슬러가 차지했습니다.
장시간의 초음속비행시 발생하는 공기와의 마찰열에 견디기위해 주재료를 경합금이 아닌 스테인레스 스틸을 쓴점도 독특합니다. 위 기체는 양산원형기에 해당되는 YB-58A로 특이한 콕핏의 배치를 잘 보여줍니다. 각각 맨앞은 조종사, 중간은 항법사겸 폭격수, 맨 뒤는 DSO(방어시스템조작사)가 독립된 사출식캡슐에 탑승하도록되어있으며, 이전까지의 거대하고 안락한(?) 전략폭격기와 비교하면 상당히 불편한, 한마디로 폭격기승무원에게는 생소한 기체였습니다.
가늘고 긴 착륙장치는 2단으로 접혀져 수납됩니다. 기수의 대형레이돔은 마하 2의 속도로 우박등과 충돌해도 견딜수있도록 특별히 강화되었습니다.
동체하부의 문제의 포드는 BLU-1과 소형의 MB-1두가지가 있는데 임무에 따라 선택장비 하며 앞뒤로는 연료를 채우고 중앙부에 폭탄을 탑재하는 구조로 음속돌파 이전에 투하해야만합니다.

포트워즈에 위치한 컨베어사의 공장에서 제작중인 허슬러의 양산기 B-58A로 주날개 외피의 접합은 전통적인 리벳팅식이 아닌 특수한 유기화합물 접착제로 이루어졌습니다. 첨단기술이 적용된 만큼 당연한 일이지만 이 기체는 최고수준의 품질관리가 필요했고 당시 기체로는 상상외로 비싼 1천 2백만달러가 넘는 인도가격때문에 대량생산되지는 못했습니다.

허슬러는 1960년 8월 1일부터 커스웰 공군기지의 제43폭격비행단에 처음 실전배치되었습니다. 5주후에 개최된 연례폭격 경기에서 B-47과 B-52의 베테랑승무원들을 제치고 기록적인 득점으로 우승했습니다. 1962년부터 제43폭격비행단은 속도/고도부문에 걸쳐 모두 18개의 세계기록을 수립했습니다. 허슬러가 세운 주요한 속도/고도기록은 다음과 같습니다.
1. 2,000kg의 페이로드를 탑재한 상태에서 1,000km의 원형 순환코스를 2,070km/h의 속도로 비행하여 <톰슨 트로피>우승.
2. 2,000km/h의 속도로 30분간 비행한 최초의 항공기.
3. 커스웰 기지에서 프랑스 파리에어쇼 참가차 비행시 평균속도 1,600km/h (이 기록은 후일 콩코드와 동일한 기록입니다.)
4. 5,000kg의 페이로드를 탑재하고 26,000m까지 상승한 최초의 항공기.
5. 벙커힐 기지에서 이륙하여 동경과 런던까지 14,700km 무착륙비행.

허슬러의 무장은 중앙의 포드시스템에 자유낙하식 핵폭탄 5발과 좌우 각 1개의 파일런에 3,400Kg을 더 장비할수있습니다. 이 기체는 당시 가용한 모든 기술을 동원한 정밀한 기내장비로도 유명합니다. ASQ-42(V)폭격/항법장치, INS와 천측 자립 항법장비, 전파고도계, 후일 추가된 저공침투용 도플러레이다등 처음 개발된 항공전자장비가 많아 정비소요도 커졌으며 적어도 14가지이상의 장비가 고장나있는채로 임무비행을 할때가 비일비재했다고합니다. 이런 운용상의 복잡함과 과다한 정비소요는 안그래도 비싼 운용비를 천정부지로 치솟게했고 결국은 1970년 1월 31일 퇴역하여 투손의 데이비스 몬탄 항공기 보관소로 옮겨지게 되었습니다.

그밖에 자체방어목적으로 레이다 조준 원격조종 20MM기관포가 1문 테일건으로 고정장비되며 탑재탄수는 1,200발입니다. 포신위의 테일 페어링안에는 ECM방어장비와 테일건 조준용레이다가 내장되어있습니다. 위의 사진에 보이는 것은 허슬러의 승무원이 각각 탑승하게되어있는 비상탈출용 캡슐입니다. 이런 방식의 탈출캡슐이 장비된것은 B-58이 세계최초로써, 마하 2의 비행속도와 2만m 이상의 고도에서도 안전하게 탈출할수있도록 설계되었습니다. 이 장비도 허슬러의 선진성을 돋보이게하는 기술적인 개가로, 독립 여압시스템과 별도의 산소공급장치를 구비했으며 수면에 착수할 경우에 대비하여 완전밀폐식으로 제작해 일종의 구명보트역할도 하게되어있습니다. 내부에는 낚시도구와 비상식량, 증류수, 서바이벌장비, 심지어는 선탠 로션까지 비치되어있다고합니다.

< B-58의 각형식 >
XB-58 : 2대만 제작된 J 79-1엔진을 장비한 원형기로 사내명칭 <모델 4>
YB-58A : 11대 생산된 양산원형기로 그중 9대는 후일 B-58A로 개조됨.
B-58A : 3개의 블럭으로 (10, 15, 20) 나뉘어 J 79-5B 또는 5C엔진을 장비하고 86대가 생산됨.
B-58B : 추력강화형 J 79-9엔진을 장비한 항속거리/탑재량 증가형. 59년에 취소.
B-58C : 프랫&휘트니 J 58엔진을 장비한 확대발전형이었지만 고고도요격기형인 B-58D와 B-58E와 함께 취소.
NB-58A : YB-58A를 개조해 제네럴 일렉트릭 YJ 98-3엔진을 장비한 XB-70폭격기 엔진 실험테스트 기체.
RB-58A : 17대만 개조된 다중센서 장비 정찰기.
TB-58A : 작전 훈련기.
GV-58-9 : 동체길이를 연장하고 42개의 좌석을 설치한 초음속여객기. J-58엔진 4대를 장비할 예정이었지만 취소

제원
형식 : 4발 3좌 초음속폭격기
제작사 : 컨베어(Convair)
원형기 초비행 : 1956. 11. 11.
전장 : 29.49m
전폭 : 17.32m
전고 : 9.58m
익면적 : 143.35평방m
공허중량 : 25,200kg
최대이륙중량 : 73,900kg
공중급유후 최대중량 : 80,300kg
동력 : 제네럴 일렉트릭 J-79 - 5B 터보제트엔진 (후연기 사용시 7,080kg) X 4
최대속도 : 1,130km/h(해면고도), 2,130km/h(고고도)
순항속도 : 985km/h
항속거리 : 8,250km
무장 : B-43, B-61 등 6종류의 핵폭탄 8,800kg
방어용 20mm T-171 기관포 1문 (1,200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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