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무전투경찰순경

uamjw 작성일 07.03.02 08: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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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무전투경찰순경 이말은 우리가 알고 있는 의무경찰 또는 의경의 정식명칭입니다

전경의 정식명칭은 작전전투경찰순경으로 알고 있습니다

전투 경찰대 설치법에 나와 있는것을 경찰학교시절 본것 같네요

저는 의무전투경찰순경 출신입니다 일명 새끼경찰이라고도 불리고 짭새 짜바리 포돌이 포졸이 등으로 불립니다

제일듣기 좋은건 경찰아저씨겠죠?^^

제가 입대할 당시 02년도 월드컵의 4강열기가 후끈!! 달아오르고 월드컵이 끝날무렵 입대를 하였습니다

당시만해도 편하디 편한 그리고 육군의 생활피하려고 선택한다고들 많이 했죠

지금도 그런말은 듣습니다^^;;

요즘은 부대내구타와 가혹행위 폭력경찰 과잉진압 인권의 사각지대라고 불려지더군요

솔직히 저는 의무경찰이 무엇을 하는지 왜 이런 제도가있는지도 모르고 해군을 가려고 증명서도 떼고 하던중

운명적인 학교 형님의 권유로 지금지원하면 3개월내에 군대갈수있다 는 말에 솔깃하여 증명서들을 해군이 아닌 경찰서로

넣었습니다 그형님은 지금도 전화하면 미안하다고 합니다..ㅡㅡ;; 그형은 당시 서울2기동대출신

논산에서 4주간의 교육 경찰학교의3주간 교육은 눈깜짝할 사이에 지나가 버리고 자대배치의 순간이 다가 오더군요

혹시나해서 중대명칭은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그래도 제가 전역한 중대이기에 누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여^^;;

(참고로 다행히 서울은 면하고 지방으로 갈수 있었음 서울은 경찰학교에서 기피대상이죠

많은근무와 많은 시위진압으로 너무 고된생활을 알았기에..)

자대배치를 받자마자 솔직히 말씀 드리겠습니다 가혹행위와 구타 심하게 받았습니다

이유도 없었습니다 군생활을 빨리적응하라는것이 이유라면 이유였겠죠 또하나는 훈련으로 끝나는 상황은 없었습니다

모든 상황이 실전으로 이어지기에 다치지말고 저신차리라는 의미였겠죠

하지만 그것보다 저를 더힘들게 했던건 각종 시위출동이였습니다

처음 출동에선 너무긴장한 상태라 그런지 현기증과 구토까지 일으킬 정도였으니 그 심리적 압박과 공포는 이루말로 설명할수 없었습니다 시위대의 각목과 죽창 쇠파이프 발길질 방패를 들고 있을 힘조차 그들을 막아낼 방어 행동조차 할수 없었습니다  하이바의 턱끈사이로 땀은 가득히 차고 눈앞은 보이지않고 눈물까지 흘렸습니다

나 저들이 동의하지않는 정책을 편일도 그들의 주장을 반대하는 일도 태어나 처음만난 사람들에게 그런일을 당하는것은

생지옥이 따로 없더군요

언제나 그렇듯 출동후에는 경찰버스안에서의 훈계와 기압 그리고 구타가 이어지곤 하죠

만약 오늘이 시위대에게 뚫리는 날이었다면 그시간은 길어질테구요

겨울날 깜깜한 버스안에서 그렇게 기압을 받고나면 창문안에는 우리들의 땀과 열기??로 김이서려 창문이 뿌옇게 되죠

처음에는 너무 겁에질려있었지만 그것도 적응되니 아무생각이않나더군요

가끔 부모님과 여친이 잘있나 하는 생각??  그것외에 아프다 군생활하기싫다 고참에게 분노를 느낀다

이런 여유가 없어지게 됩니다 그생활에 점점 길들여지고 나또한 그런 폭력에 무감각해져 가게 되더군요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 확실한것 같습니다^^;;

또하나 생각을 되도록 하지않으려 한것은 소대장님의 말씀 군인이 생각이 많으면 나라가망한다

명언이죠 시위대가 우리에게 무어라하든 언론이 패륜아 폭력경찰이라하든 우리에게 주어진 임무에 충실하면 그것이 전부라고 생각했습니다 솔직히 그런말에 일일이 신경쓴다면 죄책감과 두려움등으로 아마 미쳐버릴지 모릅니다

02년말 효선이 미선이 사건을 기억하시는지요? 아마 잊혀진 기억중 한켠에 자리잡은 분들이 많을것이라 생각됩니다

하지만 저는 항상 그런일들에게 사로잡히고 갇혀 살고 있답니다

시청앞 사거리에서 촛불을 든 수많은 시민들의 모습 내앞뒤로 서있었던 수많은 전의경들 그리고 미국대사관...

아직도 생생하군요..미국딱가리 미국의개 란 소리까지 들으며 평정심을 찾으려 노력했지만 그수많은 인파들을 보니 신병인 저에게 숨이 막힐듯한 두려움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 두소녀의 죽음은 저에게도 슬픈일이었지만 대한민국 모두가 느낀 분노와슬픔을 우리전의경들은 방패뒤에 감추어야만 했으니까요 진정 분노와슬픔을 느낀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어느미군기지앞에서 효선이와 미선이의 추모행사를 한다하고 하는 그들의 행동..여러 모단체들이 모여 진정한 추모의분위기와 그들을 기리는 행동은 3시간이넘는 시위동안 10분이 않되더군요

모두 그들의 주장과 이해관계를 주장할뿐..분노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말하겠죠 추모를 방해하지말라

폭력경찰 물러가라..그리곤 언론은 자기멋대로 쓰고 말하겠죠 평화추모시위에 경찰들의 과잉진압.....

그날 저희는 그들의 입장을 고려하여 방패도 봉도 진압복도 최소한의 머리를 보호할 하이바도 쓰지 않았습니다

저는 날아오는 날에 맞아 이가 부러져 한동안 밥을 제대로 먹지 못했는데도 경찰의 과잉진압이라 하더군요

전북 부안이라는곳을 아십니까?

03년 학폐기장 건설반대를 외치며 주민들이 거센 시위를 했던곳입니다 매일밤 경찰병력으로 군청을 사수해야했고

밤마다 날아오는 돌과 썩은 젓갈 불붙인 타이어 LPG까스통 낫 죽창 그리고 수십명씩 엠블런스에 실려가는 우리대원들

그렇게 한개소대정도가 매일밤마다 다쳐나가고 다친대원들을 보충하러 각중대가 부안으로 올라오곤 했습니다

당시 경찰병원의사가 그랬다죠 얘들 얼굴좀 찢지말라고 이제 꿰매는것도 너무많이 꿰매서 동물꿰매는것 같다고 얘들 밥은먹어야되지 않겠냐고 하지만 언론의 눈은 시위대만 바라봅니다

그것이 돈이되고 호응을 얻기 때문이죠 그것이 저희들을 더힘들게 합니다 인권위원회의 전의경인권실태조사이런것 집어치우고 왜곡이나 하지말았으면 합니다 하루하루 땀으로 젓어있는 그들에게 눈물까지 젓게하지말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출동할때 버스안의 풍경은 간간히 들려오는 무전소리와 고참의 교양소리 그외엔 정적이 흐릅니다

그 고요함에 조용히 요동치는 가슴속에 묻어둔말.. 오늘도 무사히...오늘도 무사히 제발 오늘도 무사히...

전의경 주 5일제를 실시 한다고 합니다 전의경은 쉬는날이 없습니다 부대정비라해서 한달에 두어번 나오지만 매번 출동과 겹치게 마련이지요 3달동안 한번도 쉬지못한 적도 허다합니다

쉬는날을 보장하는것은 좋은일입니다만 좋지만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대부분의 현역 전의경들과 전역한 분들도 큰 기대하지않고 있는것이 현실입니다 기사의 내용을 빌리자면 현재 상설중대에 속한 전.의경의 1주일 평균 근무시간은 70.9시간으로 주 5일제 법정근로시간 40시간의 177%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근로자와 똑같은 환경을 요구하는것이 아니라 최소한의 취침시간은 보장하여야 할것입니다

그리고 조사결과 주70.9시간이라 하였는데 하루 10시간이 됩니다 어떻게 이런결과가 나왓는지 모르겠으나 제 경험상으론

마약 출동이 있을 경우 8~24시간 뻗치기 근무 출동후 방범교통근무만 하루10시간이 넘습니다

주야는 수시로 바뀌어야하고 새벽4시이전에 들어올경우 기상은 7시입니다. 고참들은 그나마 취침시간이 보장되겠으나 신병의 하루취침시간은 고작 4~5시간이었습니다 불침번이라도 서게된다면 더 줄어들겠죠..

새벽 2시에 방범근무가 끝났다 치더라도 새벽5시 출동이면 잠은 포기해야합니다

전의경들은 일년에 정해진 진압검열이라 하여 시위진압 훈련을 받습니다 이훈련이 때론 두달이상이가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많은출동으로 계속 연기되고 그사이엔 쉬는날이 잡히면 훈련을받죠 훈련이없다해도 관내의 교통이나 방범근무지원을 나가죠  부대정비일이라 쉬는날이라고 정해져있지만 훈련받고 교통근무 방범근무하는것이 쉬는 날이되는 이상한 근무형태를 보이고 있습니다 현제는 병력수급과 군복무단축으로 인원은줄고 치안수요는 늘기에 이런 현상 더 심해지고 있습니다

출동외엔 보장한다??? 말이안되는 소리죠 저런 시간외에는 보장하겠지라고 생각할수 있겠지만 저런경우가 한달의 반 이상을 차지합니다 일년의 정기적인 시위들이 있습니다 봄이되면 임금협상 그리고 총파업 여름이면 한총련과 통일선봉대의 국토행진 중간중간의 미군기지와 교도소등지의 시위 가을 화물연대와 양대노총들의 파업 겨울이면 농민들의 FTA반대와 각종 상경시위 작은시위들만빼고 얘기해도 1년의 반을 차지합니다 장기출동이라도 걸리면 부대에 언제 돌아올지도 모르는데 주5일제보장이라...취침시간이라도 보장되어 우리후배님들 고생좀 들했으면합니다

군복무당시 새여섯이라는 책이 출판되었던적 있습니다

현직 경찰관분이 의경복무시절 겪었던 이야기를 담아둔 책입니다 (참고로 새여섯은 당시 대원들의 진압복과장비를 착용하라는 경찰무전암호였다) 그중 한부분을 담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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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8월 21일, 마침내 작가는 시대가 자신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들을 모조리 빼앗아 갈 수 있음을 목격한다.

버스가 달려오는 굉음 소리에 아차 싶어 고개를 들었지만 내 눈 바로 앞에 악마의 눈을 한 버스가 날 덮치려는 순간이었다. 그 순간 누군가 "피해!" 고함치며 날 옆으로 밀쳐내 난 옆으로 쓰러졌다.

그 순간 무언가 둔탁한 소리와 함께 버스 좌측 앞 모서리 부분에 부딪혀 허공으로 붕 떠 튕겨나가는 눈에 익숙한 복장의 마네킹 같은 게 보였다.

누군가 급히 방독면을 벗어 던지며 쓰러져 있는 마네킹에게 달려가 마네킹의 머리를 받쳐들고 이리저리 살펴보기 시작하였다. 난 그때까지만 해도 길에 쓰러져 있는 것이 마네킹일 것이라며 멍하니 그대로 서 있었다.

난 그 마네킹에 가까이 가서야 그것이 동기생 진현이었고 진현이의 머리를 받치고 있는 사람이 진현이의 분대장이란 것을 알았다. 진현이는 초점없는 눈동자가 흔들리며 의식을 잃은 상태에서 몸을 부르르 떨고 있었다.

진현이의 머리에서 흘러나오는 피가 방석복을 빨갛게 물들이고 나서야 난 사태를 파악하고 그에게 달려들었다.

고 권진현 대원이 안치되어 있는 병원의 영안실을 제일 먼저 찾아온 것은 여고생이었다.

진현이의 영정 앞에 하얀 국화꽃 한 송이를 헌화한 그 여고생은 한동안 말없이 고개 숙여 흐느꼈다.

'진현아 너는 외롭지 않겠구나….'

경찰국 상무관 앞에서 장례식을 치르던 날 유족의 조사 중 "시위대 학생이 죽으면 열사가 되고, 진압대원이 죽으면 개죽음이란 말입니까" 하고 절규하던 소리가 지금도 생생하게 귀에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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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의경창설이래 가장비극적인 사건들이 있는데 그중 동의대 사태과 연세대 사태가 있습니다 동의대사태는 지금은 민주화운동으로 인정받았습니다 하지만 희생된 경찰관과 전경대원들의 넋은 어디에서도 인정받거나 위로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연세대사태: 범민족대회 남측대표로 간 한총련의 두학생이 판문점을 통해 돌아오는 시점에 맞추어 통일축전을 열고 판문점으로의 행진을 하려고 처음에 한총련에서 기획을 했었습니다.
그래서 전국의 한총련들이 서울로 모여 들었지만 정부는 집회를 완전 봉쇄를 하려 했습니다.
이에 판문점으로의 행진이 좌절된 약 2만여명의 한총련학생들은 연세대를 거점으로 농성에 들어갔고 경찰은 연세대에 만여명의 경찰병력을 동원해 그들의 교내밖 진출을 원천 봉쇄했고 경찰은 초기 학내점거를 위해 투입 하였으나 잘모된 작전정보로

많은 부상자와 사망자를 낳았다
                 

                  사망:1기동대 6중대 김종희 일경

                  부상: 전의경 890여명

 

                 

동아대 인공기 게양 사건:
(당시투입된 선배님의 글 전의경그들의삶 출처)


어둠속에서 중대들이 섞이고 집중공격을 받으며 엉망이 되었습니다.

이리저리 쫒고 쫒기다가 대원들은 길을 잃고 흩어지고 곳곳에서 포위되어 무장해제되는

대원이 속출했습니다. 무전에서는 자기 중대,소대 위치를 잡고 통제하려는

무전병들이 다급한 외침이 계속 들렸습니다. 완전포위됬다며 도와달라는 비명가까운 무전도 들리더군요

하지만 이미 상황은 통제불능이고 학교안의 중대는 지휘체계가 무너져 각 대원들이

각개전투로 빠져나오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포위당해 쩔쩔매는 부대가 보여도 뒤쪽에 대열을 유지하고 있던 중대들이 도와주질 않았습니다.

도와주려고 전진하면 부상자, 실종자가 생길거같으니 중대장들이 그냥 못본체한거죠.

어떤 중대는 1개소대가 사수대에 밀리고 밀리다가 대원들이 아래쪽으로 투신하기도 했습니다.


부상자들이 밀려내려오는데 정말 못보겠더군요.

장비를 제대로 갖추지 못한 대원들이 수두룩하고 팔다리가 부러지고 머리통이 터져서

피를 흘리며 부축해서 내려오고...

한 사복대원은 격전중 운동화가 벗겨졌는지 한쪽발이 맨발에...거기 병조각이 수십개박혀서

보도블럭에 피발자국을 찍으며 부축을 받고 내려오더군요

어떤 SY사수는 쇠파이프를 SY총으로 막아냈는지 총신이 확 휘어 있더군요....

총검술하듯 쇠파이프를 막아내며 개머리판과 탄통쪽으로 돌려찍어가며 빠져나왔답니다


더 내려와서 각 중대 지병은 하단2파로 모여 피해상황 보고하라는 지시를 받고

하단2파쪽으로 가는데 다른 방향에서 진입했다가 부상한 대원들이 파출소 근처에서

후송을 기다리며 뒹굴고 있었습니다.

수십명의 대원들이 쓰러져서 신음을 하고 있었는데

우연히 제 동기를 발견했습니다. 1중대원이었는데 쌍둥이 형제가 같이 입대해서

저하고 훈련소, 경찰학교 같은 내무반이어서 잘아는 사이었습니다.

원래는 동생하고 같이 사하방순대에 있다가 1중대가 의경으로 교체될 때 1중대로 전출됬지요

달려가서 이름(박재구)을 부르며 어디를 다쳤냐고 물으니 정신이 혼미하여 제대로

답을 못하더군요....정신차리라고 하며 진압복을 벗기고 살펴보니 쇠파이프에 맞아

다리가 부러지고 허리를 심하게 다친 듯 보였습니다....

부상자들을 실어나를 앰뷸런스는 오지않고 대원들은 고통스러워하고 너무 가슴아팠습니다


눈물이 절로나는데...눈물을 훔치며 파출소 앞으로 갔습니다.

거기보니 경찰대출신으로 보이는 젊은 소대장 한사람과 소대장 방패인듯한 대원이 서있는데

소대장 방패 대원은 머리통이 터져서 얼굴이 피범벅이고 방패는 위아래가 모두 날아가고

가운데 손잡이만 들고있더군요....소대원은 다 없어지고 소대장 방패가 끝까지 소대장만

보호하면서 끌고 내려온 것 같았습니다.


근데 갑자기 그 소대장이 갑자기 파출소안으로 화이바를 집어던지더니

그안에 있던 기동대장, 사하서장 등 지휘관에게 욕을 하는겁니다.

'야 이 개새끼들이 이게 작전이야!! 우리 1중대...우리애들 어딧어. 우리애들 살려내!!;

이러면서 막우는겁니다....옆에 있던 우리 차하나도 울고...저도 울었습니다...

단 1시간도 안되는 짧은 작전에 피해는 너무 컸습니다.

각중대 사수들이 2천5백발의 화학탄을 쏘면서 학내로 진입했고

사수대는 2천개의 화염병과 5만개의 돌(당시 정보보고)을 던지며 저항했습니다

뒷걸음질로 좁은통로를 통해 퇴각하는 중대들을 각 출입구까지 쫒아와서 쇠파이프로

매찜질을 가했고 뒤쳐진 수십명의 대원들을 납치했습니다.

그때 시점으로 각중대 부상자 148명, 실종자 46명..(1중대 30명, 702전경대 4명, 3중대, 159중대 등등)

각 중대는 인원파악을 못하고 있었습니다 부상자들은 어디로 실려갔는지

알수도없고(아무 차나 지나가는 차 붙잡고 병원좀 데려가달라고 부상자들 막 실었음)

도대체 몇 명이 학생들에게 끌려갔는지 파악이 안되는 상황이었습니다.

진압장비는 얼마나 피탈, 분실했는지 셀수도 없었고

심지어 무전기가 10여대와 SY총까지 피탈됬다는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179중대는 중대장이 화염병을 맞은 상황이었고, 90중대는 소대장이 쇠파이프에 매찜질을 당해

양 다리가 모두 부러져서 실려내려왔습니다.....

제가 직접 보진 못했으나 어떤 중대는 부상자를 끌고 내려와서 방독면을 벗기니

눈알이 튀어나와있었다고 합니다. 쇠파이프로 뒤통수를 맞은것이지요.

납치된 대원이 수십명에 이르니 이들을 구출하러 재진입해야한다는 얘기가 나왔습니다.

하지만 부상대원과 피탈장비가 많아서 작전수행이 어려운 중대가 여럿이나되고

학교안의 4천5백명 시위대를 제압하기에는 경력이 너무 모자랐습니다.

단순 해산이 아니고 완전 제압하고 납치된 대원을 구출해야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휘부는 불과 3년전 부산동의대에서 있었던 악몽도 떠올렸을것입니다.

 

 

 

 

부산 동의대 사건:

동의대 사건은 지난 89년 1월 입시부정 사건이 발단이었다. 그해 4월 이 대학의 입시부정이 폭로되면서 학생의 항의와 시위및 경찰의 진압으로 확대됐다. 이 과정에서 경찰의 진압에 대항하는 학생들의 화염병으로 화재가 발생, 경찰관 7명이 숨지는등 희생자들이 나왔다.

경찰이 이 시위를 진압하려고 하다가 전경 5명이 학생시위대에게 붙잡혀 동의대 중앙도서관에 감금당하였다.

이들을 구출하기 위해 경찰이 중앙도서관에 진입하려고 했을 때 학생들은 책상과 걸상 등으로 쌓놓은 바리케이트에 신나를 뿌려놓고 화염병을 던졌기 때문에 경찰 7명이 불에 타 죽고 10여명이 중화상을 입었다

 

이글을 읽는 잠시의 순간에 이들을 기억하고 생각해주는 것만으로도 그들에게 큰 위로가 될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고인이된 경찰관과 전의경대원들의 명복을빌며 글을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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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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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총련과몸싸움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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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대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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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염병의무서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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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대화염병공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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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평택상황중 부상중인대원을 돌보는 소대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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