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격의 기원을 따지고 보면 결과론적으로 저격수(sniper)에 대한 이야기로 귀결된다. 즉, 저격이라는 전투행위가 전투의 전문기술이며, 이 전문기술을 습득한 병사는 특별한 사람이란 뜻이다. 그럼 저격이라는 말의 뜻을 알아보자.
이런 자세는 날 죽여 주십쇼 하고 말하는 것이다... 혹시 모른다 사진 찍고 전사했을지도...
저격수(sniper), 이 말을 자세히 살펴보면, snipe 라는 단어가 보인다. snipe 은 웹스터 영어사전에 Any of various usually slender-billed birds... 즉 우리말로 쉽게 도요새 란 말이다. 크기는
12~61cm 로 대부분의 도요새는 까치나 까마귀보다는 훨씬 작고, 참새보다는 큰 것으로 보여진다. snipe 가 동사가 되면... 바로 도요새를 잡다란 뜻이 되는거다. 그리고 sniper 가 되면 음...
도요새를 잡는 사람이란 뜻이 거지... 그럼 왜 저격수란 의미로 sniper 를 쓰게 되었을까?
그건 바로 이 새의 크기와 당시 총의 성능과 관련이 있다. 알다시피 17~18세기 100m 이상의 직진성을 보유한 화약병기로 전투에 제대로 쓸만한 병기는 전장식발화총인데, 이런 총으로는 200m 이상에서의 명중률을 보장할 수 없었다. 그러니 이러한 총으로 작은 새를 잡는다는 것은 사격에 일가견이 있다는 뜻이고, 이는 총 잘 쏘는 사람이란 뜻으로 전해졌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를 헷갈리게 하는 명칭이 있다. 바로 sharpshooter와 marksman 이다. 어원까지 따지지는 않겠다. 단어만 설명해도 어느 단어가 우리가 쓰는 "저격" 이란 말에 가까운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웹스터 사전을 보면 marksman 은 a person for skillfull or praticed at hitting a mark or
target 이라고 나와 있다. 즉 맞추는 정도가 능숙한 사람 정도 되겠다. sharpshooter 는 a good
marksman 이라고 나와 있다. sharpshooter 는 marksman 보다 상위 개념인 것이다. 그러면 이 정도로 우리가 말하는 저격에 가까운 뜻이 될 수 있을까? 다른 어원도 조사해야 되지 않을까?
그래서 독어를 조사해 보기로 했다.(독어사전은 구하기 힘들어 그냥 인터넷에 있는 걸로 사용했다.) 독어에는 sharpshooter, marksman 에 해당하는 scharfschütze , 그리고 sniper 에 해당하는 heckenschütze 가 있다. sharp=scharf, rifleman=schütze, kecken=산울타리(방어, 방해의 뜻도 포함한다.) 이다. 참고로 독일군은 구분 없이 저격병을 scharfschütze 라고 불렀다.
이제 위 내용을 사격 능력으로 구분, 정리해보자.(이건 개인적인 정리이다.)
1. 일단 총을 쏠 줄 아는데, 숙달되어 전체적인 목표물을 맞히는데 익숙하다면
→ marksman
2. 목표물 중 원하는 곳을 쏠 수 있으며, 목표의 움직임에 대해 전체적인 목표물을 맞출 수 있다
→ shrapshooter.
3. 목표물 중 원하는 곳을 쏠 수 있고, 목표물의 움직임까지 예측하여 원하는 곳을 맞춘다면
→ sniper
가 되겠다.
킬수 257 의 Sepp Allerberger
이렇게 따지면 미군이 운용하는 보병 분대의 marksman 과 러시아군이 운용하는 소대의 저격병이 어느 정도인지 감이 잡힐 것이다. 미군의 marksman은 사전의 marksman 에 가깝고, 러시아군의 저격병은 sharpshooter 에 가까운 것이라 볼 수 있다. sniper 가 되려면 적어도 미군 해병대나 육군에서 단독 또는 2인 1조로 작전이 가능한 능력이 되는 병사들을 sniper 라 부를 수 있는 것이다.
적을 죽이고 내가 살려면 이 정도 위장은 필요하다...
참고로 드라구노프가 매우 우수한 총으로 알고 계시는 분이 있을 거 같아 말하는데, 드라구노프는 소대급으로 막 쓰기 좋은, 명중률이 높은 총이라고 생각하면 좋다. 소대급으로 대량생산하는 저격총을 각국의 Special Force 가 운용하는 비싼 저격총하고 비교하면 곤란하다. 드라구노프는 싸고 막 쓰기 좋은, 명중률 높은 총이다. 나중에 드라구노프 저격총에 대해 얘기할 기회가 생기면 자세히 하겠다.
그럼 스나이퍼의 기원을 살펴보자. 대략 어느 책, 어느 자료에서나 스나이퍼의 기원에 대해 조사를 하면 미국독립전쟁(1775~1783)이 먼저 나온다. 이들은 Pennsylvania/Kentucky Long Rifle 을 이용해 저격했다고 한다. 이 총은 단풍나무를 베이스로 제작한 총으로 펜실배니아와 켄터키의 건스미스가 제작했다고 알려지며, 개척이 이루어지던 시대에 개척지 곳곳에서 이런 총들이 제작되었다. 이러한 류의 비슷한 총들 중 우수한 총들이 생산된 두 지역의 이름을 따서 Pennsylvania/Kentucky Long Rifle 이라 불렀던 듯 하다. 당시 사격 우수자들은 샤프슈터로 불리웠는데, 사격에서는 영국군보다 뛰어난 능력을 보인 듯 하다.
아래 그림은 독립 전쟁 당시 쓰인 대표적인 총기들인데... 이것들의 배리에이션은 아버지의 삼촌의 아버지의 형님의 아들 동생 촌수를 찾아가듯 무지 복잡하다. 정리해 놓은 사이트들이 있지만, 본인은 이 총들에는 관심이 없으므로, 이 정도만 하고 넘어간다. 참고로 미국은 이런 총기제작을 가르쳐주는 학교도 있다.
영국군의 Brown-Bess
프랑스군의 Charleville
Pennsylvania Long Rifle
그리고 이 사진들은 미국의 리인액터들이 전투 재현하는 장면이다. 정말 부럽다...
영국군 전열
미독립군 전열
홀로 서 있는 양반이 보이는가? 저 양반이 sharpshooter 다.
각설하고, 그럼 이제 저격병이라는 정식 명칭이 사용되었을까? 아니다. 저격병이란 명칭은 훨씬 뒤부터 사용된다. 나폴레옹 시대(1799~1815) 의 전투를 살펴보면 영국은 미국에서 샤프슈터에 호되게 당했으면서도 장교 등을 직접적으로 죽이는 샤프슈터 보다는 능숙한 marksman 부대인 Green Jacket 을 운용했다. 아마도 마주보지 않은 상태에서 적의 장교(신사, 귀족)을 죽이는 것이 비신사적(비매너)라 여겼던 듯 하다.
아래 사진은 나폴레옹 시대에 그린 재킷이 쓰던 베이커 라이플이다. 유명한 총인 듯 한데, 설명은 그냥 넘어가겠다... 이 총들 공부하려니 머리 아프다...
Baker Rifle 1806 Pattern
아직까지도 스나이퍼란 말은 등장하지 않는다. 미국의 남북 전쟁(U.S Civil War, 1861~1865) 를 소개한다. 이 때도 스나이퍼란 말은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전장식 소총의 마지막 전쟁이라고 봐도 무방할 듯 하다. 유럽은 1835년 후장식 소총인 드라이제 라이플의 등장으로 발칵 뒤집혔었으나, 미국은 아직 변방의 기술 소국... 전쟁 당시 소량의 후장식 소총이 전쟁에 쓰인 것으로 알고 있다.
잠시 드라이제 소총에 대해 얘기하면 이 총은 현대식 소총의 기원으로 공이를 사용, 탄두와 탄피가 일체화된 탄을 장탄(총구 입구가 아니라 챔버에)하여 쏜다. 이 총을 제식 채용한 프로이센군은 이 총의 위력을 무시하고 전근대적인 대오를 갖춰 돌격한 오스트리아군을 무려 4만 4천명을 죽였다. 프로이센군은 9000명 전사. 이 총은 후장식 소총에 비해 무려 4~5배 정도 빠른 속도로 탄을 장전할 수 있었다. 오스트리아군에 묵념.... 미친 짓이었다. 이 전투로 각국은 후장식 소총의 도입을 서두르고, 제식화에 박차를 가한다.
Dreyse Needle Gun 15 mm Model (1862)
내전 때도 미국은 스나이퍼란 말 대신 샤프슈터란 말을 사용했고, 특이점은 바로 그런 부대를 운용했다는 점이다. 그런 부대란 적의 중요 인물만을 죽일 목적의 사격 솜씨 좋은 군인들로 구성된 부대라는 뜻이다. 종전의 비정규적, 소극적 저격에서 본격적인 저격으로 나선 것이다. 전쟁 뒤 이 군인들은, 전쟁에서는 우수한 군인이었지만, 숨어서 쏘았다는 이력으로 군에서의 일을 함구하고 살았다고 한다.
북부연방군의 샤프슈터
(옷이 녹색이다. 영국의 그린재킷의 영향인 듯 하다.
당시 영국은 남부, 북부 모두 전쟁참관단을 보냈다.)
아래 사진 둘은 당시 주로 사용하였던 사프슈터용 총기이다. 위 병사의 그림에 있는 총이다.
Berdan Sharps Rifle - 미국제 후장식이다. 이건 주로 북부연방군이 사용. 아무래도 북부가 돈이 많았으니 장비는 충실했다. 최신후장식을 샤프슈터가 사용하는 건 어찌보면 당연한...
Wiitworth Rifle - 이건 전장식의 영국제 총이다. 주로 남부연맹군이 사용했다.
결국 우리가 쓰는 저격병(sniper)이란 용어는 1900년대 이전에 쓰인 것이 아닌 것이다. 아마 이야기는 1900년대를 넘어가야 할 것 같다... 나중에 시간 나면 다시 글을 쓰도록 하겠다.
ps. 본인의 사견이 많이 들어갔으므로 주의해서 읽어주세요. 사실과 다른 경우 태클 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