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메르스도르프 - 적의 여인들에게 수치심을 안겨라!

행동반경1m 작성일 07.06.02 02:3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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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메르스도르프(Nemmersdorf) - 적의 여인들에게 수치심을 안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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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메르스도르프(Nemmersdorf) - 소련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동부 독일에 있는 네메르스도르프는 소련군에 의해 독일 민간인 학살이 저질러졌다. 우리는 이를통해 전쟁이 민간인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알수있다.1944년 10월 소련군대는 물밀듯이 독일 본토를 향해 쳐내려왔고,

 동프로이센의 네메르스도르프(Nemmersdorf)는 독일 도시들중에서 처음으로 소련군에 함락된다. 하지만 며칠뒤 독일군에 의해 다시 탈환되었고 소련군의 잔혹한 행위는 온세상에 알려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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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군은 "적의 여인들에게 수치를 안겨라!"란 지휘관의 말대로 도시를 쓸어버린다. 며칠뒤 마을을 다시 탈환한 독일군은 경악하여 이를 선전영화로 만들어 독일과 점령지에 소련의 잔혹행위에 대해 홍보한다.

하지만 미.영국 등 연합군은 같은 연합군인 소련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위해 덮어버린다. 하지만 독일 시민들에게 이것은 엄청난 공포를 일으킨다.  수백만의 독일 민간인들이 서쪽의 연합군 점령지로 탈출하였고 독일군 병사와 장교들은 연합군에 항복하기 위해 서쪽으로 탈출을 하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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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살의 배경

 

독.소전이 격화되자 전쟁의 승패를 가르는 레닌그라드 전투때에는 어떤 수단도 용서가 되었다.

독일군은 탱크에 소련의 여자와 아이들을 묶어놓았고, 이를 보고한 소련의 장군에게 스탈린은 "쓸데없는 감상주의에 빠지지 말고 쏴라.", "죽이고 또 죽여라. 적들의 시체는 예술이고 혁명이다."라며 병사들을 독려한다.

반격을 해간 소련군이 독일로 쳐내려 갈수록 소련군 병사들은 자신들의 집과 이웃과 동네가 독일군에 의해 철저히 파괴된 것을 알게되고 복수를 다짐한다.

 

 

- 네메르스도르프(러시아:Mayakovskoye, 현재 소련땅, Kaliningrad Oblast에 있음)

 

1944년 10월 21일, 네메르스도르프는 소련군의 진격에 점령당한 첫번째 독일 마을들중 하나다. 소련집단군, 제25탱크사단(The Russian army group, a 25th Guards Tank Unit)은 Angerapp다리를 점령하려고 하였으나 독일군의 강력한 포병과 공군의 맹폭격을 당한다.

몇몇의 소련군은 14명의 남.여로 채워져 있는 급조된 벙커를 발견한다. 독일인들을 내보낼려고 하나 거부하자 바로 모두 사살한다.(Gerda Meczulat라는 여성만 살아남았다.)

소련군들은 독일군 탱크를 격파하기도 하였으나 다리를 점령할수 없었고, 마을을 계속 점령할수도 없었다.  200여명의 사망자를 낸뒤 몇시간동안 점령되었던 마을은 다시 독일군에게 빼았겼다.

 

 

- 탈환

 

독일군은 네메르스도르프를 이틀후에야 완전히 점령한다. 50명의 프랑스인 포로를 포함하여 수십명의 시민이 즉결처형, 삽이나  소총의 개머리 판 등으로 타살된 채로 발견되었다. 친위대는 몇몇 신문기자와 촬영기사를 불렀고 조사가 진행되었다.

 

 

- Karl Potrek의 Karl Potrek의 보고

 

   "..도로에 서있는 카트에는 네명의 벌거벗은 여자가 있었고 머리가 십자형으로 어깨져있있더..십자로에 들어서니 두개의 문에 여자가 벌거벗긴에 못박혀져 있었다. 우리는 72명의 여자를 발견했고..어린이와 노인들..모두 죽어있었다. 얼마간의 아기들은 머리가 으깨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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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닥터 하인리히 암베르게

 

   "네메르스도르프로 향하는 도로에서, 나는 러시아 탱크가 깔아뭉갠 한 무리의 피난민행렬을 보았죠:  마차와 말뿐 이 아니라, 대부분이 여자와 아이들인 상당수의 민간인 또한 탱크로 납작하게 으깨어져졌죠. 그 도로의 가장자리와 농장의 마당에는 많은 민간인들의 시체가 쓰러져있었는데 군사작전의 과정에서 죽은 건 분명 아니었고 반대로 계획적으로 살해 당한거죠.

길가의 주변에서 한 할머니가 목 뒤에 총을 맞아 죽은 채 구부러진 자세로 앉아있었습니다. 머지 않은 곳에 인제 네달된 한 아기는 가까운 거리에서 앞이마에 관통 당해 죽어 있었고...다른 심한 상처의 흔적이 없는 여러 명의 남자들은 야전삽 아니면 총의 개머리판에 맞아 죽었습니다: 얼굴은 완전히 박살났고요. 최소한 한 명의 남자가 헛간 문짝에 못박혀 있었습니다.  

게다가, 노머스도르프 뿐 아니라 앙게라프와 로미텐 사이의 근처 마을들에서도 러시아 군이 퇴각한 후에 비슷한 경우들이 발견되었습니다.

 노머스도르프에서도 다른 곳에서도 러시아 군의 침략이 대단히 갑작스러웠으므로 민간인들이 거의 피신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한 명의 살아 있는 독일 민간인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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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장조사

 

괴벨스(Joseph Goebbels)는 중립국의 의사로 조사위원회를 구성했고, 그 보고서에는 8세에서 84세의 여성들이 강간당한후 살해되었다고 보고했다. 하지만 연합군측은 이를 철저히 무시했다. 이는 나치 자신들이 폴란드와 소련에서 저질러진 대량학살때문이었다. 도한 소련군은 연합군의 일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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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악한 시민들

 

나치의 선전매체는 이 사건으로 군인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기 원했고 많은 사람들이 '국민돌격대(Volkssturm)"로 자원했다. 하지만 시민들은 경악했고 정착지를 떠나기 위해 짐을 꾸렸다.

괴벨스는 시민들이 소련군에 저항하길 원했으나, 오히려 3개월뒤 독일시민들의 점령지에서 완전철수를 불러오는 도화선이 되었다.

 

 

- 베를린 공방전후, 보복의 예고편

 

베를린 함락후 3일동안 10만건의 성폭행 사건이 보고되었고 6,000여명의 남녀가 수치심으로 자살했다.

독일의 소련군 점령지에서는 수백만의 여성들이 강간당하였다.

베를린 공방전에서만 소련군 30만명이 사망했고, 독일군은 4만명이 사망했다. 하지만 민간인, 특히 여성과 어린아이들에 대한

전쟁범죄는 용서받을수 없고 이것의 대부분은 소련군에 의해 저질러 졌다.

 

 

- 게오르기 주코프 장군(Georgii  Zhukov,1896년 12월2일-1974년 6월18일)의 연설

   소련군 참모총장, 독일 점령 소련군 사령관

 

위대한 시간이 울렸다 ! 적에게 마지막 결정타를 날리고 스탈린 동지께서 주신 사명을 완수할 시간이 왔다.

굴속의 파시스트 놈들을 끝장내고 베를린 상공에 승리의 깃발을 세우라! 독일 파시스트 쓰레기를 응징할 시간이다. 장대하게 불타는 우리의 증오여! 우리는 히틀러의 식인종들이 저지른 아픔과 고통을 잊지 않았다.

우리는 우리의 불타버린 도시와 마을을 잊지 않았다. 우리는 독일에 고문당해 죽은 우리의 형제와 자매, 우리의 어머니와 아버지, 우리의 아내와 자식들을 기억한다.

우리는 악마의 화덕속에서 재가 된 이들을 복수 할 것이며, 가스실에서 숨져간 이들을 복수할 것이며, 살해당하고 순교한 사람들을 복수할 것이다. 우리는 이 모든 것들에 대하여 잔인하게 복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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