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이지스함을 만든 자랑스런 한국 기술자들

을룡엄마 작성일 07.07.27 02:4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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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25일 진수한 첫 번째 국산 이지스함인 ‘세종대왕함’은 아직 도크(dock·배를 건조하거나 수리하기 위해 물을 넣거나 뺄 수 있는 시설) 안에 있었다. 그것도 주요 장비가 들어갈 자리는 뻥 뚫린 채 비어 있거나 비닐로 덮여 있는 가운데 수십 명이 선체 곳곳에서 작업을 하고 있었다. 아니 대통령까지 참석해서 화려한 진수식을 했는데 아직 완성이 안 됐단 말인가?

“배가 지상에 있을 때와 물 위에 있을 때 받는 압력에는 미세한 차이가 있습니다. 이지스함은 워낙 정밀함을 요구하는 배이기 때문에 그 차이를 감안해 주요 장비는 진수한 뒤에 장착하지요. 보통 상선은 진수한 뒤 한 달 정도면 마무리 작업이 끝나는 반면 이지스함은 반년 가까이 걸려야 완성됩니다. ”

 

 

이지스함 건조 총책임자인 울산 현대중공업 특수선사업부문 하용헌 전무는 “마무리 작업이 끝난 뒤에도 선체를 이지스 시스템 개발업체인 록히드마틴에 넘겨 42주간 실전 테스트를 하고 해군에는 내년 12월에 인도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배의 크기도 배수량 1만t 정도로 최대 7만t에 달하던 2차 대전 때의 전함에 비해 작고 미국의 이지스 시스템을 수입해서 탑재하는 것뿐인데 제작과정이 왜 그렇게 복잡할까?

“상선이 덤프트럭이라면 전투함은 세단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이지스 전함은 그 중에서도 첨단장비가 들어간 최고급 세단이지요. 이지스 시스템을 아무 배에나 얹는다고 작동하는 것이 아닙니다. CDMA칩은 외국 것이지만 그것을 상용화해서 얇은 휴대전화를 만드는 데는 또 다른 독자적 기술력이 필요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

이지스함 설계책임자인 김정환 상무는 “선체 설계를 잘해야 다양한 무기의 복합체계인 이지스 시스템이 원활하게 작동하고 배의 생존성이 높아진다”고 덧붙였다. 김 상무는 서울대 조선공학과를 졸업하고 1977년 현대중공업에 입사한 뒤 지금까지 줄곧 군함 설계에 종사한 베테랑. 그는 경기고 2학년 때 해군사관학교에 견학을 갔다가 한 생도가 “우리나라 군함은 2차 대전 때 미군이 쓰다 넘긴 고물함정뿐”이라며 “여러분 중 누군가 꼭 국산 군함을 만들어달라”고 한 말이 계기가 돼 조선공학을 전공으로 택하게 됐다. 그 생도의 말대로 그는 1980년 진수한 한국 해군 최초의 호위함인 울산함 개발에 참여했다. 그는 “울산함이 출항했을 때는 제대로 속도가 날까, 파도에 배가 넘어가지 않을까 조마조마했는데 20여년이 지난 지금 꿈의 군함이라는 이지스함을 직접 설계하고 최첨단 스텔스 기술을 논하게 됐다”며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을 지었다.

적이 감지하지 못하도록 하는 스텔스 설계기술은 배의 생존성을 좌우한다. 적이 쏘아 보내는 레이더 전파를 하늘과 바다 방향으로 반사시키고 특수도료를 발라 반사돼 돌아가는 레이더 전파를 최소화하는 것이 레이더 스텔스 기술의 기본 개념. 레이더 스텔스 기술을 적용하면 실제 전함의 크기보다 작은 배로 인식되거나 아예 포착되지 않는다. 세종대왕함의 레이더 스텔스 설계는 국방과학연구소와 포항공대의 전자파 전문가들과 미국의 JJMA 같은 전문 용역기관의 자문을 통해 이루어졌다.

또 적의 미사일이 적외선으로 전함을 탐지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도 중요한 스텔스 기술. 세종대왕함은 엔진에서 나오는 열을 물과 공기로 식혀 주변과 동일한 온도로 배기가스를 배출하도록 설계됐다. 또 미사일이 다가오는 것이 감지되면 즉시 배 구석구석에 달려 있는 센서가 온도를 감지해 물을 뿌려 열을 식혀주는 장치도 달았다.

조종실이나 무기 탑재 공간을 보호하기 위해선 가벼우면서도 방탄 성능이 뛰어난 소재를 개발해야 했다. 박상철 선체설계부장은 “실탄을 직접 쏴 실험하면서 필요수준에 맞게 소재를 맞춰 나갔다”고 말했다. 포스코와 공동개발한 새로운 특수강은 초기엔 가공 노하우가 없어서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다. 왕병철 생산부장은 “새 특수강의 자력이 강해 용접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며 “사내 연구소와 공동작업을 해 겨우 해결방법을 찾아냈다”고 말했다.

적의 미사일과 어뢰에 피격될 경우에도 가라앉지 않고 반격할 수 있는 선체구조를 설계하기 위해 무수히 많은 컴퓨터 시뮬레이션 실험도 했다. 보통 큰 배는 일부가 파손되어도 배 전체에 물이 차 가라앉지 않도록 여러 개의 격벽으로 구획을 나눈다. 격벽이 많을수록 안전하지만 선체가 무거워지고 탑재공간이 줄어들어 필요에 맞는 적절한 설계가 필요하다. ‘세종대왕함’은 적의 미사일이나 어뢰를 2~3발 맞아도 가라앉지 않고 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시뮬레이션 실험을 통해 미사일이 선체에 명중돼 내부에서 폭발할 경우 몇 개의 격벽에 의해 충격을 흡수하고 나머지 공간은 기능을 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함 내에 장착되는 미사일 발사대는 일정 온도와 습도를 유지하는 동시에 외부 충격에도 미사일이 손상되지 않도록 설계해야 했다.

이런 첨단기술이 요구되는 설계는 쉬운 일이 아니다. 사업 초기에 록히드마틴사는 일본이 이지스함을 만들 때 그랬던 것처럼 미국의 설계도를 구입할 것을 요청했다. 스페인과 노르웨이가 이지스함을 자체 설계하면서 자주 설계를 변경하고 건조능력 부족으로 3~5년씩 사업이 연장돼 애를 먹었기 때문이다. 록히드마틴은 “이지스 시스템은 선체와 조화를 잘 이루어야 하므로 이미 수십 척을 건조한 미국의 검증된 설계도를 바탕으로 만들자”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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