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
세기의 스파이들
적 내부에서 활동한 스파이
한번 정체가 드러난 스파이는 버려지게 마련인데 체카는 오히려 그녀를 통해 니콜라이에게 접근하여 비밀공작원으로 포섭하게 되는데 사실 니콜라이는 오히려 체카를 통해 자신이 러시아의 정권을 잡아 과거의 화려했던 '신성한 러시아'를 부활시키고자 마음먹게 된다. 나드제다와 함께 체카의 정보원 노릇을 하며 그를 통해 기존 망명정부를 붕괴시키고 자신이 통제권을 가진 생각을 한 것이다.
그 후 프랑스 파리로 넘어온 러시아 망명정부의 주요 업무를 맡으며 체카의 후신인 KGB에 정보를 제공한다. 계속된 스파이 활동으로 점점 꼬리가 드러나고 있던 스코블린 부부는 그 후 무리하게 망명 정부의 주요 인물을 납치하려다 들통이 나고 만다. 그로 인해 나드제다 스코블린은 20년간 감옥에서 살다 사망한다. 니콜라이는 KGB가 망명을 도와주겠다는 말을 믿고 호위를 받으며 소련 함선 쿠반에 몸을 실었으나 배 위에서 누군가가 건넨 와인을 마시고 그 속의 독극물 때문에 절명하고 말았다. 누구도 믿지 못했던 스탈린이 니콜라이와 같은 인물을 살려두도록 놔둘리가 없었던 것이다.
주요업적(?) : 니콜라이의 정보공작에 의해 스탈린에게 숙청당한 소련군이 3만명이 넘음.
2. 동성애자들을 주로 포섭한 예술가 - 앤소니 블런트(1909-1983, 암호명 존스)
저명한 미술사가이며 영국의 동성애자 사회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 인물로 자신의 인적 자원을 활용해 소련을 위한 첩보활동을 했다.
블런트는 케임브리지 대학원에서 연구원일 당시 KGB에 포섭당한다. 그는 그 후 옥스퍼드, 케임브리지 등에서 다수의 대학생들을 포섭하는데 동성애를 통해 자신의 인적 자원을 늘려간다. 보잘 것 없는 대학생들을 왜 포섭하는가 싶지만 사실 옥스퍼드나 케임브리지 출신들은 미래의 정치지도자나 각료가 될 소지가 많았기 때문이다.
블런트의 통제 방식에는 치사한 면도 있는데 자신이 포섭한 인물들을 통제하는데에 편지로 동성애자임을 폭로하겠다는 말 등을 보냄으로 주변에 발설하지 못하고 자신의 말에 복종하게 만든다. 당시 영국 사회는 동성애를 범죄로 취급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1963년 자신이 포섭했던 미국인 마이클 스트레이트가 미국 연방정부에 들어가게 되면서 연방정부의 신원조회에 겁을 먹은 마이클이 먼저 자신의 과거 행정을 이야기 함으로 블런트의 정체는 드러나게 된다. 이에 영국 정부는 블런트가 가지고 있던 소련 KGB의 정보를 얻는 대가로 블런트의 죄를 덮어두게 되는데 이에 화가난 일부 인물의 이와 같은 거래를 작가 앤소니 보일에게 알려주어 '제 4의 사나이'라는 책이 나오게 된다.
그로인해 영국 정부는 더이상 덮어둘 수 없어 그와 같은 거래를 시인하였고 블런트는 기사 작위를 박탈 당하고 공개적 비난을 받게 된다. 그리고 그는 더이상 사람들에게 얼굴을 보일 수 없었으나 겉으로 보이기에는 죽기전까지 자신의 행동에 대해 회개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3. 어디에도 존재한 적이 없었던 사나이 - 이스라엘 비어(1908-1966, 암호명 쿠르트 동지)
이스라엘 군부와 정보기관에서 높은 지위에 오르지만 소련 첩자라는 사실이 발각되어 징역형에 처해졌다. 그의 행적을 역추적하는 과정에서 이스라엘 정보국 모사드는 자신들이 비어라고 생각한 인물이 실제로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1960년 미국인 사업가가 텔아비브의 레스토랑에서 이스라엘의 고위 장교를 보게 된다. 하지만 그는 1936년 구치장에 갖혀있던 자신을 무자비하게 고문한 KGB 대원 중의 한명이었다. 그 사실을 밖으로 나와 이스라엘 정보국 모사드에게 말했는데 모사드는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을 확인 받은 것에 불과하였다.
비어가 이스라엘의 고위 장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이스라엘 독립 전쟁 당시 텔아비브에 있던 하가나 참모본부에서 근무하였고 유대 민족의 승리를 이끌어갈 중요한 개척자 가운데 한명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전쟁이 끝난 후 이스라엘 초대 수상의 신임까지 받았던 그는 그 곳에서 수상의 일지에 적힌 깜짝 놀랄 만한 국가기밀까지도 쉽게 접할 수 있었다.
이렇듯 수상의 전적인 신임을 받고 있었기에 모사드는 의심은 하더라도 쉽사리 접근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결국 텔아비브의 레스토랑에서 KGB요원과의 만남을 가진 것이 확인되어 10년형에 처해진다.
이것으로 끝난 줄 알았으나 사실 수수께끼는 비어가 잡히고 난 이후부터 발생한다. 모사드에 대해 묵묵부답으로 일관했기에 따로 조사할 수 밖에 없었는데 조사해보니 이스라엘 비어라는 인물은 세상에 '없은'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의 과거 행적에서 드러났던 '이스라엘 비어'와는 전혀 다른 별개의 사람이었던 것. 1966년 심장마비로 숨을 거둔 비어의 정체는 아직도 밝혀지지 않고 있다
자료제공 : (주)천년천룡
알 림 : 위 자료는 중복이 될 수 있음을 알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