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긍심 가지고 살려고 처박았던 훈장 다시 꺼내”
“내년부턴 軍 추모행사 없어 마음이 더 쓸쓸해지네요”
출처:조선일보 2007. 06.28 김재곤 기자 truman@cho*.com
꼭 5년 전이었다. 2002년 6월 29일 북한 함정과의 충돌로 6명이 전사한 서해교전. 포탄과 총탄이 빗발쳤던 당시 전투에서 부상을 입고 살아남은 부상자 18명에게 5년이 지난 지금도 서해교전은 계속되고 있다.
부상자들은 모두 몸과 마음으로 사고후유증을 앓고 있는 것이다. 다친 몸에서 이상반응이 계속되고 있는데다 나라를 위해 싸운 사실을 제대로 평가해 주지 않는 정부는 이들의 마음에도 지워지지 않는 흉터를 남겼다. 이들은 공식 추모기간(5년)이 끝났다는 이유로 내년부터는 군 차원의 공식 추모행사도 열지 않는다는 데에 더 마음이 쓸쓸해진다고 했다.
당시 m-60 기관총 사수로 오른팔에 관통상을 입고 의병(依病)제대한 곽진성(28)씨. 그는 방산업체인 lig넥스원 구미공장에서 미사일에 들어가는 추적장치의 성능을 점검하는 일을 하고 있다. 당시 절단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했던 오른팔은 세 차례의 수술을 거쳐 거의 제 기능을 회복했다.
하지만 최근에도 1년에 한두 차례씩 1~2분 정도 정신을 잃는다고 한다. 의사도 이유를 모른다. 가끔 미처 제거되지 않은 쌀알 같은 파편조각이 여드름처럼 피부 위로 불거져 나오곤 한다. 지금까지 모아놓은 파편조각이 5개. 그는 이 조각을 자신의 분신인 것처럼 집에 모아놓고 있다. 곽씨는 ‘왜 무기를 만드는 방산업체에서 일할 생각을 했느냐’고 묻자 “앞서 간 전사자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군 관련 일을 찾게 됐다”며 “우리가 그때 더 강했더라면 그렇게 속절없이 당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고 말했다.
당시 소총수로서 왼손에 총상을 입고 의병제대한 권기형(26)씨는 지난달부터 몇 년 동안 구석에 처박아 뒀던 훈장을 꺼내 액자에 걸어놨다. 휴대폰 액정에도 훈장 사진을 띄워놨다. 그는 “이제 기억해 주는 사람도 없지만 당시 현장에서 용감하게 싸웠다는 사실에 자긍심을 가지고 살려 한다”며 “그래도 내 인생에서 이만큼 잘한 일이 있을까 싶다”고 말했다.
가업을 이어 농사를 짓기 위해 농업전문학교에 진학했던 권씨는 전역 후 꿈을 접었다. 당시 부상으로 철심을 박아 넣은 왼손 손가락 3개엔 일부 마디가 없다. 주먹도 제대로 쥘 수 없는 손으로 농사일을 하기는 무리였다. 무얼 해야 할지 몰라 방황하면서 올해 초엔 우울증 초기 진단을 받기도 했다.
포탄 파편으로 가벼운 부상을 입은 김상영(25)씨는 아예 국가유공자 신청을 하지 않았다. 비슷한 부상을 입은 동료들이 신청했다가 기각됐기 때문이다.
실제로 경기도 화성의 한 공장에서 자동선반 기계 작업 일을 하는 고경락(26)씨도 파편이 튀어 몸에 박히는 부상을 입었으나 두 차례나 국가유공자 심사에서 탈락했다. 뚜렷한 외상이 없다는 것이 이유다. 한번은 입사 면접에서 면접관들이 서해교전 당시 상황에 대해 잔뜩 물어봐 같이 면접을 본 사람들이 ‘면접관이 질문을 많이 하는 걸 보니 붙겠다’고 말했지만 결과는 낙방이었다. 그는 “당시의 절박했던 상황이 다른 사람들에겐 그저 가십거리밖에 되지 않는 것이 속상하다”고 말했다.
당시 소총수였던 김승환(26)씨는 왼쪽 겨드랑이, 엉덩이, 허벅지 등에 약 20개의 파편이 박혀 국가유공자 7급 판정을 받았다. 김씨는 현재 아버지가 운영하는 열쇠가게 일을 돕고 있다. 하지만 비가 오기라도 하는 날이면 몸이 쑤셔와 옆에서 아버지가 하는 일을 지켜볼 뿐이다.
서해교전에서 부상을 당한 18명의 참전 용사 중 현재 군에 복무 중인 사람은 한쪽 다리를 잃은 당시 부정장 이희완 대위를 포함한 6명. 군 당국은 이들에 대한 인터뷰를 “본인이 원치 않는다”는 이유로 사실상 통제하고 있다.
전역한 12명 중 나머지 6명은 현재 해외에 나가 있거나 연락이 닿지 않았다. ‘당시 기억을 떠올리기 싫다’며 인터뷰를 완강하게 거부한 이들도 있었다. 이들은 ‘357전우회’를 조직해 현충일과 6월 29일 추모식, 또 1년에 한 차례 정기총회를 통해 정기적인 모임을 추진하고 있다.
고경락씨는 “다른 때는 몰라도 6월 29일 추모식만큼은 꼭 참석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회사측에 눈치가 보여 군 당국에 공문이라도 보내달라고 요청했지만 지난주에 기다리던 우편물 대신 이메일 한통이 날아왔다. 거기에 초청장 파일이 첨부돼 있었다. 프린트해서 알아서 쓰라는 것이었다.
◆서해교전
한일 월드컵 열기가 절정에 달했던 2002년 6월 29일 서해 연평도 인근 해상에서 북방한계선(nll)을 넘은 북한 경비정이 참수리 357호를 선제공격해 일어난 해전이다. 당시 357호 정장 윤영하 소령과 한상국 중사 등 6명이 전사하고 18명이 부상했다.
벌써 서해교전이 5주년이 넘고 있습니다... 세월 빠르네요.. 그리고 잊혀지는 것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