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명적인 운명의 지리적여건 - 폴란드는 유럽의 중앙에 위치해있는나라이자 대륙으로 드나드는 길목에 위치한나라이다.
지정학적으로 강대국의 잦은 침략을 받을수밖에없는 국가였다.그것도 독일과 러시아 사이에 가로놓여 근세기까지 두나라에의해 크나큰 피해와 고통을 겪은바있다. 대표적인 사건 2가지를 짚고 넘어가자면 소련군에의한 폴란드장교 카친숲 대학살 과,독일에 의한 유태인말살정책의 오수비앵침[아우슈비츠]강제수용소만 보아도 잘알수있다.
무었보다도 독일로서 받은피해는 심각한바였고,그 앙금은 민족악감정으로자리잡아 쉽사리소멸되지는않았다.OECD 국가에 먼저 가입했던 폴란드는 러시아의 OECD국가 가입에 거부권을 행사하다가, 나중에는 러시아에 경제적으로,덕을 보려는 외교의 수로서 러시아의OECD국가가입을 반대에서 찬성으로 노선을돌렸으며,독일의 메르켈총리는 폴란드를 제외하고 투표를 하자고했지만,근래의 EU 2중다수결제의 거부권행사를 끝까지 고수하며 질질 끌다가 결국 2017년부터 실시하게된것만 보아도잘알수있다.
인구수에 따라 영향을 행사하는 EU의 2중다수결제에 대하여, 폴란드가 가진 불만은 많은독일인구로부터 2차대전때의 당한기억으로 어쩔수없이 마지막까지버티다 영국과 프랑스 등의 중재로 거부권을 포기했었다. 카친스키 대통령의 폴란드측속내를 짐작할수있는 부분을 바로 볼수있다.독일에 대한 피해의식이 반독일감정의 한편으로 자리잡고있는것이다.이러한 폴란드는 코페르니쿠스나 퀴리부인같은 과학자의 나라로 잘알려져있다.그러나 전쟁무기의 개발사적인 요소를 자세히들여다보면 주위에 워낙쟁쟁한 게르만족의나라 독일에밀리고,음험하면서 영리한 슬라브 러시아제국에 치이면서,민족자존의 자주국방이란 꿈도꿀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영세중립국인 스위스처럼 지형적으로 유리한덕을 볼수있는 입장도 아니었던것이다.이에따라 과거나 지금이나 강대국사이의 줄타기외교로 살아남을수밖에 없었다.즉 강대국들의 견제를 보아가며 경제와 외교를 눈치껏 꾸리고살아가야되는 어쩔수없는 약소국의 운명을감안하고 국가를 운영해야 되었던것이었다.2차대전 바로 전에는 독일의 침공을 막아 도와주겠다는 영국 체임벌린수상을 믿다가,나라가 독일과 소련에게 잡아먹혔고,이후 소련을 믿었다가 결국 소련의 대표적위성국가로 전락되어 WTO라는 바르샤바조약기구의 허수아비격인 괴뢰국가의 전위대로써,서구에 위협적인 나라가 되기도 하였다.
이나라의 탱크역사를 눈여겨보면 2차대전이 일어나기전 1934년 영국빅커스사로부터 수입한 6톤의 전차를 개조해서만든 7 TP 경전차 160 여대의 기갑부대를 처음 편성한것이 고작이었다.기갑부대를 제대로양성화시키지 못했던 시대적대세를 깨닫지못했던 관계로인하여, 독일기갑부대가 침공했을때 폴란드기병대가 돌진해 몰살당했던 웃지못할 전사를 만들어내기도 했었다.그러한 연유로 폴란드가 육군의 전차부대에 대단히 많은군비를 지출하는것을 보면 얼마나 역사적으로 충격을받았는지 잘알수있다.이러한 폴란드는 2차대전이 끝난후 폴란드계 소련의 전쟁영웅 로코소프스키가 폴란드 국방장관이된이후 2차대전 때 써먹은,소련제무기를 대량으로 양도받고, 또한 소련제무기를 라이센스생산까지 하게되었다.
이러한 관계의 시스템화 되어있는 여건때문에 폴란드자국산 전차를 만들어내지는 못하였다.그래서 소련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자기들의 살을붙인 개조전차를 출시하게 된것이었다. 현재 제일대표적인 폴란드의 개조무기로 생산된 전차는 소련제 T72 전차를 개조한 PT-91 전차 였다.또한 폴란드는 독일군의 레오파드2 전차도 기갑부대를 편성하여 운영하고 있기도하다. 결국 강대국 사이의 균형은 프랑스처럼 완벽한 기술력이뒷받침된 국방력없이는,불가능했고 강대국사이의 줄타기외교외에는 더욱 자주국방이 불가능하다는것을 보여주는 나라의 좋은 예인것이다.
자료제공 : (주)천년천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