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1년10월26일 의 소련 빨치산의 처형사진- 마샤 브루스키나[17세],볼로디아[16세]. 키릴 트루스[남자]
독일군의 소련침공에의한 그들의 유태인말살적 인종정책으로 인하여,마샤 브루스키나는 유태인이었던 입장에 독일군에의해 자기어머니와 같이 유태인거주지역 게토로 격리수용되었다.
이에살길을 도모하던중 17세의 마샤 브루스키나는열렬한 공산주의자가되었다.
그리하여 독일군에 대항하는 레지스탕스활동을시작하게 된다.
민스크의 병원에 근무하면서 다친소련군환자를도와 가짜신분증을 만들어주고 탈출을도왔다.
이것을눈치챈 어느환자의 밀고로 독일군에 체포되었다.
그러나 마샤는 독일 707보병사단으로 끌려가 갖은고문을 당한뒤에도 동료를 발설하지는 않았다.
이러한 여성빨치산의 활동에 독일보병사단의 장교는 다른 우크라이나인들에게 경각심을 주기위해 본보기로 사형을시킨다.
소련에 이용당하여 빨치산활동을 하다죽는다 라는 문구가 적힌 팻말을달고 독일군은 교수형을시키지만 정작 이사진은 스탈린의 소련정부가 우크라이나와 백러시아민간인에 대해서 빨치산으로의 봉기조성과 독일항전에의 정치적목적으로 대대적으로 써먹는 선전용사진이되었다.
러시아의 여성빨치산중 독일군에게 잡혀 *당하고 유방이 칼에 잘려나간 조야 코스모데미얀스카야의 사진과더불어,마샤 브루스키나 옆에 웃는듯 목매이는 볼로디아의 사진은 독소전쟁을 대표적으로 표현하는 유명한사진중의 하나이다.
그외의 사진들은 소련군과 교전중 사망한독일군장교의 수첩소지품에서 나온것들로서 잔혹했던 나찌스의 빨치산 처형모습을 볼수있는 대표적사진들이다.
독일군1명이 당하면 프랑스에서는10 배의인명을 앙갚음으로사살시켰다.
소련에서는20 배의 보복처형을 했었다.
결과적으로 해방이 되었던양,독일군을 처음 환호하던 우크라이나인들도 스탈린제국의 붉은군대보다 더위험한 악랄한 인종집단임을 곧 깨닫는다.
이러한 잔학한 인종정책으로 독일군은 점령지사방에 ,적개심으로 똘똘뭉친 적군을심는 역할을하여 일선에서 멀어진후방사이에 광활한러시아 곳곳의숲속에서,쉴새없이 악착같은 소련빨치산들의 습격을받았다.
독일군은 소련정규군보다 더골치아픈 독일군의 목숨을노리는 소련빨치산들과의 끊임없는 2중고의 피해를입고 끔찍한쌍방의 살륙전을 반복해야만 했다.
역시 전쟁은 해서도..일어나서도...안되는것임은 분명합니다.
인간이 죽음앞에서 얼마나 처절한 것인지..... 여기 사진들을 보면서 소름이 돋습니다.
눈빛을 보니....
밀리계시판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전쟁에 관한 정보라 생각하여 올려봤습니다.
자료제공 : (주) 천년천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