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1년 12월 7일, 일본의 진주만 공습으로 미국도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게 되었다.
진주만 공습 당시 97식 함상 공격기는 아카기의 12대, 가가의 12대, 소류의 8대, 히류의 8대 총 40대가 제1차 공격대에 편성되어 출격했고 이를 제로센 함상 전투기 45대( 아카기 : 9대, 가가 : 9대, 소류 : 8대, 히류 : 8대, 쇼카쿠 : 6대, 즈이카쿠 : 5대 )가 호위했다.
이들 제로센 함성 전투기들은 99식 함상 폭격기와 97식 함상 공격기를 엄호하기 위해 총 3개군으로 분산되어 이타야 소좌가 이끄는 제1 제공대( 아카기 )와 가가 분대장 "시카" 대위가 이끄는 제2 제공대( 가가 )가 진주만 상공을 비행하고, 소류 분대장인 스가나미 대위의 제3 제공대( 소류 )와 오카지마 대위가 지휘하는 제4 제공대( 히류 )는 휠러 비행장 상공을, 사토 대위가 이끄는 제5 제공대( 즈이카쿠 )와 가네코 대위가 이끄는 제6 제공대( 쇼카쿠 )는 카*헤 비행장 상공에서 출격하는 미군 전투기의 요격을 대비했다.
태평양 전쟁 초반 최강의 전투기였던 일본군의 제로센( 0식 )함상 전투기. 진주만 공습 당시 아군 항공대를 엄호해 99식 함상 폭격기와 97식 함상 공격기에 의한 공습을 성공적으로 이끈 주역이다. 사진의 기체는 21형
태평양 전쟁 초반 미 해군의 f2a 버팔로를 상대로 우수한 전투력을 발휘했고 f4f 역시 기본적으로는 이 기체의 상대가 되질 못했으나 조종사의 기량에 따라 격추가 가능했다는 점에서 그나마 버팔로보다는 나았다
필리핀 전투에서 일본군의 폭격을 받아 대파되어 버린 와일드캣
《 1941년 12월 7일, 진주만 공습과 f4f의 실전 투입 》
1941년 12월 7일, 아카기, 가가, 소류, 히류, 쇼카쿠, 즈이카쿠 6척의 항공모함에서 발진한 일본 해군의 제로센 함상 전투기, 99식 함상 폭격기, 97식 함상 공격기들이 진주만을 덮쳤다.
이른바 태평양 전쟁의 발발을 알리는 진주만 공습이 감행된 것이다. 미 해군은 그야말로 막대한 피해를 입었고 2,403명의 전사자를 냈다.
이후 일본군은 말레이 반도와 필리핀을 공격했고 여기서 지상에 주기되었던 일부 와일드캣이 이륙해보지도 못한 채 지상 격파당하는 신세가 되기도 했다.
물론 이륙 이후에도 제로센과의 공중전에서 열세를 보이는 때가 많았지만 그래도 미 해군 항공대에게는 신형 전투기가 투입될 때까지의 공백을 와일드캣으로 메꿀 수 있었다.
이 전투기가 없었다면 미 해군 항공대는 그야말로 난리도 아니었을 것이다. 물론 와일드캣 역시 근본적으로는 제로센의 상대가 되질 못했지만 조종사의 기량에 따라 제로센을 격추시킬 수 있었다는 점이 그나마 나았다.
와일드캣은 동맹국인 영국 해군 항공대에서도 주력 전투기로 운용되어 태평양 전쟁 전 기간에 걸쳐 공중전에 투입되었다.
물론 전쟁 초반부터 일찌감치 근접 항공 지원기로 돌려졌지만 보기 좋게 퇴역한 버팔로보다는 신세가 나은 편이었고 대서양 방면에서는 항속거리가 짧은 독일 공군의 bf-109의 사정상 이들과 맞딱뜨릴 가능성도 그만큼 낮았다.
전쟁이 끝날 때까지 총 7,885대가 생산된 f4f 와일드캣은 이후 f6f 헬캣, f7f 타이거 캣, f8f 베어 캣 등의 후임들이 등장하면서 종전 후 전 기체가 용도 폐기되어 스크랩 처리되는 비운을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