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최전선의 병사들과 그들만의 고통...

슈퍼스탈리온 작성일 08.05.03 20:50:49
댓글 0조회 2,132추천 2
120981516218098.jpg
"총이 고장났다. 전투는 너에게 맡긴다. 나는 부상자를 돌보겠다!" 라고 기관총수가 소리를 지른다. 베트콩의 대공포화를 간신히 피했지만 부조종사는 파편에 맞아 피를 토하며 죽었고, 어깨에 파편을 관통당한 병사는 벽에 기댄채 움직이질 않는다.

120981507572618.jpg
저공비행으로 폭격기가 인폭탄을 투하하자 정글 속의 마을들은 맹렬한 화염에 싸이고 조금 후에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미공군은 하루 700회가량 출격하여 월맹지역의 공업지대를 파괴하였다. 하지만 월맹도 대공방어력을 강화시켜 1966년 한해 동안 580여대의 미군기가 추락하기도 하였다

120981509620391.jpg
120981510088506.jpg
네이팜 탄의 공격을 받고 불타고 있는 마을... 물론 베트콩 집결지라는 명분하에 개시된 폭격이지만 가장 큰 피해자들은 역시 민간인들이었다


120981521739099.jpg
금속음을 내며 월남 지역의 강가에 있는 마을을 공격하는 팬텀 F-4제트기. 얼핏 고요해 보이는 저 마을도 베트콩의 주둔지였다. 하지만 민간인의 피해도 극심하였다

120981525919185.jpg
포격과 폭격으로 우거졌던 나무들로 가득차있던 베트남 북서부 케산 고지는 황폐한 구멍투성이로 변하였다.한명의 병사는 쓰러진 전우에게 다가간다.  박격포와 소총으로 월맹군이 공격하자 미군은 기관총으로 응전을 한다. 이 전투는 베트남전쟁의 상징이었으며, 양측 다 매우 큰 사망자가 났었던 전투였다

120981528423031.jpg
구멍투성이가 되어버린 콘치엔 고개에서 참호를 건설하고 담뱃불을 나누는 미해병대원들. 흑백사진이기 때문에 더더욱 아득한 낭만감과 동시에 전투로 인해 피로가 얼굴에 짙게 배어있는 병사들의 고통을 느끼게 한다

120981530690161.jpg
비무장지대 근처인 484고지에서 격렬한 공격과 포화 속을 무릅쓰고 부상당한 전우를 옮기는 4인의 미 해병대원들... 이들 중 생존자는 증언한다. "허허벌판을 가로질러 우리들은 조그마한 언덕으로 접근했는데, 먼저 올라가서 진지를 구축하려던 수색대원은 적 저격병에 의해 쓰러졌다."

120981533650618.jpg
173 공수부대가 월맹군 잠복지역의 일보인 "철의 삼각지대"를 소탕하고 토벌하는 작전을 수행하고 있다. 갑자기 행진하는 미군들에게 월맹군들의 총탄이 쏟아지고, 도로는 혼란에 빠졌다. 사상자 구출을 위하여 헬리콥터가 다가온다

 

정말이지 전쟁이란 ㅡ,.ㅡ;;

"이 전쟁은 2차세계대전에 비하면 마치 중세기의 전쟁과도 같다."

 

사이공 주재 외교관은 베트남 전을 이렇게 말하였다. 베트남전은 여태까지 일어났던 그 어떤 전쟁과도 성격이 확실하게 틀렸다. 뚜렷한 전선도 정규군도 없는 싸움이었다.

 

1946년 2차대전 직후 프랑스 식민주의자와 베트남 국민 사이에서 시작한 이 내전은 30년 동안이나 지속이 되었다.

 

이 치열하고 끔찍한 전쟁터 속에서 라이프지의 사진작가들은 16년 동안 이 곳 베트남에서  몇 쳔장의 사진들을 촬영하였다.

 

베트남은 프랑스를 디엔비엔푸에서 패배시키고 결국 독립을 얻었으나 북위 17도 선을 두고 남 북으로 분단되었다.

 

그러다가 1965년 3월 10일 미국의 대통령 존슨은 북베트남의 폭격을 허락하였고, 이로써 베트남 전은 "미국화"가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미국이 월맹을 상대로 잘 싸우는 듯 하였다. 그러나 곧 미군은 월맹의 치열한 반격과 전술에 고비를 맞이해야만 하였다.

 

1968년까지 50만 명 이상의 미군이 월남에 파병되어 월맹과 싸웠었다. 그러나 이른바 '구정 공세'라고 불리우는 월맹의 작전으로 미군은 100개 이상의 군사 기지가 파괴되었고 많은 미군들이 전사하였다.

 

 

 

전쟁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전사하는 미군들도 늘어났고, 이에 따라 반전 분위기도 급속도로 조성되기 시작하였다.

 

미국 내에서도 전쟁을 중단시키자는 소리가 나왔고, 반전 운동이 끊이질 않았었다.

 

결국 존슨의 후임인 닉슨은 미군들을 철수시켰고, 그 공백은 월남 정부군이 메꾸기로 되어있었으나 그 조차도 실패하였다. 이때는 이미 호치민이 사망한지 6년이 지난 후였고, 라이프지도 페간된 지 2년이 지난 후였다.

 

 

인명피해는 그야말로 엄청났는데 미군 5만 6천명, 월남군 24만명, 공산군 100만 명과 더불어 수많은 민간인 피해 등등.........

 

 

"더러운 전쟁(Dirty War)"라고 불리우며 미국의 이미지를 추락시키는 것과 동시에 전 세계로부터 전쟁의 끔찍함과 참혹함을 생생하게 전달하였던 베트남 전은 (이 때에는 60~70년대로서 TV의 보급과 라디오의 보급이 많이 있었던 때였다.) 그렇게 월맹에 의하여 완전하게 통일이 되었다.

 

 

 

 

 

 

하지만 무엇때문인지도 모르는 채 학살을 당하고 폭격을 당하고 그렇게 죽어가야만 했던 민간인들과 군인들, 그들의 불쌍한 영혼들은 아직도 위로를 받고 있지 못하고 있는 듯 하다..

 

 

 

자료제공 :  타임라이프 "At War" 책의 "베트남 전쟁" 중에서

 

 

 

 

슈퍼스탈리온의 최근 게시물

밀리터리 인기 게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