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의 강제징병, 군복속에 숨겨진 청년들의 가슴아픈 현실

슈퍼스탈리온 작성일 08.05.03 20:5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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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영을 앞두고 고향집에서 마지막 기념 사진을 찍는 농촌 출신의 한 징집 젊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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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병검사장에 나와 조선 청년을 독려하고 있는 당시 조선군 사령관 ‘마쓰가끼’ (패망 후 극동재판에서 교수형을 당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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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년 5월 11일 일제는 어용단체인 ‘국민총력조선연맹’을 동원해 징병제 실시에 대한 신궁봉고제라는 해괴한 행사를 하고 징병제 실시를 감사하는 시가행진을 벌이기도 하였다. 오른쪽에 한 소년이 신기한 듯 행진광경을 따라가면서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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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는 징병검사에 합격한 장정에게 징집영장을 발부함과 동시에 그 집에 ‘장행기’를 꽂아 ‘영예의 집’으로 떠받드는 희극까지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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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을 다문 채 조용히 창 밖을 응시하고 있는조선 징병 젊은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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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병으로 끌려가는 아들의 손을 잡는 어머니… 가장 슬픈 사진이라고 생각된다. 주위의 감시로 눈물마저 감추어야만 하는 모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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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릉 지원병 훈련소에서 훈련을 받는 지원병들

 

(이 사진은 1938년 6월 13일에 촬영된 사진으로 당시는 ‘징집령’이 내려져있지 않았기 때문에 ‘지원형식’이었다. 따라서 사진 속의 조선 청년들은 ‘지원자’들이었다 )

 

과연 누구를 위해서 싸워을까요???

 

일본은 1941년 12월 7일 진주만 공습을 일으킴으로서 본격적으로 태평양 전쟁을 시작하였다. 그리고 1942년 9월 30일에는 ‘청-장년국민등록’을 실시하여 한국 청-장년들을 노력동원과 전쟁터에 몰기로 결정을 하였다. 1943년 8월 1일 본격적인 ‘징병제’가 실시되었다….

 

 

여기에 수많은 조선 청년들이 검사를 받고 징병을 당한 채 ‘식민지 국민’이라는 이유로 총알받이로 내세워서 태평양 전선과 중국 전선으로 나아가야만 하였다. 더욱이 10월 20일에는 ‘학병제’를 실시하여 약 1천명 가량의 학생들까지 징병시키기도 하였다. 12월 24일에는 징병 연령을 1세 낮추기도 하는 일제는 취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징병제 뿐만 아니라 강제노동과 지금까지도 문제가 되고 있는 위안부도 이 시기에 본격적으로 시행되었다.

 

 

진정한 조국을 위해 싸우지도 못했고, 남의 나라(그 당시에는 식민지였으니 ‘한 나라’라는 인식으로 있었겠지만…)를 위하여 왜곡된 애국심으로 군복을 입고 전쟁터로 나아가서 꽃다운 청춘을 등져야만 하였던 조선의 수많은 청년들. 과연 무엇을 위해서 싸워야만 했을까???

 

 

어쩌면 이들이야 말로 일제의 식민지배의 가장 큰 피해자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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