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대전과 짚

슈퍼스탈리온 작성일 08.05.10 21:3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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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0대의 제작에 들어가기전, 군은 포드, 밴텀, 윌리사의 3차량을

보병합동, 포병, 기갑부대를 상대로한 전반적인 운용 테스트를 하였고,

이후 제작된 차량들 대부분이 무기 임대법에따라 영국과 러시아로 보내지게된다.

그 후, 임대예상보충차량으로서 밴텀이 2675대, 포드가 3650대를

추가로 발주받게된 반면 윌리는 단지 1500대의 발주만을 받게된다.

 

 

윌리 사는 1500대 생산계획에 포함되었으면서도 차량의 무게 때문에

제동이걸리는 등 고전했고, 자신들보다 원형차량을 늦게 개발한 포드 사에도

수주 면에서 뒤지자 이대로가다가는 완전히 코너에 몰리게 되는게아닌지 불안했다.

 

더 강력하고 가벼운 엔진을 탑재한 새로운 차량을 개발하거나 아니면 지금의

강력한 엔진을 그대로 유지하고 다른 방법으로 무게를 줄이든지해야했다.  

고민끝에 윌리 사는 결국 후자를 선택하여 엔진을 제외한

차량전반에대한 재검토에 들어가게된다.

심지어는 페인트에의한 무게 변화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등

윌리 사는 차량 무게 줄이기에 총력을다했다.

꼭 필요하지 않은 볼트를 제거하고 철판두께도 줄였다.

그 결과로 윌리 사는 포드 사 피그미(GP)의 라디에이터 격자를 모방한 것이 분명한,

무게를 줄인 윌리스 MA - 수색특공(Command Reconnaissance)이라고

이름붙인 차량을 내놓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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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스 MA

121042227257489.jpg윌리스 MA의 후속 차량격인 MB. 총 25,808대가 생산된다

121042229932895.jpg1941년 봄 도강 중인 밴텀 사 짚차

다시 16000대의 대량발주를 계획하고 있었던 군은 

제작회사에 수정된 요구사항을 통보하였다.

 

1. 최고속도 88.5km/h, 최저속도 5km/h를 유지할것.

 

2. 45cm 깊이의 강또는 하천을 건널 수 있을것.
 

 

3. 통상 953kg의 무게를 초과하지 말 것, 단 4륜구동 버전을고려하여 987kg까지 허용함.

 

4. 바퀴는 항공기나 선박, 열차등의 수송수단에 결박할 수있도록 제작할것.

 

5. 최대 363kg을 수송할 수 있을 것 등이었다.

 

 

 

차량 제작사들은 대량 수주를 따 내기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했다.

마침내 원형차량을 군에 납품하여테스트를 받게된 3개의 경쟁사 차량들 중

무게감량에 성공한 윌리 MA가 그 강력한 엔진덕분에 최고 높은 점수를 얻어냈다.

윌리 사의 차량가격이 제일 저렴했고 성능이 군 요구사항에 가장 근접했기 때문에

1941년7월23일, QMC는 1대당 738달러 74센트의 가격으로 윌리 사와 계약을하게된다.

이 계약이 정식서명되기까지 생산능력이 더 좋은 포드 사에게 납품자격을 주자는

주장이있었으나 커너드슨 장군을 비롯한 이들이 비록 생산능력이 포드 사에

못 미치지만 가격이 가장 저렴한 윌리 사에 줘야한다고 강력히 주장하여

관철된 뒷 이야기가 있었다.

 

그러는 동안 윌리 사는 자신들의 짚에대한 활발한 광고와함께 

차질없는 납품을 약속하여 계약을 따 내게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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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레도 공장으로부터 홀라버드까지 차량을 운전해갔던

윌리 사의 테스트 드라이버 어빙 레드 하우즈맨이

워싱턴에서 자사 차량 홍보활동을하고있다.

1941년2월.

이러한 홍보활동과 저렴한 가격, 차체중량감량, 강한 힘을 보유한

윌리스 짚은 마침내 7월23일, 군납품 계약을 따내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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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스 MA 생산라인

전선이 확대되자 미국은 더 많은 짚차가 필요했다.

짚차들은 특히 소련의 진창길을 훌륭하게 주행해내어

소련군은 더 많은 짚차를보내달라고 요구했다.

결과적으로 미국은 전쟁 중 총 2만대의 짚차를 소련에 보내게되는데,

아시아와 유럽전선에 대량공급을위해서는 제2의 짚차공급자가필요했다.

 

1941년11월10일, 포드 사는 군으로부터 제2 짚차공급업자로 선정되는 행운을 잡게된다.

그리하여 총1460만 달러에 해당하는 15000대의 짚차공급에 포함되는 계약을맺게된다.

이리하여 포드 사는 향후 총277,896대의

다목적 윌리-GPW(자사의 GP와 윌리의 W를 합친, - 민간용포함)를 생산하게되며,

최초로 제대로된 짚차인 40 BRC를 생산했던 밴텀 사는 경쟁에서 패배한 후

전쟁이 끝난 뒤 결국 파산하여 1956년 아메리칸 보일링 밀즈 사에 흡수합병되어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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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스 MB 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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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드 GP짚. 1941년 여름 텍사스 포트 샘 휴스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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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 프랑스를 해방시킨 미군과 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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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 전선의 짚. 미 제25해병사단.

본네트에 설치된 정글용 에어크리너 킷트를 사용한 특이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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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창 속에 빠진 짚을 밀고 있는 독일군 포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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죠지 패튼 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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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틀랜드 병사와 엘리자베스 여왕. 1944년5월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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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고메리. 1944년7월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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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네트를 이용해 사인하고 있는 아이젠하워 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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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스턴 처칠 영국 수상과 몽고메리 1944년6월12일.


 

자료제공 : (주) 천년천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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