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H-64 아파치는 이렇게 만들어졌다...3편

슈퍼스탈리온 작성일 08.05.10 21: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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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잔~~ 드디여.."찌니지롱"님이 점찍은 롱보우 납시요~ ^^

 

 

AH-64 아파치  공격 헬리콥터는 1989년 파나마 침공작전에서 처음으로 실전을 경험하였다.
미국은 군사력을 동원하여 파나마 독재자(미국의 판단으로는) 마누엘 노리에가 축출에나섰다.
노스캐롤라이나 포트 브래그의 제82비행연대 제1대대 B중대 소속 11대의 아파치 공격헬기가

C-5 수송기에 탑재되어 태스크 포스 "울프"로서 파나마에 전개되었다.

AH-64 아파치  공격 헬리콥터의 파나마 침공작전 참가는 미 육군 사상 최초의

야시 장비 및 AGM-114 헬파이어 대전차 미사일 실전 운용사례로 기록된다.

AH-64 아파치  공격 헬리콥터는 

AH-1E건쉽, OH-58C 카이오와와함께 1989년 12월 20일 새벽, 공격에 나섰다.
아파치들은 노리에가의 본부 건물로부터 4km떨어진 거리 상공에서

지정된 창문을향해 헬파이어 미사일을 발사하였다.
파나마 침공작전에 참가한 아파치들은 합계 247시간의 전투에서 몇대가

대공사격에 피탄되었지만(1대는 23발 피탄) 무사히 작전을 마치고 전원 귀환하였다.
작전 지휘관인 제18공수군단장 칼 스티너 중장은 아파치가 표적에대하여  

쉴 새없이 헬파이어를 발사하는 등 야간 작전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 것으로 평가했다.
 

 

파나마 침공작전을 마친 AH-64 아파치 공격 헬기는 1년 후 걸프전에서  두 번째 실전을 경험하게된다.

AH-64 아파치는 사막의 방패(Desert Shield)에 이은 사막의 폭풍(Desert Storm)작전에서 최선두에 서게되었다.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하자 유엔 안전보장 이사회가 철수를 요구하였으나 사담 후세인이 거부하자

다국적군을 편성, 사담 후세인을 응징하기로 결의되었다.

1990년 11월 20일, 독일 일레스헤임의 미 제11비행여단은 남서아시아 지역으로 긴급 전개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여단의 선발대가 1990년 11월 24일에 최초로 전개하였고,

1991년 1월 15일까지 총147대의 헬기와 325대의 차량, 그리고 1,476명의 병력이 전개하였다.

수 개월내에 총 273대의 AH-64 아파치 공격헬기들이 사우디아라비아 국경 요지에 배치되었다.

이 당시 아파치 승무원 대부분이 전투 경험이 없었으며, 정비사들도 사막의 모래때문에 기체 유지에 애를 먹었다.

이러한 아파치 승무원들에게 전쟁의 승패가달린 아주 중요한 임무가 맡겨졌다.
다국적군의 안전한 항공공격을 위해서는 이라크군의 스커드 미사일을 침묵시켜야만했다.

이것은 사우디 국경 인근에 설치된 3개의 이라크군 조기 경보 레이더 기지를 파괴해야만 가능한 것이었다.
작전 입안자들은 특수부대를 이용 레이더 기지를 파괴하거나, 전폭기로 폭탄을 투하하거나

또는 AH-64 아파치 공격헬기를 투입하는 3개의 작전 중 하나를 선택하여야했다.

공습을 우선 고려하였으나, 사실 예나 지금이나 항공기로서는

지상의 표적에대한 100% 파괴를 보장할 수 없었기 때문에 제외시켰다.
걸프전 지휘를 맡은 미 중부사령관 노먼 슈워츠코프 장군이 확실한 격파를 거듭 명령하였기 때문이었다.


미군은 야간 작전 경험이있는 제101비행여단 1대대를 투입하여 확실한 일격을가하기로  결정했다.
제1대대는 노르망디 상륙작전 당시 D-데이에앞서 낙하산으로 내륙을 침공했던

제101공정사단의 명예를 기려 태스크 포스 "노르망디"로 명명되었다.
하지만 당시 AH-64 아파치는 GPS 항법시스템이 없었기 때문에 항법시스템이 설치된

제1특수작전비행단의 장거리 침투용 MH-53J 페이브 로우 헬리콥터의 뒤를 따라가야했다.
AH-64 아파치와 MH-53J 페이브 로우의 합동 훈련은 1990년 9월 26일부터 유럽에서 실시되었다.
야간에 MH-53J의 유도를받으며 적진에 침투한 AH-64는 최종적으로 15m의 저공을

177km/h의 속도로 비행하여 표적에 헬파이어를 발사하는 훈련을 하였다.

태스크 포스 노르망디는 3개의 팀을 편성하였다.
3대의 아파치와 1대의 페이브 로우로 이루어진 공격팀들은  일정지점에서 적색, 백색, 청색으로 명명된

3개소의 레이더 기지를 각각 공격하도록 계획되었으나 최종적으로는 북서쪽의 기지가 제외되어

표적은 2개소로 줄었다. 표적이 감소되었으므로 청색 담당팀은 나머지 두 개 팀에 각각 합류하였다.
기습작전의 승패는 보안에 달려있기 때문에 이라크군 정보망을 철저히  기만하여야했다.
1991년 1월 14일, 태스크 포스 노르망디 2개 공격팀은 캠프를 이륙하여 무전을 침묵시킨 채

사우디 영내의 한 작은 비행장을 향하여 비행했다. 중간 급유지에서 연료를 재보급받은 노르망디는

통상적인 훈련비행으로 가장한 채 알 조프를향해 비행하였다.

이라크 국경으로부터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알 조프 비행장은 하나의 활주로가 설치된 작은 비행장이었다.

1월 15일, 정보장교는 노르망디에게 보다 상세한 작전계획을 설명하였다.
기습공격 개시 시각은  1991년 1월 17일 새벽 03시로 결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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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1월 17일 00시56분, 사막의 폭풍(Desert Storm)작전이 개시되었다.

사막의 폭풍작전 개전식은 AH-64 아파치 공격헬기의 몫이되었다.
이제 테스크 포스 노르망디 지휘관 딕 코디중령은 다국적군 항공기들의 안전한 진입로 확보라는

막중한 임무를 기필코 성공시켜야했다.

 

00시56분, 태스크 포스 노르망디의 헬기들이 이륙하기 시작했다.

코디 중령은 4대의 아파치와 2대의 페이브 로우로 이루어진 백색팀을 지휘하였고,  

12분 후 뉴먼 스플버거 대위가 적색팀을 이끌고 표적을 향하여 비행했다.
총 9대의 AH-64 아파치 공격헬기와 2대의 MH-53J 페이브 로우, 그리고 1대의 UH-60 블랙호크 지원헬기가

이라크군 레이더 기지를향해 은밀히 비행해들어갔다.
MH-53J 페이브 로우가 GPS 항법장비로 표적으로 안내하였고,

아파치 승무원들은 전방감시적외선(FLIR)장비와 야시 고글을 이용하여 야간비행을 하였다.

표적까지의 비행은 약 90분 정도가 소요될 예정이었다.

 

이때 아파치들은 우측 파일런에 1개의 230갤런 외부연료탱크와 8발의 헬파이어 미사일,

히드라(Hydra)70  2.75인치 로켓 19발과  1,100발의 M230 30mm 체인건으로 무장하였다.  

밤하늘을 비행하는 태스크 포스 노르망디의 비행음을들은 이라크군들의 발포가 두 번 있었으나

아무런 피해를 입지않았다. 표적으로부터 남쪽으로 20km 떨어진 지점에서 MH-53J 페이브 로우가

최종 위치를 지정한 다음 팀을 이탈하였다.

아파치 헬기들은 111 km/h의 속도로 표적을향해 저공 비행해들어갔다.
표적에 근접하자 AH-64 아파치 공격헬기들은 각각의 공격 위치로 자리를 잡았다.

 

02시 38분, 아파치는 6km전방에서 표적을향하여 2발의 헬파이어 미사일을 발사하였다.
레이더 기지에 배치된 대공포 반격은 없었다.

몇대의 아파치는 효과적인 기관포 공격을 위해  표적으로부터 800m 지점까지 날아가 총탄을 퍼부었다.
불시에 기습공격을당한 이라크군 레이더 기지는 화염에 휩싸였다.

AH-64 아파치의 기습 공격은 5분 만에 성공적으로 끝났다.
임무를 완수한 아파치들은 고도 30m를유지하며 259 km/h의속도로 작전지역 남쪽방면으로 빠져나왔다.

결과를 초조하게 기다리던  MH-53J 페이브 로우 승무원에게 아파치로부터 작전 성공 소식이 전달되었다.
기습작전 성공소식이 다국적군 사령부에 전달되자마자  F-15E와 EF-111이 이라크군 스커드 미사일 기지를

공격하기위하여 출격했으며 F-117기가 이라크군 방공 시설을 강타했다. 중

간 기착지에서 재급유를받아 기지로 귀환한 태스크 포스 노르망디는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이라크군의 역습에 대비하기 위하여 즉각 재무장에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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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발용 M130 채프 발사기(좌) 블랙홀 적외선 억제 시스템이 장착되어 엔진 방사열을 감소시키는 엔진 노즐

 

미 육군은 사막의 방패(Desert Shield)와 사막의 폭풍(Desert Storm)작전 당시

총 1,193대의 각종 헬리콥터를 전개시켰는데, 아파치는 277대였다.
작전개시와함께 제101공수사단이 이라크 방면으로 전진하는 동안 AH-64 아파치 공격헬기들은 공중지원을 하였다.

1991년 2월 16일에는 제6기갑여단 소속 18대의 아파치가 이라크 국경을 넘어

감시 및 연락 시설들을 공격하였으며, 45분만에 총 211대의 이라크군 장갑차량을 격파하기도했다,

1990년 9월에 전개된 제227비행연대 소속 아파치들은 400km를 전진 비행하여 유프라테스강 계곡의

전차들을 공격하기도 하였으며, 최종적으로 이라크 수비대 차량 200대를 격파시켰다.

사막의폭풍 작전 동안 아파치는 전차 및 각종 궤도차량 800대와 500대의 군용차량,

60개소의 벙커와 레이더기지, 14대의 헬리콥터와 10대의 전투기를 격파했다고 주장한다.
1대의 아파치가 로켓 추진 RPG에 우측 엔진을 피격당해 긴급 비상 착륙하였으나 승무원 2명 모두 무사히 구조되었다.
1991년 2월 28일, 결국 이라크가 항복을 선언했지만 전투가 완전히 끝난 것이 아니었다.

 

1991년 3월 2일, 유프라테스강 계곡을 순찰하던 제24보병사단이 공격을 받았다.
북쪽으로 빠져나가던 이라크 함무라비 수비사단 병력들이 미군들을 공격했던 것이다.
미군도 전차와 로켓으로 대응 사격에들어갔다.
이때 함께 작전중이던 AH-64 아파치들은 함부라비 사단의 전차들을 격파하기위해 107발의

헬파이어 미사일을 발사하는 등, 로켓과 체인 건을 사용하여 32대의 전차를 불태웠고

100대에 가까운 차량들을 파괴하였다.  미군은  한명이 부상했으며1대의 M1A1 전차가 손상되었다.

미국의 지원을 기대하며 이라크군을 공격했던 쿠르드족들은 이라크군의 보복 공격을받게되었다.

1991년 5월, 아파치는 이라크군의 보복을피해 도주한 쿠르드족 보호를위하여 터키에 파견되었다.

 

 

아파치는 걸프전에서 맹활약하였으나 오인사격이라는 불명예도 얻었다.

아파치의 오인사격은 향후 재발 가능성 때문에 미군을 불안하게만들었다.  

1991년 2월 17일 새벽 01시경, 아파치가 사우디와 5km떨어진 이라크 국경 북쪽에서 작전 중이던

미군 M-2 브래들리 보병전투차량과 M113 병력 수송차량을 적으로 오인, 3.8km거리에서 헬파이어를 발사했다.

아파치의 오인사격으로 브래들리와 M113이 격파되어 2명이 사망하고 6명이 부상했다.

아파치 승무원들이 3km이상 떨어진 표적의 정확한 정보를 얻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한 사고였다.

이 때문에 미군은 더 향상된 피아식별장치/IFF 개발을 서두르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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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 비행중인 AH-64A 아파치 공격 헬리콥터   121042158414842.jpg

AH-64 아파치 공격 헬리콥터의 발전 / AH-64D롱보우 아파치

걸프전에서의 여러 교훈을 잘 조합하여 탄생한 것이 AH-64D이지만

A형이 생산되는 중에 이미 신형 아파치 개발 프로그램은 진행되고있었다.
미 육군의 멀티 스테이지 향상 프로그램/MSIP(Multi Stage Improvement Program)에의해

개발 진행중인 아파치는 AH-64B였다.
신형 AH-64B 아파치 공격 헬리콥터 개발은  더욱 향상된 적외선 제압 시스템(IR suppression)과

와이어 커트 킷트를 A형에 업그레이드할 때부터 비공식으로 시작되었었다.
그러나 MSIP 계획은 개념만 확립되었을뿐 하드웨어 개발 단계에 이르지 못하고 취소되었다.


 

비록 취소되기는하지만, B형은 걸프전의 교훈을 바탕으로 GPS 항법장치와 신형 사격 통제 시스템,

신형 무전기, 신형 체인건, 확장된 전방 전자장비 베이, 탁월한 호버링 능력 부여, 강화된 블레이드,

신형 승무원 헬멧을 도입하는 등의 획기적 발전과함께 공대공 능력 향상을 꾀한 공격헬기이다.

대 지상 공격용 공격 헬기인 아파치는 매우 제한된 공대공 능력을 가질 수 밖에없었다.
이를 보완하기위해 개발된 무기가 적외선 유도형 스팅어 시스템/ATAS(air to air Stinger system)으로,

103파운드의 경량이어서 동체 날개 끝단에 2개(옵션선택 시 4개)의 발사관을 장착할 수 있도록하였다.

스팅어 미사일은 유도가 편리하고 발사시 표적 선택이 자유로운 장점이있었다.
맥도넬 더글라스는 유마 비행기지에서 스팅어 미사일을 테스트하였다.

 

전차킬러라는 임무 특성상 초저공 비행(NOE)을 해야하는 아파치는 전기줄과같은 장애물에 취약할 수 밖에없었다.  

아파치의 초저공 비행 생존성 향상을위해 개발된 것이

캐나다 브리스톨사의 WSPS(Wire Strike Protection System)이다.

WSPS은  약340만 달러의 계약으로 맥도넬 더글라스에 납품되어 A형 아파치에 설치될 예정이었다.

이 와이어 커트는 2대의 테스트용 AH-64A 아파치의  취약부분에 골고루 설치되었다.
테스트용 WSPS가 설치된 아파치는 육군과 맥도넬 더글라스가 각각 테스트하였다.

아파치는 다양한 속도에서 와이어 컷팅 테스트에 사용되었고,

만약 테스트를 통과하면 모든 아파치에 설치할 계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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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곳의 와이어를 절단하는 WSPS는 헬기 왼쪽 조종석 측면과 상부에 설치되었고,

낮은 곳은 체인 건 베이 부근에 설치되었다. 랜딩 기어에도 장착하여 저공 비행의 안전성을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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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마 비행기지에서 스팅어 공대공 미사일을 발사하는 AH-64A 아파치 공격 헬리콥터

 

맥도넬 더글라스는 성능이 더욱 발전된 B형을 개발하고있었다.
발달형 B형은 최신형 전자장비, 내부 연료탱크가 설치된 웻 형 주익, 기체에 복합 소재도입 등이며

승무원 생존성 향상을위한 화생방 경보 시스템과 적외선 보호 헬멧을 도입할 계획이었다.
또한 적외선 전파 방해장치와 레이더 경보 시스템, 미사일 경보 시스템을 디지털 버스 데이터화하여

사격통제장치의 1대의 컴퓨터에 통합한다는 것이었다.
B형의 가장 주목되는 개량 계획은 마틴-마리에타사와 웨스팅하우스사가 

개발 중인 AAWWS(Airborne Adverse Weather Weapons System)였는데,
아파치 로터 상부에 밀리미터 파를 사용하는 화력 통제용 레이더를 장착하는 것이었다.
로터 상부에 장착되는 무게 104kg의 원반형 레이돔은 공대공 수색 능력과함께

지상 표적의 특징을 정확히 인식하여 승무원에게 전달하는 능력이 기대되었다.

헬파이어 미사일도 밀리미터 파 시커로 재설계하고, 일단 표적이 AAWWS에의해 간파되면

승무원들은 발사된 헬파이어 미사일을 레이더로 유도하는 것이다.
또한 맥도넬 더글라스는 영국제 최고 속도 마하 4.5의 레이저 유도 스타스트릭스

공대공 미사일 시스템 도입도 고려하고있었다.
30mm체인 건도 추락 시 동체의 빈 공간으로 수납되어 승무원 안전성이 강화되었다.

아무튼 걸프전의 교훈으로 미 육군은 신형 항법시스템/GPS 시스템과, 신형 무전기,

신형 블레이드를 채택하는 AH-64A 아파치 개선안을 제안하였다.
신형 공격헬기 개발대신 기존의 A형 아파치 254대를 개수하는 것으로서,

1991년 11월, 미 국회는 8200만 달러이상의 예산을 승인하였다.

이리하여 AH-64A 발달 프로그램인 AH-64B 프로그램이 가동되었으나 위에 언급한 것처럼 1992년에 취소되었다.

폐기된 AH-64B 프로그램은  AH-64B+ 프로그램인  AH-64C로 발전하게되고,

국회는 추가로 1100만달러의 예산 승인을 계획하였다.

그러나 이예산은 국방장관이 종합적 아파치 개량 계획서를 제출할 때까지는 승인이될 수 없었다.

이당시 약 510대가 C형으로 개수될 예정이었으나 1998년 이후 폐기되었다.

이러한 거듭된 공격 헬기 발전 프로그램의 종착역은 AH-64D 아파치가되었다.
2001년 완료 예정이었던 AH-64D형으로의 개수 기체 댓수는 최초 계획되었던 510대에서 절반 정도로 줄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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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프전이 있기 훨씬 이번부터 아파치 개량 프로그램을 추진해왔던 미 육군은

사막의 폭풍작전 당시 실전에서 취약점으로 지적된  AH-64A의 공격력을 대폭 증강하려했다.
AGM-114L 헬파이어 미사일을 밀미리터 파로 유도하는 레이더를 로터 상부에 탑재함으로서

파이어 앤 포겟 능력을 확보한다는 계획이었다.

AN/APG -78 밀리미터 파 롱보우 레이더는 미립자 투과 능력이 우수해

전자방해를 거의 받지 않고 탐지능력이 우수한  장점이있다.

따라서 로터 상부에 AAWWS의 개량형인  밀리미터 파(MMW)레이돔을 탑재한 

AH-64D를 롱보우 아파치(Longbow Apache)로 명명하였다.

화력 통제용 롱보우 레이더 시스템은 아파치가 나무 뒤에 기체를 숨긴 상태에서

16발의 헬파이어를 발사할 수 있게 해준다. 이 처럼 아파치는 숨은 상태에서 다수의 표적을

공격할 수 있기 때문에 견착식 대공 미사일이나 대공포의 피격 위험성을 현저히 줄일 수가 있다.
롱보우 레이더는 최대  31km 반경내의 1,024개의 잠재적 표적까지 탐색하는 능력이있으며,  

이중 128개의 표적을 동시에 분류하며, 최종적으로 최우선 위협이되는 16개의 표적에대한

종합적  정보를  승무원에게 제공하는 능력을 지녔다. 롱보우 레이더는 탐지된 표적이 궤도 차량인지

항공기인지 또는 일반 차량인지, 방공 시스템인지를 식별하여 승무원에게 제공한다.
롱보우 레이더는 움직이는 표적은 최대 8000m, 정지한 표적은 6,000m의 한도내에서 탐지 및 감시가 가능하다.

또한 레이더빈도간섭계/RFI(radar frequency interferometer)에의한 

레이더 경고 시스템은 롱보우 아파치에게 제한적 SEAD능력을 갖게한다. 
RFI의 탐지범위는 전후방 각각 180도이다.

기존의 제너럴 일렉트릭 1,690마력 T700-GE-701엔진은 1,723마력 (1,285-kW) T700-GE-701C로

대체될 계획이며 1990년에 전달된 604번째 생산된 AH-64A부터 신형 엔진을 창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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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H-64D 아파치는 신형 항공 전자장비로 완전히 대체되었다.

신형 컴퓨터 처리장치와 업그레이드된 전기 시스템에 걸맞는 4개의

이중 채널 MIL-STD 1553B 데이타 버스(6-32비트 프로세스)를 탑재하여 성능이 대폭 향상되었다.
AH-64D 아파치는 MIL-STD 1553B 데이타 버스 탑재를 위하여 전기배선을 신형 경량 배선으로 완전 대체하였다.
기존의 아파치 콕피트 내부와 계기판은

모두 1200개 이상의 다이얼과 스위치들로 혼잡하게 이루어진 아나로그식이었다.
롱보우 아파치는 리톤 캐나다의 다기능 디스플레이를 채택하여 스위치는 200개로 감소되고  

조종사용으로는 2개의 디지털화 6x6인치(15x15cm) 컬러 CRT 디스플레이(처음엔 단색 설치)가

설치되어 승무원의 작업 단순화와함께 전투 집중 능력을 향상 시켰다.
CRT와 승무원 헬멧에 설치된 디스플레이는 FLIR와 레이더 센서 데이터와 통합되었다.

IHADSS / 통합형 헬멧 및 표시 조준 시스템의  디스플레이가 향상되었으며,

신형 AN/ASN-157 도플러 항법 시스템과 허니웰사의 AN/APN-209 레이더 고도계가 설치되었다.

AH-64D 아파치는 이중 내장형 GPS/육해공 공통으로 사용될 관성 항법장치(EG1)를 채택하였으며,

보다 안전한 항법을 위하여 신형  AN/ARC-201D VHF/FM 무전기가 함께 설치되었다.
따라서 걸프전에처럼 GPS 시스템을 장비한 MH-53J 페이브 로우의 안내를 받을 필요가 없이

초저공 야간비행 및 독자적 준 전천후 작전이 가능하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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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화한 조종석(좌)과 포수석. 15x15cm 컬러 CRT 디스플레이가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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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프전에서의 실전경험으로 아군간의 통신이 전장에서 매우 중요하다는 교훈에따라

통합 데이터 전송 모듈/DTM(data transfer module)을 이용하여 초당 16000 bps의 속도로

다른 AH-64D 아파치와  OH-58D를 비롯, RC-135 리벳 조인트와 E-8 조인트스타즈(J-STARS)와 같은

미공군기와도 고속 정보 교환이 가능하여 전장 관리 능력이 극대화되었다. 또한 UH-60C 블랙호크와도 

연결이 가능해졌으며,  지상의 대대급 전술작전 지휘소나 기갑부대까지 정보 교환이 가능하다.

 

E-8 및 OH-58D등으로부터 전장의 표적에관한 모든 데이터를 전달받은 아파치의 롱보우 레이더는

다른 D형 아파치와 전장의 생생한 정보를 신속히 공유하며,

가장 위협적인 것으로  분류된 표적에 대하여  우선적으로 공격할 수 있다.

아파치 고유의 장비인 TADS/PNVS는 롱보우 레이더의 하위 장비로서 활용이 가능하며

공격팀의 모든 롱보우 아파치와 실시간으로 정보교환을하며 전장을 나눠서 작전할 수 있다.

디지털 통신은 롱보우 아파치들이 널리 흩어져 속사(Radid Fire)나 각기 파이어 앤 포겟 공격이 가능토록해주었다.

이렇게 최신 전자장비들을 대폭 보강했기 때문에 AH-64D 아파치 측면의

전자 장비 페어링/EFAB(Enhanced Forward Avionics Bays)은 그 크기가 확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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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말에 개발된 AH-64 아파치 개량에 거액의 예산을 낭비한다는 비판도있었다.
아파치는 비싸고, 복잡하며 또한 신뢰성이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미국방부 취득국 이사회는 1990년 8월, 51개월간 진행될 AH-64D 개발 계획이 정당함을

이미 인정하였으며  롱보우 아파치 전용 병기 AGM-114L 신형 헬파이어 미사일 개발 프로그램도 인정하였다.
이리하여 1995년 10월 13일, 미 육군은 232대의 D형 아파치 개수와

13,311발의 AGM-114L 헬파이어 도입 계약을 체결하였다.

이로서 AH-64D 아파치는 미 육군 공격 헬리콥터 개발 프로그램의 최종 완결작이되었다.

 

롱보우 레이더를 장착한 첫 번째 AH-64A 아파치(82-23356)가

1991년 3월 11일에 처녀비행을 실시하고 테스트에 들어갔다.
이후 제작된 6대의 AH-64D가  1992년 4월 15일에 처녀비행을 실시하고 대규모 테스트에 들어갔다.

육군은 1995년 1월 30일부터 2월 9일 동안에  AH-64A와 AH-64D로 

소련제  T-72와 ZSU 23-4에 사격 테스트를 실시하였다.
3월에는 작전 테스트 평가가 캘리포니아 포트 헌터에서 실시되었다.
8대의 AH-64A를 장비한 A중대와 6대의 AH-64D를 장비한 B중대가 M1A1을 비롯한 미국 및

소련제 전차 20대, 10대의 M2 브래들리,  SA-8B Geckos 대공 레이더 미사일차량 등등

각종 대공화기로 방어되는 대규모 가상의 적을 공격해야했다.
아파치들은 포병 등 그어떠한 지원도받지 못하는 상태에서 오직 자력으로만  공격해야했다.

AH-64D는 330발의 30mm탄과  12발의 AGM-114L와 4발의  AGM-114K 헬파이어로 무장했다.
AH-64A는 AGM-114K 헬파이어 미사일 16발을 무장하고 작전에 들어갔다.
테스트 결과 D형 아파치는 300개의 표적을 격파하고 4대가 격추되었던 반면,

A형 아파치는 75개를 격파하면서 28대 비율로 격추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1995년 10월 13일, 미 국방부는 232대의 개수에 앞선 실물 검사를 실시하였다.
이어 국방부는 13,311발의 AGM-114L 헬파이어 미사일과  227개의 사격 통제 레이더,

그리고 3,296개의 로켓 발사기를 주문하였다.
맥도넬 더글라스는  1995년 12월의 정식 계약에앞서 11월부터 매사공장에서 24대에대한  개수작업에 착수했다.
D형으로 개수하는데는 약 15개월이 걸려 1997년 3월에 초도 AH-64D가 육군에 인도될 예정이었다.

한달 평균 8대를 개조하게되면 2008년까지 인도를 마칠 수 있게될 것으로 예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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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나쓰^^  미해군 및 해병대용 시 아파치(Sea Apach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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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아파치(Sea Apache)

 

맥도넬 더글라스와 휴즈는 1984년부터 해군형 아파치 개발을 시작하여
해군과 해병대에게 몇 가지 형식의 아파치를 제안하였다.

맥도넬 더글라스는 아파치가 벨 AH-1 시 코브라의 대체기로 선택되길 희망했다.
매도넬 더글라스가 제안한 시 아파치(또는 그레이 썬더로 불림)는 프리깃이나 순양함보다 더 작은 함선에서 

운용하면서  공대공 능력을 갖추어 함대 방공에도 사용될 수 있는 것이었다.  

부대 특성상 해안 교두보를 확보해야만하는 해병대의 상륙작전 지원용으로서 상륙강습함에서 운용되는 공격헬기였다.
 

해군에 제안된 3가지 형식의 아파치는 육군형과 거의 다를바없었으나, 바다에서 사용되는 특성 상

내부식성이 요구되었으며, 도플러 항법장치와 브레이크 개선 및 폴딩식 로터 블레이드를 채택하는 것이다.

원래 시 아파치는 하푼 미사일과 사이드 와인더 미사일로 무장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랜딩기어는 함상의 갑판에서 사용되기 부적합하여 전면 재설계되었다.

또한 기수의  TADS/PNVS와 30mm 체인건, 측면 전자 베이를 제거한 형식이 제안되었는데,

이 형식은 기수에 APG-65 대형 해상 탐색 레이더를 탑재할 계획이었다.
공대공 및 공대지 호환성을 고려 멀티 모드로 개발된 이 레이더는  F/A-18 호네트에 사용되었다.

동체 내부에는 추가 연료 탱크와 각종 전자 장비들이 들어가도록 설계 되었다.
무장은  펭귄 탄도 미사일 2발과 사이드 와인더 공대공 미사일 2발이었다.

 

항속 거리 연장과 채공 시간 연장을 위하여 공급 급유 프로브가 동체 우측면에 설치하며

캐나다제 자동 랜딩 기어 시스템을 채택할 계획이었다.

그리고 해병대는 전투부대이므로 육군처럼  TADS/PNVS과 헬파이어 미사일을 그대로 운용하는 안을 제안하였다.

해상 순찰시에는 6발의 사이드 와인더를 무장하고, 해군 SEAL팀을 공중에서 엄호하며

장거리 연안 순찰도 가능하다는 제안이었다.
해병대형 시 아파치는 병력 수송 헬기 엄호, 상륙부대 엄호, 포병과 해군 함포지원용

전방 항공 통제기로도 사용될 수 있었다.

 

 

시 아파치가 사용할 수 있는 무기는 헬파이어, 사이드 와인더, 스팅어, 하푼, 사이드암, 암람,

5인치 및 2.75인치 로켓 등 다양하게 고려되었다.
해군과 해병대가 요구한 시 아파치는 228km의 전투반경과 2.8시간의 지속적 작전 능력이었다.

이러한 시 아파치 개발 계획은 1987년에 더욱 탄력이 붙었다.

연료 적재 및 전자장비 수납을위해 동체가 재 설계되었고, TADS/PNVS와 체인건은 휴즈 AN/APG-65 레이더로

대체되었다. 파일런도 재설계되어 사이드 와인더와 하푼 대함 레이더를 장착할 수 있게 하였다.
그러나 100대 이상 판매를 목표로 개발한 해군/해병대용 시 아파치는

그 시기가 적절치 못해 판매에 성공하지는 못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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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가지 봐주셔서 대단히 쌩유~~ ^^

그리고 미흡한 접이나마 어느정도 궁금중이 풀렸음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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