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선으로 위장한 독일전함 제아들러

슈퍼스탈리온 작성일 08.05.19 21:3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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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대전시 독일은 상선에 무장을 장비하여 개조된 무장상선으로 바다를 누비며 영국상선에 피해를 입혔다.
처음에 이작전은 얼마간의 성과를 거두었지만 곧 그 정체가 드러나면서 영국해군에 의해 추적되어 모조리 격침된바있다.
바다의 위장전술인 이 무장상선 전술은 그 기원이 1차대전때로 거슬러 올라가서  독일 제아들러 호로 부터 시작된다.
이 범선 또한 영국으로 부터 빼앗아 사용하여 위장전술 로써 안심하고 있던 연합군의 상선에 다가가서 사정권에 들어오면 갑자기 공격을 가하여 기습적으로 격침시키는 이 전술은 독일의 극명한 해적질을 보여주는 대표적사례였다.
이는 전쟁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독일이 구사한 1차대전식 해적질의 대표적 실체를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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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 인으로 변장한 폰 루크너 백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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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릭스 폰 루크너 백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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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아들러 호 (Seead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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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1916년 독일 함부르크항에 정박중이던 말레타호는 돛대가 셋인 1500t급의 여느 범선처럼 보였다.갑판에 쌓인 목재에는 노르웨이 제재소의 스템프가 찍혀있었다.
선원들의 낡은옷에는 노르웨이 상표가 붙어있었다.
휴게실과 선실의 벽에는 노르웨이왕 부처의사진이 걸려 있었다.
선원들의 소지품에는 노르웨이에 있는 가족에게서 온 편지와 노르웨이의 도회지나 시골마을 을 담은 가족사진도 있었다.
선장의 속옷에는 말레타호 선장 크누스센 이라고 수놓여 있었다.
이같이 정교하게 위장한 말레타호는 가공할만한 무장을 하고 있었는데 일면 발터 또는 헤로 라고도 부르던 이배는 실은 독일전함 제아들러(Seeadler:물수리) 호였다.

이 전함의 임무는 영국의 북해봉쇄선을 돌파, 대서양을 남하하여 태평양 상의 연합군 선박을 공격하는 것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중 독일은 영국의 해상수송로를 차단하는것이 승리하는 길이라고 확신했다.
상선을 공격하기 위해 전함을 투입하는것은 값비싼 작전 이었기 때문에 상선을 공격하도록 상선을 무장시켰다.
무장상선으로 공격을 가하는 작전은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으나, 영국은 감시를 강화시켜 1916년쯤에는 이 감시가 크게 효과를 나타냈다.그래서 독일해군에서는 완전에 가까운 비밀무기, 즉 1885년에 영국 글래스고에서 건조되고 1916년에 독일 U-보트에 의해 노획된범선 발마하 수로 호를 이용하는 방법을 생각해냈다.

평범한 상선처럼 보이는 이 배에는 보조엔진과 조립식 레일로 은폐할수있는 4.2인치포 2문이 설치되었고 배이름은 물수리호로 바뀌었다.
노르웨이어를 유창하게 하는 장교 6명과 승무원 57명이 배치되었고, 지휘관에는 팰릭스 폰 루크너 백작이 임명되었다.사관실 바닥에는 수압식 승강기가 장치되어, 단추하나만 누르면 장교들이 아래로 내려가 몸을 감추고 있다가 이 배가 임검당해 나포될 경우에는 그들이 나타나 재탈환 할수 있도록 꾸며놓았다.
이 배에는 무수한 비밀통로와 포로수용실을 포함한 비밀선실이 마련되어 있었다.
한편 폰 루크너는 말레타 라는 이름의 노르웨이 화물선이 소맥(小麥)을 풀고있던 코펜하겐에서 부두 노동자로 변장해, 물수리호와 마찬가지로 돛대를 셋가진 말레타호에 들어가 이 배의 항해일지를 훔쳐냈다.

물수리 호는 다시 이름을 말레타로 바꾸었다.
이 배의 위조서류 중에는 독일의 위장군함을 경계하라는 영국 해군장교로 부터의 서한조차 있었다.
만약 배가 임검을 당하게 되면 승무원 후고 슈미트가 얼굴에 분을 칠하고 가발을 쓰고 앞가슴에 솜을 넣고서 선장 크누드센의 부인 자네트 역할을 한다는 계획까지 세웠다.
1916년12월23일 물수리호는 영국의 봉쇄선과 강풍을 무사히 뚫고 나갔다.아이슬란드 남쪽에서 영국군에게 임검 당했으나 무사히 통과하여 대서양으로 향했다.
물수리호 는 다음해 1월 9일 첫 공격을 감행했다.

목표는 부에노스아이레스로 석탄을 수송하던 영국화물선 글라디스 로열호(3628 t) 이었다.
보조엔진을 작동시켜 속력을 올리고 노르웨이 국기를 나부끼면서 물수리호는 다가갔다.
습격당한 이 배가 공격선의 정체를 무전으로 다른배에 알리지 못하도록 최후의 순간까지 상대를 기만할 필요가 있었다.
영국 화물선이 사정거리 안에 들어오자 폰 루크너는 명령을 내렸다.
노르웨이 국기가 내려지고 흑백적(黑白赤) 3색의 독일제국 해군기가 올랐다.
좌현 갑판 위에는 조립식 레일이 덜커덕 거리는 소리를 내며 깔리고 4.2인치 포가 그 위를 미끄러져 나왔다.
포탄이 글라디스호 뱃머리를 관통했다.

루크너는 그배에 병력을 보내 나포했다.
날이 저물고 행동하기에 안전하다고 판단했을때 글라디스 로열호 승무원 26명을 범선으로 옮기고 화물선을 폭파 침몰시켰다.다음날에는 물수리호는 설탕을 싣고 웨스트 하틀풀 을 떠난 화물선 룬디 아일랜드(3095 t)를 나포 ,격침시킴으로써 포로의 수는 50명으로 늘어났다.
1월21일부터 3월21일사이에 물수리호는 10척을 더 격침시켰다.
연합군이 이때문에 입은 선박손실은 모두 4만 t 에 달했다.
폰 루크너는 포로들에게 예우를 다했는데, 그들의 건강을 위해 샴페인으로 건배를 들기도하고 가끔 지위가 높은포로들에게는 배 안에서의 행동의 자유가 허용되기도 했다.

포로중 유일한 사망자는 미국인 고급선원 이었는데, 그는 물수리호가 화물선 호른개드 호를 발포했을때 입은 상처 때문에 죽었다.
드디어 물수리호는 포로를 더이상 수용할수없게 되었다.
폰 루크너는 모든 포로를 프랑스 범선 깡브론 호에 옮기고 태평양으로 향했다.
깡브론호는 리우데자네이로에 도착하자 폰 루크너가 예상한대로 사실을 영국해군에 알렸다.
영국해군 순양함들이 물수리호 추적에 나섰다.

그러나 물수리호의 활동에 끝장을 낸것은 영국해군이 아니었다.
1917년 8월 폰 루크너 는 식량과 식수의 보급을 위해 태평양의 모페아섬에 기착했다.
그와 선원들이 섬에 올라가 있을때, 큰 풍랑이일어 물수리호는 암초에 걸려 난파하고 말았다.
그러나 폰 루크너는 패배를 받아들일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부하 5명과 함께 물수리호의 모터보트를 타고 다른배를 나포하려고 나섰다.
길고도 고된 항해끝에 그들은 피지군도에서 영국기선에 나포당하고 말았다.
그때서야 그들의 임무는 비로소 끝났던것이다.

 

 

자료제공 : (주) 천년천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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