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의 괴물저격수 카를로스 헤스콕 2부

슈퍼스탈리온 작성일 08.05.26 20: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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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캠프페리에서개최된 국제사격대회에서 우승하여 윔블든컵을수상한 카를로스 헤스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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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 저격수 카를로스 헤스콕 2 부

 

미국의 가장큰 국제사격대회가 1965년8월 오하이오 주 캠프 페리에서 개최되었다.

이대회에는 총 3000명의 사수가 참가하였다.

헤스콕은 1000야드 하이파워 소총 국제 선수권대회인 윔블든 컵에 참가했다.

 

8월25일, 130명의 사수가 1000야드(915m)사선에 엎드려있었고

헤스콕도 그 중의 한명이었다.

여기서 합격한 사수들만이 다음날 결승까지 참가할 수 있는 자격을 얻게된다.

에드워드 랜드(Edward J. Land) 대위가 해병대 사격팀을 지휘하고 있었다.

 

헤스콕은 1000야드 선수권에서 탈락하지 않으려면 다른 129명보다 더 잘 쏴야했다.

첫날 사격이 끝나고 다음날 참가자격을 얻은 해병은 헤스콕 상병과

데니 산체스 하사 두 사람 뿐 이었다.

최종적으로 20명 만이 남아 결승에 참가하게되었던 것이다.

 

8월26일 이날은 바람이 거세게불어 사수들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이날 수백명의 관중과 신문기자, 방송기자들이 모여들었다.

특별관중석에는 미국 총포협회간부들과

월레스 그린 쥬니어(Wallace M. Greene, Jr)해병대 사령관도 참석했다.

사령관은 사선에 오르기 전 두명의 해병을 만나 악수를하며격려했다.

" 승리하라! 196000명의 해병들이 너희 두사람을 지켜보고 있다."

 

20명의 사수들은 볼트 액션식 소총과 자동소총을 각각 사격해야했다.

사수들은 윔블든 컵뿐만아니라  군용소총에 주어지는 특별상도 다투어야했다.

제2라운드까지 겨룬결과 7명이 남아있었고 그 안에는 두명의 해병도 포함되었다.

결국 3명으로 압축된 결승에서 헤스콕은 우승했다.

그 다음해  그는 베트남으로 파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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윔블든 컵을 거머쥔 헤스콕을 격려하는 월레스 그린 쥬니어

(Wallace M. Greene, Jr)해병대 사령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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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년8월,  

헤르만 니커슨(Herman Nickerson)해병소장은

베트남파병 제1해병사단장으로 임명되어 베트남으로 향했다.

사단장은 부임길에들른 오키나와에서 화기중대장으로

근무 중이던 에드워드 랜드 대위를 우연히 만나게되었다.

랜드대위는 콴티코 기지와 캘리포니아의 캠프 팬들튼에서 저격수

양성 프로그램을 운영하다 오키나와로 발령되었던 것이다.

 

"자네는 여기 오키나와에서 무엇을 하는가?"

 

"네. 저는 화기중대장으로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화기중대장? 내가알기로는 자넨 저격 양성장교인 것으로 알고 있네.

그런데 화기중대장이라니"

 

이 두 사람의 운명적 만남은 결국 헤스콕의 앞날에도 중대한 변화를 가져다 주게된다.

장군은 랜드대위에게 베트남에서 저격프로그램을 완성한 후

그 보고서를 제출하도록 명령하게된다.

 

랜드대위는 미국이 베트남전쟁에 개입하기 훨씬 전에 이미

효과적인 저격부대운용과 교육 프로그램에관한 보고서를 작성했었던 사람이다.

그는 헬리콥터로 이동된 병사들의 정찰과 저격, 지휘관재량으로 독립된 저격부대의 편성등

미래에 펼쳐질 베트남전상황을 정확히 꿰뚫은 우수한 논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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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주둔 제1해병사단장 헤르만 니커슨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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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령때의 에드워드 랜드

 

1960년 중위 때 하와이에서 해병대 사격팀을 지휘했었다.

 그후 대위로 진급하여 정찰/저격병 학교를 조직하였고 당시 일병이었던

카를로스 헤스콕도 여기서 교육을 받았던 것이다.

교육은 2주간으로서 1주간은 저격이론교육, 1주간은 야외 사격술 숙달이었다.

헤스콕은 2급 자격을 취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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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살된 미군 특수부대원들

 

 

1965년, 북베트남 저격수들은 많은 수의 미군을 저격사살했다.

이들은 미군의 꽁무니를 따라 붙어다니며 계급이 높은 장교들을 주 타킷으로 저격하였다.

미국은 신사적인 짓이 아니라는 이유로 저격을 경멸했다.

 2차대전과 한국전이 끝나자 그동안 맹활약했던 저격병들을 내팽개쳤다.

저격에대한 체계적인 교본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참고할 만한 교본으로는 제1차대전에서 활약했던 몇몇저격수들이 쓴 책이 고작이었다.

그러나 북베트남군의 저격효과가 너무 컸기 때문에 미군도 저격수 양성에 나서게되었고

그중 해병대가 적극적으로 나섰다.

 

 

제3해병사단장 루이스 월터(Lewis W. Walt)소장은 베트남에서

맨 처음으로 자신의 사단에 저격팀을 만들었다.

 

1966년 9월말, 베트남에 도착한 랜드 대위는 지휘권의 원활을위해 제1해병사단 내의

병사 중에서 저격병을 찾아내는 작업에 들어갔다.

 

제3해병사단에서는  로버트 러셀(Robert A. Russell)소령이 몇 개월 전부터 저격병을

양성하고 있었고, 랜드가 차출명단에넣었던 병사들중 대다수가 이미 그의 지휘 하에

놓여있었던 것이다.

 

랜드 대위이하 도날드 레인크 상사, 제임스 윌슨 중사, 찰스 로버트 하사등이

제1해병사단 저격학교의 출범을 준비하고있었다.

그들은 다낭에서 남서쪽으로 약 48km떨어진 곳에 위치한 제55고지의 기지에

학교를마련하고 곧 작전에 들어갈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가능성이있는 병사들을 발굴하여 저격병으로 양성했다.

 

이미 베트남에 파병되어있던 헤스콕은 츄라이에서 헌병하사관으로 근무하고 있었으며

그해10월3일 제1해병사단 본부에 호출되어 랜드와 합류했다.

헤스콕은 제55고지에서 저격교관으로 활동하게되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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츄라이지역 헌병중대 근무당시의 헤스콕

랜드대위는 저격병 선발자격의 첫 번 째 기준으로  먼거리를 주파할 수 있는

강인한 체력을 가진자로 정했다. 또한 강인한 정신력도 요구되었다.

낮과 밤의 구분없이 혼자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용기와 주어진 임무는

꼭 완수하고야 마는 신뢰성, 철저히 훈련된 인재를 필요로하였다.

특히 소총사격은 남보다 훨씬 우수한 병사여야했다.

이것은 다시 기본적인 사격교육을 시켜야하는데 드는 시간의 낭비를 고려했던 것이다.

사냥경험자, 수렵관련업종 종사자등에서 선발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방법이기도했다.

 

랜드 대위는 도둑이 도둑을 잡는다는 비유를 자주썼다.

미군을 고통스럽게하는 적 저격수를 미군 저격수가 없애버린다는 표현이었다.

랜드 대위는 M-14소총과 한국전쟁에서 쓰였던 M-1D저격소총, 레밍턴 그리고

윈체스터등의 다양한 총기를 구비했으며 M-48등 8~10배율의 스코프를 도입하여

2인1조로 구성된 저격팀에게 지급했다.

 

해병대는 일부 살인청부업자들이 사용했던 7.62mm 레밍턴 M700소총에 주목했다.

원래 민간용이었으나 해병대에서 스코프를 얹어 M40이된 것이다.

해병대는 윈체스터 M70모델과 경합끝에 M40 소총이 신뢰할 만하다 판단하여

주력 저격소총으로 채택하였다.

1966년 미해병대는 700정의 M40을 도입하기로 결정한다.

그러나 윈체스트70을 선호하는 해병들은 레밍턴과함께 병행 사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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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신이 매우 두꺼운 레밍턴 M700소총(위). 몸체를 강화유리섬유로 개량한 M40A1(중).

거의 30년이 지난뒤 맥밀란 A4유리섬유로 몸체가 개량된 M40A3(맨아래).

새로 개발된 M118LR탄약을 채용하여 더욱 강력한 파워를 가졌다.

 

M40A1/M40A3  길이- 11.76 cm.  총신길이 - 61cm(롱 바렐).

무게- 6.58kg.  (소총 + AN/PVS-10 주 야간 겸용스코프 = 10.9kg)

5발장탄 - 7.62mm(308)탄.  발사속도 - 초당 777m.

유효 사거리 - 915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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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체스터 M70 소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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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에서 주력으로쓰인 M1D 저격소총. M84망원렌즈를 장착했다.

M1D는 베트남전쟁 초기까지 미군의 주력 저격소총자리를 차지하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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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1-C 저격소총을든 미해병 저격수 (1965년 도미니카 공화국. 산토도밍고).

M1-C는 2.5배율의 M-81을, M1-D는 2.5배율의 M-82 망원렌즈를 사용했다가

1954년쯤부터  M-84가 도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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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자동 M14소총에 스코프를 장착한 XM21저격소총.

그후 몇십년간 M21저격소총으로 활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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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40A1으로 저격훈련 중인 미제3해병사단 제7연대 제1대대 저격수.

2000년 5월 19일 태국 코브라 골드 작전

 

 

 

3부 계속 ... 기대해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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