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은 하우즈 판과 베트남에서의 작전경험등을 바탕으로하여
헬리콥터 기병부대를 창설하기위한 작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하우즈( Hamilton H. Howze)장군은 국방부를 비롯한 정부부처들과
민간업자들을 자신의 업무에 참여시켰다.
하우즈의 최종보고서는 1962년 8월 20일에 제출 되었으며
공중 강습 사단이라는 획기적인 부대의 창설을 추천하고 있었다.
1963년1월7일, 대통령 령으로 공중강습사단(air assault division)과
공중수송여단의 테스트가 인가되어 2월15일 조지아 주 포트 베닝에서
그 기초 조직을 만들기 시작했다.
순전히 테스트만을위해 만들어지는 이사단의 명칭은
제11공중강습사단으로 명명되었으며
헨리 킨라드 준장(Harry W. O. Kinnard)이 사단장으로 임명되었다.
제10공중수송여단은 대대급 편제로 편성되어졌다.
여단장 델버트 브리스톨(Delbert L. Bristol)대령휘하에는
191명의 장교와 187명의 준위, 2645명의 사병과, 총 154대의 항공기가
공급되었는데 그 중 125대가 헬리콥터이고 나머지 29대는 고정익 항공기였다.
미 육군 역사상 처음으로 편성된 부대 지휘관이라는 막중한 임무를 부여받은
킨라드 준장은 지휘본부에 아이디어 센터를 만들어 테스트 프로그램과
장비의 개발을 독려했다.
하우저 킨라드
훈련 중인 제11공중강습사단 병사들과 CH-47A.
CH-47A 치누크. 포트 베닝 1962년.
특히 야간작전의 중요성이 강조되어 제227강습대대장 죤 스톡턴 (John B. Stockton)
중령은 야간편대비행을 위한 새로운 조명개발에 나서게되고
CH-47A 치누크 헬리콥터 대대장 벤자민 실버 주니어(Benjamin S. Silver. Jr.)
중령은 곡사포의 수송에 필요한 새로운 장비와 부품들을 수배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리고 소수의 인원은 수시로 베트남을 드나들며 아이디어를 찾아내고자했다.
제11강습사단은 숱한 시행착오들을 겪으며 크고 작은 훈련들을 실시했다.
드디어 1964년 10월14일부터 11월12일까지 4주간의 일정으로
캐롤라이나 주에서 공중강습 테스트를 실행하게 되었다.
1년반 동안 힘겹게 훈련해왔던 모든 것들을 보여주고
평가를 받게되는 순간 이었다.
가상의 적군은 제82공정사단이 맡았고 이들은 아주 훌륭하게 작전을 전개해 나갔다.
그러나 이를 물리쳐야할 공중강습군은 아주 불리한 상황에 처해지고 말았는데
대서양 쪽에서 일어난 태풍 이사벨의 영향으로 많은 비가내려 시계가 아주
불량했고 비행고도도 제한 되었던 것이다.
세찬바람과 얕게 깔린 안개가 최악의 장애물이었으나 이를 무릎쓰고
공중강습군은 120대의 헬리콥터를 작전에 투입하여
결국 성공적인 결과를 얻게된다.
4주 동안 진행되었던 헬리콥터를 이용한 병력의 전개, 공격, 방어, 후퇴등
전혀 새로운 개념의 전술 테스트가 종료되어 그 평가만을 남겨놓고 있었다.
테스트를 마친다음 제11공중 강습사단은 해체되고 테스트에 동원되었던
거의 대부분의 병사들과 장비는 본대로 복귀했다.
12월1일 최종평가보고서가 맥나마라 국방장관에게 제출되었고
이제 공중강습부대의 미래는 그의 결정에 맡겨졌다.
육군은 이 새로운 개념의 공중기동부대(Air mobile)의 창설이
이루어질것으로 굳게 믿고 있었다.
공군은 자신들도 참가하여 공동테스트를 실시하자고 요구했다.
1965년3월, 대부분이 본대로 복귀한 상황에서 찬반논란 때문에 다시 부대를
결성하여 테스트를 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베트콩의 적극적인 공세로 베트남의 상황이 악화되자 미 국방부는 공중강습사단을
대신한 공중기병(Air Cavalry)을 만들어 베트남에 전개하는 시험적인 방안을 마련했다.
육군은 사상 처음으로 실전에서 공중기동 전술을 테스트해볼 계획이었다.
그리하여 1965년 7월1일, 말대신 헬리콥터를타고 전투에 나서게될
제1공중기병사단(1st Cavalry Division - Airmobile)이 공식적으로 탄생하게된다.
베트콩의 공격을받은 비행장과 파괴된 항공기
제1기병사단은 테스트부대였던 제11공중강습사단과 한국주둔 제2보병사단의
일부여단 병력을 흡수하여 조직되게 되었다.
그러나 이게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짧은 기간에 조종사들은 재교육을 받아야했고 여단의 병사들은 공수교육
이수자여야했으며 대대의 편성과 비행대의 편제도 대폭 수정되었다.
미국은 이미 통킹만에서 구축함 매독스와 터너조이가 공격받았다는 구실로 이른바
롤링 썬더작전이라는 북폭을 단행하긴 했지만 지상군을 투입했던 것은 아니었다.
1964년들어 북베트남이 소련이 제공한 현대식 무기를 도입하여 전력을 강화 시켰고
호치민 루트를 따라 베트콩이아닌 북베트남 정규군이 남베트남으로 침투되곤 했다.
한 개의 남베트남 연대병력이 북베트남 정규군에의해 괴멸당하기도 했다.
베트콩이 비엔 호아 비행장의 미군시설을 공격하여 4명의 군사고문단을 죽이고
5대의B-57 폭격기를 파괴하는 등 테러가 발생하자 북폭의 강도는 한층 더 높아졌다.
그러다 1965년 1월부터 지상군 파병의 기회만 노리고 있던 미국은 미군 비행장 시설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1965년 3월 8일 오전9시, 해병원정여단의 2개대대
3500병력을 다낭에 상륙시켰다.
해병대를 시작으로 오키나와 주둔 제173공수여단의 보병과 포병으로 구성된
2개 대대를 5월 5일 비엔 호아와 붕 타우 비행장에 배치했다.
비록 공식적인 파병이 선포된 것은 아니었으나 이것은
본격적인 지상병력 참전의 비밀스런 요식절차였다.
잔뜩 긴장한 채 다낭에 상륙한 해병대를 기다렸던 것은 베트콩이 아닌
군사고문단과 사진기자들, 그리고 환영의 꽃다발을 든 아름다운
베트남 아가씨들 이었다.
UH-34D 씨 호스
1965년8월18일. 츄라이에서 스타라이트 작전중인 해병에게 물자를 수송하는
HMM-361 소속 UH-34D 씨 호스(seahorse)헬리콥터.
1525마력 라이트 R1820-84B 사이클론 공냉식 레이디얼 엔진 탑재
UH-34D 30구경 기관총과 기관총사수(Door gunner) . 슈 플라이 작전
M-60 사수옆에 해병들의 M-14소총이 보인다.
헬리콥터 미사일 시스템 테스트 1961년.
20밀리 기관포 포드
173공수여단은 한달 뒤인 6월경 호주군 연대의 1개대대와 합쳤다.
6월28일, 제173공수연대 병력은 남베트남군의 지휘하에 작전에 참가하였다.
이 작전에는 남베트남 공수부대 2개대대와 호주대대를 비롯한 총9개
대대규모의 병력이 참가했다.
그리고 77대의 수송용 헬리콥터를 포함하여 총144대의 UH-1B와 UH-1D헬리콥터를
이용한 이 작전은 사이공 북쪽 D지역이라 명명된 장소에서 실시되었는데
25명의 베트콩을 사살하고 50명에게 부상을 입혔으며
다량의 무기와 쌀이 노획 되었다.
1965년 7월 28일, 린든 존슨은 미 지상군 12만5천명을 베트남에 파병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바로 다음날 캔터키 주의 포트 켐벨에서 이동해온 제101공정사단의
여단병력이 캄란 만으로 들어왔다.
또한 제1기병사단의 선발대가 8월25일 베트남으로 들어와
제101공정사단의 호위를 받으며 안케 지역으로 이동했다.
나머지 약 8천명의 병력과 90대의 헬리콥터, 120대의 차량은 3척의 수송함과
항공모함 복서(USS BOXER)에 승선하여 태평양을 가로질러 오고 있었다.
그중 헬리콥터를 가득실은 복서는 수에즈 운하를 경유하여 베트남으로 향했다.
제1기병사단에는 24대의 무장 모호크가 포함되어 있었다.
제1기병사단은 퀴논 항에 도착하여 항공기들을 항구에 하역했다.
CH-47 치누크는 퀴논과 안케를 오가며 병력과 물자들을 수송했다
제1기병사단 병사와 장비를 가득실은 USS BOXER
항모 복서에 적재된 CH-47A.
베트남으로가는 동안 기체에는 염분과 바람에의한 부식 방지용 스프레이 처리를했다
제1기병사단이 진주한 안케에 물자를 수송하는 CH-54. 10톤까지 수송할 수 있다
제1기병사단 제228비행대대 소속 A/ACH-47A 치누크(1966년9월. 안케)
노즈에 M-5병기시스템을 채용하여 건쉽 치누크라 불리었다.
A/ACH-47A 공격용 치누크.
XM-18 7.62mm 미니 건 포드와 XM-159 2.75 인치 로켓포드, 20mm기관포를 장착했다
XM-18 미니 건 포드
A/ACH-47A 치누크의 50구경 기관총 사수.
CH-47의 M-60D기관총. 탄피 망은 캔버스 천으로 만들어졌다(XM-24병기 시스템)
CH-47 화물 램프의 M-60 사수
베트남에 파병된 제1기병사단 병사들이 CH-47A에서 내리는 모습. 1967년
제1기병사단 제228헬리콥터 대대 소속 CH-47B
베트남전장의 헬기편은 이것으로 마지막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