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베트남 전쟁동안 레이더로 유도되는 대공포와 미사일에
많은 수의 항공기를 잃은 쓰라린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손실을 줄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항공기가
레이더에 잡히는 단면적을 줄여야만 하는 것밖에 별다른 도리가 없었다.
이러한 스텔스(Stealth)기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고열을 발생시키는
흡,배기구의 문제를 해결하여 적외선 탐지를 회피하여야하고,
기체 자체의 대 레이더 반사면적(RCS-Radar Cross Section)을
줄이면 될 것이란 잠재적 가능성을 발견하게된다.
만약 그렇게만 된다면 그동안 2천억 달러를 들여 건설한
소련의 방공망은 무용지물이되어 버리는 것이다.
미국방부는 여러 항공기 제작사에 레이더에 걸리지 않는 스텔스 기 개발을 요청했다.
록히드 사에는 스컹크 웤스(Skunk Works)라 불리우는
항공기 개발 부서인 ADP(Advanced Development Projects)가 있다.
이 부서는 U-2정찰기와 SR-71 전략 정찰기를 개발해내는 등
그동안 놀랍도록 혁신적인 디자인으로 항공기 발전에 크게 이바지하여 왔다.
1975년, 록히드 사의 스컹크 웤스 기술자들은 새로 개발한
컴퓨터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새로운 디자인, 더 공기역학적이고도
레이더 단면적을 줄일 수 있는 기체를 연구하고 있었다.
물론 경쟁사인 노드롭이나 제너럴 다이내믹스도 이 연구에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었다.
결국 최종경합끝에 록히드사가 승리하여 1977년, 미국방부
고등방어연구기획처(DARPA-Defense Advanced Research Projects Agency)와
2대의 원형기 제작과 테스트 계약을 맺게된다.
실제 스텔스 기의 약 60% 크기의 스텔스 스트라이크 파이터 기를 제작하는
이 계약은 헤이브 블루(Have Blue)라는 코드명이 붙여지게된다.
이 프로그램은 비밀분류 "블랙"으로서 극비로 다루어지게된다.
헤이브 블루는 록히드 공장에서 제작에 들어가게되는데,
록히드 사는 시간절약과 예산을 이유로 이 2대의 원형기에
기존의 항공기부품들을 사용하는 허가를 얻었다.
그리하여 엔진은 제너럴 일렉트릭 J-85를, 랜딩 기어는 A-10의 것을,
조종장치는 F-16에 사용되었던 것들을 조합하였다.
1978년2월, 원형1호기가 제작되어 배에실려
네바다 주 그룸 레이크로 옮겨져 테스트에 들어가게된다.
록히드 테스트 파일럿 빌 파크가 네바다 주에서 비밀리에 비행 테스트를 수행하게되었다.
2호기도 그해 3월에 제작되어 미공군 조종사
켄 다이즌 중령(후일 노드롭 B-2폭격기 테스트 책임자가된다)가 맡게되었다.
1978년5월4일, 1호기가 테스트 비행 중 결함으로 거꾸로 추락하게되는데
다행히 조종사 빌 파크는 비상탈출에 성공하였다.
이 사고로 헤이브 블루 1호기는 산산조각이 났으며 조종사 빌 또한 탈출시
부상을 당해 1989년9월 은퇴하기까지 비행하지 못하고 관리자로 재직해야했다.
남은 2호기는 켄 다이즌에 의해 1978년부터 1980년까지 총 65회 테스트 비행을 실시했다.
이 테스트에서 레이더 반사면적(RCS)이 기체의 세부적인 곳까지
모두 해당됨을 알게되었다.
때문에 랜딩기어 도어, 캐노피의 격차, 연료 주입구까지도 조정되어야했다.
10개의 나사 중 1개만 느슨하게 조여져도 RCS를 증가시킴을 알게되는 등
시행착오 끝에 1천분의 1까지 RCS를 줄이는 데 성공하였다.
테스트는 계속 반복 되었다.
헤이브 블루는 아주 근거리에서 보잉 E-3 조기경보기에 탐지되었을 뿐,
그 어떤 레이더에도 포착되지 않았다. 지상의 수 많은 미사일 추적 레이더들은
미사일 최소 탐지거리 내에서도 헤이브 블루를 잡아내지 못했다.
하지만 레이더 흡수재인 RAM(Radar Absorbent Material)도료는
손으로 도포하였기 때문에 넓은 면적에 정밀하게 도포하는 기술이개발되어야만했다.
헤이브 블루 목업
헤이브 블루 레이더 반사면적(RCS) 테스트를 위해
여러개의 목업을 제작 중인 스컹크 웤스 기술진.
미공군 조종사 켄 다이즌 중령이 테스트 비행 중인 헤이브 블루 2호기
캘리포니아 록히드 버뱅크 공장의 헤이브 블루 1호기(1001). 엔진 인테이크가 적색이다
레이더 흡수재 RAM(Radar Absorbent Material)를 도포한
헤이브 블루 1호기가 테스트를 위해 대기 중이다.
헤이브 블루는 주익을 분리시킨다음 C-5 수송기에 실려
그룸 레이크로 운반되어 각종 테스트를 받았다
헤이브 블루 프로그램이 성공하자 윌리엄 페리 국방차관이
스텔스 기술을 적용하도록 적극 촉구하였고,
1978년 11월, 국회가 개발을 승인하여 헤이브 블루의 다운 스케일형이 아닌
실물기체(FSD-full scale development)5대가 생산될 수 있게되었다.
1980년 국방장관 해롤드 브라운은 카터 행정부에 기존의 예산에비해
무려 100배나 증가된 예산을 요청하여 스텔스 기 개발에 힘을 실어주었다.
1981년6월, 기체가 제작완료되어 성공적으로 운용되자
이어 양산형15기를 추가로 발주했다.
이후 국회는 총59기의 F-117A 생산에대한 예산을 승인하게된다.
그리하여 본격적으로 F-117A 개발 프로그램이 가동되어 우선 생산되어질 기체의
테스트와 이 후 생산되는 기체의 비밀스런 운용과 훈련을 위해서는
새로운 장소가 필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사람의 왕래가잦은 그룸 레이크에서는 비밀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판단을 내렸으며
프로그램의 민감한 특성 상 기존의 공군기지도 맞지 않았다.
기체 생산 프로그램은 시니어 트랜드(Senior Trend)라는 새로운 코드명으로 작동되었다.
그리고 새로운 부지로는 네바다 주의 넬리스 공군기지(스위스영토 크기만한 기지이다)로
부터 가까운 옛 핵무기 실험장 부근으로 정해져 건설에 착수했다.
토노파 테스트 지역(Tonopah Test Range - 나중엔 그냥 TTR로 불려졌다)으로
명명된 이 기지는 큰 격납고와 1만2천 피트의 활주로가 갖추어졌으며
지원시설들이 추가되었다.
4색 도색의 시니어 트랜드(Senior Trend) 1호기 - YF-117A(79-10780).
1981년 6월18일 최초로 비행, 이명칭이 붙여졌다.
시니어 트랜드(Senior Trend) 1호기 - YF-117A(79-10780) 생산 중
시니어 트랜드(Senior Trend) 1호기 - YF-117A(79-10780)의 주익이 결합되고 있다.
각 형식의 콕피트 계기판넬 디테일
YF-117A
F-117A
2편...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