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튼 소령은 르노 FT-17 탱크로 미 육군 최초의 탱크부대 훈련장을 프랑스의 랑글에 창설하였다
[독일군 기관총부대로 돌진한 미군 최초의 탱크전]
탱크는 1차대전시 영국에서 처음 개발되어 프랑스의 솜므전투에 처음 등장하였다.
이후 독일은 처음에 탱크의 출현에 놀랐던것과는 달리 괴물처럼 포를 쏘며 움직이는 쇳덩이의 정체를 파악하여 곧 자국 탱크를 제작하게 되었다.
프랑스또한 마찬가지였다.이는 영국의 산업혁명이 유럽으로 파급된 30여년의 시간에 비하면 극히 짧은기간에 이루어졌다.
그러나 미국의 경우 아이러니하게도 기갑부대의 첫 창설 전차로 사용한 것은 프랑스제 르노 FT-17 경전차 였다.
1차대전시 미국은 전차의 개발이 아직 되지않았던 입장이었던지라 프랑스전차로 기갑부대를 편성했었다.
그러나 2차대전시에는 덩케르크에서 독일군에게 패주하여 영국으로 쫓겨간 자유 프랑스군은 이태리 상륙작전이후 자국전차와는 성능이 비교가 안되는 월등한 미군전차를 지원받아 독일군과 싸웠다.
1918년 8월 프랑스 상미엘 돌출부에서 패튼은 고작 사흘 이지만 최초의 탱크전을 경험했다.
중요한 전투는 아니었지만 나중에 미국의 전사(戰史)와 미국 군인 사이에서 유명하게 되었다.
전쟁에 대한 패튼 대령의 욕망은 용솟음쳤다.싸움터와 영광에대한 극심한 매혹은 오래 오래 그를 사로잡았다.
9월에 두번째의 공격 대기 명령이 떨어졌다.
이튿날 아침4시 25분 3시간에 걸치는 포격이후 공격이 개시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공격 개시직후 퍼어싱 장군이 빈틈없이 마련한 작전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개시된전투의 화약연기와 혼란속에서 패튼의 탱크부대는 그들을 옹호하는 보병부대를 놓치고 말았다.
선두의 탱크에 타고있던 패튼은 우군의 보병존재를 까맣게 잊고서 휘하의 탱크에게 베르덩근처의 작은마을 바렌느로 돌입을 명령했다.
여기서 잉그리쉬 대위가 지휘하는 부대를 만났는데 이 부대는 독일군진지를 소총의 사정거리안에 잡으면서도 적의기관총에 저지되어 조금도 전진하지 못하고 있었다.
거기서 패튼이 선봉을 맡게 되었다.
패튼은 우선 탱크를 돌입시키고 보병부대에 뒤따르기를 명령했다.
약 300명의 보병들이 겁을 집어먹고 일어나 연거푸 고래 고래 고함을 지르며 닥달하는 젊은대령의 뒤로부터 독일군을 향해 비탈을 기어 오르기 시작했다.
탱크 5대가 적의 제1선을 돌파 했음에도 불구하고 보병은 또 다시 움직이지 못하게 되었다.
패튼은 포병부대의 지휘관을 불렀으나 선뜻 나오는자가 없었다.
보병부대는 사기를 잃어 비탈에 웅크리고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탱크에 뒤따르고 있던 보병이 즉시 돌파구로 부터 돌입함이 절대 불가결하다고 패튼은 판단했다.
보병이 움직이기 시작함을 기대하고서 [나를 따르라] 하고 외쳤지만 한명도 움직이지 않았다.
절망적인 심정으로 패튼은 지원병을 모았다.
5명이 지원하였는데 그 속에는 그의 당번병 조 안젤로 상사도 있었다.
머리를 끄덕이면서 지원병들을 바라보며 음성을 힘껏돋구어 외쳤다.
좋아 제군 자. 가자.적 조차도 칭찬하지 않을수 없었던 그 늠름한 용기로 그는 독일군 기관총 진지를 향해 돌격대를 끌고서 돌진했다.
중턱에서 돌아다 보았더니 따라오는 건 안젤로 뿐이며 3명은 적탄에 넘어지고 1명은 출혈한 팔을 잡고서 포탄에 움푹패인 구멍에 웅크리고 있었다.
그는 그래도 단 1명을 데리고서 뛰었다.
독일군은 포격을 퍼부었다.적진까지 30 미터 되는 곳까지 육박했을때 유산탄 파편에 맞아 그는 지면에서 나가 떨어졌다.
안젤로와 함께 포탄 구멍에 뛰어들어가 보았더니 허벅다리에 커피잔 정도의 상처가 있고 출혈이 심했다.
이것으로 미군의 뮤즈, 아르덴느 공세에서의 패튼의 역할은 끝났던 것이었다.
궁둥이가 반쯤 없어졌지만 그외는 별일이 없었지 하고 후일 곧잘 농담하였다.이리하여 패튼은 후송되었다가 다시금 일선으로 돌아왔을때 전쟁은 끝나 있었다.
1차대전시 르노 FT-17 탱크 앞의 아이젠하워
영국 보빙턴 탱크 박물관에 전시된 르노 FT-17 경전차
벨기에 브뤼셀 왕립군사 박물관의 르노 FT-17 경전차
미국 캘리포니아 리틀 필드(Little Field) 전차 박물관의 르노 FT-17 경전차
르노 FT-17 경전차는 현재의 눈으로 보면 오래된 구형 트랙터 처럼 생긴 엉성하기 짝이없는 형태의 전차로 보인다.
그러나 1950년 한국동란인 6.25 사변당시 전차가 한대도 없었고 그이전에도 전차를 제작할수없었던 한국과는 달리 이미 유럽의 서방제국들은 영국을 필두로 독일,프랑스,러시아 등은 이미 90 여년전부터 전차를 생산하기 시작했었다.
전차 개발과정의 역사는 이제까지 각국은 상대국 신형전차의 장점을 모방하고 벤치마킹하여 거듭개조 되고 발전된 형태로 변모해 왔다.
르노 FT-17 전차는 그러한 프랑스 전차 변천사의 한 부분이며 미국 최초의 기갑부대 창설 전차였던 내력을 갖고있다.
일본 닛산 자동차를 인수하고 한국의 삼성자동차를 인수하여 현재 한국내수용자동차 중 제일 인기있는 자동차 메이커인 르노(Renault)는 1차대전 때부터 저력이 있었던 회사 였던것이다
자료제공 : 야 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