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551 셰리단(SHERIDAN) 공정전차
미국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1952년말, 항공기로 투하할 수 있는 전차개발에 나서게된다.
한국전쟁을 경험한 직후, M41 워커불독의 그 우수성을 확인할 수 있었으나 분쟁지역에
신속히 배치하기위해서는 낙하산으로 투하해야할 필요성을 절감한다.
육군은 M41을 업그레이드하려했으나 무게와 크기를 줄일 수 없다는 결론을내렸다.
이것은 완전히 새로운 전차를 개발해야함을 의미했다.
그 첫 번째 실험차량은 캐딜락 사에서 제안한 76mm포를 탑재한 T71 이었다.
T71은 M41보다 한층 경량화되고 승무원 수도 적었지만
설계자체가 기존의 전차와 변함이 없었다.
그리고 너무 약한 장갑 때문에 육군은 이것을 제외시키고
새로운 디자인의 T92에 주목했다.
T92는 기존의 전차와는 판이한 디자인을 가지고 나타났다.
차체가 아주 낮았으며 76mm 주포를탑재했다.
주포의 양쪽으로는 2개의 기관총구가 있었으며
포탑이차량의 후방에달린,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디자인이었다.
비록 얇은 장갑을 채택하였지만 차체에 각도를줘 피탄되었을 때
그 방호력이 M41을 능가한다는 평가가 내려졌다.
육군은 1954년부터 T92를 실험전차로 채택하기로하고
디자인의 업그레이드를 시작했다.
그리하여 1957년까지 원형전차를 실험하고 있었다.
T92가 기본적으로는 군의 요구에 부합한다는 평가를 내렸던
육군은 큰 문제에 직면하게되었다.
T92가 소련의 신형전차인 T-54와 T-55와 맞서기에는
화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육군은 T92에 90mm 주포로 무장할 수 있는지를 실험하게된다.
강화된 포를 탑재한다는 것은 결국 차체의 증가를 불러오고
그것은 차량무게의 증가와 직결되는 것이었다.
결국 육군은 T92를 생산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T92
육군은 항공기에 쉽게실을 수 있고, 낙하산으로 투하할 수 있는
경전차를 보유하게되면 부대임무 특성상 무장이 약할 수 밖에없는
공수부대의 호위와 수색정찰에 효과적일 것으로 판단하였던 것이다.
또한 분쟁지역에 신속히 투입할 수있다는 장점도 고려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76mm 포가 소련군 전차를 격파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점 때문에
육군은 심각한 딜레마에 빠졌다.
당시 육군에서는 새로운 무기를 연구 중에있었는데
기존의 포와는 전혀다른, 반동이없는 건/미사일 런처 시스템이었다.
가벼운 미사일발사기를 탑재하면 기존의 포보다 더 많은 탄약을 적재할 것이기때문에
현존하는 기존의 중형전차들보다 더 우수한 화력을 보유하게될 것으로 기대되었다.
육군은 이 시스템을 시레일러(Shillelagh)로 명명하였으며 만약 테스트에 통과하고
그 실용성이 입증되면 공정전차에 탑재할 계획이었다.
뿐만아니라
M60전차와 현재 개발을 고려중인 주력전차인 MBT-70에도 탑재할 생각이었다.
시레일러 시스템이 개발되고 있는 동안 차량을 개발해야했다.
육군은 기갑수색 및 공중강습차량이라는 프로젝트로
여러 회사들에게 입찰을공표하게되었다.
곧 여러 가지 제안서들이 제출되었고,
1960년 봄에 제너럴 모터스(GM)의 안이 채택되어
6대의 원형전차인 XM551의 발주를 승인하였다.
우선 1차 발주분의 테스트가 진행되었고 그동안 보완을 거치면서
발주의 최종승인은 1961년 12월에야 이루어졌다.
그러면서 추가분으로 6대를 더 발주하면서 총 12대가 우선 생산되게 되었다
XM551
M81런처-미사일 발사 테스트
테스트는 하늘로부터 땅으로 떨어지는 공정전차의 특성에 맞게 진행되어졌고
기계적인 부분은 대부분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었다.
셰리단은 포탄, 미사일을 모두 발사할 수 있게 제작된
152mm M81 건 런처를 장비했으며 단 포신이었다.
그러나 시레일러시스템은 HEAT탄과같은 보통탄을 사용하면서 그 문젯점들이 드러났다.
시레일러는 포를 발사한 후 연소식 탄피가 완전 연소가 되지 않았으며
고열이 그대로 포신에남아 다시 장탄하기가 곤란했다.
그 이유는 포신이 공기 중의 습도를 흡수했고 남겨진 습도가 고열을 발생시켰던 것이다.
나중에 이 해결책으로 포탄에 비닐봉투를 사용하였지만 효과는 없었다.
그러나 이러한 결함에도 불구하고 셰리단의 양산이 결정되어
1965년, GM의 엘리슨 자동차 회사에 대량생산을 주었다.
문제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급히 생산하도록한 이 결정은 훗날
잘못된 결정임이 밝혀지고 미래의 미국전차 발전에 큰 걸림돌로 작용하게된다.
이것은 본격적인 베트남 전쟁의 개입 때문이기도 했다.
기존의 12대를 제외한 양산형은 외형이 좀 더 경사를이룬 차체로 태어난다.
육군은 1965년에 M551셰리단으로서 정식으로 제식화했다.
M551 셰리단 공정전차
셰리단은 알루미늄 합금 차체로 제작되어 무게가 16톤에 조금 못미쳤다(34,899파운드).
구획은 3개로 나뉘어져 앞부분은 조종실, 중앙은 전투실, 후부에 엔진이 탑재되었다.
엔진은 300마력의 디트로이트 디젤 수냉식 6V53T 터보차저형을
탑재하여 경쾌한 기동성을 얻게된다.
셰리단의 최고속력은 70km/h 이었고 항속거리는 약 603km정도가 되었다.
트래스미션은 전진4단, 후진 2단이다.
연료는 약 160갤런을 적재한다.
엔진실은 자동소화장치가 설치되었다.
무장은 152mm M81 건 런처로 길이 2.43m의 단포신이다.
미사일과 보통탄을 사용하며 통상 미사일8발, 보통탄 20발을 적재했다.
미사일의 최대사거리는 4km이고 유효사거리는 3km였다.
보통탄은 좁은공간의 활용을위해 완전연소식 탄피를 채택했다.
부 무장으로는 7.62mm기관총 2정, 12.7mm 50구경 M2 중 기관총, 연막탄 발사기 8기이다.
포탑은 강철로 제작되었으며 포수의 조준경은 야간사격 시 M-44적외선방식이며
주간용으로는 M-129조준 페리스코를 사용한다.
장전수는 360도 회전이 가능한 M-37 페리스코프를 사용한다.
차장용 큐폴라도 마찬가지로 10개의 창을 사용하여 360도의 시계가 확보된다.
수륙양용이 요구되어 부항 스크린을 사용하면 수상에서 약 6km의
속도로 주항할 수 있으며, 화생방(NBC) 방호장치가 설치되었다.
부항 스크린은 차체에 설치하는데 약 5분에서 10분 정도가 소요된다.
부항 스크린은 차체 측면 상부에 수납되어있다.
위의 차량은 1967년에 촬영된 것으로 76mm 캐논 주포를 탑재했다
또한 낙하산으로 투하할 수 있었으나 테스트를 통해 많은 문젯점들이 발견되어
거의 낙하산 투하는하지 않았다. 낙하산 기능고장으로 인하여 차량이
파손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때문이었다.
육군은 베트남전쟁이 본격화되자 파나마 공화국의 밀림지대에서 테스트를 시작하였다.
테스트의 결과는 최악이었다.
주포와 차량내부의 습기문제, 차체문제, 미사일의 부정확도,
엔진의 과열등 어느것 하나도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지 못했다.
알라스카에서도 테스트가 이루어졌다.
극한지대에서의 테스트또한 최악이었다.
원래 유럽을 겨냥하여 제작되었기 때문에 추운환경에 견뎌야했으나
이마저도 엉망이되어버렸다.
호주군도 차량을 테스트했지만 밀림지대에서의 대 게릴라 전에
투입하기에는 부적합하다는 결론을내렸다.
영국은 셰리단에 악평과 더불어 단한 대도 구매하지 않았다.
그동안 많은 예산을 잡아먹은 셰리단을놓고 고민하던 육군은
뭔가를 보여줘야하는 입장에 놓여졌다.
또한 셰리단이 생존이 가능한 병기임을 증명해보이고자했다.
결국 육군은 베트남에서 야전 테스트를 실행한 후
셰리단을 베트남 전장에 투입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많은 야전 지휘관들은 주포의 문제를들어
셰리단의 베트남 전개에 반대하고 나섰다.
그러나 약간의 개량을가하여 1969년1월, 64대의 셰리단이 베트남에 먼저 들어간다.
화력의 문제는 보병살상을 전재로 만들어진
일명"벌집"(BEEHIVE)으로 불리우는 M6252를 채택하여 해결했다.
이것은 거의 1만개의 화살모양의 자탄이 들어있어 강력한 화력을 제공해줄 것이었다.
원래 2개의 기갑대대에 배치하려던 계획은 변경되어 M48A3 패튼 전차를
다른 차량으로 교환하며 가볍게 몸을 만들어야했던 제 11기갑연대(블랙호스)
제1대대에 배치되는것을 시작으로 제4기갑연대 제3대대를 비롯,
이후부터는 공평한 배분을위해 사단과 연대에 배속된 기병대대에 골고루 배치되었다.
1970년에는 200대 이상이 베트남에 전개되었다.
그러지 않아도 신뢰를 듬뿍 받고 있던 패튼전차를 셰리단으로 교체하는 것에 불만이
많았던 병사들은 셰리단 적응 훈련과 교육에 투입되면서부터 치를 떨게된다.
1969년2월, 제314기병대대에배속된 셰리단이 첫 전투에 투입되었다가
지뢰폭발로 운전병이 죽고 차량은 전소되었다.
패튼도 대전차지뢰에 대파되는 마당에 알루미늄 합금의 경전차는 두말할 필요도없었다.
그러나 한달 후인 3월10일에 셰리단은 그 첫 번째 전과를 기록하게된다.
이날밤 타이 닌 시 외곽의 감시초소에서 대규모의 NVA병사들이 나타났다는
보고가 들어온다. 314기병의 셰리단들이 경쾌한 기동력을 발휘하여 잽싸게달려가
벌집을 쏘아날렸다. 탄이 떨어진 곳은 황폐화되다시피하였고
NVA는 40명이상의 전사자를 남겨두고 도주하였다.
또한 11기갑연대 1대대에서도 전과가 보고된다.
1대대의 2개 소대가 적군의 공세가 예상되자 비엔호아로 파견되었다.
베트콩의 박격포 공격이 시작되자 셰리단이 양쪽날개를 형성하여
재빠르게 달려가 152mm 벌집을 선물했다.
그 강력한 화력에 베트콩들은 거의 패닉상태에 빠져 버렸다.
베트콩은 80여구의 시체를남겨두고 도주했다.
하지만 보통탄의 연소식 탄피는 계속 불완전연소를 일으켰고,
미사일또한 평지에서 사용할 일이 거의없었으며
어쩌다 사용하더라도 명중률이 형편없는 애물단지로 전락해버렸다.
파괴된 패튼 M48전차와 M551셰리단
그러나 시간이갈수록 셰리단은 자신의 결점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보였다.
장갑이없는 차체는 지뢰는 물론이고 휴대용 대 전차무기 RPG-7에 속수무책으로
관통당해 버렸다. 또한 50구경 기관총탄도 막아내지를 못했다.
승무원들은 피탄되면 재빨리 차량에서 빠져나오는 훈련을 받아야했다.
이것은 셰리단이 너무도 화재에 취약했기 때문이었고
이 화재때문에 탄이 폭발할 위험이 컸기 때문이다.
최후의 수단으로서 티타늄 방탄장갑을 부분적으로 채용했으나
대 전차화기에 대항하기에는 사실상 불가능했다.
차장은 50구경 기관총을 사용하자면 그 자신이 아무런 방패도없이 노출되는 것이었다.
병사들은 임시방편으로 M113에서 장갑판을 떼내어 큐폴라 주위에 설치했으나
나중에는 정식으로 공급되었다.
병사들이 숲에 쓰러져있는 노루로보이는 짐승을 쳐다보고있다.
그물네트로 방어막을 만든 셰리단
베트남 정공세때 파괴된 M113. 50구경 기관총을 장착했다.
고온다습한 베트남 기후는 전기계통에도 영향을 미쳤다.
엔진의 과열은 가동률을 심각히 저하시켰다.
육군은 원인분석에 착수하였고, 더 강력한 팬 벨트와
알루미늄 풀리를 강철로 교체하여 과열의 문제를 해결했다.
그러나 전기계통과 포탄의 문제들은 끝내 해결하지 못했다.
셰리단은 갈 수록 그 신뢰성을 의심받았다.
RPG-7에 맞으면 단지 구멍만 뚫리는 것이 아니라
필연적으로 화재를 일으켜 차량을 완전히 태우고야말았다.
셰리단의 마지막 작전은 오퍼레이션 람 손 719였으며
1971년말부터 배에실려 베트남에서 빠져나갔다.
파괴된 100대가량의 셰리단을 제외하고 살아남은 셰리단들은 유럽과 미국으로 보내졌다.
M551 셰리단 공정전차는 실패작 이었다.
미국은 1970년대 말부터 1980년 초까지 새로운
기갑차량 시리즈를 개발하려했을때 셰리단의 악몽을 꾸었다.
하지만 셰리단의 아픈경험은 미국이 더 강력하고 더 효율적인
무기시스템을 만드는데 큰 교훈을준 공훈의 측면도 간과할 수없는 것이다.
M551 셰리단 공정전차는 실패와 변화의 가능성을 동시에 안겨주었다
제식에서 제외시켰지만 그냥 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국립훈련센터에서 제식에서 빼 버린 셰리단을 소련의 차량과
흡사하게 개조하여 대항군(OPFOR) 차량으로 개조하여 훈련에 투입했다.
위의 셰리단은 소련의 대공전차인 ZSU-23/4로 개조된 것이다.
개조에는 VISMOD라는 킷트를 사용했다.
비즈모드는 화이버글래스 등으로 외관을 개조하도록해주는 킷트이다.
셰리단이 소련의 BMP로 개조됐다. 승무원도 소련군과 똑같은 복장으로 훈련한다
소련의 T-72로 개조되어 훈련 중인 셰리단
셰리단은 총 1700대가 생산되었으며 약100대를 제외한 나머지를 훈련용,
또는 폐기하거나 공사용차량으로 민간에 불하하며 그 쓰라린 최후를 맞이한다.
그래도 살아남아 개수를거친 차량들은(M551A) 파나마 침공에 투입된다.
낙하산을 이용해 10대가 참가하여 낙하산 기능공장으로 2대가 파괴되었으나
워낙 속전속결로 싱겁게 끝나버린 작전이어서 전투에의한 피해는없었다.
셰리단은 걸프전에도 참가하였다.
파나마 침공작전에 참가한 제82공정사단의 셰리단
NATO의 리포저 74 기동훈련에 참가한 M551 셰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