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인민해방군의 현대화,95식소총

슈퍼스탈리온 작성일 08.08.06 19:2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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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국공내전이 홍군의 승리로 끝난 이후 소련의 지원을 받아 군을 재건하기 시작한 인민해방군은 1953년 소련의 m1891/30 소총을 제식명 53식 소총으로 라이센스 생산해 운용했지만 반자동소총이 보편화되기 시작한 마당에 구식이 되어버린 볼트 액션식 소총에 만족할 수는 없는 일.
  결국 칼라시니코프의 역작 "ak-47"과 시모노프 sks ━ 45 소총을 제식명 56식으로 각각 채용해 생산해 운용했다.

인해전술은 가라! 수적인 우위보다는 질적인 우위를 추구한다~!!
백병전 추구? 언제적 얘기?!
해마다 쏟아붓는 막대한 국방비 속에 점차적으로 질적인 우위를 추구하는 인민해방군 보병화기의 상징, 95식 소총( qbz ━ 9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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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총기 개발사의 간략한 개요
  여러분이 잘 아시다시피 중국이란 국가는 화약의 발상지답게 꽤 일찍부터 화약무기를 제조해 운용했던 국가다. 물론 급격하게 발달한 서구에게 밀려 아편전쟁에서 일대 망신을 당하기는 했지만 이후에도 여러 곳에 국영 조병창을 세운 다음 풍부한 물자와 자원, 값싼 노동력을 기반으로 서양의 발달된 기술을 받아들여 꾸준히 총기를 생산했다.
  문제는 이러한 총기 생산이 외국의 총기 기술력을 잘 정리해 독자적인 국산 총기를 개발해 생산하는 것이 아닌 맹목적인 "짝퉁"이라는 것이었다.
  '불법 복제 왕국' 중국의 역사는 이미 이 시기부터 시작되고 있었고 그 결과 꽤 많은 외국의 유명 총기 메이커의 '해적판'들이 판을 쳤다.

 

'그래, 다 좋다' 이거다!! 이런 식으로라도 기술력을 습득할 수 있다면 그게 어디겠는가? 만은 당시의 중국에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였다.
  애초에 총기를 생산하는 조병창 자체가 대규모 공장도 아닌 일종의 대장간이나 철공소 수준이었고 청나라 조정에서 이러한 조병창들을 효과적으로 통제하지 못하다보니 총기의 품질이나 규격이 제멋대로였던 것이다.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냐? 하면 a 조병창에서 생산한 소총의 노리쇠가 c 조병창에서 생산한 소총에 맞지 않는다든지, b 조병창에서 생산된 권총의 탄창이 f 조병창에서 생산한 권총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처럼 최소한 정확하게 작동이라도 된다면 다행일 정도가 당시 중국 총기의 현실이었고 이런 판이니 기술 습득이 제대로 된다면 그것이 참으로 기적적이라 하겠다.
  결국 청 조정은 막대한 양의 서양 총기를 새로 수입해야했고 돈은 돈대로 나가고 기술력 습득은 제대로 되지도 않았으니...
 

 

19세기를 그렇게 암담하게 마무리짓고 20세기로 넘어왔지만 그다지 발전된 것은 없었다. 국민당 정권이 들어서면서 과거 독일의 gew 88을 한양 88식으로 라이센스 생산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이번에는 파울 마우저의 걸작 kar-98k의 체코제 버전인 vz.24를 바탕으로 한 국민 23식( 또는 한양 99식, 중정식으로 불리는 ) 소총을 생산했지만 철공소와 대장간 수준에서 그다지 발전된 것이 없는 중국의 조병창으로서는 군에서 요구하는 생산량을 도저히 맞출 수 없었고 엎친데 덮친격으로 일본과의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국민당군은 패주를 거듭하기만 하는 통에 여러 종류의 총기들( 노획한 일본제 포함 )이 뒤섞인 잡탕들을 들고 싸워야했다.
 

 

이러한 촌극은 훗날 제2차 국공내전이 발발하면서 대량의 미국제 총기와 전차들이 넘겨진 후에도 지속되었다. 영화 집결호를 보시면 당시의 엉망진창인 상황을 잘 묘사했다.
1949년 마오쩌둥이 이끄는 홍군이 국민당군을 대파해 중국 전역을 석권하면서 혼란스러웠던 중국의 총기 체계를 교통정리하기 시작했지만 오랜 전쟁으로 국토는 황폐해졌고 막대한 인명피해로 인해 새로운 총기를 개발할 여유가 없었다( 아니, 아예 중국이라는 나라가 계속 외국제 총기를 면허 생산하거나 규격도 제각각인 짝퉁들만을 출고했으니 뭐 기술이 있어야지 )
 

 

결국 마오쩌둥은 소련제 ppsh 41 기관단총을 제식명 50식으로 라이센스 생산했고 여기에 소련으로부터 공여받은 막대한 양의 m1891/30 소총과 m1938/44 "카빈" 등으로 한국전쟁을 치른 후 m1891/30을 제식명 53식으로 라이센스 생산했지만( 인해전술이 너무 잘 먹힌 것이 실책이었다 ) 이미 한국전쟁에서 m1 개런드와 카빈으로 무장한 미군과 한국군에게 호되게 당하면서 볼트액션 소총이 시대에 뒤떨어졌음을 뼈저리게 체감한 상태!!
 

 

게다가 m1891/30은 길이가 122cm로 너무 길었다. 백병전을 좋아하는 인민해방군이라지만 일단 화력이 상대와 어느 정도 동등해야 하는데 이건 상대방보다 너무나도 열세였던 것!
  마침내 중국은 1953년 총기를 포함한 개인화기를 연구하는 제208 연구소를 설립한 후 소련으로부터 기술을 도입해 시모노프가 설계한 반자동소총인 sks ━ 45와 칼라시니코프의 ak-47을( 마침 두 소총 모두 탄약이 7.62mm×39니 탄약 보급도 쉽다 ) 제식명 56식으로 각각 채용하여 운용했다( 물론 주력은 백병전에 유리한 sks ━ 45였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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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통해 어느 정도 기술을 습득한 중국은 자신감을 가지고( 아직 시기는 너무나도 이르렀지만 ) 기존의 56식 소총들을 기왕이면 한 종류의 소총으로 통일할 목적으로 마침내 63식 소총을 개발해 1969년부터 78년까지 총 100만정 이상을 생산했다.
 

 

하지만! 아직 기술력이 충분치도 않았던 중국의 입장에서 이 소총은 제 품질대로 생산할 수 있는 물건이 도저히 아니었다. 초창기에 생산된 63식 소총은 고장이 빈발했고 여기에 마오쩌둥은 적이 중국의 어느 해안에 상륙하더라도 "인민의 바다에 익사시킨다!"는 전략 하에 각 지역에 최대한 많은 양의 총기를 생산해 보급하도록 지시했으니 기술력이 형편없는 공장들까지 63식을 생산하면서 그 품질은 나날이 바닥을 기었고 심한 경우에는 부품들이 서로 맞지 않는 경우까지 발생했다.
 

 

여기에 안 그래도 불난 집에 부채질을 한 것이 1976년 문화대혁명 이후 집권한 마오쩌둥의 열혈 추종자들은 대부분 중일전쟁과 한국전쟁 참전자들이었다는 점이었다. 이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새롭게 주력으로 채용된 63식은 그야말로 '연발로 총탄을 낭비하는' 애물단지였고 마침내 이들이 이의를 제기한 것이다.
 
"앞으로의 전쟁에서 그 어떠한 적들도 인민의 바다에 빠뜨려 익사시킬 수 있다! 그렇다면 굳이 연발로 총탄을 낭비하는 소총보다는 한 발, 한 발의 정확한 명중률을 발휘할 수 있는 소총이 적당한 것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 인민해방군은 크나큰 실수를 범하고 있으니, 도대체 연발로 총탄을 낭비하는 소총이 둘( 56식과 63식 )씩이나 필요하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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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하여 63식 소총은 1978년 생산이 중단되고 다시 56식 소총( sks ━ 45 )의 생산이 재개되었지만 이 마오쩌둥 열혈 추종자들이 간과한 사실이 그대로 현실로 드러났다.
  바로 1979년 중월전쟁을 통해 반자동의 sks ━ 45로 자동소총으로 무장한 적을 상대로 싸운다는 것이 그야말로 어리석은 짓이며  그들이 맹신한 인해전술이 더 이상 통하지 않았다는 점!!( 괜히 2만명이 넘는 사상자만 냈으니
)
 

 

이 때문에 56식( sks ━ 45 )은 주력의 지위를 상실해 2선급으로 돌려졌고 1965년부터 56식( ak-47 )의 생산 방식을 프레스 가공으로 변경한 56-Ⅰ식이 채용되어 주력으로 운용되었다.
  하지만 중국과 소련의 관계가 냉각되면서 안 그래도 적이나 마찬가지인 소련의 총을 주력으로 쓴다는 것은 조금 뒷골이 땡기는 일이었다.
 

 

때마침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덩샤오핑의 실용주의 노선이 중월전쟁 패전( 중국은 승리했다고 주장하지만 누가 믿어? )의 결과와 맞물리면서 마침내 기존의 '인해전술'( 아직도 인구가 많아서 유사시에는 충분히 감행될 가능성이 있지만 )에서 서방측과 같은 '질적우세의 현대화된 군대'를 추구하게 되었다.
  마오쩌둥 시절에 무차별적으로 늘어났던 공장들도 대폭적으로 구조조정해 90년대 중반까지 총 19개로 줄였으니 과감한 정책이었다 하겠다.
 

 

이쯤되자 앞서 언급한대로 더 이상 적이나 마찬가지인 소련의 총인 56식( ak-47 )이 아닌 중화적 스타일의 국산 소총에 대한 요구가 늘어났지만 63식의 대실패를 경험한 중국은 일단 모험을 더 이상 하지 않고 높은 신뢰성의 ak-47( 총몸 제조 공정만 프레스 가공일 뿐 기본적인 부품들은 ak-47 그대로인 것이 중국의 특징이다 )을 기반으로 내부 구조는 63식의 방식을 개량한 것을 적용하니 바로 1981년에 채용된 81식 소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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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 대량 생산된 56식 소총으로 인해( 톈안먼 사태때도 상당수의 인민해방군이 56식 소총을 메고 진압에 나서야 했다 ) 81식이 인민해방군 및 인민 무장경찰들에게 완전 지급되는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중국 입장에서는 드디어 소련제 총기로부터 탈피해 독자적인 중국제 소총을 장비했다는데 그 의의가 있었다( 그러면서 기관총은 pk와 pkm의 부품을 적당히 짬뽕한 80식을, 저격소총은 드라구노프의 카피를 운용했으니 거 참 재미있는 모순이다 )
 

 

《 독자적인 5.8mm 신형 고속탄 87식의 채용, 95식 소총의 등장!! 》
 
하지만 81식 소총은 강한 반동과 더불어 느린 탄속으로 인해 강력한 위력에도 불구하고 원거리 명중률이 떨어지는 56식탄( 소련제 7.62mm×39의 중국제 라이센스형 )을 사용하는 소총이라는 한계가 있었다.
  물론 이는 의도된 것이 아니다.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군의 m16 소총과 더불어 등장한 5.56mm×45( 일명 5.56mm 나토 )는 소련 못지 않게 중국을 당황하게 만들었고 이 소형 고속탄의 장점( 빠른 탄속을 이용해 소구경의 약한 위력을 보완하고 작은 부피와 가벼운 무게로 많은 탄환을 휴대할 수 있으며, 구경이 작으니 반동이 적어 사격하기도 용이하다 )에 주목한 중국은 안그래도 앞서 열거한 단점이 있는 56식탄에 불만이 있었고 자연히 5.56mm탄에 못지 않은 소형 고속탄을 개발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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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식 소총을 신형 5.8mm×42탄에 맞춰 개량한 87식 소총( 사진은 보다 개량된 87 ━ a식 ). 원래대로라면 81식을 대체할 주력소총이 될 뻔했으나 95식의 채용으로 인해 무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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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식 소총을 기초로 한 95식 분대 기관총( qbb ━ 95 ). 기존의 81식 분대 기관총을 대체할 목적으로 개발되었지만 개인적으로 소총 강화 기관총에 대해서는 그다지 좋은 평가를 내리지 못하는 편이라 88식 다용도 기관총을 더 높게 평가한다( 5.8mm탄 사용 다용도 기관총이라 하지만 개발 초기부터 시행착오가 거듭되었고 이 때문에 중국은 그냥 미국( 5.56mm×45 )이나 소련( 5.45mm×39 )의 탄을 수입하는 것을 고려해 m16과 ak-74( 88식 )의 짝퉁 및 56식 소총을 5.56mm탄에 맞게 총열과 약실, 탄창을 개조한 84식 소총( 이것은 수출용으로 생산되었지만 워낙 7.62mm 버전이 인기다 보니 그다지 실적이 좋지가 않았다 ) 등을 생산해 각종 테스트를 거쳤지만 두 탄환 모두 중국의 요구치에 미치지 못했고 결국 독자 개발을 계속 추진하게 되었다.
 

 

그 결과 1980년대 후반, 마침내 만족스러운 결과를 낸( 물론 제대로된 7.62mm×51이나 7.62mm×54r에 비한다면 한참 위력이 뒤떨어지지만 ) 탄환이 모습을 드러내니 바로 5.8mm×42, 즉 87식 소총탄이었다.
  이 탄은 구경이 5.56mm보다 큰만큼( 대신 탄피의 길이는 3mm 짧지만 ) 5.56mm×45와의 비교 시험 사격에서 압도적으로 우수한 성능을 발휘했다( 자국군 제식탄으로 채용될 물건인만큼 그 비교 대상은 꽤 엄격하게 제작되었다 )
 

 

이쯤되자 중국은 81식 소총을 5.8mm×42에 맞춰 개량한 87식 소총을 내놓았지만 중국은 기왕이면 더 좋은 총을 찾고 있었다.
  때마침 중국은 86식이라는 56식 소총을 기반으로 한 불펍식 소총( 물론 이 총은 사실상 실패작 그 자체지만 )을 개발했던 전례가 있었는데 5.8mm×42탄이 채용되면서 이 탄을 사용하는 불펍식 소총을 개발하는데 가닥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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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인민해방군 최초의 제식 불펍식 소총으로 채용된 95식 소총
  아닌게 아니라 당시 인민해방군은 400만이 넘던 병력을 200만명대로 감축시키고 있었고 수적인 부분을 감소시키는 대신 질적인 향상을 극도로 추구하고 있었다.
  이러한 질적인 향상은 대개 군의 기계화가 대표적이었고 중국 역시 대량의 전차 못지 않게 86식 보병전투차( 소련제 bmp ━ Ⅰ의 해적판 )를 중심으로 한 기계화 보병 전력에 대단히 많은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었다.
 

 

자연히 전차와 장갑차와 같은 좁은 차체( 특히 중국은 소련제를 기반으로 했으니 우리보다 더 심각한 수준이다 ) 내에서 기계화 보병들이 움직이려면 자연히 소총의 길이는 짧을수록 좋았고 이미 프랑스나 오스트리아, 영국은 불펍식 소총으로 무장을 한 상태였으므로 중국 역시 이런 추세가 앞으로 지속( 현재까지는 그렇지는 않지만 )될 것으로 보고 자연스레 86식 이후 중단되다시피했던 불펍식 소총의 개발을 재개했다.
 

 

물론 과거의 86식 소총이 단순히 56식 소총을 무성의하게 개조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던데 반해 이 신형 불펍식 소총은 63식과 81식, 87식에 이르는 중국 총기 개발 기술력이 총동원된 것이 차이점이었다.
  마침내 여러 시행착오를 거쳐 1995년, 이 신형 불펍식 소총은 제식명 95식 소총( qbz ━ 95 )으로 인민해방군에 제식 채용되었다.
  95식 소총은 등장 초기 프랑스의 famas와 유사한 외형 덕분에 famas의 카피가 아니냐는 의혹을 받았지만 컨셉만 유사할 뿐 내부 구조는 87식 소총을 기반으로 불펍식으로 개량된 것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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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식 소총의 등장은 인민해방군에게 있어 큰 의미를 남긴다. 바로 인민해방군이 더 이상 과거와 같은 ak 계열 소총이 아닌 프랑스나 영국, 오스트리아에 못지 않은 불펍식 소총으로 무장한 현대화된 군대가 되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민해방군의 약진은 우리 입장에서 크게 달가운 것이 못된다.
물론 인민해방군은 불펍식의 단점( 길이가 짧은만큼 조준선의 오차가 크며 탄창 교환이 불편하고 탄피 배출구 위치 변경이 곤란함. 슈타이어 aug는 탄피 배출구 위치 변경을 가능케 함으로써 해결 )으로 보험격인 03식 소총을 채용했지만 아직 95식의 성능에 만족하고 있는 것 같다.
 

 

95식 소총은 5.56mm탄보다 강력한 5.8mm탄을 사용하는만큼 최대 사거리나 유효 사거리에서 어느 정도 m4 카빈보다 우위에 서있고 제대로된 보병 소총인 03식에 이르면 m16a2와도 자웅을 겨룰 수 있다.
  내부 구조 역시 최대한 총 자체에 충격이나 진동을 최대한 적게 가해 스트레스를 감소시키는데 주안점을 두었고 노리쇠 역시 묵직하게 가공해 사수에게 전해지는 반동이 최소화되도록 배려했다.
  조준선의 오차가 큰 것에는 중국도 꽤 심각하게 고려했는지 95식은 기존의 가늠자와 가늠쇠 외에도 별도의 스코프 장착이 가능하도록 했으며 전용 스코프의 개발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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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까지 인민해방군은 95식 소총으로 무장을 하는 보병 여단 및 기계화 보병 부대가 늘어나고 있고 un 평화 유지군 및 티베트 주둔군 등 서방측에 노출이 많이 되는 부대에는 필수적으로 지급이 되고 있다.
  탄피 배출구 위치로 왼손잡이 소총수들에게는 불편한 점이 있지만 현재까지는 큰 불만없이 잘 운용되고 있다. 
 

 

인민해방군은 이 외에도 독일 연방군의 mg 36( g36의 총열을 강화한 분대 기관총이지만 역시 제대로된 탄띠식 기관총에 비하면 연사력이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다 )과 마찬가지로 95식 소총을 기반으로한 95식 분대 기관총을 채용했고 전용 40mm 유탄 발사기도 배치하고 있다.
 

 

과 10여년전까지만 해도 81식 소총 등 ak 기반의 소총으로 무장하고 있던 인민해방군이 불펍식 소총으로 무장할 정도로 급격히 발전한 것은 우리 입장에서는 그다지 달가운 일이 아니다.
  현재 차기 소총의 개발이 어느 정도 진척이 되고 있다지만 여전히 후방의 향토사단들은 m16a1으로 무장하고 있는 실정이고 동원 예비군 훈련 때는 m1 카빈이 지급되고 있는 우리 군으로서는 중국 인민해방군의 급격한 약진을 경계해야할 것이다

 

 

 

자료제공 : 야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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